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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호남정맥] 다섯째 구간, 모래재터널∼슬치

작년 11월29일. 이날은 백두대간 종주의 첫 걸음인 지리산구간을 같이 종주했던 이종학씨가 동행을 하여 그동안 계속해온 장승호씨와 함께 일행 한사람이 늘었다.

 

새벽 7시5분, 주유소 왼쪽으로 절개지를 올라 정맥을 잇기 시작하는데 냉랭한 기온에 바람마저 불어와 금방이라도 코와 귀를 베어갈 듯 하다. 터널 아래 모래재로 지나가는 무진장여객 시내버스에는 한 사람의 승객도 보이지 않는다.

 

방공호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기 전 왼쪽 갈림길에 나무를 꺾어 길을 막아 놓아 정맥을 놓치는 것을 방지해 두었다. 오른쪽 신보광산 아래 송정마을에서 들리는 송아지의 엄마 찾는 울음소리가 정맥을 걷는 나그네의 마음을 스친다.

 

7시32분, 새로운 하루를 알리는 해가 떠오른다. 언제보아도 일출은 장엄하고 신비스럽다.

 

작은 오르막을 지나면 키를 넘는 산죽밭이 발길을 잡아 챈다. 오른쪽 송정마을과 왼쪽 세동리의 갈림길을 지나 514.5봉의 삼각점을 찾았지만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563봉을 내려선 잘룩이에는 오른쪽 신촌리 두목마을과 왼쪽 세동리 덕봉마을로 갈리는 사거리가 나온다. 고만한 봉우리를 올라서면 잘 손질된 묘와 왼쪽 농장의 울타리가 나온다. 울타리의 끝부분에 닿으면 벌목으로 어수선해진 주변이 발걸음마저 어지럽게 한다.

 

9시5분, 김해김씨와 밀양손씨의 묘들이 어우러진 묘역을 내려서니 임진왜란때 분투했던 조상들의 흔적을 알리는 웅치전적비가 나온다. 전라북도 기념물 25호인 이 전적비에는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대둔산 옆 이치에서 대승을 거뒀지만, 김제군수 정담은 웅치를 지키면서 화살마저 떨어져 백병전을 벌인 끝에 장렬히 산화하여 호국의 넋이 되었다는 내용이 쓰여져 있다.

 

이 곳은 예전에 전주와 진안을 잇는 도로로서 미륵암을 오르는 입구에 주막이 있어 길손의 여독을 달랬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모래재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곳이 되었다.

 

곰치를 지나 30여분 나아가면 작은 바위들이 모여 있고, 이곳을 지나면 정맥은 급히 왼쪽으로 꺾여 내려가고, 이내 수천 평의 개간지가 나온다. 개간지 오른쪽 가장자리를 따라 돌면 개간지 남쪽 능선으로 오르는 곳에 표지기가 보인다.

 

10시30분, 산죽터널을 헤치고 작은 암릉을 지나 급경사를 내려 서면 오른쪽 웅치와 왼쪽 원불교 훈련원으로 갈리는 조두치가 나온다. 다시 10여분이면 오른쪽 미륵암으로 돌아 내려가는 갈림길이고, 20여분 후에 급경사인 바윗길을 오르면 전망이 그만인 전망대바위이다.

 

만덕산 정상이 코 앞이고 운장산도 지척이다. 다리쉼도 하면서 간식도 나눴다. 전망대바위를 떠나 10여분이면 미륵암 옆 폭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이다. 이 폭포는 겨울철에 빙폭이 되어 전주근교의 산악인들이 빙벽훈련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11시에 만덕산 직전봉에 올랐다. 정상은 오른쪽으로 5분거리에 있으나 정맥에서 벗어나 있어 통과하지는 않았다. 작년 1월6일 금구산우회원들과 이곳에서 시산제를 올리면서 백두대간 종주와 일년 산행의 무사함을 기원했었는데 백두대간 종주를 무사히 마치고 호남정맥을 종주하면서 다시 이 길을 지나게된 김동곤 회장은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만덕산은 전주시민의 젖줄인 상관저수지를 품안에 거느리고 있으며 정상 아래에는 미래의 이상향을 기원하는 미륵암이 있어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고스락을 내려서면 암봉을 오르게 된다. 암봉에 서면 아슬아슬한 암릉이 잠깐 이어진다. 만덕산을 중심으로 전후에 약간의 암봉과 암릉이 있어 지루한 산행을 달래 준다.

 

오른쪽 미치리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 20여분이면 국사봉과 갈리는 갈림길이다. 발길 따라 무심코 직진을 하면 국사봉을 지나 관촌으로 빠지게 되므로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야 한다. 여기서 15분쯤이면 오른쪽 정수사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오고, 다시 10여분이면 왼쪽 상희마을로 연결되는 마치에 다다른다. 마치를 지나 12시, 고총으로 변한 묘역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겨울답지 않은 화창한 날씨, 대자연에 동화될 수 있음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12시32분, 다시 다리품을 팔아야 할 시간이다. 13시20분, 지도에도 없는 시멘트 포장길이 왼쪽에 나타났다. 능선위에 철선이 설치된 것을 보니 농장 진입로인듯 하다. 14시, 왼쪽 상월리를 굽어보면서 북치를 지난다. 20여분이 지났다.

