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덕 (전주대 교수)
성탄절,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에 반가운 손님들을 맞이하였다. 일본 게이센여학원대학 명예교수인 우쓰미 아이코 교수와 무라이 요시노리 와세다 교수님 부부이다. 특히 우쓰미 아이코 교수는 일본 전후 보상 문제 및 아시아의 역사와 평화에 관한 전문 연구자이다. 일제시대 조선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책을 통해서만 알았던 우쓰미 교수님이 전주·군산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길안내를 자처한 것이다.
시민운동가이자 연구자로서의 명성이 높은 우쓰미 교수는 30년 전부터 우리 지역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을 도운 공로로 1975년 11월 인도네시아 국립묘지에 안장된 코마드린(일본명 야나가와 시치세이)의 이름 "양칠성"과 국적 "한국"을 찾아 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양칠성은 1919년 전북 완주군 삼례에서 태어나, 1942년 일본군에 징용으로 끌려가 자바섬 포로 수용소 감시원으로 일하다가,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하고 인도네시아의 독립군에 가담하여 1948년까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뒤 1949년 크르콥 지역에서 공개 총살된 인도네시아의 독립영웅이다. 2002년 방송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
일본인들이 강제 모집한 조선인 포로감시원 3016명이 타이·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에 배치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포로감시원은 연합군 포로 학대 협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14명이 사형되고 129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그 대부분은 조선인들이었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결성한 '동지회'를 통해 우쓰미 교수는 조선인 '전범'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위해서 군사재판이 열린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네덜란드 등을 찾아다닌 결과물을 세상에 발표한 것만 30여 책에 달한다.
전주와의 인연은 또 하나 있다. 2008년 출판한 '누가 김을 심판하였는가'라는 책의 주인공 김완근씨이다. 김완근씨는 1922년 전주 우전면에서 태어나 자바포로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한 죄로 10년의 징역형을 언도 받은 뒤, 1952년 가석방되어 현재 한국·조선인 BC급 전범의 보상 등 청구재판의 원고로 아직도 도쿄에 생존해 있다.
이 책의 전반부 대부분은 김완근씨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제시대 전주지역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지역사 자료로서도 가치를 가진 이 책은 고난했던 사람들의 험난한 여정이 드러나 있다. 우쓰미 교수님과 일제시대 전주의 공간들, 전북도청, 전주군청, 전주역, 다이쇼도오리(웨딩거리) 등을 살펴보고 수탈 1번지 군산을 돌아 본 하루의 여정은 세밑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새겨보는 시간들이었다.
아직도 BC급 전범 문제뿐만 아니라, 노무자 미불금, 위안부·군인군속 유골 귀환, 시베리아 억류자 등 65년이 흐른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숱한 사건들이 산재해 있다. 강력한 군사적 대응만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궤변의 논리를 보면서 기억해야 할 아니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할 것이다.
/ 홍성덕 (전주대 교수)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