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 죽막동 '대마골 철마' 설화 내용과 의미
아득한 옛날 이 대마골 근처에는 마음씨 착한 고기잡이 형제가 앞 못 보는 늙은 어머니 한 분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 형은 날마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아우는 산에 나가 밭도 일구고 농사일도 하며 비록 가난하게는 사나 어머니 봉양을 지성으로 하고 의좋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형이 고기를 많이 잡는 꿈을 꾸어 오늘은 고기가 많이 잡힐 것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어머니께 인사드린 후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많은 고기를 잡아가지고 돌아와야 할 형이 이날따라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아 어머니와 동생의 근심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밤늦게까지 바닷가에서 기다려도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동생이 형을 찾으러 바다로 나갔는데, 이제는 동생마저 돌아오지 않는다. 홀로 남은 앞 못 보는 어머니는 미칠 지경이다. 바다로 나간 작은 아들마저 소식이 없으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더듬더듬 바닷가로 나간 곳이 수성당 옆의 여울굴 절벽 위였다. 어머니는 바다를 향하여 소리 높여 두 아들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런데 그 소리가 깊은 여울굴 속에 부딪쳐 메아리로 들려오는 소리를 두 아들의 대답하는 소리로 들린 것이다. 이 소리에 어머니는 반가워 계속 부르며 한발 한발 떼어 놓다 절벽 밑 깊은 여울굴로 떨어져 푸른 물결이 삼켜 버린 채 다시는 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어느 청명한 날 순풍에 돛을 단 배 한 척이 미끄러지듯 들어와 이곳에 멈추었다. 화려한 그 배에는 잘 생긴 두 청년이 아름답게 생긴 아가씨 두 사람과 함께 타고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고기잡이 형제였다. 그들은 배에서 내려 대마골 여울굴 위의 절벽 위에 섰다. 그때 여울굴의 푸른 물이 점점 굴 위로 차오르더니 이윽고 백말에 흰 수염이 아름다운 노인 한 분이 여울물 속에서 나와 두 청년을 보고 "수고 많았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황금부채 한 개씩을 줄 것이니 한 개를 가지고는 나라를 구하고 또 한 개로는 마을을 구하여라. 너희 모친은 편안히 잘 모시었으니 그리 알고 착한 일을 많이 하기 바란다." 하고 말을 마치자 노인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노인의 말대로 형이 가진 황금부채로 바다를 향하여 부쳐 보았더니, 갑자기 큰 바람이 일며 성난 파도가 바다를 뒤집는 것이었다. 이번엔 동생이 가진 부채로 부치니 그 소란한 풍파가 금새 조용해지는 것이다. 두 형제는 그 노인의 은덕을 잊지 않기 위하여 여울굴 옆에 지금의 수성당을 세우고 받들어 모시었다. 그랬더니 그 여울 속에서 철마(鐵馬) 한 마리가 나왔다. 이 철마는 두 형제만이 탈 수 있으며, 평상시는 작았다가 형제가 타기만 하면 큰 말이 되었다. 외적이나 왜구가 침범하면 형이 타고 비호처럼 달려가 황금부채로 부쳐 적의 배를 모조리 침몰시켰으며, 동생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마을 사람들이 풍랑을 만나게 되면 역시 부채로 부쳐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제하였다.
그 후 아들 형제가 죽은 뒤 철마만이 여울굴 속에 남아 있었는데, 어느 마음씨 고약한 사람이 철마를 훔쳐갔는데 아무리 깊숙한 곳에 감추고 자물쇠를 채워도 열고 보면 없어지고, 여울굴에 와 보면 그 곳에 돌아와 있었다. 이러기를 수 차례 거듭하니 철마는 드디어 여울굴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린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설화는 등장하는 철마는 일반적으로 희생제물의 대용으로 당에 좌정하는 경우가 많다. 죽막동 제사유적에서도 흙으로 만든 말이 출토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민속신앙에서 말은 신승물(神乘物)의 존재, 영험적이고 신적인 존재, 의리를 지키고 충성을 다하는 존재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이 설화는 수성당이라는 당집에 관한 연기설화를 내포하고 있다. 즉 당집을 짓고 신을 모시게 된 배경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설화는 어딘가 심청가를 차용하고 있는 듯한 모티브들이 출현하고 있다. 물론 대체되고 치환된 형태지만 심청과 봉사아버지의 관계가 청년과 봉사어머니로 대체되었고, 심청의 효행으로 봉사들의 눈을 띄우는 장면은 형제가 철마를 타고 서해바다의 왜구를 모조리 침몰시키는 장면과 치환된 듯하다.
어쨌거나 변산 죽막동의 당집인 수성당과 해식동굴인 용굴은 유적발굴을 통해서 실체가 확인된 역사적 장소성 뿐만 아니라, 판타지같은 신화와 설화가 종횡으로 중첩된 해양문화의 텃밭이자 옥답이라고 할 수 있다.
새만금사업으로 해당 지역의 해양문화는 제대로 조사조차 되지 않은 채 망실되어 가고 있다. 수많은 설화와 민속과 관습과 신앙이 새만금처럼 매립되어가고 있다. 생업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는 내수면 주민들처럼 그들의 삶의 이력과 전통마저 속수무책으로 방치되고 있다.
물론 변산 죽막동은 새만금방조제 바깥에 있다. 그래서 더 중요한 지역이라고 생각된다. 이곳에 죽막동의 역사성을 증거해 줄 수 있는 발굴 유물을 전시하고, 수성당할머니를 매개로 해양문화를 학습 및 체험할 수 있는 '죽막동 수성당 성역화 및 해양문화전시체험관 건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해양역사문화의 보존, 계승, 체험,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지대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새만금 권역 내외에서 바다를 기반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의 생활사를 보여주며, 도서해안지역의 독특한 민속의례인 베줄다리기 등 해양문화 관련 체험학습장을 운영하며, 새만금 지역내의 공간적, 지리적 정보를 제공하는 등 다목적인 '해양문화전시체험관' 건립을 기대해 본다.
김성식(전북일보 문화전문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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