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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春大乞

또 봄, 봄이 왔다.엄동설한이 다 지나가고 또 봄이 왔다. 산골짜기 얼음 녹아내리는 물소리가, 굳은 땅밑에서도 돋아나는 새싹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고, 금방이라도 개구리가 머리를 치켜들고 뛰쳐 나올 것만 같은 새봄이 왔다.잠깐 지난해 봄을 생각해 본다. 지난해, 2017년 봄은 촛불 시위 최대 결전의 계절이었고 결실을 보는 계절이었다. 2016년 늦가을부터 시작했던 촛불시위는 추운 겨울에도 계속되었고 새봄이 언제 오고 가는지도 몰랐다. 온 국민은 분노로, 절망감으로, 배신감으로, 그러나 오직 한 가닥 새 나라의 소망을 담아 촛불에만 정성을 모았었다. 그 결과로 총성은커녕 안전사고 하나 없이 지성이면 감천, 결국 촛불 혁명을 이루어 냈다. 드디어 탄핵은 이루어졌고 박근혜 정권은 무너졌다. 지금 국정의 썩은 치부들이 모두 파 헤쳐지고 목하 관련자들의 엄중한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국정농단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라를 경영해 보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이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었던가 하고 극심한 배신감을 넘어 분노와 비애를 금할 수 없다. 어찌 됐던 우리는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보도를 보니 외국에서도 우리를 프랑스 혁명보다 더 값진 혁명을 이루어 낸 위대한 국민이라 칭찬해 마지않는다 한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통쾌한 일인가. 이러한 일들이 어찌 우리 하나님의 보우하심이 없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우리가 누구이던가. 작은 나라이지만 천여 번에 가까운 외침을 받아오면서도 반만년 역사를 지키고 발전시켜 오늘을 이루어낸 우리가 아니던가. 일제 치하는 접어두자. 독립 후 70여 년, 그 질곡의 세월을 겪어 오면서도 약소국이던 우리가 세계 7위의 수출 대국을 이루어 낸 것은 세계사에 없는 기적이라 하지 않던가.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제 또 4차 산업혁명이다 AI의 시대다 하며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요즘, 우리의 역량을 다시 한번 모아내기만 한다면 또 무엇인가를 이루어 낼 만한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랴. N포 세대라 자포자기하며 울부짖는 젊은 세대들을, 금수저, 기득권, 갑을, 철밥통에 낙담하며, 헬조선은 내일에 희망을 걸 수 없는 세상이라며 절망하며 주저앉아 버린 저들을 어찌할 것인가.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정부가 앞장서 나서야 하는 때인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청년세대의 좌절감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젊은 청년들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들의 넋에 새로운 정기를 불어 넣어 되살아나게 해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일어나 뛰게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 약속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던 대통령의 말이 담보되는 세상을 반드시 이루어 내야만 한다.또 봄, 새봄이 왔다.지금의 우리 젊은 세대들이 “일년지계(一年之計)는 재어춘(在於春)하며 일생지계(一生之計)는 재어청(在於靑) 하느니라” 하신 옛 어르신들의 가르침을 가슴에 되새기며 이 봄, 새로운 포부로, 새로운 패기로 벌떡 일어나 앞을 향하여 돌진해 나아가는 당찬 모습들을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立春大乞” 이렇게 말이다.△주진우씨는 2005년 문학세계 수필 부문으로 등단했고 전북문인협회, 두리문학회 회원으로 있다. 전북대 서기관, 전북대병원 상임감사 등으로 30여 년간 근무했다. 전주금암교회 장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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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09 23:02

