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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5년 만에 첫 푸른 눈의 춘향 "'춘향다움' 가치 널리 알릴 것"

"한국의 나이팅게일, 잔다르크. 어색하지 않으시죠? 제가 푸른 눈의 춘향, 에스토니아의 춘향이 돼서 미국·아프리카의 춘향이 나올 때까지 '춘향다움'의 가치를 알리고 싶습니다." '춘향의 도시' 남원에 푸른 눈과 금발을 지닌 미스 춘향이 등장하면서 관심이 모였다. 지난 1일 열린 제95회 춘향제 글로벌 춘향선발대회에서 춘향 현에 에스토니아 출신 마이(26) 씨가 선정됐다. 95년 만에 처음 등장한 외국인 미스 춘향이다. 이날 단정히 금빛 머리를 틀고 하얀 저고리와 푸른 치마를 입은 마이 씨는 1분 자기소개에서부터 화제가 됐다. 마이 씨는 "춘향이 보여 주는 순수한 사랑과 가치는 피부색이나 국적과 상관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이다"고 했다. 당시 말이 끝나자마자 무대 아래에서 박수가 터졌다. 본보는 현재 서울대 언어교육원을 다니는 마이 씨를 화상으로 만나봤다. 여전히 아름다운 한복 차림으로 환한 미소를 보여 줬다. 그는 춘향 현에 호명되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마이 씨는 미스 춘향이 되고 싶어 2주 동안 남원에 머무는 강행군을 펼쳤다.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하며 열흘 만에 몸무게가 4kg 감소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외국인이다 보니 걱정이 컸던 것이다. 대회 시작 전부터 미스 춘향을 발표하던 순간까지 마음속으로 "안 돼도 괜찮아"라며 스스로 최면을 걸었지만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미스 춘향 현에 ‘마이’라는 이름이 불리는 순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사회자가 “춘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에스토니아에서 대한민국까지 왔다”며 마이 씨를 소개했다. 올해 새로 도입된 이몽룡이 그의 손을 잡고 무대 중앙으로 이끌었다. 머리 위에는 춘향 현임을 보여 주는 화관이 씌워졌다. 그의 노력이 모두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사실 마이 씨의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외국인도 참가할 수 있도록 대회 규정이 바뀌었을 때도 참가했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나 안 돼서 긴장한 탓에 본선에서 탈락했다는 게 마이 씨의 말이다. 그는 “단순한 미인대회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이 있는 춘향제이기에 정말 잘하고 싶었다”며 “작년엔 본선 2차까지 합격했는데 떨어졌다. 올해는 못 하면 어쩌나 걱정이 컸지만 다행히 잘 돼 영광이다”며 미소를 지었다. 정착 기간은 겨우 1년 반뿐이지만 마이 씨의 한국 사랑은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지난 2016년부터 매년 한국 여행을 온 마이 씨는 한국에서 한복을 입어보고 아름다움을 느낀 나머지 '살아야겠다!'라는 다짐과 함께 한국, 한복을 사랑하게 됐다. "한복을 입으면 마치 공주가 된 기분이 든다. 한복을 입은 순간, 한복이 내 마음에 박혔다"고 말할 정도다. 마이 씨의 한국·한복 사랑은 유튜브까지 퍼졌다. 3년 전부터 한복을 입고 일본·중국·터키·영국 등 해외를 여행하는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23일 기준 채널 구독자는 무려 16만 명에 달한다. 춘향제 사상 최초 외국인 춘향이는 앞으로도 한복을 입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한국 문화를 알릴 계획이다. 그는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춘향이가 낯설 한국 사람들에게 "겉모습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도 마음속에 담긴 진심을 보고 따뜻하게 맞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기획
  • 문채연
  • 2025.05.24 09:05

[나는] 전북현대 입과 귀, 통역사 김민서·표석환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도, 길 다니며 스쳐 지나간 사람도, 모두 저마다의 삶이 있다. 우리가 매일 보는 기사 속 공직자, 정치인의 일상은 다 알면서 정작 이웃의 삶을 본 적은 많지 않다. 그래서 준비했다. 평소 접하는 사람이 아닌 스포트라이트가 닿지 않는, 소중한 우리의 이웃,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오늘 만나볼 이웃은 전북현대모터스FC의 통역사 김민서·표석환이다. 이들은 외국인 감독·선수·스태프의 입과 귀 역할을 해내고 있다. 매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감독·선수에서 한발짝 뒤에 서서 그들의 말부터 감정, 심지어 몸짓까지 통역하는 '숨은 보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매일 출근하는 길이 행복해요." 직업 만족도 상(上), 상 중에서도 최상. 2023년 일자리 만족도는 35.15%뿐이지만 2000년생 전북현대 통역사 김민서(24) 씨의 만족도는 100%다. 보통 출근길은 천근만근이지만 김 씨는 항상 행복하다. 