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마을의 들노래
■ 진안 마령 평지리
- 때로는 신명나고 때로는 구슬프고…
■ 익산 삼기 검지마을
- 벼농사 과정 따라 골고루 잘 갖춰져
■ 김제 만경 소동리
- 전형적인 전라도 음악 '육자배기'와 비슷
■ 군산 대야 탑동마을
- 방송 제작 '한국민요대전' 통해 잘 알려져
■ 임실 삼계 두월리
- 논매는 소리 '방개타령' 전북소리 대표곡
■ 순창 학촌 들노래 마을
- 전승된 9곡 모두 김매기와 관련된 노래
들노래는 개인적 표출보다는 집단적 신명을 지향한다. 그것이 곧 노동요의 존재이고 남도민요의 음악적 표출이다. 들노래는 일의 동작에 따라 박자를 맞추거나 흥을 돋움으로써, 단합된 동작으로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하는 역할을 한다. 논농사민요에는 보통 '논뀌미는소리'를 비롯하여 농경의 순차에 따라 '모찌는소리''모심는소리''논매는소리''장원례소리''벼베는소리''타작소리''등짐소리'등이 있다.
들노래가 들녘을 떠난 지는 오래 전 일이다. 이앙기가 보급되면서 모심는소리가 자취를 감췄고, 제초제가 보급되면서 논매는소리가 끊겼다. 1970년대 본격화된 이농현상도 한몫했다. 들노래를 70년대까지는 농사현장에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8, 90년대에도 비록 현장을 떠났지만 시골 동네 사랑방에서는 얼마든지 집단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는 그나마 고령의 총기 좋은 분이라도 만나면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지역에서 들노래가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온 마을이 없지는 않다. 이런 마을들은 대개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했거나,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거나, 아니면 전통문화와 들노래에 대한 특별한 애착심을 가진 분들이 마을에 계셨기에 가능한 경우이다.
과거에는 농사일 중에서 가장 고된 일이 김매기라고 했다. 가장 무더운 혹서기에 하는 작업인데다, 잡초의 생육이 대단히 왕성해서 약 보름주기로 서너 차례를 거듭해야 하고, 논매기 방식 자체가 허리를 최대한 숙여 호미나 손으로 흙을 파 엎는 일이기 때문이다. 팥죽같은 땀은 비오듯 하고, 나날이 자라는 벼는 살갗과 눈을 찌르기 일쑤다. 농경전통에서는 노동이 지루하고 힘들수록 집단적 힘이나 신명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왔으며, 그 결사체가 '두레'라고 하는 노동공동체조직이다. 게다가 노동의 고통을 결정적으로 경감시키는 예능적 장치로 두레풍장과 들노래가 한 몫 했음이 사실이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들노래는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들노래이다, 이 마을 들노래는 '논매는소리' 6곡과 2곡의 '장원례소리' 등 총 8곡이 전승되고 있다. 김매기 때는 하루 일과에 따라서 〈양산도〉 〈늦은 방개타령〉 〈자진 방개타령〉 〈산타령〉 〈싸오소리〉 〈뚜름마소리〉를 부른다. 평지리 들노래는 때로는 신명나고 때로는 구슬프고 때로는 한가롭고 때로는 군사들의 구령소리 같은 곡조의 노래들이 온 들판을 들썩거린다. 사설만으로는 그 감흥을 도저히 전달할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내용은 이렇다.