가시 뽑기

지난여름은 36도의 불볕더위와 가뭄이 맹위를 떨쳤다. 농민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태웠고 나도 아픔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다가 하필 손톱눈이 아파서 매일 소독하고 약도 먹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를 갔더니 의사가 확대경으로 보더니 3㎜ 정도의 가시를 뽑고 붕대에 반창고까지 붙여 주었다. 그러나 통증은 6일 동안 계속되었고 삼복더위에 샤워도 못 하고 음식도 만들 수 없었다.고문 아닌 고문을 당한 꼴이어서 병원을 옮겨 덜 빠진 가시를 뽑고 또 싸매 놓았다. 확대경으로 보고도 가시를 뽑아내지 못한 의사를 찾아가서 항의하고픈 생각도 있었으나 그만두었다. 잘못 치료한 의사 덕택에 10일간 더위와 씨름하며 인내의 극기 훈련을 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리고 평소에는 별로 쓰지 않던 새끼손가락이 이렇게도 소중함을 깨달았다.지난여름의 아픈 새끼손가락은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이란 순간이며 행복에는 지속성이 없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과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우리에게는 몸을 찌르는 가시뿐만 아니라 마음을 찌르는 가시와 삶의 가시가 있다. 예를 들면 흡연의 가시는 성인뿐만 아니라, 중고생을 유혹한다. 20여 년 전, 필리핀 초등학교에서 ‘금연’을 교훈으로 정한 때가 있었다. 이 망국의 풍조가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도시 초등학교 교장실에서 흡연학생과 필요한 학생들의 대화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이 나비의 날갯짓 같은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하는 나비효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언젠가 P중학교 옆을 지나는데, 학생들이 체육복을 입고 농구, 축구, 배드민턴 등 그룹별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5~6명의 아이들은 나무 그늘 아래서 예사롭게 흡연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충격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 수업 시간에 저럴 수가? 우리나라의 미래와 그들의 부모와 학생들이 염려스러웠다. 학교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싶어 슬펐다.순간 1980년도 초반 중학교 3학년 담임 시절 어느 제자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그 남자아이가 골초라는 소문을 귀띔으로 듣고 수시로 호주머니와 가방을 열어 보았는데 담배가 안 나와서 내심 기뻤다. 그런데 뒤에 알고 보니 뒷동산 소나무 가지에 숨겨 두고 즐기는 것이었다. 지금쯤 50대 중반은 되었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다. 그 아이에게는 담임교사가 눈엣가시였을지도 모른다.나이는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 명이라도 더 상급학교에 합격시키려는 욕심 때문에 밀고 끌기를 하다 보니, 미처 따라오지 못한 학생들은 아픔을 감내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그때 나는 좋은 교사가 아니라 가시 같은 교사가 아니었을까?이제 나는 여생 상처를 싸매주는 붕대가 되고 싶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며 산다. 부부와 부모, 자녀, 형제, 친척, 상사와 동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삶의 수레바퀴가 지구가 궤도를 따라 돌듯이 나도 지구를 감은 둥근 붕대처럼 살면 윤기 나는 삶이 될 것이다.비움의 소통을 연습하련다. 봄에는 회사한 빛깔로 하늘거리던 꽃잎도 여름에는 생명의 창일함이 온 누리를 덮던 초록의 향연도, 꽃보다 더 고운 단풍도,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떠난다. 인생은 용서하며 용서받으며 살아간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휴지통이 하나씩 있다. 이 휴지통에 모든 탐욕을 비우고 베풀며 살고 싶다.△박순희씨는 남원 출생으로 한국방송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문인’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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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02 23:02

푸른 숲의 내 고향 전주 - 김덕남

몇 년 전 여름 전주의 불볕더위가 대구 분지를 앞지르며 연일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도시의 난개발 공사로 숲이 훼손되고 아파트 난립으로 바람길이 막혀서 그렇다며 시민들의 불만이 높았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낙후되다 보니 다른 도시로의 인구 유출도 막아내지 못한 채 재정 자립도가 전국 최하위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도시, 그리고 정겹고 아름다운 내 고향 전주를 사랑한다.태어나서 자라고 배운 내 고향 전주는 멋과 맛으로 이름난 예향의 도시다.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정다감하고 유순하였으며 학자와 양반의 풍모를 지녀 어린 시절만 해도 이름난 교육도시였다. 그리고 그 규모로도 전국 5대 도시에 들었었다.그런데 언제부턴가 산업화 바람으로 도시들은 공장이 들어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빌딩들이 치솟기 시작했으며 몰려드는 인구를 소화하기 위해서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리하다 보니 도시들이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전주의 규모는 후순위로 밀려났지만 나는 별로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발전은 좀 더디지만, 비교적 맑은 공기와 적당한 문화 공간이 있고, 체계적이고 부족함 없는 의료시설과 편리한 교통 등은 내 정신적, 육체적 삶을 전혀 불편 없는 전주가 좋았다. 도시가 아담하여 길거리를 나가면 정겨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도시 풍경도 소박해서 아름다웠다.사변 뒤의 어린 시절은 나무들이 주 연료여서 산의 나무들은 물론 심지어 풀조차 남아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우리나라 민둥산의 사진과 부강한 나라의 울창한 숲을 비교하여 보여주며 우리나라 산에 나무를 심기를 역설하시곤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먼 나라 그림으로만 받아들였다.하기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때도 까맣게 물들인 군복 하나 입고 어깨에 힘주던 시절,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던 청춘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산사태를 연례행사처럼 받아들이기만 했지 잘 먹고 잘사는 일이 무엇이며 ‘참살이’가 무엇인지 알 리가 없었다. 당시는 한 뼘의 빈 땅이라도 있으면 화초보다 채소 한 포기 심는 일을 더 중히 여겼다. 푸른 산이 국력이라며 학창 시절부터 직장인이 되어서까지 꾸준했던 나무 심기는 그나마 애국심으로 뭉쳐진 선각자들의 산림정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식목일 즈음이면 소나무와 잣나무 묘목을 들고 나무 심기 행사에 나섰던 내 등 뒤로 따사롭게 내리던 봄 햇살이 학창시절의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그런데 이제는 어디서고 녹음 짙은 울창한 숲이 나를 반긴다. 푸른 숲에 들어서서 적당한 숨을 몰아쉬면 빈 의자는 넉넉한 마음으로 내게 쉴 자리를 내어준다. 햇살을 품은 초록과 연두 잎은 영롱한 빛으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내게 다가오며 평화를 준다. 내 몸 안의 모든 찌꺼기가 다 빠져나가는 청량감을 준다.요즘 들어서는 삭막했던 길거리에 푸른 숲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구간마다 융단처럼 돋아난 새파란 잔디에 내 눈의 피로를 씻는다. 많은 이들의 노력이 내 고향 전주를 아름답게 바꿔가고 있다. 전주, 바로 이곳이 ‘참살이 생활’을 추구하는 진정한 우리네의 삶터다. 여름 불볕을 사정없이 되쏘는 포장길에서 강렬한 태양으로 헉헉거리며 뜨거운 숨을 잠시 쉬어갈 도심의 가로수 길은 사막의 오아시스요, 생명수다.△김덕남 씨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에세이스트’로 등단했고 아람수필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물사랑 공모전 은상, 글벗문학회 동상을 수상했다. 수필집으로 <아직은 참 좋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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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26 23:02

