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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경쟁의 시대, 그 곳에선 시간이 멈춘다

     KTX시대의 간이역

▲ 호남선 KTX열차가 김제 부용역 플랫폼을 무심히 지나치고 있다. 이용객이 감소하면서 부용역에는 열차가 서지 않고 역무원도 없다. 안봉주기자 bjahn@
기차가 들어온다. 그러나 사람 냄새, 사람 사는 이야기로 가득했던 대합실은 텅 비어있다. 을씨년스러운 풍경의 플랫폼을 바람처럼 스쳐간 기차는 어느새 꽁무니만 살짝 보인다.KTX 열차가 달리기 시작한 전라선. 촘촘히 자리잡은 역 건물은 대부분 현대식으로 말끔하게 단장됐지만 상당수는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출입구를 아예 단단히 막아 입장마저 허용하지 않는 곳도 있다. 기억을 더듬어 겨우 찾아낸 추억 속의 옛 역사(驛舍)에 들어서 대합실을 지났는데도 당연히 눈에 들어와야 할 철로가 보이지 않는다. 철로를 이설, 건물을 새로 지어 옮긴 후 남아있는 옛 역이다.

 

끝없는 속도경쟁의 시대, 지난 10월초 익산∼여수간 전라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공되면서 도내에서도 본격적인 KTX시대가 열렸다.

 

고속철도 시대, 정겨움이 묻어나는 간이역의 느림과 낭만이 오히려 그리워진다.

 

선반에 짐보따리를 잔뜩 싣고 덜컹덜컹 달리는 비둘기호 완행열차 안에서 삶은 달걀에 음료수를 먹으며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던 옛 추억을 더듬어 고향역을 찾아가는 길.

 

그러나 그 고향이 농촌지역이라면 기차역에 가는 길은 열차가 아닌 자동차를 이용해야만 한다. 이용객이 줄면서 무궁화호조차 무심히 스쳐 지나가고 건물만 덩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인 간이역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간이역의 사전적 의미가 ‘역무원 없이 기차가 정차만 하는 역’인 만큼, 철도공사가 선로용량 확보를 위해 관리하더라도 열차가 서지 않는다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역으로 보기 어렵다.

 

KTX시대 더 빨라진 기차는 잠시 추억을 내려놓을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열차가 빨라진 만큼, 같은 속도로 간이역은 잊혀져간다. 도로교통 이용이 어려웠던 시절, 기차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며 고향역에서 삶의 쉼표를 찾고 싶어하는 여행객들의 아쉬움이다. 그래도 그리움과 기다림이 남아있는 옛 공간이 사라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다.

 

한국철도공사 전북본부에 따르면 도내 호남선과 전라선·장항선 등 3개 노선 40개 기차역 가운데 여객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역은 무려 28곳에 이른다. 이용객 수에 차이는 있었지만 서민들이 줄을 이었던 도내 기차역의 70%는 이제 주민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관심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또 정읍 초강역과 남원 옹정역·익산 오산리역을 비롯한 5곳은 역 건물마저 없고, 22곳은 역무원이 배치되지 않았다.

 

여객열차 중 무궁화호가 서는 역은 12곳, 새마을호는 7곳, 그리고 KTX는 익산과 김제·정읍·전주·남원 등 5개 도시에서만 정차한다.

 

인근 주민들조차 이제 찾아올 일이 없어진 옛 시골역에서는 기차 대신 추억의 시간이 멈춰선다.

 

비록 지금은 여객운송 역할을 담당하지 않더라도 우리 삶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있는 간이역은 보존하고 또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종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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