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일류대는 사실상 하나뿐이다. 서울대다. 이 구조가 지속된다면 국가의 미래는 밝기 어렵다. 어떤 인재의 성취 가능성과 국가 경쟁력이 특정 대학 하나에 과도하게 집중된 사회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지 못하는 순간, 사회 전반의 역동성도 급격히 떨어진다. 서울대가 10개 있다면 우리의 앞날은 분명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일본은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수도권의 도쿄대 외에도 여러 명문 국립대학이 전국에 고르게 자리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일본제국 때 제국대학령에 따라 설립됐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1886년 발포된 제학교령의 일환으로, 국가 수요에 맞는 학술과 기예를 가르칠 일류 교육기관으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도쿄대를 비롯해 교토대 등 본토 7개 대학과 함께 식민지였던 조선의 경성제국대학, 대만의 타이완대학까지 총 9개 제국대학이 탄생했다. 이들 대학은 지역과 산업을 떠받치는 일본 고등교육의 중추가 됐다.
다만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은 달랐다. 조선총독부 주도로 설립됐으며 한국인 입학 제한, 이공계 학과 부재 등 구조적 차별 속에 운영됐다. 광복 이후엔 서울대로 이름을 바꾸면서 국내 유일의 일류대라는 인식이 강해 지역 국립대 간 균형 발전의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우리 교육의 구조적 문제점을 양산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일본 본토의 7개 제국대학은 패전 이후 국립종합대학으로 재편됐고 이후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하는 산실이 됐다. 일본의 지방 국립대들이 지닌 연구 중심 전통과 학문적 위상은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장기간 축적된 연구 환경과 안정적 지원의 결과다. 이는 대학 한 곳의 성과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결실이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 침체 속에서도 과학기술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 이후 5년 단위 기본계획을 통해 기초과학을 꾸준히 육성했다. 중국 역시 정부 주도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AI, 로봇 등 전략 산업 인재를 체계적으로 키우고 있다. 양국은 대학을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한다.
반면 우리는 의대 쏠림 현상이 고착화되며 이공계 기피와 미래 산업 인력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실패 때문이다.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산업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에 “뒤로 밀린 서울대”라며 평가하며 우려를 표했다. 이는 특정 대학의 서열 유지에 매몰된 시각일 뿐이다. 심각한 지역 불균형과 인재 편중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대학 하나의 위상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역량이다. 교육 정책은 과거의 명성을 지키는 수단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도구여야 한다.
서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지역 거점 국립대는 여러 곳에 골고루 존재해야 한다. 인재가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교육도, 산업도, 지역도 살아나기 어렵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확산이다. 대학 간 경쟁을 촉진하고 연구 저변을 넓혀 국가 전체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학 서열을 지키는 논리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과감한 선택과 실행이다.
조백환 원장은 한국정맥경장영양학회 회장, 국립암센터 암임상연구전문위원회 위원장, 전북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초대원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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