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건강한 지방자치

지방자치 당위성 확보 위해 투명성 제고·선심공약 자제 자치단체 역량강화 필수적

▲ 송하진 전주시장
‘핑크 대왕 퍼시(Percy the Pink)’라는 외국 동화가 있다. 핑크, 그러니까 분홍색을 좋아하는 왕에 관한 얘기다. 그는 분홍색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음식, 옷, 궁전 등 모든 소유물을 핑크색으로 바꿨다. 그것도 모자라 백성들의 물건은 물론이고, 산천초목까지 모두 핑크색으로 염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대왕의 명이 닿을 수 없는 곳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하늘이었다. 하늘을 바꿀 방법을 찾지 못한 왕은 스승에게 묘책을 청한다.

 

스승의 해법은 간단했다. 그는 왕에게 안경 하나를 건넸다. 결과는 어땠을까? 대왕은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게 됐다. 스승은 왕에게 핑크색 안경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동화는, 핑크빛 세상을 보게 된 왕과 더 이상 염색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어진 백성 모두가 행복해졌다는 얘기로 끝이 난다.

 

대왕처럼 훌륭한 스승이 있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도 아름다우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회적 관습, 문화, 정치제도, 언론 등 수많은 ‘스승’에 의해 쓰게 된 ‘안경’들은 사회화합과 단결 등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고에 한계를 부여하거나 편견을 조장하고, 소수를 차별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색깔론, 지역감정 등은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대표적인 나쁜 안경들이다. 지방자치의 건전한 성장에도 ‘안경’의 악영향이 발휘되고 있다.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23년이 지났지만 지방자치를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중앙’ 중심인 탓이다. 균형발전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는 대전제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많은 부분이 중앙 정부의 의도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국가사무와 자치사무의 비중은 80대 20 정도다. OECD 회원국의 자치사무 비중이 평균 40%선이니 우리는 중앙에 권력이 편향돼 있는 셈이다. 가까운 일본 역시 40%이고 유럽은 50% 이상으로 지방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걸 보면 현재 우리의 지방자치는, 지역의 특성을 살려 살기 좋은 지방을 만들어가겠다는 지방자치제의 취지와는 동떨어져 있는 걸 알 수 있다.

 

사무 뿐 아니다. 예산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힘이 가장 많이 좌우되는 부분이다. 지자체는 해마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팀을 꾸리고 정부청사 문턱을 닳도록 드나든다. 예산 확보 시기의 정부청사는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러한 불균형이 야기하는 큰 문제는, 중앙 정부의 시선으로는 지방정부의 특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데에서 나온다. 지역의 강점을 파악하고 발전전략을 세우는 일은, 지역민과 끊임없이 호흡하고 생활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제일 잘 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에서 검토하는 보고서나 통계로는 읽어낼 수 없는 지역민의 희로애락과 희망을, 지방자치단체는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244개에 달하는 지자체를 ‘지방’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일이 계속된다면 지역발전은 요원하다. 중앙의 시선으로는 한옥마을이나 부산 산복도로, 함평 나비축제 등 지방정부의 창의적인 발전방안으로 평가받는 전략들을 발견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앙정부의 인식을 불식시킬 지자체의 역량강화도 필수다. 지방자치의 당위성 확보를 위해서는 투명성을 높이고 선심성 공약을 자제하는 등 건전한 지방자치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이러한 지역의 노력에 발맞춰 중앙정부도 지역을 국가발전의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국가사무의 이양, 지방재정 확충, 자율권 확대 등 지방자치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근본적인 조치들을 취한다면 지역발전의 계기는 분명 마련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민 또한 ‘중앙’의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의존하던 관습에서 탈피해 우리의 눈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지역발전을 이끌어가는 의지를 발휘하는 데에 있다 믿는다. 변화는 안경을 벗는 것만으로도 시작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야말로 핑크빛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것이 각자의 색을 빛내며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 아닌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군산새만금 글로벌 K-씨푸드, 전북 수산업 다시 살린다

스포츠일반테니스 ‘샛별’ 전일중 김서현, 2025 ITF 월드주니어테니스대회 4강 진출

오피니언[사설] 진안고원산림치유원, 콘텐츠 차별화 전략을

오피니언[사설] 자치단체 장애인 의무고용 시범 보여라

오피니언활동적 노년(액티브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