지난 8일 전북현대모터스축구단전용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 씨는 한국 축구계에서 통역을 시작할 때 K리그에 대해서 알아보는 과정에서 전북현대를 보고 '아, 저기다!'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언젠가 전북현대 통역을 해 보고 싶었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꿈을 이룬 셈이다. 전북현대에 따르면 현재 그는 포르투갈어 통역으로 브라질 선수 위주로 전담하고 있다. 영어도 가능하다 보니 코칭 스태프의 내용 전달과 감독의 지시 사항을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특히 경기 때 데칼코마니처럼 거스 포옛 감독의 몸짓까지 완벽하게 재현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김 씨는 "의식한 건 아니다. 자연스럽게 감독님의 목소리 톤이나 제스처를 보면서 나오는 것 같다"면서 "나쁜 이야기를 해도 모두 전달한다. 조절하려고도 해 보지만 그때마다 똑같이 감정이 올라와서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지난해 말 포옛 감독의 취임 기자회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는 긴장을 많이 하면서 중간에 통역이 추가 투입되는 헤프닝을 겪기도 했다. 앞에 많은 사람이 있는 걸 보니 머릿속이 하얘졌던 김 씨다. 그는 통역하면서 크게 어려운 점은 없지만 이날이 어려웠다고 꼽았다. 김 씨는 "전북현대 팬 분들은 경기장 들어갈 때마다 놀라게 만든다. 응원가를 부를 때 제 목소리도 안 들리지만 팬들 목소리가 들리니까 힘이 난다. 선수·감독님 모두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올해 우승하면 제일 좋겠지만 (비록) 우승이 아니더라도 좋은 모습 보여 줄 테니 끝까지 응원해 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매일 인터뷰 도와 주기만 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인터뷰를 결심한 이유다. 뒤에서 감독·선수의 인터뷰 통역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1998년생 전북현대 통역사 표석환(27) 씨는 "인터뷰 도와 주기만 하다가 인터뷰를 하려니 조금 어색하다"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북현대에 따르면 영어 통역을 하는 그는 선수 중 콤파뇨·보아텡, 대외 업무(미디어 대응) 등을 맡고 있다. 감독 인터뷰, 경기 전 미팅, 라커룸 토크 등을 통역하는 역할이다. 김 씨가 감독의 몸짓을 완벽하게 재현한다면 표 씨는 팬들 사이에서 래퍼 아웃사이더처럼 빠른 속도로 통역한다고 알려져 있다.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요. 사실 인터뷰 하면 꼭 수첩과 펜을 들고 다니는데 그날 펜이 안 나오더라고요. 펜 자국이라도 좋으니 빨리 안 쓰고, 통역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았어요. 저도 하면서 빠르다 싶긴 했죠." 놀랍게도 표 씨는 충청도 사람이다. 그는 "팬 분들이 말하는 빠른 인터뷰는 2025 하나은행 코리아컵 3라운드 안산 그리너스전인 듯하다. 원래 말을 천천히 한다. 사실 충청도 사람인데 감독님의 말이 빠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직접 필드에서 뛰는 건 아니지만 표 씨의 마음은 감독·선수와 같다. 팀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안 좋고 지금처럼 성적이 좋으면 보람 차고 기쁘다는 게 표 씨의 말이다. 오직 '우승', 그것 하나 목표로 삼고 마음속으로 함께 뛰고 있다. 이어 "홈이든 원정이든 많은 분이 경기장을 와 주셔서 항상 감사하다. 시즌을 하다 보면 분명히 또 어려운 시기가 있을 테지만 감독님도, 선수들도, 코칭·지원 스태프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믿어 주시고, 열심히 응원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5.05.10 09:20

[나는] 가야금과 사랑에 빠진 푸른 눈 외국인 조세린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도, 길 다니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저마다의 삶이 있다. 우리가 매일 생산되는 주요 기사로 보는 것은 공직자, 정치인의 삶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어떻게 사는지 보지만 정작 이웃의 삶을 들여다본 적은 많지 않다. 평소 기사에 나오는 사람이 아닌 이웃의 이야기를 전하는 새로운 기획을 준비했다. 기획명은 나는이다. 다양한 이웃 인터뷰 기사를 통해 함께 서로의 삶을 나누고자 한다. 이번 주인공은 국내 첫 외국인 무형유산 이수자로 선발된 미국인 조세린 씨다. 한국인도 하기 어려운 가야금을 배워 이수자가 된 조 씨를 만나봤다. 곱게 쪽진 갈색 머리에 푸른 눈, 단아한 한복 자태와 가야금. 미국인 조세린(본명 조슬린 클라크·55) 씨의 첫 인상이다. 여기에 눈 감고 들으면 한국인이라고 착각할 만큼 유창한 한국어 실력까지.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다. 최근 전북 무형유산 제40호 가야금 산조 이수자로 선정된 조세린 씨는 지난달 10일 국내 첫 외국인 무형유산 이수자로 선발됐다. 그동안 해외 거주 한국인이 판소리 분야 이수자로 선정된 사례는 있지만 실제 외국인이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조 씨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알래스카에서 자랐다. 