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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호랑이는 있다 함부로 날뛰지 말자

-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이 적지 않다. 민화 속의 호랑이들은 익살스런 표정이 많아서 무섭기보다 오히려 친숙한 감이 든다. 유명한 호랑이 그림으로는 김홍도(金弘道1745~1806?)가 호랑이를 그리고 스승인 표암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소나무를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삼성미술과 리움 소장)와 임희지(林熙之1765~1820)가 대나무를 그리고 김홍도가 호랑이를 그린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개인소장), 호랑이의 늠름한 모습만 그린 「맹호도(猛虎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맹호도」에는 다음과 같은 제화시가 쓰여 있다. “영맹마아숙감봉(獰猛磨牙孰敢逢), 수생동해노황공(愁生東海老黃公). 우금발호횡행자(于今跋扈橫行者), 수식인중차안동(誰識人中此顔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사납게 이를 간 이 호랑이에게 맞설 자 누구이겠는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동해의 노황공도 이 호랑이를 보고선 겁을 내겠네. 오늘날 제멋대로 날뛰는 사람들 중에 아직도 세상에는 이 호랑이처럼 위엄이 있고 엄한 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 누구일까?” 위풍당당한 호랑이에 걸 맞는 시 한 수를 써넣음으로써 명작이 되었다. 우리의 옛 그림은 이처럼 그림과 시가 한 화면에서 만나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풍미와 운치를 더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명화에 쓰인 이런 시를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광복 후 미 군정청에서 법률로 제정하여 시행한 ‘한글전용법’을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한글날을 기해 공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국어기본법의 근간이 되어 우리의 문자생활을 제한하고 있다. 미 군정청은 한국에서 한자만 말살하면 한자로 기록해온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고 그 자리에 미국의 문화를 이식할 수 있다는 속셈으로 한글전용법을 서둘러 시행했는데 우리는 얼결에 그런 어문정책에 호응해 버렸다. 게다가 일부 교육정책 입안자와 친미적인 사람들은 실은 어렵지도 않은 한자에 대해 어렵고 불편하다는 왜곡선전을 계속함으로써 한자를 도태시켰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 2000년 동안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온 문자인 한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국민이 되었다.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문자를 읽지 못하는 국민이 문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계의 문자는 소리글자와 뜻글자로 대분하는데 소리글자도 많은 장점이 있지만 뜻글자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양자의 장점을 다 살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인 한글과 가장 발달된 뜻글자인 한자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복 받은 나라인데 얼결에 미국문화에 경도됨으로써 한자문맹을 자초했다. 한자를 안 가르친 탓에 학생들은 한글로 쓰인 책을 읽기는 해도 속뜻을 몰라 문해력이 형편없이 저하하였고, 사회는 단어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함부로 말하며 날뛰는 무리들이 많다보니 걸핏하면 말꼬리를 잡는 시비가 벌어지곤 한다. 특히 정치판은 온통 말싸움으로 얼룩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명화 속의 호랑이처럼 위엄을 갖춘 인물들이 많다. 그런데 발호하고 횡행하는 사람들은 자신 외에는 인물이 없는 줄로 알고 더욱 날뛴다. 임인년 새해에는 살쾡이나 여우 무리들이 호랑이 무서운 줄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자교육이 이루어져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아울러 바란다.

 

*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강암연묵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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