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어머니는 부쩍 밥알을 흘리고
기억을 흘리고 여자를 흘린다
몸의 괄호를 다 열어젖혀도
단춧구멍 열리듯 속이 훤히 열린다
이제는 그 흔한 비밀 하나도 간직하지 않는 여자다
목에서 다리까지 훌렁 벗겨져 내리는
이 뻔한 몸을 가지마다 벌목해 살아왔다
옹이마다 손 짚어 오르기만 했던 날들이 부끄러워져서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닌 여자로 만나
염을 하듯 어둠을 열어 닦는다
뼈마디 하나하나 닦아내고 문지르다 문득
저 삶으로의 이장인 듯 여겨져서
그만 비누 거품으로 눈 비비고 만다
◇“밥알을 흘리고/ 기억을 흘리고 여자를 흘리고” 한 생애를 가족을 위하여 살아온 여자의 삶이 슬프게 파고든다. ‘흘린다’라는 어휘가 비참하게 스며든다. 금방 나도 “몸의 괄호를 다 열어 젖”히고 누구에겐가 훤히 내다보일 때를 생각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잠깐, 좋은 시를 창조해내는 시인에게 고개 숙인다.
기억을 흘리면 여자의 아름다움도 지워진다. 비밀도 지우개로 지우면서 살아가겠지. 마지막 달력을 떼면서 나는 누구의 몸으로 사는가를 생각해 본다. /이소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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