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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례길 240km - 4대 종단 성지 체험…역사·문화의 숨결을 느끼다

길을 나선다. 혼자 갈까? 잠시 고민한다. 어느 길을 선택할까. 두려움과 설레임, 해방감, 자유, 고독, 방랑, 깨달음, 기도 등에 대한 단상을 배낭에 차곡 차곡 넣고 달콤한 십일몽을 꿈꾸며 길을 나선다. 일상을 벗어나 어디로라도 떠나고 싶을때가 있다.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일상의 스케줄. 지친 나를 추스르고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을 때 우리는 길을 떠난다. 올레길, 둘레길, 마실길이 유행하고, 전국에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걷기보다는 커다란 깨달음과 의미를 담은 순례길이 생겨나고 있다.

   
▲ 전국에서 모인'유유자적'걷기 동호회원 70여명이'아름다운 순례길'완주군 비봉면 천호성지 코스를 걷고 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세계적인 순례길로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꼽는다. 스페인 산티아고는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순례길 중에 하나로 한해 2~3만명이 찾는다. 스페인 여행을 경험한 분들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순례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북에도 순례길이 있다. 유교, 불교,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이 함께 만든 240km의 '아름다운 순례길'이 바로 그것이다. 이 순례길은 세계 최초로 4대 종단이 하나로 결합해 각 종단의 순교지와 성지, 교회, 사찰 등을 공동 순례하는 길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걷자는 의미의 '느바기'가 '아름다운 순례길'의 모토. 조용히 묵상하고 역사와 대화하면서 느리게 걷는 아름다운 순례길의 상징은 달팽이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순례꾼들은 저마다 달팽이. 달팽이가 길을 안내해주니, 누구라도 혼자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곧 화답할 것이다.

 

 

   
▲ 아름다운 순례길'을 통해 종교간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 240km 8박9일 코스'아름다운 순례길'

 

2009년 10월31일 개통된 '아름다운 순례길'은 240km로 8박9일 코스로 돼 있다. 지난 2년 간 무려 6만여 명이 다녀갔다. 익산 성당면에는 1845년 한국인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머문 나바위 성지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10명의 순교자가 묻힌 천호성지가 있다. 호남 최초로 1893년 설립된 서문교회와 1897년 미국인 선교사 잉골드가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서울 광혜원에 이어 두번째로 문을 연 전주 예수병원도 만나볼 수 있다. 1400년 전 백제시대에 창건된 김제 금산사, 신라 말기에 창건된 완주 송광사를 비롯해 익산시 금마면에 가면 백제시대 동양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지와 국내서 가장 오래된 석탑인 미륵사지석탑(국보 11호)을 볼 수 있다. 원불교 성지인 익산에는 창시자 소태산 선생을 기리는 탑과 기념관이 있다.

   
 

(아름다운 순례길)

 

·1코스 = 한옥마을~송광사 28.0km

 

·2코스 = 송광사~천호 26.5km

 

·3코스 = 천호~나바위 26.5km

 

·4코스 = 나바위~미륵사지 27.5km

 

·5코스 = 미륵사지~초남이 29.3km

 

·6코스 = 초남이~금산사 24.0km

 

·7코스 = 금산사~수류 19.7km

 

·8코스 = 수류~모악산 21.0km

 

·9코스 = 모악산~한옥마을 27.5km

 

△ 여러 종단의 화합의 길

 

외국의 순례길과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다르다. 외국의 순례기은 한 특정 종교의 길인 반면, '아름다운 순례길'은 여러 종교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길이다. 전주를 비롯해 완주·익산·김제의 천주교와 기독교·불교·원불교 등 4대 종교의 성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든 '아름다운 순례길'이 2009년 선포됐다.

 

예수의 제자 야곱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은 800km에 이르지만,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240km로 하루 20~30km씩 걸으면 되기 때문에 누구라도 선뜻 나설 만한 여정이다.

 

또한, 백제시대의 미륵교, 조선시대 성리학으로서의 유교, 실학에 바탕을 둔 천주교,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자 한 동학·원불교, 근대의 개혁을 강조한 개신교 등 새로운 정신을 필요로 할 때 그 심장의 역할을 했던 종교가 상당 부문이 전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북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순례길'은 이제 어느 하나의 종교로서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와 문화가 더불어서 새로운 정신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로, 세계가 눈길을 모을만한 발걸음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순례길'은 만경강 갈대밭과 제남리 뚝방길, 고산천 숲속 오솔길 등 포장도로가 아닌 흙길을 따라 걷는다. '고삿길'에서는 자연에 취해 우주의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다. 스님이 천주교의 정신이 깃든 천호 파정의 집에서 여정을 하고, 신부가 원불교 숲 문화센터에서 잠을 청하며, 원불교의 교무가 교회에서 묵어가고, 목사가 송광사의 템플스테이에서 잠시 머무르는 상상을 해보자.

 

비단 종교인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때로는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만나기도 하고, 너른 평야 곡창지대를 지나면서는 농민의 마음도 읽어낼 수 있다. 길가에서는 임실 치즈에 얽힌 사연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가람 이병기 생가와 전주 한옥마을 내 위치한 경기전·강암 송성용 기념관·동학혁명기념관 등에서는 전북 역사의 뿌리를 만나볼 수 있다. 발을 내딛었을 때 첫 여정과는 달리 마무리 여정에서는 우리 시대를 깊이 이해하는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11월 세계순례대회로 종교간 대화를

 

더욱 의미있는 것은 11월1~11일 '세계순례대회'가 전북에서 열린다는 대목이다. 전북도와 (사)한국순례문화연구원이 교황청이 기획하고 있는 '2014년 아시아순례대회'의 전북 유치를 위해 사전에 기획된 것. 세계 대부분의 순례길이 개별 종교의 특성만을 담고 있거나 역사적으로 종교분쟁과도 맞물려 있었다는 데 비해, '종교 간의 대화'가 세계적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여러 다양한 종교가 한데 공존하고 있는 전북에서는 '아름다운 순례길'을 통해 종교간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행사에는 종교 신자와 일반인 등 국내·외에서 5만여 명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참가자들은 전주 한옥마을과 치명자산, 완주 송광사와 천호성지, 익산 나바위와 미륵사지, 김제 금산사와 수류성당 등 종교·영성의 체취가담긴 길을 걷는다. 순례 도중에 아픈 몸을 치유하고 마음을 달래는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각 종단의 지도자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고 화합을 다지는 행사도 준비된다.

 

앞서 전북도는 순례길 정비에도 힘을 쏟았다. 방향 표지판 900여개, 안내판 70여개를 세우고 길 중간에 화장실·벤치 등 쉼터도 마련했다. 주변의 절·성당·교회는 물론 동네의 마을회관을 숙박장소로 제공하는 데에도 신경을 썼다.

   
 

김진아 문화시민전문기자

 

(익산문화재단 문화예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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