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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기억하는 단상들

▲ 박재천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뜨거운 열정과 마음을 쏟았던 5일간의 축제를 마치고 어느새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하다. 하지만 일 년 내내 ‘축제’만을 생각하며 달려 온 나는 잊지 못할 수많은 단상들로 ‘축제’를 기억할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셀 수 없는 많은 에피소드가 모여 하나의 ‘축제’를 완성했다. 소중했던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더 세밀히 들여다보고 더 정성스럽게 기억하고자 한다.

 

예측 못한 상황으로 한숨·웃음 교차

 

축제 전 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던 팀의 멤버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했다. 한 출연자는 공연 시작을 앞두고 꽉 막힌 도로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긴급 상황을 알려왔다. 한국에 도착한 한 해외연주자는 갑작스레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전통 타악기를 빌려달라고 했다. 축제 기간 벌어지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 때문에 짧은 한숨과 함께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개막공연에 출연하기로 한 출연자들과 전날 모여서 리허설을 한번 하고 본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모두가 불안해했지만 내 믿음은 옳았고, 출연진들의 무대에서의 활약은 대단했다. 판소리의 외형의 확장이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통음악의 확장은 단순한 포장이 아닌 디자인의 개발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14개 시·군 ‘찾아가는 소리축제’의 성과는 놀라웠다. 편백나무 숲의 인파를 경험하니 내년에 계획한 ‘한옥마을 사이트 전면 철수’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해외 관계자들과 영어실력에 한계를 느낄 정도로 우리음악에 대해 깊이 논의했다.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자원봉사자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수많은 이들이 축제 시작과 동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돈 보다 일, 그리고 ‘성취 ‘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아름다운 현장이다. 축제 4일째, 야외공연장 7시 공연을 앞두고 6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삼례에서 폐막연습을 마치고 현장까지 달려오던 내내 ‘비야 그쳐라’를 백번도 넘게 외쳤던 것 같다. 야속하게도 축제 마지막 두 날은 비가 왔다. 81명의 타악 연주자가 쏟아내는 폐막무대의 사운드와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미국에서 새벽 3시에 개·폐막공연을 봤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얼마나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관계자들의 평가가 쏟아졌다. 어깨가 무거웠다.

 

축제 막바지 준비에 열을 내며 머물렀던 전주를 떠나 다시 서울의 작업실이다. 이미 완성해놓은 내년 무대 도면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축제가 끝나면 단 하루라도 전 직원이 쉬었다가 마무리해야겠다는 나의 야무진 생각은 어림도 없다. 곧장 처리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다. 축제의 폐막을 알리는 불꽃놀이와 함께 수천 건의 정산을 해야 하는 ‘행정축제’가 시작된다고 말하는 직원의 모습에 코웃음이 난다. 소리축제에 참여하고 싶어 러브콜을 보내 온 연주자들에겐 출산 휴가 중인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라고 해야 한다.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수개월씩 단기직원으로 일해 준 직원들과의 이별의 시간은 감성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비 맞으면서도 자리 지킨 관객에 감사

 

축제를 마친 후 어느 날, 자고 일어나 커피 한잔을 마시며 들었던 뇌리를 스쳤던 하루의 첫 생각. ‘많은 비가 쏟아졌던 그 날, 그 많은 관객들은 왜 자리를 떠나지 않았을까?’ 이루어질 수 없었던 수많은 상황들을 이겨내고 또 하나의 축제가 완성됐다. 비를 맞으면서도 끊임없이 계속됐던 관객들의 입장을 비롯해 수많은 불가사의한 현상과 의문들을 남기며 그렇게 마법처럼, 기적처럼 또 한 번의 축제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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