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인간이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세계를 원하는 것은 항상 있어 온 일이다.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는 경제적으로 공유하고 종교의 자유를 제공하는 도시 왕국을 꿈꾸었다. 그가 제시한 이상적인 도시 구조는 자급자족하면서 인구를 통제하고 같은 건물 내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가 제시한 논지 중 상당수는 근대적 도시계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 도시 공간이 현실에서 그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하워드는 전원과 도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자족적인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황폐화된 삶의 공간을 개선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건축가 라이트가 '브로드 에이커 시티'라는 이상 도시안을 내놓았다. 저밀도 도시에 거주자 모두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헬기를 대중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도시다. 입체화된 도로에 철도, 화물수송차. 모노레일 등이 운행되고 도심이 따로 없는 도시다. 학교와 그 주변에 화랑과 공연장을 겸한 작은 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전기, 석유, 가스 등 에너지는 배급을 받고 그린벨트 기능을 하는 수목 띠로 자연 환경을 보호한다. 이 모든 계획을 지방분권적 행정조직 내에서 건축가가 계획하고 관장하는 도시를 이상형으로 그렸다.
이런 혁신적인 사상가와 건축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현실 속의 도시는 실패를 거듭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한 도시들은 작은 공간 안에 엄청난 사람과 건물을 몰아넣었다. 도시는 확장을 거듭하고 전통적인 도시는 공동화를 거듭하면서 정체성을 잃어 갔다. 이처럼 도시는 오랜 세월과 더불어 생겨나고 변해 가는 공간이다. 도시의 품격은 사람과 공간, 전통과 일상 문화가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그 속에서 역사가 싹트고 삶의 흔적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 때 기품이 더해지는 것이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앞으로의 도시개발은 기존 시가지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미 있는 정책 대안이다. 그동안 지방도시들은 인프라가 좋은 신도시 쪽으로 인구가 집중되는 추세를 보여 왔다. 그 결과 구도심이 공동화되고 내부 불균형이 심화되는 현상을 빚었다. 하지만 역사 유적을 활용한 구도심의 활성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실효성이 입증된 사례가 많다. 전통공간을 문화적으로 재생시켜 주변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근대건축이나 유적도 그 몫을 크게 하고 있다. 인천과 군산, 목포 등은 일제강점기의 항구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대전의 경우도 철도청 옛 관사를 활용한 구도심 활성화가 진행 중이다. 통영의 동피랑은 벽화로 명소가 되었다. 붉은 벽돌로 만든 근대적 건축물 외에도 소금창고와 골목길, 교도소 등등,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은 엄청나게 많다.
최근 유럽은 문화예술로 도시를 재생하는 추세다. 철도역사를 재생시킨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이나 발전소를 문화공간으로 바꾼 영국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을 언급하는 것 등은 벌써 한물간 얘기들이다.
요즘 떠오르는 화두는 인문학이다. 인문학으로 현실의 도시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도움을 청할 필요가 있다.
최근 광주의 푸른길을 살리자는 공동체에서는 폐기차 안에서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몇 시간 강의로 전체 인문학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을 배제시킨 건축과 도시공간에서 인간중심으로 함의와 접점을 끌어내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생성원리에 대한 고민 없이 일방적으로 조성되어 온 우리의 도시들. 그 양적 성장에 대한 반성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 가는 과정 속에서 인문학이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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