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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그림을 읽다보면

비 갠 뒤의 해맑은 풍경을 보고 누구나 한 번 쯤 감탄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깨끗하고 선명한 세상이 마음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담담하고 운치 있게 그린 동양화 한 폭이 떠오른다. 동양화 중에서도 수묵화는 먹물의 농담이나 번지고 마르는 효과만을 이용해서 깊고 그윽하게 표현하기에 그와 잘 어울린다.

 

그림을 보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온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그림 읽는 법을 배운다. 그림을 통해서 역사를 읽고, 풍습을 읽는다.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 마음을 읽고, 각기 다른 차림새를 비교하여 신분을 알아낸다. 그런 다음 상상의 날개를 달고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고 한 편의 이야기를 짓기도 한다. 서양 그림도 읽지만 아무래도 우리 선조들의 옛 생활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더 흥미롭고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가끔 아이들과 옛날 사람들은 미술 학원도 안 다녔을 텐데 그림을 참 잘 그렸다고 천연덕스레 말을 한다.

 

우리나라 옛 그림을 읽다보면 해학과 여유가 있어서 좋다. 허술하고 느슨한 옷차림과 표정이나 몸짓이 마음을 눅어지게 한다. 그러나 결코 누추해 보이지 않는다. 기러기가 날아가는 가을 날 물가에 배를 대 놓고 잡은 고기가 몇 마리나 되는지 한가로이 세고 있는 사람을 그린 그림이 있다. 배라고는 하지만 사람 몸집보다 더 작아 보인다. 그의 표정에서 쫓기는 듯한 조급함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시간과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날마다 쳇바퀴를 돌고 있다. 눈 속에 피어 있는 매화를 찾아가거나 달빛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는 선비의 풍류는 가히 전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보인다.

 

요즘 같은 삼복 더위엔 이경윤의 ‘고사탁족도’나 ‘수하취면도’를 보며 그림 속으로 들어가 봄 직하다. 저고리를 풀어헤친 채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피서를 하는 모습과 술에 취해 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는 선비 그림을 보면 여유와 나태함도 부럽다. 그야말로 현대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요새는 피서조차 번잡하고 북새를 떨어서 몸과 마음이 쉬지 못 한다.

 

동양화의 가장 큰 특징은 여백의 미다. 옛 그림이 좋아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알록달록 색칠하고 빼곡하게 채워놓은 마음과 생활 속에도 여백을 두고 살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중국 대사가 폭탄주 열 잔 정도는 사양하지 않고 마시며, 어느 때는 한국 사람보다 더 ‘빨리빨리’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우리나라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했다. 잠시 기분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혼란스러웠다.

 

우리 정서를 ‘빨리빨리’라고 압축하여 표현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조금은 느리게 한 박자 늦춰 살자고 말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 하다. 쉴 새 없이 뛰지 않으면 삶의 낙오자가 될 것 같은 강박 관념이 아이들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 된다. 어른들 마음에 여백이 없으니 아이들의 시간과 공간에도 일찌감치 여백은 사라졌다. 아이들과 옛 그림을 읽으며 여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마음을 쓴다. 그 아름다운 빈 자리가 남겨진 채 자라가기를 바란다.

 

 

/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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