흐른다. 전주천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물끄러미 듣는다. 쏴- 쏴! 옹알거리는 여울물 소리. 조잘조잘 재잘재잘.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이야기인 듯, 옛날이야기인 듯, 물소리에서 숨은 이야기들이 기어 나온다.오목교라 이름 지은 다리를 처음 걸어본다. 전주한옥마을과 지금의 국립무형유산원 사이를 잇는 새 돌다리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옛날 전주수목원 자리였다. 다리 가운데서 동쪽을 바라보면 승암산의 풍경이, 남쪽으로는 남고산성이, 서쪽으로는 남천교 위, <청연루>의 날렵한 지붕이 완산 아래로, 마치 병풍 그림을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 다리 밑으로 내려와서 예부터 있던 징검돌다리를 건넌다. 너럭바위 같은 징검돌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물오리 몇 마리와 왜가리 한 마리도 산책을 나와 청량한 물 위에서 유유히 놀고 있다. 돌 틈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전주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처럼, 추억이 된 옛이야기를 속삭이는 것 같아서 한 바윗돌에 걸터앉아 새삼 그 이야기 소리를 노래처럼 새겨듣는다.경남 땅이 고향이던 내가 어쩌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전주에서 보낸 인연으로 전주 사람이 되기까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다. 지금은 상관에서 전주천의 발원지인 슬치 고개에서 내려오는 물길인 대흥천을 따라와 한벽교를 거의 매일 지난다, 한벽당 벼랑에서 청연(靑煙)을 이룬 물보라가 서쪽으로 흐르게 되니, 여기서부터 전주천이라 불린다. 아주 먼 옛날에는 대흥천 물길이 오목대를 휘돌아 금암동, 구 전주방송국 앞, 거북바위 앞으로 흘렀다 한다. 오목대와 거북바위에 배를 대었다고 하니, 상전벽해가 거꾸로 몇 번이나 뒤집어졌는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삼각산 얼음물이 녹으면 청계천 굽이진 냇가에는 여기저기 방망이 소리가 요란했다고 했지. 방망이 소리가 잦아들면서 한강의 기적은 지금의 서울을 이룩했다. 전주천 또한 마을을 품어 오늘의 전주 역사를 이루어왔지 싶다.여고 시절 언니 따라 한벽당 아래의 빨래터에 온 적이 있었다. 광목천 홑청 같은 것을 빨면 삶아주는 직업도 있었다. 빨래를 자갈밭에 널어 말리던 풍경도 떠오른다. 그렇듯 전주 사람들도 전주천의 빨래터를 이용했다. 전주 십경의 하나였던 남천표모(南川漂母)는 온데간데없지만, 여전히 전주천은 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전주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을 때, 내 생일 날 그이는 오모가리탕을 사준다고 나를 전주천으로 데리고 왔다. 옛날 빨래터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천변에 천막을 친 평상들이 즐비했다. 나는 그때 오모가리가 물고기 이름이 아닌, 오목한 뚝배기 이름인 것을 알았다. 전주 팔미 중의 하나라는 것도. 여름철에 내 생일이 있기에 시원한 나들이가 되었다. 지금은 오모가리탕 집이 많이 사라지고 한두 집이 명맥만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물고기를 잡을 수도 없다.전주천을 정화한 뒤, 맑은 물에서만 사는 쉬리와 멸종 위기였던 야생동물인 수달까지 사는 깨끗한 하천이 되었다. 천변을 공원화하여 철마다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니 시민들의 운동 장소와 산책로가 되었다. 천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전주의 역사성을 지닌 남부시장과 장군봉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지고, 삼천까지 올라가는 둘레길의 길목마다 전주 사람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전주 고도에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주천의 물길 따라 흘러서 삼천을 만나고, 다시 고산천과 합류하고 흘러서 만경강을 이루어 새로운 역사의 바다로 흘러가리라.△조윤수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해 목포문학상과 행촌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북문인협회 이사, 수필과비평작가회 부회장으로 있으며 <나의 차마고도> 등 3권의 수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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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19 23:02

