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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의 ‘만언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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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윤성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율곡 이이가 왕(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이 있다. <만언봉사(萬言封事)>다. 갑술년(1574년)에 올린 만 글자에 이르는 상소라는 뜻으로 <갑술만언봉사>나 <만언소>로도 불리는데 실제로는 1만 2천 자가 넘는 긴 문장이다.

선조는 즉위 초기 과감한 인재 등용으로 국정 쇄신에 나서고 여러 전적을 편찬해 유학을 장려했지만, 당파 분열과 정쟁이 심화되면서 정치 기강은 무너지고 결국은 일본의 침략까지(임진왜란) 불러들였다.

사실 다른 왕들과는 달리 검소했던 선조는 즉위 후에도 학문에 정진했으며 그림과 글씨에도 재능이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왕에 즉위하자마자 뛰어난 30대의 학자들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등용한 것도 그가 학문에 쏟아온 열정과 신념의 소산일 터다. 선조는 특히 인재를 등용하는 과정에서도 과거시험 성적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행이 뛰어난 사람을 중용하기 위해 애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통치하는 조선은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고 정쟁을 일삼는 당파 싸움으로 사회는 혼란해졌으며 백성들은 고통스러운 삶에 허덕여야 했다.

다행히 선조의 특별한 인재 등용 정책으로 조정에 들어간 30대 학자들은 사회적 정치적 혼란을 몰고 온 ‘적폐’를 청산하고 시대에 맞는 정치개혁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 선봉에 섰던 사람이 율곡 이이다.

당시 조선은 동인과 서인의 갈등으로 당파 싸움이 심화되고, 정치 사회적 혼란에 재난까지 겹쳐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말이 아니었다. 선조도 정치력의 한계를 깨달았는지 조정 관리부터 초야에 있는 학자들에게까지 위급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교지를 내리는데, 우부승지였던 율곡이 왕의 이 교지에 답해 올린 상소문이 <만언봉사>다.

율곡은 이 상소문에서 ‘백성들의 원기(元氣)가 이미 쇠퇴해 10년이 못 가서 화란이 일어난다’며 ‘습속을 따르고 전례나 지키려는 의견들로 인해’ 흔들리지 말고 정성으로 해결책을 구하라고 권고한다. 사실상 동인과 서인들에게 휘둘리며 나라를 위태로움에 빠트리고 있는 선조를 향한 질타(?)다.

당대의 정치를 분석하며 그 공과를 지적하고 비판한 <만언봉사>는 당시 사회를 전반적으로 진단하고 분석하면서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는지를 정리한 내용으로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에서는 때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일에 있어서는 실효에 힘쓰는 것이 긴요합니다. 정치하면서 시의적절함을 모르거나 일을 하면서 실효와 업적에 힘쓰지 않으면 비록 훌륭한 임금과 지혜로운 신하가 만나더라도 통치의 효과가 없습니다.’

들여다보면 440년여가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 내용이 적지 않다.

/김은정 선임기자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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