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야 갖고 넘들 형편도 좀 생각혀 주기도 허고 양보도 좀 허고 그려야지, 저거 어디 쓰겄냐. 암만 갑갑혀도 1분만 참으면 될 턴디, 쯧쯧.”
지난 일요일, 칠순을 맞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금산사로 가는 길이었다. 서신동에서 삼천천을 따라 몇 개의 언더패스 도로를 지나서 박물관 쪽 다리를 건너가려고 1차선에 차를 세우고 직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자동차 경음기 소리가 내 차 바로 옆 2차선 쪽에서 들렸다.
저걸 꼭 울려대야 직성이 풀리나 싶으면서도 잠깐 눌러대다 말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혹시 길을 물으려는 건 아닌가 해서 고개를 돌렸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운전석의 사내는 아예 경음기 버튼에 손을 얹어 두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앞차에 대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대충 짐작이 갔다. 자동차 서너 대가 언더패스 도로로 향하는 2차선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저럴까 싶어서 그 차 안을 건너다보았다. 그랬더니 웬걸, 그쪽도 우리처럼 일가족 나들이인 모양인데 가장의 일그러진 표정과는 달리 동승한 여자와 아이들은 희희낙락이었다.
졸지에 길바닥에서 뒤통수에 욕을 얻어먹고 있는 사람도 궁금했다. 바로 앞 차 안에서는 운전대를 붙잡은 중년 여자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딱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중년 여자도 덤프 트럭에 가로막혀 있는 처지였다. 그리고 우연히 목격한 그 중년 여자의 차는 타 지역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음기 소리는 계속 울려대고 있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하도 시끄러워서 내가 퉁명스러운 소리를 한 마디 내뱉었다. 그러자 뒷자리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저런 것도 다 공해여.” “네? 네에. 그럼요. 소음공해도 큰 공해지요.” “소음공해도 소음공해지만 저건 사람공해라서 사단이다.“ ”사람공해요?“ “너도 글 쓴담서 생각 좀 혀 봐라. 저그 저 사람, 지 속에서 부글거리는 화를 못 참고, 그걸 분풀이허자고 저렇게 시상 시끄럽게 혀서 넘들헌티 공연한 피해를 주고 있잖으냐.”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경음기 소리는 사이렌처럼 멈추지 않았다. 가장이 저러니 그 아이들은 뭘 보고 배울까 싶었다. 그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해묵은 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내는 것이었다.
“내가 처녀 적에 진안으로 시집간다고 헝게 누가 그러더라. 진안 친구 망할 친구라고 허는 말도 못 들어봤냐고. 생판 타향으로 시집가는 세상물정 어두운 처녀헌티 그게 헐 소리고 아니고는 관두더라도, 그러거나 말거나 가서 살아봉게 내 보기에는 진안 사람들 더없이 순하고 착허기만 허더라. 근런디 어쩌자고들 그런다냐 허고 가만 생각혀 봉게, 담박에 알겄더라. 필경 진안 사람 누가 외지 사람헌티 참말로 ‘망할’ 만한 짓을 혔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망할’ 짓 허고 댕기는 사람은 어디 가도 다 있는 것인디, 하필이면 진안 사람이 헌 짓만 침소봉대되야 갖고 그렇게 된 것일 테지. 그런 말이 떠돌아댕기게 ‘망할’ 짓을 헌 사람이나, 그걸 한 데 묶어갖고 ‘망할’ 말을 맨들어서 퍼트리고 댕긴 사람이나, 지금 저렇게 한길에서 넘들헌티 피해를 주고 있는 저 사람이나 알고 보면 다 똑같다.”
진안 친구 망할 친구라는 말은 어릴 적에 나도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괜히 억울하단 생각이 들곤 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어머니의 얘기는 계속됐다.
“저그 앞에 서 있는 차를 봉게 외지에서 온 것 같은디, 운전하는 저 여자는 또 어떻게 생각허겄냐. 전주라고 허는 디를 가봉게 거그 사는 사람들은 모다 심성도 불뎅이 같이 급허고, 넘들 입장은 요만큼도 생각혀 주지 않더라고, 언감생심, 문화도시는 무슨, 택도 없는 소리라고 안 허겄냐. 거그까지만 혀도 괜찮은디, 저 여자 딸이나 아들이 나중에 장성해 갖고 어쩌다가 전주 사람허고 혼인 말이라도 오고 가게 되면 필경 오늘 일이 떠오르지 않겄냐. 그러면 그 손해를 당허게 되는 아무 죄도 없는 다른 전주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사람이 되야 갖고 넘들 형편도 좀 생각혀 주기도 허고 양보도 좀 허고 그려야지, 저거 어디 쓰겄냐. 암만 갑갑혀도 1분만 참으면 될 턴디, 쯧쯧.”
/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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