노을 - 김연주

산책은 몸과 마음을 한결 가뿐하고 개운케 한다. 나는 가끔 황방산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산책을 한다. 그런데 매일 같이 다니면서 가끔 산의 모습이 다른 걸 느끼게도 한다. 여느 날과 달리 발걸음을 재촉하며 하산하는 산모롱이에서 서녘 하늘의 노을 지는 풍경을 만났다. 우연히 마주친 일몰의 풍광. 발걸음이 멎었고 내 가슴은 벅차올랐다.서해의 낙조도, 망해사의 일몰도 아니지만 참으로 아름답다. 오늘 하루의 시름을 안고 산 너머로 떨어지는 또렷한 윤곽의 붉은 해, 화려하면서도 엄숙한 모습이 아닌가. 지는 해가 가슴에 불을 놓는 듯하여 오늘 하루도 무사함을 감사하며 완전히 기울 때까지 바라보았다. 화가라면 한 폭의 그림으로, 시인이라면 한 편의 시를 남길 수 있을 텐데…. 노을에 사로잡힌 마음을 추스르며 내려오니 대지의 미물들은 귀가를 서두르라고 덩그런 조명들을 켜 준다.일몰에 취한 나는 마음까지 노을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일몰인가, 일출인가 분간할 수가 없다. 절정에 달한 붉은 일몰을 보노라니 일출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우연히 볼 수 있는 일몰에 비해 일출은 기다림이 따른다는 것 외에 거의 같았다.너무도 아름답게 내리는 낙조의 찬란함은 밝음의 끝이고, 어둠의 시작이다. 내일을 열기 위해 고요를 꿈꾸며 사라지려는 찰나다. 한 폭의 거대한 그림이 덮인다. 장편의 시를 읽은 것 같다. 이 순간을 홀로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구름밭 같기도 하고 해면 같기도 한 산 능선 너머로, 주황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노을 속으로 태양이 미끄러지듯 잠겨 버린다. 순간 서서히 어두운 빛이 내리기 시작하고 허정 무심한 마음이 된다. 산의 정적을 뒤로하고 차들이 숨 가쁘게 달리는 신작로로 내려왔다. 차들의 소음과 전조등이 얽히고설키는 대로를 향해 나왔다. 귀가를 서두르는 차들의 불빛 행렬과 아파트 빌딩 사이로 스러져 가는 노을빛이 번득인다.인생의 황혼도 저처럼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풍경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새삼스레 내 인생의 황혼빛은 어떤 색깔일까. 생각해 보며 그저 꿈에 그리던 고고 지순한 삶이 어른거린다. 삶은 연습이 아니다. 정말 내 인생의 황혼에 서서 당당하게, 후회 없이, 아름답게 살았노라 말할 수 있을까.어느 여름날, 후배의 시집 출간 기념 모임이 있었다. 뒤풀이로, 청운사 하소백련지에 다녀오는 길에 선생님의 노모를 뵈러 갔다. 가지고 간 시집을 드렸더니 책표지의 소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이건 그냥 노송이 아니다.”고 말문을 여셨다. 노송의 등걸과 가지마다 한 여자의 일생이 살아 숨 쉬는 게 보이시는 듯 “자식은 여자가 가르치는 거지. 노송 한 그루에 길이 있고, 자식이 있지. 어머니의 마음 씀씀이를 보면 자식들의 사람 됨됨을 알 수 있는 거야.” 소곤소곤 속삭이듯, 소나무 등걸을 마디마디 짚으신다. 그 모습이 꼭 친정어머니 같았다. 그림은 글을 쓰듯 그리고, 글을 그림 그리듯 쓰라는 말같이 책 표지만 보시고도 한 편의 수필을 줄줄 읊으신다.요즘 노인들을 볼 때마다 ‘저게 바로 내 자화상이지’하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느끼는 그 많은 자화상을 보며 스스로를 반추해 본다. 향기롭게 늙어 가는 선생님의 노모. 그 모습이 먼 훗날 내 모습이라면 좋겠다. 그러면 열심히, 멋지게 살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노을에 묻혀 집을 향해 걷는 동안 노을 덕분에 노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김연주 씨는 교직에서 퇴직한 수필가·아동문학가다. 소년문학 신인상과 작촌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전북문인협회, 색동어머니 동화구연가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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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12 23:02

