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자인산부인과원장)
최근 유명 연예인 남매의 잇따른 자살 소식을 들으며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남은 자의 깊은 슬픔, 자신을 죽여야하는 비통함과 자신으로부터 죽임을 당해야 하는 절망감 등으로부터 전해지는 것이었다. 느낌의 일단을 꺼냈을 때 선배의사 한분은 의사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하였다.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자살은 작품의 모티브로서 다양하게 표현되어 왔지만 자살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은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어 인문학이나 과학, 심지어 의학분야에서 조차 연구가 활발치 않은 편이다.
2007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망원인별 사망률(10만명당)은 암이 부동의 1위(137.5명)를 차지하고 있으며 뇌혈관 질환(59.6명), 심장질환(43.7명), 자살(24.8명)이 그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보다 주목할만한 점은 1997년 자살은 사망원인 8위(13.0명)를 차지하였으나 10년만에 4위로 사망율이 두배로 늘었으며, OECD평균 자살율과 행복지수에 비춰보았을 때 우리나라가 자살율 1위 행복지수 28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몸담은 사회가 세계적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 이미 떠나온 자리를 바라보며 의욕을 잃어가는 구성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대변해주고 있다.
메닝거 KA가 1967년 집필한 저서 '자살론'은 필자가 80년대 후반에 읽었던 책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에 성공한다. 다만 그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파괴적 본능과 건설적 본능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자기파괴의 본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 죽음의 완급과 자기파괴의 본능 저편에 숨어있는 작동기재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통해 삶의 희망과 건설적 삶을 추구하기 위한 성찰로서 집필된 이 책은 자살에 관한한 드믈게 만날 수 있는 심도있는 학문적 결과물이다. 자살과 관련된 우울한 소식을 접한 후 서고 한켠에 꽂혀있던 빛바랜 책을 다시 뽑아 읽게 되었다. 60년대 미국사회에서 집필된 저서가 현재 시점의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인간 사회는 문명과 문화의 바다를 정박없이 항해하는 거대한 함선이다. 구성원이 속한 함선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리더를 따라 문명과 문화의 좌표를 바꿀 때 개개인의 심리적 좌표는 함께 움직인다. 특정 개인이 함선의 방향에 적응하지 못할 때 잃어버린 좌표를 향해 함선으로부터 투신하게 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
암을 정복하고 심혈관 질환이나 심장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고자 하는 논의는 역동적이며 찬사받기 쉬운 것이다. 자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은 유쾌하지 못하며 사람들의 귀를 돌리게하는 주제이다. 그러나 오히려 자살이 기질적인 질환에 의한 죽음에 비해 사회병리적 기재와 훨씬 인과관계가 깊으며 임상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가나 지역사회는 잠재적으로 자기 파괴의 본능에 사로잡힌 또는 사로잡힐 수 있는 개인을 세심한 배려로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종교, 임상의학, 복지행정, 구호구조 등 관련 분야의 전문인들이 협조하여 그들의 삶을 지지해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자살은 전적으로 유명을 달리한 한 개인이나 그 가족만의 영역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김관식(자인산부인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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