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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친고죄 폐지의 의미

▲ 조 선 희

 

전북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2012년 12월 18일, 여야 대통령후보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을 선거 하루 전날, 20년간 여성계 숙원이었던 친고죄 폐지가 대통령령으로 공포되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성폭력 범죄 근절을 위해 친고죄가 폐지 된 것은 매우 다행이다. 친고죄 폐지는 성폭력 범죄가 사회적 범죄가 아닌 개인적 치부라는 인식을 확산했던 장애물을 걷어낸 것으로, 여성 인권사에 한 획을 긋는 매우 중요하고 감동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소 없이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죄로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성폭력 피해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하도록 했던 것이다. 최근의 예로 지난해 성추문검사 사건을 들 수 있다. 검찰은 40대 피의자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초임검사에게 성폭력 범죄가 아니라 뇌물수수를 적용했다. 그 이유는 피의자여성과 성추문검사가 이미 법적으로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위계?위력에 의한 추행?간음' 혐의를 적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폭력범죄를 적용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친고죄는 고소의 부담을 피해자에게만 지게 했으며 재판과정에서도 성범죄는 사적인 사안으로 인식되어 그 처벌을 무겁게 부과하지 않을 빌미를 제공 해 왔다.

 

지난 20년간 성폭력 피해자들은 친고죄 조항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낮은 기소율과 유죄 선고율이 이를 말해준다. 성폭력 피해자 90% 이상이 여성이다. 여성의 정조(貞操)관념이 강한 우리사회에서 성폭력사건을 고소한다는 건 생명을 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지 못하면서 자신을 드러내야하고 사회와 법적 제도에 맞서 외로운 투쟁을 해야 하는 형국이다. 또 피해자들은 고소 이후에도 가해자 측의 끈질긴 합의 욕구에 시달려 왔다. 그동안 친고죄는 가해자들로 하여금 사법적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으며, 합의를 종용당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은 모욕감과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성폭력 피해자를 '생존자'라 불렀고 그만큼 사회적 벽에 부딪치며 고통을 당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 있다. 이에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과 2011년 한국정부 보고서에 대한 심의에서 '친고죄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형법과 관련 법률을 검토하고 개정'을 촉구한 바 있으며, 2008년 유엔(UN)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에서도 성범죄 친고죄 조항 폐지를 권고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친고죄 폐지와 함께 여러 법안이 한꺼번에 통과 되는 과정에서 '전자발찌 확대 적용'과 '화학적 거세 확대' '신상공개 3년 소급 적용' 등의 성범죄 근절 대책이 포함된 것이다. 정부는 성폭력문제가 사회불안 요소로 등장 할 때마다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 대책을 빠른 속도로 쏟아 내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 근절 대책의 핵심은 성폭력피해가 발생 했을 때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어야 하며,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호대책이 마련되는 것이어야지 가해자 처벌이 핵심정책이어서는 안 된다.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피해자로서 당당하게 주체성을 갖고 사회적 지원을 받으며 피해를 극복해 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 조 대표는 전주여성의전화 사무국장,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운영위원장, 전주의제21 사회와복지분과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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