첫 눈 - 한일신

와- 첫눈이다! 잿빛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더니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진다. 첫눈이 이렇게 소담스럽게 내리니 나도 모르게 왠지 가슴이 설렌다. 날씨가 영상이라 눈은 바닥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물방울을 남긴 채 금세 사라진다. 하지만 머리와 어깨 위에 내린 눈은 수북이 쌓였다. 잠시 쌓인 눈을 털고 사무실을 들어서니 먼저 온 동료가 아직도 눈이 오냐고 물어보는데 뒤를 이어 들어온 문우들이 대답 대신 눈을 털어 보인다.오늘은 편집위원들이 모여 원고를 검토하고 교정하여 다시 편집장에게 주는 날이다. 한두 사람이 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여럿이 하니까 재미도 있고 한결 수월했다. 내가 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어느덧 10년째가 되는데 지금까지는 쓰는 데만 급급했었다.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다른 사람 원고를 검토할 기회를 주어 참 고맙다. 그동안 내 글도 이렇게 누군가가 검토하고 수정하거나 교정하여 주었으리라 생각하니, 그분들의 수고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어제가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는 소설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눈이 오다니, 옛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24절기가 있다. 이 절기 중에는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라고 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작을 알려준다. 각 절기는 한 달에 두 번쯤 들어 있는데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이 절기를 따라 농사를 지어왔다.그렇다고 절기는 농경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어업과 관혼상제를 치르는 데도 필요했다. 이렇듯 절기는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농사의 때를 가늠하여 할 일을 제때에 하며 가끔 절기 음식으로 정을 나누며 자연과 더불어 오순도순 살아가는 풍습을 낳았다.몇 개 남지 않은 나뭇잎들이 하나둘 힘없이 떨어졌다. 떠난다는 것은 항상 슬프고 아픈 일이다. 하지만 가을 나무는 이제 모든 걸 훌훌 털고 갈색 그리움만 남긴 채 눈꽃으로 채웠다.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봄과 가을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고, 여름과 겨울만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러다가 봄과 가을이 아주 없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봄옷이나 가을옷은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계절이 바뀌니 말이다.우리의 삶도 어찌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때론 야속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는 시간 잡을 수 없고, 오는 시간 막을 수 없다면, 우리도 떠나는 그들과 더불어 한 몸이 될 수밖에.눈이 그쳤다가 또 내린다. 살면서 가슴 설레는 일이 어찌 오늘뿐이겠는가? 중학교 입학하던 날도 있고, 늦깎이로 취직하여 첫 발령을 받았을 때도 얼마나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같이 첫눈 오는 날이면 특별히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언제였던가, 첫눈 오는 날 만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서울사람이어서 얼마간 편지로 교제하다가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날을 기다리는 순간부터 그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밤잠을 설쳤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두 손을 모아 기도까지 했었다.하지만 막상 만나고 나서 그 사람과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늘 내린 첫눈이 땅에 닿자마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 뒤에 다 지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첫눈이 오는 날이면 어디서 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날 것 같아 두리번거린다.어찌 보면 사람이 살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누구나 다반사인데, 아직도 아련한 추억이 남아 있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한일신 수필가는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한 후 수필에 입문해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내 삶의 여정에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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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5 23:02

덤 - 문경근

덤의 사전적 의미는 제값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본디의 물건이나 일에 딸린 것으로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덤이 사람 사이에도 존재하여 때로는 각박한 삶에 온기를 감돌게 한다.나는 덤을 좋아한다. 우선 공짜라는 게 마음에 든다.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내가 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정 때문이다. 그런데 주는 이가 알아서 얹어주는 덤은 마음에 정이 얹혀 그 의미를 배가시키지만, 받는 이가 빼앗듯이 받은 덤이나 상술에 의한 덤은 변질된 덤이라 받고도 불쾌한 경우가 있다.가을이면 들녘에서는 여문 곡식들을 거두어들이느라 바쁘다. 풍성한 수확 뿐만 아니라 기쁨도 따라 들어온다. 요즘에는 농기계가 척척 알아서 거두어주는데 예전에는 농부들의 발걸음은 멈칫거릴 새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가을 들녘이 떠오른다. 오직 손과 땀만으로 거두어야 했던 그 시절 어른들은 허리춤 한 번 추켜올릴 겨를이 없었다. 오죽하면 부엌에 있던 부지깽이도 뛰어나오는 때라고 했을까. 아직도 그 시절 농부들의 등짐 행렬이 눈에 선하다.마지막 볏단이 마당에 들어올 무렵이면 저녁상을 챙기는 어머니의 손길도 빨라졌다. 하루 일을 마친 농부의 밥상에 놓일 밥그릇을 채우는 과정은 작은 의식처럼 보였다. 밥을 꽉꽉 눌러 담는 것도 모자라 덤을 얹고 또 얹었다. 그 위에 정성이라는 덤까지 한 겹 더 얹음으로써 완성된 것이 고봉밥이었다. 정량보다 넘치게 담아 올린 덤은 마음의 증표였다. 덤 위에 주는 사람의 마음이 실리는데 크기나 양의 많고 적음이 무슨 상관이랴.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고봉밥의 덤은 내가 겪어온 덤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덤을 만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냥 얻어걸린 작은 부산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덤이 내 마음속까지 이르러 따뜻한 여운으로 남는다면 그것은 영양 만점의 덤일 될 것이다.내가 수필을 쓰기 시작하였던 과정도 그렇다. 나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수필 쓰기를 제대로 배워보려는 목표로 평생교원원에서 수필 쓰기 과정을 차근차근 밟으면서 늦었지만, 반드시 해내리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다녔다. 그런데 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슬슬 덤이 붙기 시작했다. 강의 시작 전에 차를 마시며 나누는 일상 이야기들은 그날 수업의 워밍업 역할을 해 주어 교수님의 맛깔 나는 강의에 절로 빠져들게 된다. 작지만 소중한 칭찬 거리를 주고받다 보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것을 실감한다.한 수강생이 나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50여 년 전의 학창시절을 반추해보기도 한다. 등단 축하 케이크를 한 입 먹으며 나도 언젠가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다짐도 해본다. 이것이 내가 얻은 소중한 덤들이었다. 애당초 덤까지 생각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덤은 점점 쌓여갔다. 때로는 이러다간 덤이 본체보다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유쾌한 걱정도 했다.요즘도 인정 많은 사람들 사이에는 덤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나에겐 좀 더딘 걸음으로 왔으면 하는 덤이 하나 있다. 김광림 시인은 ‘덤’이라는 시에서 나이 예순이면 살 만큼 살았다고 썼다. 나머지 인생은 덤이라는 것이다. 지금 덤으로 살고 있는 나는 그 덤이 얼마나 될까?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덤이 좀 더디게 오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문경근 수필가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해 전북문인협회와 정읍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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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29 23:02