 

416봉에서 삼각점을 확인하고 내려서면 작은 오르막을 오르게 되고, 정맥은 급히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고, 3분여면 다시 왼쪽으로 꺾인다.

 

오른쪽으로 뚜렷한 길이 있는데 이 길은 마사리로 하산하는 길이니 현혹되지 말고 직진하여 올라서야 한다.

 

이 곳을 지나는데 계속해서 8개나 되는 올무를 발견했다. 3개는 제거했는데, 5개는 어찌나 야무지게 만들었는지 맨손으로는 제거할 수가 없어 거두어 두는데 만족해야 했다.

 

15시8분, 용암리와 신전리가 갈리는 갈림길을 지난다. 17번 국도를 지나가는 자동차가 가끔씩 보이고 남관초등학교의 운동장도 보인다. 대단위 채소밭으로 변해버린 정맥을 20여분이나 지나게 된다.

 

관촌 고추의 유명함을 자랑이라도 하듯 대부분이 고추밭이다. 추수가 끝난 고추밭의 황량함이 주위를 가득 메우고 미처 치우지 못한 고추대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따르다가 왼쪽의 비포장인 도로에 들어서면 인삼밭이 나오고 삼포너머에는 관촌이 확연히 드러난다. 농로를 따르다 왼쪽 능선에 오르면 박이뫼산이다. (16시45분) 삼각점을 찾아보았으나 확인하지는 못했다.

 

잘 조림된 숲길을 내려서니 17번국도인 슬치다. 16시52분, 오늘의 9시간47분간 산행이 마무리됐다.

 

산행표(20.4㎞, 9시간47분)

 

모래재터널 4.7㎞ - 곰치재 2.5㎞ - 만덕산 6.9㎞ - 416봉 5.6㎞ - 박이뫼산 0.7㎞ - 슬치

 

 

◈ 만덕산(萬德山/761.8m)

 

▶개요와 유래

 

만덕산은 백두대간이 지리산에서 북향하다가 장안산에서 호남.금남정맥으로 분기되어, 마이산, 부귀산을 지나 주화산(모래재 위)까지 뻗어 와서,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뉘고, 남쪽으로 뻗어 나온 호남정맥의 산줄기가 곰티재를 지나서 솟구친 산이다.

 

만덕산(萬德山/761.8m)의 유래는 한자로 일만만(萬), 큰덕(德)을 써서,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란 뜻이다. 지역주민들에 의하면, 임진왜란과 6.25를 비롯한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도 지역주민들이 전화를 입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만덕산이 덕을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행정구역상 전북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소양면 신촌리에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야생생물 실태조사 지역으로 산림청 임업연구원과 전라북도 환경연구소에서 북부 고정조사 산악지대로 관찰, 연구, 보전하는 지역으로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전주근교에 위치하고 있어 모악산과 대둔산, 오봉산과 함께 도내의 등산객들이 1일 산행코스로 가장 많이 찾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전주에서 소양, 화심을 지나 구도로의 곰티재 못 미처, 중간쯤에 서편으로 우뚝 솟아올라 있고, 또 전주에서 신리를 거쳐 마치리 정수마을 앞 동편으로 바라보이는 산이다. 만덕산은 육산과 암봉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봄에는 각종 산나물과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과 어우러진 녹음, 가을철에는 머루 다래와 단풍, 겨울에는 설경과 빙벽등반 등이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동쪽 산기슭의 암벽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미륵사와 그 아래의 높이 50m의 암벽을 타고 비류직하하는 만덕폭포의 장관은 주변의 시원한 계곡물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여름철의 피서지로서 겨울철은 산악인들의 빙벽등반 장소로 애용이 되고 있다.

 

서쪽 정수(淨水)마을의 산행 초입에 위치한 정수사(淨水寺)는 미륵사, 일출암(왜막실 위)과 함께 만덕산의 3대 사찰로 불리고 있으며, 진묵대사가 한때 주석했던 사찰이다. 전북의 명산에 소재한 사찰들을 차례대로 답사해본 결과, 진묵대사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사찰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치리 정수마을의 유래는 한자로 맑을정(淨), 물수(水)를 써서 물이 맑은 마을이라는 뜻인데, 이를 증명이나 하듯 이 주변의 산세가 수려하고 물이 맑아서, 정수마을 아래에 수원지가 있는데, 전주시민들의 식수를 공급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리는 말마(馬), 고개치(峙)를 쓰는데, 옛날 진안, 마령방면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다니던 길목(고개)이라서, 마치(馬峙)라고 하였으며, 또 마치의 용정(龍 )에서 물을 먹이고, 큰 귀목나무 밑에서 쉬어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편의 등기점인 신촌에서 구도로를 따라가면 곰티재가 있는데, 이곳은 임진왜란때 전주를 공략하기 위해 침입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적인 전적지이며, 6.25때 빨치산들의 잦은 출몰로 아군들을 괴롭혔던 요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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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곤 baikkg@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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