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을 미리 정해 놓고 사실을 꿰맞추려하는건 유신시대로 회귀하는 꼴
역사는 항상 앞으로 가는 건 아니다. 가끔 거꾸로 가기도 한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그런 경우다. 검인정교과서에 문제가 많으니 다시 국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다. 도대체 검인정교과서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내가 보기엔 아무 문제도 없다.
정부는 기존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찬양한 ‘종북’교과서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 지침에 따라 만들고 정부 감수를 받아 발행한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더구나 논란이 되고 있는 ‘주체사상’은 교육부 교과서 편성지침에서 가르치라고 해놓고, 이제와 왜 가르치느냐고 공격하는 코미디마저 벌어지고 있다.
또 정부는 아직 만들지도 않은 교과서를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고 볼 수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미 나와 있는 뉴라이트 교과서나 정부가 그렇게 채택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교학사 교과서가 담고자 하는 내용을 보면, 국정교과서의 미래가 보인다. 정부가 최근 발행한 초등학생용 5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일제의 쌀 수탈이 수출로, 의병학살은 토벌로 표시했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이 수출이 되고, 중국침략을 위한 공장건설이 산업화가 되는 것이다. 국내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 보수우익들의 역사관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세종은 선왕인 태종의 실록을 보고 싶어 신하들에게 물었다. 맹사성 등은 “실록은 다시 고칠 것도 없으려니와 하물며 전하께서 고치시는 일이야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보신다면 후세의 임금이 이를 본받아 고칠 것이며, 사관도 왕이 볼 것을 의심하여 그 사실을 다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후세에 그 진실함을 전하겠습니까”라고 하여 세종은 보는 것을 포기했다.
반대로 연산군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조의 사초를 열어보고 피비린내나는 무오사화를 일으키게 된다. 왕도 관여 못한 역사편찬에 대해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이 직접 나서 ‘올바른 역사교육’ ‘통일대비교육’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월권에 속한다.
그러면 박근혜 정부는 왜 국정교과서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단지 교과서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교과서 논쟁이 일본 보수우익세력의 영구집권을 위한 작업이듯이 한국의 역사전쟁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지배를 이어가기 위해 국민의식의 지배 즉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해석까지 독점해 주입하려는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은 아버지 독재자 박정희의 친일경력, 남로당 활동, 5·16 군사 쿠데타와 18년간의 독재 사실을 지우고 오로지 경제개발의 공헌자로서만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E.H.Carr)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아날학파 창시자인 마르크 블로흐는 나치의 침공으로 허망하게 프랑스가 무너진 후 저서 ‘역사를 위한 변명’을 통해, 역사는 무슨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진실과 정의를 향한 그 무엇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와 같은 역사학자가 있다. 애국자들과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역사는 신성하고 치열한 것이다.
역사란 무수한 사실의 모래사장에서 해석이라는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사실 자체를 감추거나 외면하면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해석을 미리 정해놓고 사실을 꿰맞추면 왜곡이 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통해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역사학이다.
역사를 거꾸로 돌려 유신시대로 회귀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노력은 결실을 맺은 듯 보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결코 승리한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결국 패배할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진실과 정의를 위한 역사전쟁은 오래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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