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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새해 첫날에 오신 손님

한두 가지 생활다짐이라도 하고 새해를 맞아야 도리가 아닐까 싶어 새해 첫 아침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궁리를 하고 있는데 뜻밖의 손님이 왔다. 단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이 사람은 처자식과 늙으신 어머니까지 모시고 우리집을 찾았다.

 

이번에도 이 사람은 내 손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 만났을 때도 악수를 하면서 내 손을 보고는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난데없이 눈물을 보여 나를 무척 당황하게 했던 사람이다. 이제 갓 환갑 지났을까 싶었는데 여든 셋이라는 늙으신 어머니에게 나보다도 내 손을 먼저 소개했다.

 

“어매, 어떠요? 이 손 아버지 손 닮았지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이 남자의 두 가지 점을 수상쩍게 생각했었다.

 

한 가지는 2년 전에 여든 둘로 세상을 뜨신 아버지 얘기를 하며 몇 번이고 울먹이는 모습에 몹쓸 불효 짓을 많이도 했구나 싶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품속 지갑에 자식이나 아내사진 대신 부모 사진을 넣고 다니며 틈틈이 꺼내 본다는 점이었다.

 

새해 첫날 집에 있었던 것이 마치 이들을 맞으라는 하늘의 뜻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맞이 명상모임 몇 군데에서 오라는 연락이 있었고 해돋이 등산제안도 있었다. 특히 함양의 녹색대학에서 하는 단식모임은 하루전날 불참을 통보했었다.

 

우리집 세 식구에 다섯 식구가 합하여 여덟 식구가 만두를 빚어 점심을 먹었다. 눈물 많은 이 남자에게 눈물의 내력을 물어봤다. 대답은 늙으신 어머니에게서 나왔다.

 

열여덟에 시집을 와서 63년을 ‘영감님’과 함께 살았는데 한 살 위인 영감님이 자기를 막내딸처럼 업고 안고 보살폈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살았지만 호미자루 한번 만지지 않았고 김치나 담고 애들 밥이나 해 먹이는 것 외에는 모든 일을 영감님이 다 해 주셨다고 한다. 영감님이 장도 봐주었고 제사상도 차렸다.

 

여러 번 이사를 다녔지만 매번 영감님이 밤새워 찬장 접시까지 종이에 포장하여 다음날 ‘가세.’라고 하면 그냥 따라나서면 되었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밖에 나갈 때 마다 ‘뭐 맛 난거 사 오까?’라고 하셨다. 얘기를 들으며 괜히 내 가슴이 찔리기도 하고 설마하고 믿기지 않기도 했다.

 

영감님은 자식에게도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일곱 남매가 매 한번 맞은 적이 없고 심한 꾸지람도 한번 듣지 않았다. 집안에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고 자식들은 똑바로 자랐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정정하게 사시다가 자전거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험한 일로 평생을 보낸 ‘영감님’은 손이 나처럼 크고 거칠었나보다. 이 남자는 나를 만나러 왔다기보다 상징처럼 되어있는 크고 투박한 아버지의 손을 쥐러 왔던 것이다.

 

마흔넷의 이 남자는 여든 셋 늙은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응석을 부렸고 중학생 자식들은 아버지를 걸터타고 놀았다.

 

할머니는 일곱 자식들이 다 부부간에 금슬이 좋고 효자라고 했다. 자식한테 효도 받고 싶으면 부모 잘 모시면 된다고도 덧붙였다. 이 말에 나는 부리나케 서울 큰집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새해 안부 전화를 넣었다. 자식들 보는데서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전희식(전주라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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