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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미원탑 네거리 추억

선기현(전북예총 회장)

 

세월은 가고 오는 것….

 

박인희가 불렀던 '세월은 가고'의 대중가요 한 대목이 생각난다. 전주시 경원동 기업은행 입구 오른쪽 모서리에 오래된 직육면체 표지석이 세월을 안고 서 있다. 서울272, 평양525, 목포173, 부산269, 신의주745, 청진964척을 가슴에 명기하고, 그 밑자락은 자신의 나이 1964년 10월10일을 달고 있었다.

 

한때 전주시 청사였던 그 자리에 서서 60,70년대를 추억해 보자,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미원탑이 우뚝 내려앉는다. 그 시절 향토기업 메세나 운동차원에서 설치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조미료로 돈 많이 번 기업 상품의 명칭으로 미원탑이 서 있었다. 사라져버린 미원탑, 전주에서 60,70년대를 보낸 남녀노소의 경우는 이 탑에 대한 기억이나 사연 하나쯤은 가슴 한 켠에 담아 놓았을 법하다.

 

미원탑 사거리를 중심으로 남으로는 싸전다리, 북쪽으로 중앙시장, 동으로는 노송삼거리, 서쪽으로는 다가동 끝자락 천변풍광까지 정점자리에 속한다.

 

이 탑은 당시 문화 예술판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마치 파리 에펠탑처럼 활용되었던 자리로, 서울 종로에서 광화문 네거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문화 거리가 되었듯이 전주 미원탑 네거리도 전북 예술문화교육의 동맥선 쯤 되는 몸통이었다.

 

전북 르네상스 발원지로 볼 수 있는 네거리 사계절을 추억해 보면 흑백 사진과 같은 낭만이 곳곳에서 숨어 있다.

 

봄이 오면 새 학기가 시작되는 계절로 지식과 세월로 비벼진 그들만의 냄새가 듬뿍 서려 있는 헌책방에서 지난 책을 팔고 사는 풍광이 일품이다. 남은 돈으로 르네크레망의 남과 여, 김지미의 이조 여인 잔혹사 같은 기막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여백을 제공한 공간이 있었다. 또한 전당포가 있어 가난했지만 안주머니 만년필과 왼쪽에 차고 다니던 손목시계만 있으면 술집을 향하는 발걸음에 여유를 갖게 했다.

 

여름의 그 거리는 아이스케키가 있는 조화당, 부래옥, 몽블랑, 풍년제과가 있어 풍요로웠고, 자신만이 떠날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 만화방과 그 옆 양 코를 벌름거리며 군침 흘릴 수밖에 없었던 전기 통닭집이 배고픔을 더 깊게 만들었던 곳도 있었다.

 

가을이면 경기전 담벼락에 노랑 은행잎이 하늘을 덮는다. 당시 시인·화가·예비 음악인들은 첼로통과 화구통을 짊어지고 이 거리를 누볐다. 음악다방 스피커에서 튄 폴리오. 어니언스, 박인희 노래가 흘러나오고, 되 막걸리, 잔 소주를 팔았던 좌판거리가 서서히 파라솔, 풍차, 가로수에서 생맥주가 등장했다.

 

겨울이면 고민의 한숨들이 추운 동문 사거리를 녹였다, 얼렸던 곳으로, 화실·학원가가 즐비했던 곳이다. 해질 무렵 우연히 귀밑 흰머리가 멋져 보이던 작가 몇이 둘러앉아 엄지손톱 반쯤 걸고 사기잔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던 미원탑 네거리 사계가 가물거린다.

 

그 시절, 미원탑 네거리는 이 지역 문화 예술판 르네상스의 상징으로 자존심과 긍지를 심어주었던 장소이다. 구도심 활성화 차원과 편리성만 추구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당시 미원탑 네거리를 중심으로 문화 예술판 상징적 거리와 옛 명성을 살릴 수 있는 낭만적 도시계획이 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지역은 그때 상징적 정서를 질펀하게 기억하고, 낭만적 효과를 잘 알고 있는 원로 문화 예술인들이 주변에 계신다는 점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낭만적인 도시계획 틀이 그분들의 낭만의 추억이 충분히 받아들여져 완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주문한다.

 

/ 선기현(전북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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