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용(원광대교수·한국문화학)
최근 국보 11호인 익산 미륵사지 서탑의 사리장엄 발굴은 백제의 꿈을 되살려 주었다. 이와 관련해서 왕궁면 일대가 아득한 낭만으로 다가온다.
몇 년전 국회는 「고도보존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경주?공주?부여와 더불어 익산을 고도(古都)로 인정하고 국력을 들여 이의 보존에 착수한 것이다. 1973년 원광대학교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설립되어 시작한 미륵사지 발굴사업이, 국책사업으로 확대되어 이어져 온 결실이다. 사리장엄의 발굴은 이에 걸맞은 고고학적 성과라 할 것이다.
백제의 익산천도에 관해서는 『삼국사기』에 한 줄의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중국자료인 『관세음응험기』는 무왕(재위 600-641)의 천도를 분명하게 그리고 있다. 과연, 익산시 왕궁면 일대의 발굴을 통해 백제왕성터가 발굴되어 그 권역이 확실해졌다. 그곳에서는 각종 생활도구며 화장실의 휴지대신으로 사용했던 똥친 막대기들까지 발굴되었다.
왕궁의 존재를 징험하는 궁터와 크고 작은 산성이며 큰 절 그리고 왕릉까지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삼국사기』의 찬술책임인 김부식(金富軾)이 1135년, 묘청에 의한 대화국(大華國, 평양)천도운동을 진압한 대장이었음을 상기하면서, 무왕재위 때의 기록이 특별한 점을 짚어, 백제의 천도에 관한 사항을 고의로 윤색(潤色)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어떻든 오늘날 익산지역은 금관이 출토된 웅포 입점리의 기념관을 비롯하여 왕궁리 기념관, 그리고 미륵사 기념관을 개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미륵사지 서탑 발굴의 사리장엄은 물론 왕궁리오층석탑내 발견유물, 즉 국보 123호로 지정된 금판 금강경(金板金剛經)과 사리용기 등은 이들에 소장되지 못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다. 전시관은 격이 국립박물관이 아니라는 법규정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문화재는 현지에 소장되는 것이 최적이다. 현지 주민들에 있어서 그것은, 조선왕조의 의궤(儀軌)가 프랑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혹자는 전라북도에는 전주에 국립박물관이 있으니, 익산에 부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충청남도는 왜 공주와 부여의 두 곳에 국립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는가? 익산이 고도라는 엄정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경주를 여행하던 외국학자가 에밀레종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나라였다면 이 작품 한 점으로도 박물관을 운영할 것입니다.」라고. 익산은 금번 유네스코에 「익산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시켰다. 지금 우리나라에 고대 도성이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는 곳이 익산밖에 없다고 하면 의아해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이제 고도 익산의 큰절 미륵사지역에 국립박물관을 운영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시관을 격상하면 작업은 쉬어질 것이다. 최근 이에 대한 움직임은 있어 왔다. 생각해 보면, 지자체(地自體)의 발전전략을 보더라도 이는 민관(民官)이 사력(死力)을 경주해야 할 일이다.
/양은용(원광대교수·한국문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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