여성 초보 운전자의 설움 - 양영아

TV를 보는데 골목에 들어서는 여자 운전자의 백미러에 고의로 팔을 부딪치며 교통사고라고 떼를 쓰는 사기꾼의 모습이 꼭 초보 운전 시절 내 모습 같았다. 여자가 운전을 하면 곧 사고로 이어진다는 남편의 편견 때문에 한참 후에야 장롱면허증을 꺼내 운전을 시작했다. 차 뒤 유리창에 ‘초보운전’이라는 딱지를 훈장처럼 붙이고 다니면서 모든 사람이 나를 배려해주리라 믿었다.도심을 빠져나와 시골길을 지나 약 1시간 이상을 달려야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나왔다. 아직 미숙해서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길은 기쁨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났을 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그 사고가 났다. 동생을 태우고 관통로를 지나 명동사우나를 향해 서서히 우회전했다. 시속 5㎞도 안 되게 서행을 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동생이 갑자기 사고가 났다며 소리를 쳤다. 내 눈에는 사고 차량이 보이지도 않아 무슨 차가 사고 났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고를 낸 차는 바로 우리고 했다. 그러고 보니 덜커덕 소리가 났던 것도 같았다. 그래서 차 밖으로 나가보니 어떤 남자가 발을 절룩이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아이고, 사람을 쳤네! 사람을 쳤어!”죽는소리를 하기에 놀라서 병원으로 가자고 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6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떼거리로 나를 둘러싸고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해댔다. 그 사이에서 갑자기 뚱뚱한 여자가 나타나서 “무슨 운전을 그따위로 하느냐?”고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밀쳐댔다.그런데 차에 치였다는 그 남자는 까만 봉지에 막걸리병까지 들고 비틀거리면서 발등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렸다. 세상에, 자기가 부딪쳐 놓고 발등이 아프다니 이게 무슨 억지인가? 그래도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저희끼리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가버렸다.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한참 뒤에 나타나더니 마치 나를 범죄자처럼 을러대며 사고 조사를 했다. 그래서 자초지종 사고 경위를 말하자 그 사람들이 서신병원에 가서 교통사고환자 처리가 안 되자 효자동 병원으로 갔단다. 자기들에게 8시까지 병원으로 오라고 했으니 나도 가보라고 했다. 접수하러 온 경찰이 어떻게 그런 사정을 미리 다 알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병원으로 가보니 낮에 으르렁대던 그 치기배들이 모여 술에 취해서 떠드는 게 영락없는 깡패들이었다. 그리고 의사도 경찰도 모두 한통속처럼 보였다.나는 치기배고 사기꾼이 분명하니 고발을 하자고 했으나 남편과 보험회사 직원은 그냥 조용히 사고처리를 하자고 했다. 이유는 내 차 번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디서 다시 행패를 부릴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분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순응했다. 그들은 서울로 정밀검사 하러 간다며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지만 더는 상대할 수 없어서 보험회사에 맡겼다. 지금도 TV 뉴스에서 아직도 여자 초보 운전자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을 보면서 여인들이여, ‘초보운전’은 위험천만한 표시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다.그래도 요즈음은 옛날과 달리 마음대로 사기를 칠 순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설령 사기행각을 벌였다 해도 CCTV와 블랙박스로 대부분 들통이 나니 불행 중 다행이다. 모두 열심히 노력해서 바르게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올까? 하루빨리 정직한 사회가 되어 걱정 없이 살아가려는 날을 기다려 본다.△양영아 수필가는 초등교사로 정년퇴직 했으며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수필문학회, 영호남수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슴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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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22 23:02