그는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한 취재진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한복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가야금에 손을 올리자마자 환한 미소가 사라졌다. 얼마나 가야금을 진심으로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야금 열두 개 줄을 하나하나 뜯어 소리를 확인했다. 조 씨가 가야금을 배운 지는 30년이 넘었다. 어렸을 때 서양 악기를 하다가 일본 고토, 중국 칠현금·쟁을 배웠다. 한국에도 비슷한 악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야금에 눈을 뜨게 됐다. 지금처럼 외국인이 한국에서 사는 일이 쉽지 않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좋은 기회로 나가게 된 전주 '산조 축제'에서 위로를 받으며 꿈을 키워 나갔다. 조 씨는 "외국인이 가야금과 병창을 공부한다고 하니 전주 산조 축제에 와서 짧은 산조를 하나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내 실력이 좋지 않았는데도 사랑가를 부르니까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만 해도 얼씨구 절씨구부터 얼쑤, 좋다, 그렇지 등 관객들이 호응을 해 주셨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 재미있고 신났다"고 말했다. 꿈을 점점 키워 나가는가 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후 다시 한국으로 와 2008년 배재대에서 동아시아 철학사상과 비교 미학을 강의했다. 대학 강의와 왕성한 연주 활동을 병행하던 중 공연 기회가 생기고 조 씨는 다시 한 번 가야금을 더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성금연가락보존회 지성자 대표(전북 무형문화재 제40호 가야금 산조 보유자)와 인연을 맺게 된 이유다. 조 씨는 "혼자 연주할 기회가 생겼는데 혼자서는 못 하겠다"며 지 명인에게 가야금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지 명인은 "6개월 안에 하기는 너무 짧다. 돌아가라"며 거절했지만 조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 명인은 거절한 이후에도 세 번이나 찾아온 조 씨를 내칠 수 없었다. 그렇게 가야금 공부가 다시 시작됐다. 조 씨는 "너무 부족해서 지성자 선생님이 진짜 많이 화냈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래도 많이 알려 주셨다. 그때 저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다"면서 "지금도 매주 전주에 와서 지성자 선생님께 가야금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조 씨에게 가야금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가끔은 친구 같고, 적 같고, 언니 같고, 동생 같고, 부모님 같다"면서 "가야금은 내가 사랑 주는 만큼 돌아오는 악기다. 신경 안 쓰면 소리도 안 나고, 정도 안 붙는다"고 표현했다. 누군가에게 가야금은 단순히 악기일 뿐이지만 조 씨에게는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것이다. 국내 첫 외국인 가야금 산조 이수자 타이틀까지 얻었지만 조 씨의 학구열은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 조 씨는 "가야금 산조로 이수자가 됐기 때문에 당연히 산조는 계속할 생각이다"면서 "나중에는 병창도 잘하고 싶다. 아직 발음 때문에 잘 못 하는데 지금 바르게 발음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4.26 09:16

[나는] 취향을 찾는 동네서점⋯새싹·베테랑 책방지기의 삶은

가장 가까운 가족도, 길 다니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저마다의 삶이 있다. 우리가 매일 생산되는 주요 기사로 보는 것은 공직자, 정치인의 삶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어떻게 사는지 보지만 정작 이웃의 삶을 들여다본 적은 많지 않다. 평소 기사에 나오는 사람이 아닌 이웃의 이야기를 전하는 새로운 기획을 준비했다. 기획명은 나는이다. 다양한 이웃 인터뷰 기사를 통해 함께 서로의 삶을 나누고자 한다. 이번에는 동네 책방을 지키는 책방지기의 이야기다.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오픈 1개월 차 새싹 책방지기 서지석 대표와 9년차 베테랑 이지선 대표를 만나봤다. △ 독립서점 '일요일의 침대' 서지석 책방지기 “지난달 23일에 시작했으니까 이제 문 연 지 한 달 됐네요.” 전주 남부시장과 웨딩의 거리를 잇는 작은 골목, ‘고물자거리’라고 불리는 골목 안 작은 책방엔 골목을 지키는 책방지기 서지석(31) 씨가 있다. 그의 서점 ‘일요일의 침대’는 지난달 문을 열어 이제 막 한 달을 채웠다. 평범한 직장이었던 서 씨는 번아웃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책방을 차렸다. 서점의 이름을 일요일의 침대라고 지은 이유다. 