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생각의 외주화’ 막으려면 고전적 독서·토론이 정답” “기술은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일 뿐, 배움의 주체는 학생” “평가 방식의 혁신, AI가 채점하고 교사가 판단한다” “교권과 인권은 상호 존중의 두 바퀴... 전북과 농촌유학 지속 확대” “서울과 전북의 협력, 미래 교육의 핵심 내용” "‘미래를 여는 협력교육’ 서울시교육감으로 기억되고파"
취임(2024년 10월) 1년 5개월을 맞은 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의 행보가 거침없다.
역사사회학자 출신다운 통찰로 교육을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짚어내는 그는 2026년을 ‘교육 패러다임 전환 체감의 해’로 선언했다.
또 AI(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시대, 단순한 지식 암기를 넘어선 ‘인간다움’과 ‘협력’의 가치를 역설한다.
더불어 전북을 비롯한 전국 자치단체와의 농촌유학 협력을 통해 도농 상생의 모델을 제시해 온 그는 이제 ‘2040년 수능 폐지’라는 파격적인 미래 설계를 통해 대한민국 교육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예고하고 있다.
이달 10일,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그가 그리고 있는 AI 시대에 걸맞는 서울시 교육의 청사진을 들어봤다.
◇ 대담= 김준호 전북일보 서울본부장
- 취임하신 지 1년 반 정도가 됐는데, 취임 초 제시하신 ‘창의·공감·자치·협력’의 가치가 학교 현장에 얼마나 안착되었다고 평가하십니까.
“지난 기간동안 정책을 안착시켰고, 만족도도 높은 편입니다. 서울교육청 정책에 참여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상당히 잘 가고 있다’는 응답이 68%, ‘앞으로 3년 이내에 희망적으로 보인다’는 응답이 83% 정도 나왔습니다.”
- 최근 AI가 사회 전체의 큰 변화를 몰고 오면서 교육 현장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AI 시대에 맞는 교육,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AI 시대 교육의 핵심은 두 축입니다. 한편으로는 독서·토론·인문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AI 활용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학생들의 창의력과 질문하는 능력, 토론하는 능력을 기르려면 오히려 고전적인 독서·토론 교육이 더 중요해집니다. 동시에 AI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도 길러야 합니다. 이 두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야 AI 시대 교육이 제대로 갈 수 있습니다.”
- AI를 교육 현장에 접목시키는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지.
“AI 시대 교육은 활용 교육과 윤리 교육, 개발 역량 교육이라는 세 축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AI교육센터를 만들고 대학과 연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연세대는 교사 역량을, 서울시립대는 학생 AI역량 프로그램을 맡습니다. 올해 2월에는 이미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있고, 서울과학기술대와는 피지컬 AI 관련 협력도 하고 있습니다.”
- 교실에서의 수업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평가 체계도 마찬가지이고요.
“옛날처럼 칠판 중심, 필기 중심 수업이 아니라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식을 많이 외우는 것보다 정확하고 창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이에 맞춰 평가도 서술형, 논술형으로 확대합니다.“
- 평가와 관련해 일각에선 AI채점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입니다. AI를 활용하면 평가자의 주관성을 줄일 수 있어 오히려 더 공정할 수 있습니다. 서울형 모델은 교육과정을 먼저 충분히 학습시킨 뒤 기준이 분명한 AI가 채점하도록 합니다. AI가 1차 채점을 돕고, 최종 판단은 교사가 합니다. 현재 교사 채점과 AI 채점의 일치율이 0.8 정도인데, 데이터를 축적해 0.9 이상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일치율은 1에 가까울수록 완벽한 일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0.8은 통계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수준.)”
- AI 교육에 대한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학부모들도 ‘AI 인재가 돼야 하니 우리도 AI를 좀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학부모 교육센터, 학부모 학습센터를 더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학부모 지원체계 안에서 그런 계획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 한편으론 지나친 AI 의존이 우려됩니다. 교육감께서는 이를 ‘생각의 외주화’라고 표현하시기도 했는데요.
“가장 걱정되는 지점이 아이들이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AI에게 묻게 되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를 ‘생각의 외주화’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길을 외워서 찾아갔지만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만 갑니다. 그러다 보니 지리 감각이 떨어지죠. 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가 들어오고 나서 손글씨 능력이 떨어졌습니다. AI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생각 자체를 AI에 맡기는 인간이 됩니다. 인간이 기계의 주인이어야지, 기계가 주인이고 인간이 종속되는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출발합니다. AI를 제대로 다루려면 무엇보다 질문을 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제는 지식을 많이 외우는 것보다 정확하고 창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교육의 핵심은 바로 그 질문 역량을 키우는 데 있습니다. 잘못 가면 인간이 주체적 사고를 잃고 기계가 시키는 대로만 사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주체성, 근원적인 사고 능력이 기계에 종속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지식 기반 교육에서 역량 기반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합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운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AI 시대의 교육은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일’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배움의 주체는 학생이어야 합니다. 질문하는 힘, 생각하는 힘, 타인과 협력하는 힘, 그리고 책임 있게 선택하는 힘이 교육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움’입니다.
- 이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 있습니까.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움’을 기르기 위해서는 첫째, 가치 지향적인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비판적 사고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독서·토론·인문학 교육 2030 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있습니다. 둘째, 타인과 협력하는 역지사지의 힘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며 공존할 수 있도록 ‘역지사지 토론 모형’을 개발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셋째, 강력한 도구일수록 이를 안전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책임감’이 필수적입니다. 최근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는데, AI를 교육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안전하게 활용하도록 하는 ‘인간 중심의 AI 교육‘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교육은 더 많은 지식을 주입하는 경쟁이 아니라, 아이들 내면에 잠들어 있는 인간다움을 깨워주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 질문 역량을 키우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정책은 무엇인지.
