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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소작농민들이 피워낸 땅의 민주화, 땅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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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건 고창 책마을해리 대표

1987년 민주화 바람이 온 나라에 ‘타는 목마름’으로 번지고 있을 때, 고창 심원·해리면 농민들도 마음속 꼭꼭 억눌러온 불길을 꺼내놓았다. 바로 <고창소작답양도투쟁>이다. 이 싸움은 1930년대 삼양사 창업주 김연수 일가가 심원·해리 일대 300여 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간척지를 조성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근 주민들은 간척사업 전반에 연계되었고, 자연 소작답을 빌어 경작을 시작한다. 

일제가 물러가고 대한민국 정부는 대대적인 토지개혁을 단행한다. 이미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이 농민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던 터다. 우리는 조봉암 초대 농림부 장관이 ‘유상매수 유상분배’ 원칙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제 해체, 농민자립’ 기틀을 마련하려 했다. 그 유상매수에서 삼양사의 너른 땅은 ‘미간척지’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배제된다. 경자유전, 땅을 짓는 사람이 소유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200여 소작인들은 소외된 것이다. 돌려받지 못한 땅에서 30년 넘게 소작료를 내며 살던 사람들의 ‘땅의 민주화’는 1985~86년 어간에 삼양사 소작답 무상양도 대책위(김재만 위원장)가 만들어지면서 물꼬를 튼다. 

김재만 위원장은 광주, 전주의 기독교 카톨릭 농민회와 고창 농민회와 연대의 길을 찾았다. 그 와중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와 연이 닿았다. 그해 고려대 학생들의 여름농활이 고창 심원·해리면 일대에서 이뤄졌고, 소작농민들의 시위는 학생들의 문화집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한다. 삼양염업사 앞 시위, 고창 읍내 시가지 행진은, 정읍지방법원 공판싸움으로 이어지고, 8월 종로 삼양사 본사 점거로 번져간다. 이 낯선 싸움은 종교계, 정치권, 시민들의 관심으로 확산된다. 농민과 시민사회 바람은 ‘무상양도’였다. 수십 년 소작료로 땅값은 차고 넘치니, 이제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점거는 9월을 지나고 있었다. “비가 길다, 태풍이 온단다”, 농민들의 가슴을 옥죄는 소식이 들리고, 땅은 제 것이 아니어도, 제 손으로 보살피는 것들이 눈에 밟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김재만 위원장은 농민들과 뜻을 모아 무상양도를 철회하고 정부 고시가격인 평당 1,881원에 사측과 양도를 합의한다. ‘토지양도는 대한민국 국시위반’이라며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던 사측도, 무상양도를 철회한 농민측도 몇 발짝 물러서 이른 대타협이었다. 

세계농민운동사에 유래가 없는 이 기억은, 오랫동안  잊혀졌다. 몇 해 전부터 지역민들이 그 기억을 되살리며 크고 작은 기념 모임을 열기 시작했다. 김재만 위원장과 함께 싸우던 농민의 아들이 소설가가 되어, 당시를 팩션으로 기록한 책 <땅울림>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둘 마음이 모이고 행정을 움직여, 소작답양도투쟁 기록화 사업이며 소작답양도기념탑 건립을 잘 마쳤다. 평생 ‘목비라도 하나 세워 우리 이야기를 남겨야 하는데’ 했던 김재만 위원장의 맺힌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졌으리라.

얼마 전 그 김재만 위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80 중반의 나이, 그가 떠안은 ‘싸움는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소작농민들의 싸움과 대타협 이야기를 더는 전하지 못하고, 그는 이제 세상에 없다. 오는 9월 11일은 양도타협을 한 지 38년이 되는 날이다. 궁산마을 사람들과 고창소작답양도를 기념하는 모임에서 작은 기념식과 김재만 위원장 추모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고창 동학혁명으로부터 이어온 땅과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이대건 고창 책마을해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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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농민 #민주화 #간척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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