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 (전주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
9월 15일 목요일, 대한민국이 40여 년 전으로 되돌아 간 날이었으니…. 요즈음 양초를 상비하고 있는 가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의 어린 시절인 1970년대 초반 만 해도 각 가정에는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에 항상 양초 한 묶음과 통 성냥이 준비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으로 생각하지도 않을 만큼 잦은 정전이 있었고 오히려 코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칠흑 같은 어둠을 무슨 기념일 마냥 즐거워했다.
당시 정전이 될 때는 뭐랄까 전조 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정전이 되기 전 몇 번의 깜박거림이 있었고 그 전조 증상이 있으면 미리 초와 성냥을 꺼내 놓고 어둠을 기다리고 있었다. 촛불을 통해 종이 벽지에 그려지는 그림자를 보며 키득거렸고 손으로 온갖 동물 그림자 모양을 만들며 즐거워했다.
그 당시의 정전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 같다. 컴퓨터, 승강기도 없었고 냉장고조차 흔치 않았던 때라 단지 TV가 꺼져 연속극을 볼 수 없었던 정도? 잠시 동안의 어둠이 약간 무서웠던 정도?
하지만 21세기의 정전은 그야말로 정전 대란이라 불릴 만큼 큰 혼잡을 가져왔다. 예고도 전혀 없었던 터라 승강기에 느닷없이 갇혀 공포에 떨어야 했고, 공장의 조업 중단으로 막대한 생산 차질을 가져왔으며, 은행의 전산망이 중단되어 불편을 겪어야 했으며, 병원에서 수술과 처치가 중단되는 상황과 심지어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군부대마저 정전이 되었으니 어찌 G20 의장국이며 경제 규모 세계 11위의 대국에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더군다나 자칫 대한민국 전체가 일시에 정전이 되는 블랙아웃(black out)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하니 국민들이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더욱 분통 터지게 하는 것은 피해 보상에 따른 규정이다. 피해 보상 규정에 의하면 단전 기간 전기 요금의 3배수를 보상한다고 한다. 양식장에서 정전으로 인해 물고기 수 천 마리가 폐사하고 조업 중단으로 인한 손실이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 겨우 수백, 수천원의 보상? 이것은 분명 인재(人災)이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과 현실에 맞지 않는 대응체계, 보상규정 등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행정의 무능력함과 허술함을 탓만 하기 보다는 절전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 불편함 없이 사용하다 보니 귀한 줄 모르는 게 많다. 물, 전기가 대표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물과 전기를 풍족(?)하게 사용하는 나라는 없으며 절약하고자 하는 의식이 없다면 나중에 큰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력, 화력, 풍력 발전에 좋은 입지를 가진 나라가 아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 면적이 좁은 나라에서 막대한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원자력 발전이 유일하다. 그러나 안정성과 국민성을 고려할 때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국민 모두가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 하여 사태 예방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전원을 꺼야 할 만한 상황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에어컨 온도를 1도 낮추고, 잘 사용하지 않는 전자 제품은 플러그를 뽑아 놓으며 필요 이상의 조명은 줄이고 휴대전화나 노트북 충전기를 계속 켜놓지 않기 등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10% 정도의 전력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민 한 사람이 어제보다 전력 사용을 10% 줄이면 연간 434억KWh의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전기는 저장이 불가능한 에너지이다. 따라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정전은 불가피하다. 또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금방 발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항상 그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여 공급을 판단하여야 하고 또 한 번 강조하지만 수요를 감소시키기 위해 절전이 필요한 것이다.
정전은 우리에게 더 이상 재미있는 추억이 아닌 뼈아픈 현실인 것이다.
/ 이재홍 (전주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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