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 잔재 걷어내야 진정한 해방
알제리는 큰 나라이다. 땅덩어리로 치면 전 세계 10위권에 든다. 로마시대부터 내려온 유적들이 거의 방치된 채로 산재해 있어서 앞으로 관광 부국으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알제리는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과 통찰로 유명한 프란츠 파농이 그의 짧은 생애를 바친 나라이다. 파농은 같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 출신이었지만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가 독립을 보지 못 하고 백혈병으로 요절한 작가이자 의사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이어진 프랑스의 식민통치는 이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압도적인 폭력과 차별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그 피해자들은 대체로 저항의 의지를 잃는다. 그 대신 식민주의자들의 얼굴에 자신들의 얼굴을 얹어서 동일시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학하고 식민지배가 운명적인 것이었다며 수긍하려 한다. 파농은 〈검은 피부 흰 가면〉이라는 책에서 피식민자들이 그들의 의식과 일상에서 식민주의의 잔재를 걷어내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해방은 오지 않는다고 외쳤다.
알제리 독립전쟁은 1954년에 시작해 1962년에 끝났다. 프랑스 사람들로부터 축구를 배웠던 이 나라에서 ‘마르세이유 턴’으로 유명한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이 나왔고, 이 나라가 프랑스에서 배운 디자인 감수성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을 탄생시켰다. 문화적으로 식민모국의 자존심을 압도한 셈이다. 알제리 축구팀은 사상 처음으로 유럽 팀을 꺾은 아프리카 팀(1982년 스페인월드컵)이기도 하다.
우리 축구 대표팀이 알제리에게 충격적으로 패배하면서 자존심을 구기던 그 무렵, 두 번째 지명 받은 이 나라의 국무총리 후보자는 자신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항변을 하느라고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조선민족이 불결하고 게을러서 식민지가 되었으며 이는 곧 하나님의 뜻이라 외치던 그였다. 교회에서의 강연 동영상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그 동안 써온 칼럼들의 내용이 거의 비슷한 신념으로 일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신앙의 자유’ 운운하며 그를 감싸기도 했다. 그렇다. 그의 확신만은 알아주어야 한다. 파농 식으로 말하자면 그의 피부는 조선 사람의 것이었으되, 한평생 그의 의식을 지배해온 것은 현대사를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해온 강대국들의 지배논리였다. 그것이 그의 ‘흰 가면’이지만 그는 그게 가면인지 자신의 피부인지도 분간하지 못 한다. 자신이 왜 친일파 소리를 듣는지 저승에 가서도 깨닫지 못 할 친일파들이 그 주변에서 다시 철옹성을 쌓는다.
고통 받는 약소국에 뜨거운 연대를
알제리 축구 대표팀은 귀국 환영행사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국민들과 함께 환호했다. 팔레스타인, 문씨 같은 이들에게는 아마도 게으르고 불결해서 신의 채찍을 받고 있는 나라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알제리의 축구선수들은 고통 받는 저 약소국 국민을 향한 뜨거운 연대와 동료애를 당당히 자랑한다. 우리가 저들에게 진 게 축구만일까?
△곽병창 교수는 전북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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