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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그들은 왜 걷는가

현장음까지 ‘쌩’으로 담아서 잘 만든 광고 카피 하나. “당신이 산 영화표가 칸 영화제 수상작 <올드보이> 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산 음악 CD가 아시아의 별 보아를 만들었습니다. 문화에 투자하세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공짜영화 밝히지 말고 음악 CD도 정품을 사라는 소리인 건 알겠는데, 그 소리를 되씹다가 잠깐 씁쓸해진 건 또 무슨 까닭인가. 얼마 전에 영화판에서 벌어졌던 해프닝 한 토막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해프닝의 정점에 그 <올드보이> 의 주인공이 있었다. 보기 민망하게도 그는 목에 핏줄을 세우고 마이크에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우리처럼 예술활동하는 사람이 삶을 ‘지탱하는’ 이유는 돈이 아니다. 아니할 말로 영화 한 편 출연해서 감독이 요구하는 캐릭터 구현을 위해 혼신을 다해 연기한 대가로 돈 5억도 요구하지 못한단 말이냐.” 압권이었다. ‘억’ 소리 다섯 개에 피식, 허탈한 웃음까지 나왔다.

 

문화는 각고의 정신적 산물이다. 인간이 자기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거기에 투자하는 건 옳다. 경우에 따라서는 ‘투기’인들 못하랴. 문제는 즉물적이고 말초적인 시각과 청각 만족에 경도된 우리 모두의 문화 편식 현상이다. 편식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배웠다. 문화에 아낌없이 투자하라고 했다. 그 대가는 우리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면서. 확실히 돌아오긴 왔다. 편향된 투자 덕에 황금만능과 물신숭배에 따른 정신 공황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공익’이라는 이름의 그 광고 카피 속에 ‘당신이 산 시집 한 권이 미래의 노벨 문학상을 만듭니다.’라는 한 구절조차 끼워넣을 여유는, 우리에게, 정녕 없었던가. 문득, 밤을 꼬박 밝히면서 시 한 편 소설 한 대목하고 씨름하는 게 일인 몇몇 후배들의 얼굴이 여운처럼 떠올라서, 그래서 더 씁쓸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바로 그들, 우리 지역의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전북문학지도> 라는 생소한 이름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전라북도 전역을 망라하는 문학적 자산을 지역별로 샅샅이 뒤져서 해마다 한 권씩 책으로 펴낸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주말을 이용해서 정해진 행로를 따라 하루 수십 킬로미터씩 문학 유적지를 탐사하는 것이 요즘 그들의 일이다.

 

시인의 생가도 찾고, 그 후손들을 만나서 뒷이야기도 듣고, 작품의 배경이 된 자연환경이나 시설도 카메라에 꼼꼼하게 담아온다. 그 길에서 새로운 글감을 얻는 건 뒤범벅된 땀을 말끔하게 식혀주는 소나기 같은 덤이다. 작년에는 고창, 부안, 김제, 군산 등지의 지도를 품격높은 한산모시처럼 촘촘하게 잘 짜서 내놓았다. 이 여름에는 무주, 진안, 장수에 더하여 임실, 순창, 남원 지역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내년에는 전주, 완주, 익산, 정읍의 문학 유산이 지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그려지게 된다.

 

자신들이 쓴 시집이 영화표 한 장에 덤으로 얹혀지는 세태에 가슴이 아려도 그들은 떠난다. 우리 지역의 소중한 문학 자산이라면 풀 한 포기조차 놓치지 않겠다고 물팍 연골이 닳도록 걷는다. 지난 주말에도,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이고 장맛비와 땀에 젖은 바짓가랑이를 철벅거리며 산과 들길을 걸었을 그들의 뒷모습만은, 아무쪼록, 쓸쓸하지 않았으면 한다.

 

/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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