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3-01-30 23:37 (Mon)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사회 chevron_right 날씨
일반기사

[전북광장]봄소식

 

햇살이 눈부시다. 얼어붙은 땅이 녹는가 싶더니 앞산에 아지랑이까지 일렁인다. 양지 우물 옆 버드나무가지가 수줍게 기지개를 켠다. 춘삼월이라고 했던가? 봄기운이 완연하다. 아파트 콘크리트 벽 틈바구니를 뚫고 올라오는 잔디 싹이 정겹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경칩이 내일 모래다.

 

두꺼운 잠바를 벗었다. 마음이 바빠진다.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 길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해 겨울보다 더 추었던 것 같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것도 조바심이 났고 때아닌 겨울비까지 모두 마음에 걸렸다. 초겨울 새 잔디를 심은 아버지 산소 봉 분이 훼손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오래 된 탓인지 봉 분이 갈아 앉고 잔디가 망가진 것이 보기 싫어 지난 초겨울 새 단장을 했었다.

 

아버지 돌아 가신지 삼십 년이다. 바쁘다는 핑개로 일년 내내 발길을 끊었다가 추석에나 겨우 한번씩 들려 보던 산소였다. 나이를 먹어 이제야 철이든 탓일까? 효도를 한답시고 추워질 때 산 일을 하고 보니 새삼 생색이나 내듯이 신경이 쓰인다. 사실 처음 생각은 다가올 봄 한식 때나 손을 볼까 했었다. 한데 조경 하는 사람이 잔디는 가을에 옮겨 심어야 뿌리를 내린다고 했다. 추위 속에서 오히려 얼어죽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면서도 전문가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일하는 날은 날씨가 좋았는데 끝을 내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눈이 내렸다. 첫눈이 반갑기는커녕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겨울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 해서 급기야는 후회까지 했었다.

 

조금 이르지만 가보자. 서둘러 나섰다. 허위허위 산으로 올라섰다. 아카시아 잎이 피어나고는 있었지만 꽃향기를 맡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조급한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느릅나무 속잎이 노란 싹으로 인사를 한다.

 

아! 정말 다행이다. 작년 초겨울 만들어 놓은 봉 분이 그대로 있다. 자세히 보니 잔디 싹도 조금씩 보이는 듯 싶다. 겨우내 속 알이 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기분이 좋아 한바퀴 돌아보던 나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막 봉오리가 벌어지려는 할미꽃 한 송이가 고즈넉하게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잔디를 옮겨 심을 때 꽃씨가 따라 온 모양이다.

 

아!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할미꽃인가? 묵념을 하듯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서있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탐스럽지도 않다. 화려하지도 않다. 진한 향도 없다. 한데도 왜 이렇게 청조하고 친근하게 보일까? 아버지 무덤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일까? 고개 숙인 봉오리를 매달고 의연하게 서있는 연약한 꽃대가 대견스럽다.

 

어릴적 내가 살던 마을에는 할미꽃이 지천이었다. 길가에도 간혹 서있었지만 야산 공동 묘지에는 일부러 키운 것처럼 많은 할미꽃이 모여 있었다. 이상한 것은 큰 새 무덤보다는 오래되고 가꾸지 않은 무덤 가에 많이 피어있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더 정이 갔는지도 모른다. 묘지에 피는 꽃이었으니 음산하게 느껴져야 당연한데도 오히려 정이 갔던 것은 오만하지 않고 경건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조용하게 서 있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꺾어서 책갈피에 끼어 말리기도 하고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 봄소식으로 함께 보내기도 했었다.

 

진정 고향에 누가 있어 아버지에게 봄소식 전해주려고 보내준 것일까? 아니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영혼이 일부러 들고 온 꽃씨일까? 늦게나마 효도를 한 것은 잘 한일인 것 같다. 소중한 꽃대를 잡고 손가락으로 흙을 다져주었다. 내년에는 더 많은 꽃씨를 날려 고향을 그리워하는 외로운 영혼들에게 새봄소식 전해 줄 수 있기를 진정 바랬다.

 

/羅大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0 / 400
사회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