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원 (수필가)
고양이가 죽으면 제사를 지내는 비용으로 쓰기 위하여 답(沓) 5백 석지기를 월정사에 시주한 사연이 전해져 왔다.
조선 제 7대왕 세조(世祖)는 자질이 영민하여 학문에도 능하였다. 세조는 조카인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른 인물로, 임금이 된 지 몇 해 후부터 전신에 종기가 퍼지기 시작하여 한 때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가 단종을 죽이기 전날 밤 꿈에 형수인 현덕왕후의 혼령이 나타나서 심하게 꾸짖고 그에게 침을 뱉었는데, 그 꿈에 침을 맞은 자리에서부터 종기가 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세조는 그 종기를 치료하려고 무진 애를 쓰며 심지어는 무당 굿까지 하였으나 종시 낫지 아니하여 마침내 명산 절을 찾아 산천기도와 불전 공양을 드리게 되었다.
하루는 그가 곤룡포 익선관으로 위의를 정제하고 기도를 드리려고 법당으로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그 순간 어디서인지 난데없이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그의 곤룡포 자락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이놈의 고양이가 …." 하고 쫓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피하려 하기는 고사하고 더욱 악착같이 달려들며, 왕의 옷자락을 물어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세조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시위 군사에게 명하여 법당 안을 샅샅이 뒤져보라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법당 불탑 아래 세 명의 도부수가 시퍼런 칼을 빼어들고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군사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잡아내어 문초해 보니 그들은 단종을 위하여 세조를 암살하려는 일당들이었다.
이리하여 세조는 불공을 마치고 회정할 때에, 강릉에서도 기름진 땅으로 5백 석지기를 장만케 하여 그 고양이를 위하여 제사 지내 주도록 절에 시주하였던 것이다. 이 묘답(猫畓)은 오늘날에도 월정사 상원암에 가면 남아있다 한다.
명심보감 계선편 경행록(景行錄)에 '은의(恩義)를 광시(廣施)하라. 인생하처 불상봉이라.'는 구절이 있다. 남과 원한을 맺었다가 몸이 죽고 집안이 패망하는 무서운 결과를 불러온 사연을 들은 경우가 더러 있다. 이와 같은 교훈을 지각하여 은의를 광시하고 처신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 강병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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