연계가 논다 병아리가 논다 금잔디 밖에서 연계가 논다
양산을 가자 양산을 가자 모랭이 돌아서 양산을 가자
간디 족족 정들여 놓고 밤질 걷기가 허허 난감허네
헤에 헤에야 하아 헤에헤에 허 허기나 양산도로다(양산도)
해당화 꽃 한 송이를 와자지끈 끊어서 마누라 머리에 꽂아나 보세
가면 가고 말면 말지 네 잡놈 따라서 내 돌아간다
산이 높아야 골짝도 깊고 조그마한 여자 속이 얼마나 깊으냐
에야 뒤야 허허허 허어야 허어 뒤여 산이로고나(산타령)
장원례 때는 '섬마타령'과 '매화타령'을 부른다. 장월례소리란 농사 장원했다며 하는 의례를 말한다. 두벌매기가 끝나고 미리 준비한 사다리에 논주인을 태우고 풍장을 치면서 '닭잡고 술내라'고 시위하듯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노래다. 지긋지긋한 논매기가 다 끝났다는 해방감도 넘치는 노래이다. 게다가 '지심매고 나면 허물벗은 매미껍데기처럼 빼싹 말라서 사람 꼴이 아닐'정도여서 장원례놀이를 하면서 영양보충에 대한 기대감마저 실린 노래다.
오늘 해도 다 되야 가고 골목골목에 연기가 난다
옥사장아 문열어 달라 불쌍한 춘향이 옥 안에 갇혀있다
팔랑팔랑 홍갑사 대기 곤때도 안 묻어 사주단자 온다네
노자 좋다 젊어서 놀아 늙고 병들면 나 못노느니라
에헤이 여루아 여루아 섬마 궁글려라 내사 헤에헤이(섬마타령)
전북의 들노래 마을은 이 밖에도 여러 곳 있다. 익산시 삼기면 검지마을은 1970년부터 몇 차례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한 바 있어서 잘 알려진 곳이다. 이 마을 들노래는 수렁논이어서 소가 들어갈 수 없는 논을 쇠스랑으로 파면서 부르는 '논파는소리'를 비롯해서, 모심을 때 부르는 '농부가', 논 맬 때 부르는'방아타령', 마지막 논매기 즉 만두레 때 부르는 '만물산야', 그리고 낫으로 벼를 베면서 부르는 '벼베는산야', 볏단을 집으로 옮기면서 부르는 '등짐소리', 게상질로 타작하면서 부르는 '타작소리' 등이 있다. 이 마을 들노래는 벼농사 과정에 따라 골고루 잘 갖추어진 특징이 있다. 또 '만물산야'는 전형적인 경상도 민요인 '메나리'와 닮은 곡조여서 영호남 민요의 전파경로를 궁금하게 하는 노래이다.
만경평야의 시작점인 김제시 만경면 소동리에도 들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이 마을 들노래는 전형적인 전라도음악인 '육자배기'를 닮았다. 군산시 대야면 탑동마을에도 기가막힌 들노래가 전승되었다. 이 마을에는 타고난 씨름꾼이자 노래꾼인 고판남옹이 계셨지만 작고한 지도 오래 전 일이 되었다. 다행히 이 분의 목청은 브리태니커에서 제작한 '팔도소리' LP음반과 문화방송에서 CD로 제작한 '한국민요대전'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이 마을에서 전승되는 '만경산타령'은 '산아지타령'이라고 부르며, 잘 알려진 '진도아리랑'의 모태가 된 노래이기도 하다.
임실군 삼계면 두월리에도 아주 개성 있고 독특한 들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이 마을 노래 가운데 논매는소리인 '방개타령'은 전북지역 논매는소리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전북지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가장 특징적으로 불리던 논매는소리이다.
끝으로 순창군 유등면 학촌 들노래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들노래는 논매는소리에 집중되어 있는데 자그만치 9곡이 전승되고 있다. 즉 9곡 모두 김매기와 관련된 노래이다. 논매는소리가 이 마을처럼 다채롭게 분화, 발달한 마을은 전라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이다.
농촌 사람들은 '어정칠월 동동팔월'이라고 한다. 논매기 다 마친 여름철 들녘을 바라보는 한가함이 묻어나는 표현이다. 그리고 '무궁화 꽃피면 밭농사 끝'이고, '백일홍 세 번 피면 쌀밥 먹는다'. 올 한해 풍년농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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