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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횡단보도를 보행자에게 돌려주자

이정상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육홍보부장)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중간에 미처 길을 건너지 못한 지팡이를 든 노인 한분이 서 계셨다. 마침 신호를 받은 자동차들이 줄지어 진행해오고 있어 그 노인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우리 도로에서 너무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몸이 불편한 노인이라서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였다. 줄지어 달리던 차량행렬이 끝날 때까지 멈추어 서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자동차 운전자는 신호등이 있을 때는 신호를 준수하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도로를 횡단하는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사실상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횡단보도가 있지만 보행자가 자동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눈치를 보고, 자동차가 없을 때 스스로 안전을 지키며 건너야 한다. 따라서 보행자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의 눈치를 보며 숨을 몰아쉬며 뛰다시피 길을 건너고 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어쩌다 정지선에 멈추어 보행자를 보내주는 자동차를 만나면 착한 우리나라 보행자들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길을 건넌다.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언젠가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보내주기 위해 멈추어 섰는데, 뒤따르던 차가 필자의 차를 앞서가려고 비켜 나가면서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치는 사고를 낸 것이다. 차라리 보행자를 막고 그냥 진행했다면 이런 사고가 없었을 것이라는 후회를 한 기억이 있다. 보행자가 현실적으로 우선권을 갖지 못하는 횡단보도, 자동차를 피해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 한다면 사실 무단 횡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무단 횡단 할 때도 어차피 좌우 눈치보고 차 안 올 때 재빨리 건너는 것이니 말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교통선진국을 여행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자동차 운전, 특히 보행자를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무조건,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자동차보다 보행자가 우선이다.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다가서면 양방향 차량 모두가 정지하고 보행자가 보도에 올라서는 것을 확인한 후 차를 출발시키는 등 무조건 보행자를 배려하는 것이 당연한 원칙으로 여겨지고 있고, 보행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

 

그 결과 인구 10만명당 보행자 사고 사망률이 OECD국가 중 우리나라가 가장 높으며, 주요 국가에 비하면 2~4배 이상 높다. 물론 우리나라의 교통사고도 꾸준히 줄고 있고, 교통질서 의식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 정지선 준수율이나 안전띠 착용률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제 횡단보도를 주인인 보행자에게 돌려주자. 운행 중 횡단보도가 보이면 미리 속도를 줄여 보행자가 여유있게 횡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신호가 있건 없건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들어서면 무조건 정지하자. 그리고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완전히 건널 때까지 출발하지 말자.

 

또한 운전자들이 횡단보도를 쉽게 알아보고 대비할 수 있도록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주변에 지그재그 차선을 설치하거나, LED조명 설치 등 시설보완도 필요하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주차장으로 착각하는 운전자, 차가 조금 밀린다고 횡단보도를 막아 보행자에게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와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게 하는 운전자는 즉시 단속되어야 마땅하다. 누구나 안전하게 길을 걷고 건널 수 있는 보행권이야말로 인권의 핵심인 생명권이며, 보행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은 운전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

 

*이정상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육홍보부장은 군산고와 원광대를 졸업하고 전주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운수연수원과 대한산업안전협회·공무원교육원 등에 출강, 20년 넘게 교육을 실시해오면서 지역사회 교통안전 파수꾼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지역 언론매체를 통해서도 교통질서의 중요성을 꾸준히 알리고 있다.

 

/ 이정상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육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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