보기에 참 좋다

열심히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데 안방에서 다급히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급히 갔더니, 아내는 TV 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중 한 제자의 얼굴을 보고 나를 불렀다. 고등학교 3년 동안에 두 번이나 담임을 했던 제자였다. 성적이 우수하고 다방면에 다재다능하였는데 졸업 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고, 지금은 모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아내는 그 제자가 TV에 출연할 때마다 나를 부르며 ‘훌륭한 제자를 두어서 좋겠다’는 말을 한다. 나도 그 말을 들으면 흐뭇해서 그냥 웃기만 한다.교육이란 미숙한 사람들에게 인간답게 살며 사회와 국가에 필요한 지·덕·체를 갖추도록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바람직한 인간이란 어떤 사람을 이르는 말인가를 생각해본다. 인생은 유수와 같다는 속담이 있다. 흐르는 물은 장애물을 만나면 흐름을 멈춘다. 그러다가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오염되고 부패한다. 그래서 부패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새로운 물과 동화하여 변화를 꾀한다. 이것이 물의 자정작용이다. 물은 계속 흘러야 오염되지 않고 많은 생명체를 살리는 생명수가 된다. 인생은 오염과 정화를 반복하며 흐르는 물처럼 파란만장한 유수와 같다고 표현한다. 이런 생명수 같은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자들의 사명이다.필자도 깜냥에는 생명수와 같은 인간을 기르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교단에서 35년 동안 열심히 교육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올빼미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근무해도 지칠 줄을 몰랐다. 그만큼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주로 인문계고등학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 목표였지만, 노력의 결과는 학년 말에 나타났다.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일류 대학에 합격시킨 숫자로 교사의 능력과 학교의 등급이 평가되기 때문이다.한때는 교육자가 된 것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80년대 초까지는 즐겨 마시는 술의 종류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구분되었다. 회사원이나 타 직 공무원으로 있던 친구들은 값비싼 맥주를 마셨는데 교사인 나는 주로 값싼 막걸리를 마시며 호주머니를 헤아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이 어느새 정년퇴직을 하고 동창회 사무실에서 빈둥거리면서 옛날 맥주만 마시던 친구들은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다가 맥주가 아니라 막걸리만 사줘도 감지덕지하며 내가 자주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인생 역전을 느낄 때도 있다. 어떤 때는 함께 술집에 가면 제자들이 나를 보고 쫓아와 ‘선생님’이라고 반가워하며 계산까지 해주는 모습을 보며 나를 우러러보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제는 교사가 된 것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년퇴임하고 막상 학교를 뒤돌아보았을 때는 허전하고 빈손 뿐이었다. 전인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자극과 반응과의 관계로 정의되는 행동주의심리학의 학습이론을 맹종하며 행동의 변화를 강조하는 데에는 소홀했고 많은 양의 정보를 투여하는 데에만 급급 주입식 입시교육에만 열중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방송이나 신문지상에 나오는 제자들의 면면을 볼 때마다 일생을 교육에 몸담았던 교육자로서의 내 삶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고 자위할 때도 있다.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청출어람처럼 제자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보기에 참 좋다’를 연발하면서 흡족하게 미소를 지어 본다.△이희근 수필가는 ‘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중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으며 수필집 <산에 올라가 봐야>, <사랑의 유통기한>, <아름다운 만남> 등을 출간했다. 전주문학상 문맥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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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15 23:02

다시 효를 생각할 때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하늘 같은 가없는 은덕을 어디 대여 갚사오리. 정철의 시조다. ‘부모에게 순종하라. 그러면 복을 받을 것이다.’ 성경 말씀이다. ‘지극한 도는 효순심(孝順心 :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는 마음)이다.’ 불경 말씀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려서부터 효도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며 살아왔다.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한국이 인류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효(孝)사상이다”라고 했다. 유교에서는 효를 모든 행실의 근원으로 삼고 있다. 왜냐하면 효가 인(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도덕 기준인 삼강오륜에도 ‘부자유친’이 첫 번째에 있다. 서양인들은 한국인의 이러한 ‘효’사상을 부러워하고 높이 평가한다.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났다. 은퇴한 부모들이 30여 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적응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가정의 관심사였지만 앞으로는 여기에 하다 더 “고령의 부모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가 집마다 큰 숙제로 다가왔다. 장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요즈음 핵가족 개념이 시험대에 올라있다. 베이비부머(Baby Boomer-가족계획 시대 태어난 세대)들이 고령화에 접어들었지만, 핵가족 개념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 부모를 섬기겠다는 젊은이들이 30%에 불과하다. 부모들이 큰돈을 벌어 놨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소셜시큐리티(Social Security-은퇴연금) 만으로 먹고살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정부연금만으로 생활하면 여생을 빈민층 수준에서 머물게 된다. 따라서 아버지들이 체면을 구기며 여생을 마쳐야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자식들은 효도를 개인적인 의무에서 국가적인 의무로 넘기려 한다. 그러나 고령화로 인해서 세계 각국의 사회보장제도가 지금 진통을 앓고 있다. 2030년대부터는 연금이 바닥난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결론적으로 장수 시대의 이 난제를 타결하려면 자녀들이 어느 정도 부모를 돌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효(孝)사상이 다시 21세기의 연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효도 민족인 한국의 젊은이들은 요즈음 현대화의 물결에 너무 휘말려 예전의 효사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현대화가 우리의 문화를 해체하여 서양문화에 동화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전통문화를 잃어버린 현대화는 현대화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심각한 문화적 위기다. 사실 효도란 자식들이 강조해야 할 덕이지 우리 부모들이 들고나오기에는 좀 어색한 과제다. 군신유의를 임금이 강조하는 뻔뻔함을 연상케 한다.필자도 돌아가신 부모님께 변변한 효도를 하지 못해서 ‘효(孝)’ 운운하려니 좀 쑥스럽다. 그러나 개인적인 효도와 민족문화로서의 효사상은 성격이 다르다. 한국인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정신적인 재산을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일까. 역시 효사상이다.장자는 ‘공경하는 마음으로써 효도하기는 쉬워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효도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참된 효는 좋은 잠자리와 음식, 용돈에 있지 않다. 그보다 부모님의 뜻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해드리는 것,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에서 참된 효가 시작된다.△안도씨는 1984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여 현재 전라북도 국어진흥회, 전북예총 부회장과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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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08 23:02

