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야만으로 만드는 피해의식
이천 년의 유랑과 가혹한 살육의 기억으로부터 유대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되살려오고자 하는 것일까? 여전히 세상 모든 나라가 그들을 적대시하고 멸망시키려 한다는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 끔찍한 피해의식이 가공할 폭력 무기들과 뒤엉켜 날뛰는 자리에 죄없는 어린 것들의 찢긴 시신이 나뒹군다. 가자지구의 비극은 인간의 피해의식이 국가라는 이름의 집단 폭력과 결합할 때 얼마나 무서운 악마로 변하는가를 보여준다. 유엔학교도 병원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퍼부어대는 저 끔찍한 첨단 무기들은 과연 저들이 숭상하는 유일신이 보낸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이것은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기억이 보낸 것이다. 그것도 직접 살육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에게까지 대물림되어 내려온 집단적 피해의식이, 악마의 이빨이 되어 저지르는 일이다. 이게 남 일인가?
패전국임을, 원폭의 피해자임을 한 시도 잊지 않고 곱씹어 온 아베 정권과 그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징벌에 더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그 피해자로서의 집단기억을 부추기고 되살려서 은인자중 키워온 엄청난 국방력으로 어느 때라도 다시 이웃을 쳐들어갈 태세를 가다듬는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불안한 이웃이다.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가해자였고 여전히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 내면에 도사린 피해의식이 얼마나 무서운가?
무서운 사람들, 그 흘긴 눈, 함부로 휘두르는 주먹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꽃다운 아이들 수백 명이 맥없이 죽었다. 어찌 그 배의 이름은 하필 세월호인가? 그래도 건져주겠지 카톡을 하다가, 너무 무서워서 고래고래 랩을 하다가, 울면서 엄마 아빠를 안심시키다가, 왜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다. 모처럼 차려입은 육십 대의 동창생들과 제주도로 살러가던 젊은 부부, 그리고 그 비슷한 처지의 평범한 사람들이 떼로 영문도 모르고 죽었다. 눈 번히 뜨고 ‘어 이게 먼 일여’ 하다가 죽었다. 그렇게 수백 명을 대낮에 수장시키고도, 그리고 백일을 훌쩍 넘기고도, 이 나라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슨 무슨 엄마라는 이들, 정치가들,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들이 땡볕의 유가족들 앞에서, 그 지옥 끝까지 절망한 이들 앞에서, 추하다고, 노숙자 같다고, 이제 좀 편안히 살자고 눈알을 부라린다. 엄마라는 이름을 이렇게 모욕해도 되는가? 어리고 약한 존재, 슬픔에 빠진 이들, 가난한 이들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신이 인간의 내면에 원초적으로 심어 둔 본성이다. 그럴진대 저 으르렁거리는 흰 이빨들이, 핏발 선 눈들이 어디 인간의 것인가? 저들의 내면에 도사린 피해의식의 깊이를 알 길이 없다. 누구의 피해의식이 어떤 방식으로 대물림되고 옮겨온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점잖은 종편 패널들은 정권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이란다. 도대체 그 배에서 죽은 이들이, 그 유족들이 이 정권과 기득권 층 누구에게 무슨 피해를 입혔단 말인가?
저주·복수의 대물림 끊어버려야
전방의 내무반에서 한 병사를 악랄하게 괴롭히다 끝내 죽인 이들은 자신들도 그렇게 당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죽어가던 병사가 마지막으로 본 저들의 눈빛은 과연 인간의 것이었을까? 피해의식은 인간을 야만의 상태로 되돌린다. 그 피해의식의 야만적인 요동을 멈출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이긴 자들, 힘을 가진 자들에게만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스스로의 끔찍한 피해의식을 딛고 서서 저주와 복수의 대물림을 끊어버린 이들도 참 많다. 바라건대, 세상의 모든 가진 자들이여, 낡고 허황한 피해의식을 부추겨 짐승 같은 가해자가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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