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자본 앞 무력한 약자들 / 진정성 있는 협동·연대로 희망의 새봄 맞이하게 되길
산책로에 단풍나무 한 그루가 몸통이 꺾인 채 발채에 걸리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새봄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일이었다. 그 곳을 지날 때마다 훼손한 이가 누군지 혀를 차기만 했는데 어느날 보니 단풍나무에 서툰 솜씨나마 부목이 대어져 있었다. 누군가는 상처 냈지만, 누군가는 또 나무를 살리기 위해 세심히 배려했구나 싶어 미처 실천하지 못한 자신을 잠시 돌아보게 됐다.
미지의 어느 친절한 이가 대어 놓은 어설픈 부목은 여러 사람의 정성이 더해져 튼튼한 부목으로 바뀌었고, 어린 단풍나무는 이제 함박눈 속에서도 새봄의 희망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필자는 문득 그 어린 단풍나무에서 힘들고 지친 우리 청년들과 경제적 약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2010년 이후부터 정부 주도의 협동조합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협동조합들이 영세한 수준에 머물러 있고 유럽 등 선진국과 같은 체계적 교육과 활성화는 요원해 보인다.
36년간 협동조합운동을 한 필자는 최근 ‘협동조합간 협동’이라는 원칙을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이는 협동조합의 철학에 따라 조합원의 권익과 지역사회의 성장에 최대한 기여하기 위해 다른 협동조합들과의 적극적인 협동을 통해 상호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협동조합간 협동으로 이제 생산, 금융, 복지, 유통을 총망라한 융복합형 협동조합으로 나아가야 할 즈음에 이르렀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신협도 최근 도농직거래 사업협약을 체결해 도농신협간의 협동을 필두로 생산, 금융, 복지, 유통을 결합한 융복합 협동조합의 첫발을 내딛였다. 향후 의료와 복지를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 운동으로의 확대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자본을 앞세운 유통기업의 공세와 제도적 한계 등 어려움이 있겠지만 신협의 도전은 새로운 협동운동간 협동의 모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거대자본에 비해 인적, 물적 자본이 취약한 협동조합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간의 협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 자기의 것을 내어놓는 진정성 있는 협동과 연대가 필요하다.
‘진정한 협동’과 ‘연대’란 무엇일까? 작가 존 스타인 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 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굶주림과 과로로 아이를 사산(死産)한 여성이 그의 노모와 비를 피해 들어간 오두막에서 자신들보다 더 비참한 한 소년과 그 아버지를 만난다. 훔쳐온 빵조차 못 먹을 정도로 아사 직전인 소년의 아버지에게 여성은 퉁퉁 불은 젖을 물리면서 “드셔야 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역경과 절망 속에서도 사람이 희망이며, 협동과 연대가 생명을, 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됨을 웅변해주는 대목이다. 양극화와 거대자본의 힘 앞에 무력해지고 있는 이 시대의 약자들이 협동을 통해 함께 손잡고 나아간다면 분명 희망의 부목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보여준다. 역경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사회와 공동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더없이 가슴 시린 세밑이다. 사람과 사람의 체온이 만들어내는 연대와 협동의 따스함이 더없이 절실하다. 이 땅에 진정한 협동운동이 펼쳐져 상처받은 이 시대와 사람들에게 든든한 부목이 되기를 고대해본다.
다시 희망의 새봄을 기다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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