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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고사 유감

▲ 이세재 시인·전주 우석고 교감
백년대계라 하는 교육정책은 과거 어느 정권에서나 전문가를 동원하여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하면서 신중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비록 강력한 정치적 목적 속에서도 학자들의 신념이 상당히 반영되었다고 본다.

 

1980년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발표한 ‘7·30교육개혁’이 있었다. 당시의 정치적 목적이 강해서 대부분 실패한 정책이지만 그 중에서 대학별 본고사를 폐지하고 고등학교 내신성적을 입시전형에 반영한 점 등은 의미가 있었다. 단순한 학력중심의 인간이 아닌, 종합적이고 창의적인 인재육성을 위해 초·중·고의 공교육이 바르게 실현될 기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경험으로 미루어 미래는 항상 지금보다 복잡하고 다양할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미래의 문명과 문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고등교육 대상자를 선발하는 대입제도의 틀이 그 이후 날로 변화되어 왔다.

 

그리하여 대학별 논술이 도입되었고 교과내용 중심의 학력고사는 1994년부터 범교과적인 수학능력고사로 바뀜으로써 본격적으로 학습의 단편적 지식이 아닌 종합적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더불어 개인의 적성과 특기계발이 강조되었고 대학입시가 정시모집과 수시모집으로 나뉘면서 한층 다양한 선발 방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수시모집은 각 대학별로 다양해져서 현재 우리나라 모든 대학의 전형방법이 총 3,600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대학입시의 가장 큰 맥락이라 할 수 있는 수학능력고사의 성격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껏 말한 바처럼 학생들이 평소 학교교육을 통해 종합적 사고능력을 기르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수능의 방향과 성격은 곧바로 고등학교 수업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동안 수능은 이러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작년부터 수능고사가 이런 본질에 충실하지 못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바로 수능고사의 70%정도를 EBS교재 및 강의 내용과 연계하여 출제하기 때문에 고등학교의 수업이 파행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최근 고3 교실은 마치 40~50년 전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를 대비해 수련장을 풀고 있는 풍경과 흡사하다. 수능 한 영역 당 EBS교재가 많게는 8권이나 되는데 그 걸 다루려면 모든 교육과정 시간을 다 동원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애당초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염두에 둔 수업을 기대할 수가 없다. 학생이나 교사 모두 우선 EBS교재의 내용을 모두 익혀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교재내용을 암기하는 식의 단편적 수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주어진 교재로 종합적 사고 신장을 위한 수업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원론에 선행하는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 배경은 사교육비 절감에 있다. 사교육비문제는 평등교육의 이념이 자본주의와 상충하는 데서 야기되는 것으로 커다란 정치적 과제이다. 부에 따라 교육이 차등화 되는 세상은 결코 바람직한 민주사회가 아니므로 사교육비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을 EBS교재로 통일하는 발상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 마치 시험범위를 정해주는 것 같은 이 획일적 방법은 교육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현 정부가 민주주주의 이념 뿐 아니라 교육도 시대를 역주행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초·중·고에서는 교원능력개발평가를 실시하고 교과교실제를 추진하면서 미래를 개척할 인재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모색하고, 대학에서는 입학사정관제까지 도입하면서 종합적 인간을 선발하라는 교육정책의 큰 변화를 추진하면서 한편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수학능력고사를 시행하는 이 모순에 대해서 임시방편적 정치논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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