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예원예술대 교수·미술평론가
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쾌락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쾌락주의적 예술이론가들은 쾌락을 예술작품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로 사용한다. 극단적인 쾌락을 제공하는 작품이 최고며, 미적 경험을 쾌락으로 간주한다.
이 이론은 미의식에 대해 심리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만들어 미학이론을 가장 직접적으로 접근한다. 더 나아가 고통 또는 불쾌를 부정적 가치로 동일시하며 윤리적 가치를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를 일원론적으로 접근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쾌락은 예술 향유 효과들 중 한 부분이지 전체가 될 수 없다. 또한 극단적으로 쾌락을 쫓은 작품의 경우에는 고통으로 환원되는 현실과 동떨어진, 현실 도피적 경향을 띰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적 향유측면에서 어렵고 난해한 미학적 지식이나 예술사적 관점과 선입견을 일단 접어 두고 연주나 그림의 수준이 좀 떨어지더라도 상관이 없다. 고급문화만이 훌륭한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문화적 감수성은 타고 나는 것도 있지만 자라면서 듣고 보며 형성되는 것도 있다. 특별한 사람들이 향유하는 고급문화만을 문화라고 생각하는 관점은 기껏해야 비뚤어진 엘리트문화 의식만 생길 뿐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공원을 발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공원들이 조성되고 있다. 각박한 도시 속에서 긴장하며 살아가는 도시인에게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대형빌딩과 거대한 아파트 단지 내에는 어김없이 공공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이처럼 공공예술 측면에서 보자면, 미술작품은 미술관, 화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 곳곳에 미술작품이 있다. 도로와 공원. 광장 여기저기에 세워진 조각이나 설치 작품들과 공공건물 내. 외벽에 그려진 벽화 같은 것들 말이다. 이렇게 일상의 생활영역에 배치된 미술작품들은 성격상 미술관과 화랑에서 전시중인 작품들 보다는 공공성의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공예술품 특히 야외에 전시된 조각에 대한 어떤 고정 관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고정관념은 조각이라는 것은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형태와 모양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예술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예술적인 분위기가 풍겨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술은 예술품 같아야 한다거나 조각은 조각 같아야 한다는 고정된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공공조형물은 사람들에게는 문화향수권의 신장과 정서적 안정을, 작가들에게는 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과 창작활동의 자극제 역할을 하게 된다. 나아가 지자체에게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문화상품으로서도 자리매김 할 수 있다.
또 다른 유형의 공공미술은 수용자와 사용자의 견해와 참여를 보다 중시하는 작업이다. 많은 미술가들은 소외지역이나 생활현장에 개입해 지역주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그 소통에 기초해 작업을 진행한다. 미술대학 학생들이 지역주민들과 연계하여 벌이는 거리미술전이나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을 전제로 시도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이 이 경우에 속한다.
이렇게 공공미술을 개인과 사회집단의 여러 이해가 서로 맞물려 있는 논쟁의 장 속에 있다. 공공미술에는 개인적인 가치와 공공적인 가치가 함께 공존하며 서로를 의지한다. 이 양자는 때론 격렬히 다투면서, 때로는 타협하면서 우리의 도시 풍경을 직조해 왔다. 이 양자의 긴장이 적절하게 조율 될 때 우리 도시는 좀 더 아름다워지고 보다 풍요로운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예술작품은 항상 우리주변에서 쉽게 만나고 접할 수 있을 때만이 쾌락의 차원을 넘어서 진정한 삶의 자양분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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