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예산 각 부처 나눠져 신속한 업무 불가능 / 동서 2축 도로 착공·한중 경협단지 추진 보람 / 전북대 석좌교수 활동, 소석 기념관 설립 앞장
새만금공동위원장을 2년간 맡아오면서 새만금사업의 큰 틀을 잡아왔던 이연택 전 위원장이 바통을 후임자에게 넘기고, 지난 8일 전북대학교 석좌교수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장관, 청와대 수석, 대한체육회장 등 굵직한 직책을 맡아온 그는 최근 2년간 새만금사업의 조타수 역할을 해온데 이어 이제 고향인 전북에서 강연을 통해 지역사랑과 국가발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연택 전 새만금위원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먼저 새만금공동위원장 임기 2년을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새만금사업이 기획되는 순간 정책실무자로 참여했고, 대통령을 모시고 기공식에도 참석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저는 정책개발팀의 고문으로 참여했는데 그게 계기가 돼서 새만금 위원장도 맡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새만금위원장이란 직책을 맡는 것 여부에 관계없이 항상 관심을 가지고 발전방향에 대한 고민을 해온 게 사실입니다. 농업용지로 시작했던 사업을 복합단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저는 범도민새만금추진협의회 회장으로서도 활동한 바 있습니다. 새만금사업 전체를 100%로 봤을때 저는 지금 절반쯤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위원장으로서 활동하면서 아쉬움이나 보람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중국 푸동 지구의 경우, 새만금지구에 비해 단 1년 먼저 시작했는데 지금 새만금과 비교해 보십시오. 푸동지구는 규제가 거의 없는 제2의 단계를 향해서 뛰는 데 반해 새만금지구는 기반시설을 이제야 닦는 단계입니다. ‘우리는 왜 아직 이 단계에 머물러 있나’ 라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습니다. 중국은 토끼처럼 뛰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천천히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국비로 추진하는 국책사업인데도 이렇게 지지부진한 것은 중앙정부의 추진의지 미흡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권이 여러번 교체되는 동안 새만금사업은 심하게 표류했다는 얘기지요. 정권이 들어설때마다 새만금사업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면서 많은 진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위원장으로서 재임하는 동안 보람 또한 컸습니다. ‘시기상조론’, ‘경제적 타당성 여부’등 각종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켰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새만금개발청의 신설은 가장 상징적인 일 입니다. 무려 6개 정부 부처가 분할 관리하던 새만금사업의 추진체계를 일원화 함으로써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첫 내부개발 사업인 새만금 동서2축도로(새만금에서 전주-대구-포항 간의 동서횡단 고속도로)의 착공이나 지난해 7월 한중 정상회담때 한중 경협단지 추진을 포함한 투자유치의 큰틀을 정립한 것도 보람있는 일입니다. 앞으로 새만금 개발청의 권한이 보완돼야 하는데 특히 회계체계, 인사권 등의 실질적 통합체제가 보완돼야 합니다."
-그러면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새만금 특별회계의 설치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조직의 일원화가 이뤄진 현 상황에서 재정의 일원화가 이뤄져야만 새만금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새만금 관련 예산이 각 부처에 나눠져 있는 상황에서 신속한 업무처리는 불가능합니다. 원스톱 처리를 이루려면 명실상부한 통합청 기능을 할 수 있게 해야하는데 조직의 일원화가 이뤄진 만큼 재정 일원화가 시급하며 그 골자는 바로 특별회계의 설치입니다. 공동위원장인 황교안 총리가 새만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지역에서 열린 새만금 관련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열정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잘 될 것으로 봅니다.”
-최근 전북대 석좌교수를 맡았는데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행정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저는 그동안 경희대, 중앙대, 동국대 등에서 꾸준히 강의를 해 왔습니다. 전북대에서도 여러번 석좌교수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시간이 여의치않아 고사하다, 최근 이남호 전북대 총장께서 간곡히 요청해서 맡기로 했습니다. 한달에 한두번씩 전북대에 가서 지역발전의 해법은 무엇이고, 한국사회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후배들과 함께 고민해볼 생각입니다.고향에서 석좌교수를 맡은 것은 후배들에게 전북의 도전정신과 진취적 기상을 일깨우기 위해서 입니다. 평소 제가 느낀 점에 대해서도 사례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대화하고 싶습니다.”
-최근 전주에 소석 이철승 기념관을 설립하기 위해 한창 노력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은 인물을 알아주고 키우는데 대단히 인색합니다. 정치적 평가는 놔두더라도, 솔직히 우리 지역사회에 소석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장서서 소석 기념관을 만들려고 합니다. 전주시장에게 협조를 이미 요청했고, 김선홍 전 기아회장, 박재윤 전 대법관, 박실 전 국회사무총장, 김광호 전주고 총동창회장, 유균 전 언론인 등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금운동을 해서 내년에는 착수할 예정입니다. 전주 서신동에 있는 소석 생가를 기념도서관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장을 두차례나 역임한 인연 때문인지 아직도 체육계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고향이 잘되는 일이라면 당연히 제가 힘을 보태야지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도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합니다. 국제적으로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이 분할된 곳은 없기 때문에 우리도 통합으로 가야 합니다. 브라질 리우올림픽이 끝난뒤 내년 10월에 통합하는 쪽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더 빨리해도 된다고 봅니다. 전북의 경우에도 조속히 통합을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무주 태권도대회가 성공하는데 힘을 다하겠습니다.무주가 중국 소림사처럼 태권도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상징성을 가져야 합니다. 명인전, 태극권같은 것도 필요하고, 무주가 성지화돼야 전북이 살아납니다. 국기원을 무주로 이전하고 태권도 관련 시설이나 단체도 무주에서 하나로 통합해야 합니다. 또한 U-20 축구대회 유치가 이뤄진만큼 이를 계기로 전북이 도약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 이연택 위원장은
- 올림픽·월드컵 등 굵직한 대회 유치 '일등공신'
이연택(79) 전 새만금위원장은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출향인사중 가장 애향심이 투철하고, 활동성 또한 왕성하다는 평을 듣는다. 조상대대로 고창 성내에서 터전을 잡고 생활해 왔기에 사람들은 그의 고향을 고창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 이연택 전 위원장이 실제 태어나고 10년 넘게 자란곳은 김제다.
부친 직장으로 인해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4학년까지 김제 중앙초를 다니다, 정읍 동초를 졸업했다. 이후 전주북중, 전주고, 동국대 법대를 졸업했다. 7남매중 6번째인 그는 큰형(이길연 전 전북부지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의 큰형은 고창군수, 김제군수, 전주시장을 지냈으며 공직자의 표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전 위원장은 졸업후 공채를 통해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행정요원으로 공직을 시작, 30년 넘게 행정가로 활동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그는 또한 오랫동안 체육분야에서 일하기도 했다.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 총회에서 88올림픽이 결정되던 역사적인 순간, 유치 실무책임자가 바로 그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후 2002 월드컵 유치때도 나름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통령비서실 행정수석비서관, 총무처 장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노동부 장관, 2002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제34대·제36대 대한체육회 회장, 재경전북도민회 회장, 인천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장, 새만금위원장을 지냈다.
공직에 있을때는 물론, 퇴임후에도 풍부한 인맥을 기반으로 고향 후배를 챙기고, 고향을 위한 일에 발벗고 나서는 그는 출향인사중 최고 원로격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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