방문객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쉬어가고 주말 침대 속 여유로움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원래 책방은 회사 은퇴하고 노인이 돼서야 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 진로를 찾다 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서 씨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직장에 다닐 때도 독서 모임을 만들어 주도하곤 했다. 서울에서 독서 모임이 열리기라도 하면 참가하기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 책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꿈에 그리던 책방을 열기로 마음먹은 후 처음 골목에 왔을 땐 주변의 걱정도 컸다. 대로변도 아닌 골목 안 작은 책방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고물자거리의 이웃들도 걱정의 눈빛을 보냈다. 대부분 생계에 대한 걱정이었다. 서 씨도 “책 자체가 돈이 되는 상품은 아니다”라고 했다. 독립 서점은 대형서점처럼 베스트셀러를 대량으로 판매해 수익을 내기 어렵다. 대신 책방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소통 공간이 되는 것이 차별점이다. 서 씨는 이 점을 살려 특정 주제를 정한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북 토크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수익을 낸다. “동네 책방은 단순히 책을 구매한다기보다는 경험을 소비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순 책만 구매하려면 인터넷이 훨씬 편하죠. 그럼에도 동네 책방을 찾는 건 책방지기가 고른 책을 보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그보다 먼저 골목 안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이 새내기 책방지기의 가장 큰 고민이다. △ 독립서점 '잘 익은 언어들' 이지선 책방지기 “2017년도부터 시작했으니까 9년 차, 우리 책방이 벌써 그렇게 됐네요.” 통창으로 환한 햇빛이 쏟아지는 아늑한 공간. 전주시 인후동에 위치한 ‘잘 익은 언어들’의 책방지기 이지선(49) 씨는 책방을 운영한 햇수를 헤아리며 환히 웃었다. 지난 2017년 송천동의 12평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한 책방은 늘어난 단골들과 함께 몸집을 키워 인후동의 2층 건물로 이전했다. 본래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책방을 열기로 했다. 처음엔 책방보다 카피 작업이 중심이었다. “책방은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 책방에 오시는 손님들한테 오히려 많은 위로를 받고 있더라고요. 그 기억이 지금까지 책방을 운영하는 원동력이 된 거죠. 이제는 책방지기가 본업이에요.” 지금은 단골들이 꾸준히 찾아오지만, 한때 침체기를 겪었다. 코로나19로 발길이 뚝 끊긴 시기에 “책방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객의 말 한마디가 그를 5년이나 더 버티게 했다. 그는 책을 집필하며 수익을 확보하고 SNS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역 학교에 찾아가 책 유통 계약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버틴 끝에 잘 익은 언어들은 어느새 전주의 대표 독립 서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어려웠던 시절, 단골들의 말 한마디로 버틸 수 있었던 이 씨는 책방지기에게 고객과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말을 걸라는 뜻은 아니다. 잘 익은 언어들은 활발한 소통이 매력이지만 모두가 그럴 순 없다는 게 이 씨의 생각이다. “모두가 그런 교감을 원하지는 않아요. 어떤 책방은 오히려 책방지기가 고객한테 무관심한 느낌 때문에 부담 없이 갈 수도 있죠.” 그럼에도 이 씨는 소통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용한 책방을 추구하더라도 작은 담소를 통해 고객과 연결고리를 만들면 또 오고 싶은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9년 차에 접어든 그는 새롭게 책방을 시작하는 책방지기들에게 지역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혼자 운영하는 책방이지만 결국 팀플레이”라며 이웃 상점이나 주민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전북이 전국에서 책방이 가장 많은 지역이 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책방지기들이 꾸준히 생기고 그들을 따라 외부인이 찾아온다면 지역과 책방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다고 믿는다. “서점이라는 게 1년만 운영한다고 뭔가 ‘탁’ 이루어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독립 서점들이 천천히 가더라도 그 시간을 묵혀서 각자 매력 있는 책방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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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채연
  • 2025.04.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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