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우린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또 그것을 오랫동안 배워왔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역사를 갖지는 못하였다. 우리가 배운 역사란 왕조나 지배계급의 흥망성쇠, 위대한 인물들의 영웅담, 그리고 거창한 사건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루는 다수 보통사람들의 삶과 그 자취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일은, 따라서 역사를 민주화하는 작업이며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일은 ‘먼 옛날’을 통해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까운 옛날’인 지난 20세기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시기도 그렇게 한가하게 해찰할 여유가 없다. 시대를 증언해 줄 많은 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이 시대 생활의 흔적이 급격히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서둘러야 할 일은 지난 20세기를 살아온 그들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의 객체로만 머물러 있던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날의 삶’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민중들에게 일상적 삶은 전쟁이나 혁명보다 중요하다. 20세기 한국 민중이 겪은 거창한 사건들도 이러한 일상생활을 떠나면 진정한 역사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 스스로가 말하거나(구술하거나) 쓴 ‘생애사’ 또는 ‘생활사’, 다시 말하면 ‘자서전’은 역사 바로 잡기의 구체적 실천 가운데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동안 우리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사람들이나 자서전을 남기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민중들의 자서전이란 이른바 잘난 사람들이 쓰는 자화자찬 일변도의 찬양록이나 회고록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일제시대, 6?25전쟁 등등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한국의 민중들은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그들의 마음 속 깊이 넣어둔 삶의 응어리들은, 그것이 자서전으로 복원되는 한, 한국 현대 생활역사 자료의 귀중한 보고가 된다.
그들의 파란만장한 일상적 삶의 역정을 듣고 기록하는 일은 그들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지금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올해로 4년째 이런 일을 해온『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www.minjung20.org)』에서는 때마침 ‘민중자서전’을 널리 공모하여 수집하고 있다. 가능한 한 그것들을 많이 모아 체계적이고도 종합적인 자료집성을 구축해야 한다. 21세기 우리 세대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이다. 그 임무 수행의 구체적 방법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연구단 홈페이지에 들러 그들의 작업을 참고하기를 권한다.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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