“독서·토론·인문학 교육은 바로 이런 점에서 중요합니다. 작품을 읽고 자기 나름의 문제를 설정하고, 질문을 만들고, 서로 토론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단지 문장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책 속 핵심 개념을 이해하는 교육으로 가야 합니다. 자유·평등 같은 개념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 현재의 대입 현실을 감안하면, 이같은 교육은 한계에 부딪히지 않을까요.
"이런 교육이 고등학생과 입시를 앞둔 학생에게는 느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대학 입시도 바꿔야 합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대학 서열 구조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서울대, 연고대 식의 수직적 대학 구조를 완화해야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 입시 제도 개편은 국가 차원의 일인데, 서울시교육청의 의지만으로는 버거울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이 문제는 서울시교육청만의 일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거점국립대 교수협의회와 함께 대학 입시 제도 개선 논의를 제안해 왔습니다. 2028학년도 대입부터 진로·융합선택과목에 절대평가를 도입하고, 2033학년도 대입에는 수능과 내신의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제안했습니다. 2040학년도에는 학생 수가 크게 줄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수능 제도는 폐지하는 게 좋겠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교육부는 수능 폐지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서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나머지 방향들은 상당 부분 수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근본 방향은 바뀌어야 합니다. 다만 변화 과정에서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단계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 다른 한편에서는 디지털 격차에 대한 우려되고 있습니다.
“AI 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혹시라도 AI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격차가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AI 디지털 리터러시 진단검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2025년에는 초등 5학년과 고등 1학년 1만 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올해는 중학교 2학년까지 포함해서 약 3만 명을 대상으로 검사할 계획입니다. 또 AI 디지털 리터러시 기초소양교육을 전 학교에 실시하고, AI 디지털 자료를 이용해 학생의 자기주도학습과 교사의 수업을 지원하는 체계를 갖출 계획입니다.”
- 다소 결이 다른 질문인데,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학생인권과 교권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인권이 잘 보장될수록 교권 존중도 더 강화됩니다. 인권은 상호 존중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처럼 체벌하고 학생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는 존중이 생기지 않습니다. 학생들을 존중해줄수록 선생님에 대한 존경도 커집니다. 한국 교실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매우 질서 있는 편입니다. 그런 점도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 전국 시·도 교육청과 진행하고 있는 협력 사업이 있습니까.
“대표적으로 전북·전남·강원도·제주도·인천광역시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농촌유학’이 있습니다. 전북은 매우 중요한 협력지입니다. 2022년 시작 이후 누적 589명의 서울 학생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진안·임실·순창 등은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도시 학생에게는 생태 감수성을, 농촌 학교에는 활력을 불어넣는 도농 상생 모델을 계속 확대할 계획입니다. 농촌 학생은 서울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서울 학생은 농촌 지역의 삶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울교육청과 전북교육청과 같은 협력은 단순한 행정 협력이 아니라 미래교육을 위해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교육감협의회뿐 아니라 교육청 실무 차원의 협력도 더 강화돼야 합니다."
- 앞으로 전북교육청과 특별히 협력할 사업이 있으신지.
”지방선거 이후 서울시교육청과 전북교육청이 AI 시대 교육의 기본 방향, 농촌유학, 여러 교육협력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협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해력·수리력 진단검사, 진로·진학 상담 프로그램, 농촌유학 프로그램 같은 다층적 협력을 할 수 있습니다. 협력은 일방향이면 안 됩니다. 전북교육청이 서울 것을 따라오기만 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북교육청이 개발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서울에서도 받아들이고, 서울이 개발한 진단 도구나 교육 프로그램도 전북과 교류해야 합니다."
- 취임 후 일선 교육 현장을 누비고 다니고 있습니다. 교수 출신이라 교육 현장을 잘 모른다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전공은 역사사회학입니다. 교육을 단순히 학교 행정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와 연결해서 봅니다. 오히려 보통 선생님들보다 더 폭넓게 본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년 5개월 동안 200곳이 넘는 현장을 다니며 매번 1~2시간씩 깊게 대화했습니다. ‘미래를 여는 협력교육’의 핵심은 협력입니다. 선생님·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할 때 제대로 된 학교를 만들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 서울 시민들에게 어떤 교육감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미래를 여는 협력교육’ 서울시교육감 정근식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임기가 끝난 뒤 ‘정근식은 우리 아이들에게 경쟁이 아닌 협력을, 갈등이 아닌 공존의 가치를 가르치려 애썼던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서울 교육이 시민의 자부심이 되도록 끝까지 책임 있게 추진하겠습니다.”
*정근식은…‘사회학자’에서 ‘서울 교육 수장’으로
1957년 전북 익산 황등 출생. 남성중-전주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형적인 ‘학자형 리더’이다.
전남대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사회사학회장, 문재인 정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는 등 우리 사회의 아픈 과거사를 치유하고 역사 인식을 바로 세우는 데 평생을 바쳐왔다.
2024년 10월 보궐선거를 통해 제23대 서울특별시교육감으로 취임했다. 정 교육감의 행보 중 가장 파격적인 것은 ‘2040학년도 수능 폐지’를 골자로 한 대입 제도 개편안이다.
이는 AI 시대에 필요한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더불어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기초학력 보장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대학과의 벽을 허무는 ‘통합적 교육 체계’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
또 교권 보호 실시간 모니터링과 신속대응팀 운영은 교사의 긍지를 회복시키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긴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의 재선 도전 여부는 교육계 최대의 화두로, 최근 진보 진영 단일화 기구인 ‘2026 서울 민주진보교육감후보 단일화 추진위에 경선 후보 등록을 하면서 재선 도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리=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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