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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음악가에게 생물학은 무슨 필요가 있을까?

고봉인은 첼리스트로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12살 때 차이코프스키 국제 청소년 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하며 국제무대의 총아(寵兒)가 되었습니다. 이제 스무 살의 아름다운 청년이 된 고봉인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유럽과 미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독주회를 가진 주목받는 첼리스트입니다.

 

이번 여름에도 서울과 통영에서 연주를 초청받아 한국에 다녀갔습니다. 출국을 며칠 앞두고 모처럼 고향인 전주에 들렀습니다. 고봉인은 불고기를 먹자고 제안했습니다. 불고기라? 그러나 선뜻 불고깃집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삼겹살 등심 갈비 등을 숯불에 굽는 바비큐가 아닌 놋쇠 불판에 양념된 고기를 얹어 지글지글 끓이는 불고기 있잖아요. 그 테두리 오목한 곳에 육수가 괴면 밥에 스윽 비벼 먹기도 했죠. 결국 불고깃집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어느 식당에 들러 불고기 메뉴를 발견했습니다. 다행히 그 식당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불고기요리를 해줘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런데 먹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 많던 불고깃집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한국에 다녀간 외국인들이 꼭 기억하고 있던 한국음식 중의 하나가 불고기요리였는데... 이제 찌거나 삶거나 볶는 고기보다 소위 직화(直火) 바비큐에 밀려 불고기요리도 사라져가는 건 아닐까?’

 

고등학교를 독일에서 다닌 스무 살 먹은 이 청년은, 아버지가 나온 신흥중학교를 자신도 나왔다는 걸 연신 입에 달고 있었습니다. 전주생활 5개월밖에 안된 제가 신흥중학교를 알리 없죠. 그리고 요즘 중학교 ‘어디’ 나온 게 무어 그리 대수겠습니까? 내심 이렇게 짐작한 저는 이내 부끄러워졌습니다. 고봉인에게 ‘신흥’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거죠. 그에게 중요한 건 ‘중학교 신흥’이 아니라 ‘전주에 있는 신흥’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중학교 시절만 전주에서 보낸 그에게 ‘신흥’은 ‘전주’를 환기시켜주는 키워드였던 셈입니다.

 

그런 그가 지난해, 하버드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열려있는 음악가의 길을 마다하고 생물학도로 입문하다니요. 그는 부친인 고규영 박사(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가 전공한 ‘혈관내피 세포 연구’ 분야를 이어받고 싶어 생물학을 택했다고 합니다. 음악가에게는 음악원이나 음악대학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더욱이 한국에서는 특정 예고나 특정 음대 출신 아니면 음악가로 행세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음악을 한다는 것은 단지 ‘기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테크닉은 이미 20세기 음악의 대가들에 의해 정복됐다고 합니다. 오히려 21세기 음악가들 중에서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줄만한 음악가를 찾기가 더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마치 바비큐요리에 밀려 전통적인 불고기요리를 할 수 있는 집을 찾기가 힘든 요즘 상황과 마찬가지죠.

 

저는 세계인들의 입맛이 인정한 ‘한국식 불고기요리’가 필요하듯, 기교적으로 완성된 21세기 첼리스트에게 ‘생물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봉인이 연구하는 ‘혈관’은 음악연주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음악가의 혈관구조가 연주에 미치는 영향이라든지...

 

‘미켈란젤로의 혈관에는 페인트가 흐른다’ 는 당시 선현(先賢)의 비유가 생각납니다.

 

/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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