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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금의 반란을 꿈꾸며

▲ 조민철 전북연극협회장
흔히 전라북도는 예향으로 일컬어진다. 그것은 이 땅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인들의 자존감과 자긍심을 세워주는 무형의 지표이자 도민들의 정신적 버팀목으로 작용해 왔다. 특히 제주까지 포함한 호남을 호령하던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는 활발한 교류, 좌로는 평야를, 우로는 산지를 거느려 그 풍성한 산물의 집산지인지라 자연스럽게 문화의 꽃이 활짝 피어났던 곳이었다. 거기에 주위의 여러 시·군에서 인재들이 모여들어 전주문화에 기여했으니 가히 비교의 대상이 없던 말 그대로 온전한 고장이었던 것이다. 그 풍요는 학문과 여유를 낳고 가무를 낳아 예향의 명성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그런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고 특히 예술인으로 사는 것은 더욱 고마운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과거의 풍요가 이제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줄 정도로 쇠락했지만 곳곳에 남아있는 유무형의 흔적이 그를 위안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입을 벌리고 있다.

 

요즈음은 세상의 흐름이 매우 빨라 트렌드로 자리한 것에 겨우 편승하고 눈을 들어보면 이미 다른 시도가 과정을 밟아가고 있고 그 과정은 다시 결과를 내놓으며 또 다른 새로움을 노리는 시절이다. 그러면 대개는 열심히 좇던 걸음을 멈추며 그 정도면 내 능력 안에서 충분히 노력했다하고 안주하기 십상이다. 물질적 풍요와 찬연한 유산들이 오히려 우리를 가두어 버리고 머물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순간이다. 보다 척박한 환경에서 강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서울 쪽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절대 강자가 없는 환경 속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능력으로도 으뜸이 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버금들을 비웃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전적적인 의미로 으뜸이란 사물의 중요한 정도로 보았을 때, 첫째나 우두머리를 뜻하고 버금은 등급이나 수준, 차례 따위에서 으뜸의 바로 다음을 뜻한다. 한강 이남에서 최고, 지역에서 최고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접한다. 그것으로 족하다는 이야기이거나 서울은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여기는 자기한계의 노정이라고 보여 진다. 물론 예술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각 지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자들이 모여든 서울에서 무한 경쟁을 펼치고 훨씬 더 넓고 많은 창구를 확보하고 있는 그들과 정면승부 한다는 것은 힘들고 버거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따라잡기에 나서도 그냥 있어야 하는 것이 순수학문이고 기초예술이다'라는 논리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게으름과 안이함이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고, 새로움에 대한 적응이 더딘지라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주판을 유일한 계산기로 여겨 전국대회까지 있었던 시절에 초기 출시된 전자계산기는 천덕꾸러기였다. 컴퓨터가 보급되어 서울 쪽에서는 이미 상용단계에 이르렀는데도 '손맛이 안 나서, 정서가 메마를까 봐'를 외치며 수기를 고집했던 일이 생각해보면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단지 수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지하고 있지 못해도 우리가 배웠고 거느렸던 시절보다 변화의 페이지는 정말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우리의 망설임이 자칫 으뜸자리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 단순한 열심이나 자만에 빠져있지 말고 으뜸을 연구하고 다소 부실한 환경이지만 그것을 넘어설 시도를 즐기고 그 태도를 견지해 나가야할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도 원형의 보존이나 스승의 가르침을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다시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사람은 있어야한다. 하지만 계승과 함께 이미 충분한 여러 예술적 자양분이 새로운 움직임과 간혹 마주서고 얽히게도 하여 예향전북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특질로 인정받는다면 그것으로 단순히 으뜸을 넘어서는 정도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견인하는 지위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이유로 망설임 속에 있는 전북의 예술혼들이 보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으뜸을 넘어서는 버금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 바란다.

 

△ 조 회장은 (사)한국연극협회 이사와 익산 서동축제 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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