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 상륙 기념 1897년 건축 / 1916년 개축 한식기와·서양식 조화 / 하루 평균150여명 방문객들 '북적'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익산시 망성면에 위치한 나바위 성지가 세간으로부터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성지를 둘러보고 기도를 드리는 순례자들의 방문 발길이 연일 이어지는 등 하루가 다르게 부쩍 늘어나고 있다.
나바위 성당 사도요한 신부(42)에 따르면 나바위 성지는 천주교 성지로서의 가치가 아주 뛰어난 곳으로 순례자들의 방문이 1년에 대략 4만명 수준에 이르고 있는데 교황의 방한 소식이 전해진 이후 더욱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하루 평균 100여명에 달하는 순례자 방문이 최근들어 150여명 가량에 이르고 있는데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그 숫자가 보다 늘어날것으로 전망했다.
1845년 10월12일 밤 8시, 금강의 물길을 타고 낯선 배 한척이 들어선다.
중국발 라파엘호다.
배에는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다블뤼 신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조선인 신자 11명과 함께 올라 있었다.
그들은 황산포 포졸들의 눈을 피해 화산의 나바위에 상륙한다.
11개월 후, 1846년 9월 김대건 신부는 참수되었고, 1897년 화산 아래 나바위 부락에는 성당이 세워졌다.
김대건 신부 일행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을 기억하기 위한 신의 공간, 화산본당이다.
지금은 성지화 되어 나바위 성당이라 불린다.
나바위 성당은 처음에는 흙벽과 마룻바닥, 기와지붕과 나무로 만든 종탑이 선 순 한옥 목조건물이었다.
이후 1916년에 벽돌조로 교체하고 고딕식의 벽돌 종탑을 세웠다.
몸에는 팔작지붕에 한식기와를 올렸지만 정면의 얼굴은 수직으로 솟은 첨탑을 기준으로 아치형 입구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한복을 입은 서양인의 모습이랄까. 종탑은 색깔이 다른 붙임 기둥으로 수직성을 강조했고, 입구의 아치 역시 3단으로 중첩되어 심미성과 상징성을 높였다.
양 측면에는 툇마루를 개조해 만든 회랑이 둘러져 있다.
회랑의 아치 입구 역시 정면의 대칭성을 따른다.
그러나 회랑에 들어서면 그대로 노출된 서까래가 익숙하고 푸근한 음악처럼 흐른다.
본당 옆의 사제관도 벽돌조에 한식기와다.
문과 창은 반원과 궁형의 아치로 장식되어 본당의 모습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성당의 내부로 들어서면 초기 성당의 모습이 고스란하다.
예수의 성심상과 촛대, 감실과 낡은 목조 성수대, 반들거리는 마룻바닥 모두가 처음의 것 그대로다.
공간을 가르는 8개의 목조 기둥은 남녀유별의 관습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제대 역시 초대 주임이었던 베르모렐 신부가 프랑스와 중국에서 몰래 들여와 직접 조립했다는 옛것이다.
오른쪽 소 제대의 감실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목뼈)가 봉안되어 있다.
제대 앞에는 커다란 아치가 천장에 가로놓여 있다.
그 무지개 너머에 두 팔을 둥글린 예수의 성심상이 서있다.
한편 익산에는 나바위 성지 외에 여산의 숲정이 성지, 백지사터 성지 등 우리나라에 있는 그 어떤 성지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깊은 숨을 머금고 있는 천주교 유적들이 있다.
● 가볼만한 전북지역 천주교 성지
전북지역에는 10여곳에 달하는 천주교 성지가 있으며, 이중 전주에 위치한 치명자산과 전동성당이 대표적인 성지로 꼽힌다.
△치명자산 성지= 옛부터 승암산(중바위산)으로 불렸으나, 산정에 천주교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치명자산에는 1784년(정조 8년)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 문화를 수용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처 신희, 동정부부로 순교한 큰 아들 유중철(요한),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둘째아들 유문철(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마태오) 등 일곱분이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다.
이 분들은 1801년(순조1년) 신유박해 때, 9월부터 4개월 여에 걸쳐 전주 남문 밖(현 전동성당)과 전주옥, 숲정이에서 처형되어 멸족되었다. 살아 남은 노복과 친지들이 은밀하게 시체를 거두었으나, 고향인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땅에 묻히지 못하고 들 건너 재남리 바위백이에 가매장 되었다.
그 후 1914년 4월 19일 전동성당 보두네 신부와 신도들이 치명자산 산정에 모셨다.
△전동성당= 전주 한옥마을내에 위치한 전동성당은 100년의 전통을 간직한 순교일번지.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으로 동양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외양과는 달리 1791년 신해박해 때 윤지충(바오로)·권상연(야고보)이 서슬퍼런 칼날 아래 참수형을 당한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터이다. 그 10년 후 신유박해 때 유항검 및 많은 지도자급 인물들이 순교하여 호남의 모태 본당이 된 전교의 발상지이다.
그 기적의 땅에 순교한 지 100년 만에 초대 주임신부인 보두네 신부에 의해 순교자들의 선혈이 어린 성곽의 돌로 주춧돌을 세워 23년에 걸쳐 완공됐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