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문화마주보기] 나는 느린 전주가 좋다

조지훈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지난 10년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일하면서 1년에 한번씩 영화제를 치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국내·외의 여러 도시를 다녔다. 늘 낯선 도시에 가면 내가 일하는 영화제가 열리는 전주라는 도시를 생각하게 된다. 전주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온전한 고을'이라는 한자어의 뜻대로 큰 사건·사고가 많지 않았던 조용한 도시이다. 경주처럼 유명한 역사적인 관광지도 없고, 서울처럼 높은 빌딩과 화려한 쇼핑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산처럼 바다가 가까이 있지도 않고, 전통 문화의 도시라고 하지만 전통 문화는 전주만의 것은 아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전주를 방문한 관객들과 게스트들을 가만히 보면 그들은 영화제를 위해서 전주에 오지만, 잠시 여유가 생기면 전주라는 도시를 탐색하고 싶어한다. 한 두 군데라도 한옥마을처럼 전주에서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가고 싶어하고, 전주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가 음식을 맛보고 싶어한다. 그런 면에서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전주는 꽤 매력적이다. 그러나, 전주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찾는 사람들에게 전주는 점점 심심한 도시가 되어간다.

 

그래서 전주같이 작은 도시가 전주를 찾아온 외지 관광객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반복적으로 전주를 찾도록 할 수 있는 일은 작지만 의미있는 공간들을 찾아 이야기를 만들어 알리는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스토리텔링이라고 부른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그동안 맛집 지도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영화제의 관객들에게 전주의 다양한 공간들을 소개해 왔고, 2009년에는 전주를 찾는 게스트와 관객들을 위해 이러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에 입각하여 전주의 맛거리와 볼거리를 기록한 책 <전주, 느리게 걷기> 를 발간했다. 전주의 음식점, 관광지, 카페, 문화공간 등 가볼 만한 곳들을 찾아 다니며 그 곳의 이야기를 찾아낸 이 책은 전주에 대한 소소하지만 소중한 기록이다.

 

이 책의 에필로그를 보면 전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전주의 속도가 마음에 든다. 그 속도는 도시의 복잡다단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도시라는 거대한 이름 속에 묻히거나 빨려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속도다. 도시의 타인들은 상처를 주기도 하기만, 전주는 따뜻한 친구도 발견할 수 있는 곳. 작은 모퉁이만 돌아도 스스로 고독할 수 있는 고즈넉함을 간직한 도시. 그렇다. 전주는 느리게 걷는 도시다. 선뜻 시선을 잡아끄는 강렬함은 없지만 느린 걸음, 그 느린 속도에서 포착되는 지극한 행복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똑같은 시간을 살지만 전주에서 보내는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는 다르다. 우리는 전주에서 조금은 느리게 걸을 수 있고, 조금은 천천히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유명하진 않지만 이야기가 담긴 공간들이 많은 도시, 조금은 덜 발전한 듯 보이지만 도시 곳곳에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어 정감이 가는 도시. 시간에 쫓기듯 살지 않아도 되는 도시, 잠시 고개를 들면 맑고 넓은 하늘을 쉽게 볼 수 있는 도시이다. 이것이 전주의 모습이다.

 

난 전주가 이런 도시로 남으면 좋겠다. 재개발이란 명목으로 과거의 것들을 부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드는 것, 인공조명으로 가득한 거리를 만드는 것만이 관광객을 모을 수 있는 최고의 정책은 아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공간들은 소중하다. 그 소중한 공간들을 이야기로 엮을 필요가 있다. 나는 전주 같은 도시의 관광 정책은 여기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속도가 미덕인 세상에서 전주가 계속 이렇게 적당히 느리고 고즈넉한 도시로 남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바람이 발전의 반대말로 들리지 않길 바란다. 이러한 도시가 될 때, 높은 빌딩과 화려한 쇼핑몰이 없고 유명한 관광지가 없어도 전주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조지훈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사건·사고경찰, ‘전 주지 횡령 의혹’ 금산사 압수수색

정치일반‘이춘석 빈 자리’ 민주당 익산갑 위원장 누가 될까

경제일반"전북 농수축산물 다 모였다"… 도농 상생 한마당 '신토불이 대잔치' 개막

완주‘10만490명’ 완주군, 정읍시 인구 바짝 추격

익산정헌율 익산시장 “시민의 행복이 도시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