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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선생론(先生論)

김관식(전주 자인산부인과 원장·시인)

 

 

 

소년은 나즈막한 산을 배경으로 비탈에 위치한 중학교 건물 복도에서 교정으로 떨어지는 햇살을 우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낯익은 목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 그와 나눈 대화는 시들뻔했던 소년의 의욕을 되살리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슴에 간직하게 해주었다. 그 짧은 순간은 시간이 마련해준 기적이었다.

 

그는 중년이 된 필자의 중학시절 은사님이다. 우리사회에 스승찾기 운동이 일었을 무렵 마음 속의 은사님을 찾아 교육청에 문의하여 만나뵐 수 있었다. 이후 중년의 제자와 초로의 스승이 때로 술잔을 기울이며 때로 숲 속을 산책하며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가운데 순간은 지속되고 있다.

 

'본래 일찍부터 도를 깨달은 자, 덕업이 있는 자, 성현의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 등을 칭하는 용어'라는 선생(先生)에 대한 개념적 정의(한국사기초사전)를 되뇌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선생님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아이들의 삶의 지표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한 세대의 경험과 지식은 부모와 선생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해진다. 따라서 인간사회에서 스승과 제자의 사이는 부모자식의 관계와 함께 세대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관계이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단절되고 학교에서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멀어질 때 사회는 지속되고 발전될 수 없다.

 

최근 스승찾기 프로그램에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를 꺼리는 선생님이 늘고 있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지상에 부쩍 오르내리고 선생과 학생 사이가 멀어져 인간적 관계는 퇴색되고 기능적 관계로 변해가는 현실은 우려할 일이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목소리 톤은 높아지지만 정작 학생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져가고 폭력과 희롱의 피해자가 된 선생님의 사례가 늘어가는 세태를 바라보는 것은 학생이었으며 선생이었다가 학부모의 입장에 위치해 있는 필자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그래서 우울한 기사를 보면 지면에 머리를 조아리고 선생님께 대신 사죄를 드리게 된다.

 

단기적 압축성장과 함께 급변해온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현상들이 작용 반작용에 따른 당연한 귀결의 일부며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파도나 비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안전한 항구처럼 학교는 험난한 사회를 헤쳐나가야 할 우리 아이들의 전초기지이다. 그러기 위해 교단에 선 선생님의 조용한 목소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큰 울림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학부모와 교육부분에 헌신하는 정치, 행정가 모두는 항구 안에 정박한 배에 오르려 할 것이 아니라 저만치 떨어져 있는 방파제가 되어주기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승과 제자가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 서로 진보해나가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평생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 또는 변화한다. 그리고 그 어떤 순간은 한참을 지나 자신의 뒤를 돌아볼 때 어두운 길목 마다 홀연히 빛나는 등불이 되어주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 아들과 딸들이 선생님으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성장하여 어느 날 자신의 뒤를 돌아볼 때, 자신의 손에 등불을 들려주신 어떤 은사님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둘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그 등불이 되어주실 모든 선생님에게 깊이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 김관식(전주 자인산부인과 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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