숲에 물들다

시월의 끝자락에 운장산을 찾았다. 길섶 억새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잠자리 날개에 고요가 묻어난다. 능선과 능선 사이로 하늘이 청자색으로 말끔하다. 나는 느릿하게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산비탈로 단풍나무 붉게 물드는 데 길가 생강나무 한 그루 저 홀로 말간 치자색이다. 햇살 오라기들은 나뭇잎을 한잎 두잎 색칠하여 골짜기를 가지각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하루 이틀에 이토록 화사한 단풍으로 단장하였을까. 고운 빛을 내려고 봄여름 내내 색깔을 입히고 또 덧칠하였으리라.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연두의 고통과 따가운 햇볕을 지나온 초록의 땀방울로, 단풍은 온몸을 오색으로 물들여 농익은 가을 빛깔을 천지 사방에 흩뿌리고 있다.오솔길을 따라 드문드문 쑥부쟁이 꽃이 연보랏빛으로 하늘거린다. 나무와 칡넝쿨이 엉클어진 모습은 사람이 머물지 않은 원시림 같았다. 나도 숲에 물들어 자연 속으로 스며들었다.폭포 소리가 쏴르르 귓가에 파고든다. 계곡으로 내려가 너럭바위에 앉았다. 높은 나무 위 박새 소리와 물소리에 젖어 단풍잎을 하릴없이 바라본다. 햇살에 투영된 나뭇잎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아리땁기만 한 단풍잎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픔이 많다. 산속의 수많은 풀벌레에게 받은 상처로 난 구멍일 것이다. 또 다른 목숨에 기운을 불어넣어 주느라 자신은 상처 입고 야위어 간다.몸집이 자그마한 우리 시어머니도 자식들 거두느라 온몸에 구멍이 생겼다. 자신은 돌보지 못하고 오롯이 자식과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어머니의 굽은 등. 긴 세월 삶에 절여져 몸속에 구멍 나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구멍 뚫린 당신의 육신을 디딤돌로 자손들은 나날이 푸르러가건만.나뭇잎에 뚫린 구멍도 저 홀로 살지 아니하고 서로 껴안고 견뎌낸 흔적이리라. 숲은 이렇게 동식물이 어우러져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단풍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내려오는 길에 숲에 묻혀 사람의 발길이 뜸한 소沼에 들렀다. 숲속의 연못은 불쑥 찾아와 흙 묻은 발로 짓밟아도 말없이 나를 품어준다. 먼지에 찌들고 땀방울로 얼룩진 손을 씻어도 계곡물은 해맑게 나를 비춘다. 세사에 긁혀 움푹 파인 가슴에 푸릇한 물기가 차올라 마음이 청량해진다. 산속에 들면 계곡 물소리는 귀를 맑게 씻어 주고, 나무를 담은 내 눈은 초록 바다가 된다. 세상의 소리 아득히 멀어지고 숲에 물들어 내 영혼마저 순연해진다. 새 한 마리 산등성이 노을빛을 물고 날아간다.계곡의 청아한 물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도 다시 숲속으로 돌아가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정상에 오른 쾌감보다 내 몸에 스며든 숲속의 향기가 더 좋다. 따라다니던 근육통도 땀에 절은 끈적거림도 없어져 담담하고 여유롭다. 그래서 선인들도 세속이 시끄러울 땐 숲을 찾아 무의구속에서 벗어나 심성을 함양하고 도를 실천하는 참된 삶의 바탕으로 자연과 일체를 추구하였구나 생각했다. 나는 어느새 나무가 되고 나무는 다시 내가 되며 숲은 한줄기 바람으로 넉넉한 새 울타리가 된다.△박일천 씨는 수필 전문지 ‘에세이스트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토지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을 받았다. 현재 샘문학회 회장으로 있으며, 수필집 <바다에 물든 태양>, <달궁에 빠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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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01 23:02

고슴도치 전략

이사야 벌린이라는 영국의 사상가는 옥스퍼드를 나와 올 소올즈 칼리지, 하버드와 프리스턴대학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강의했다. 그의 명작 중에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고슴도치와 여우의 생태적 습성을 비교하여 우화화한 글인데 매우 재미있다.여우는 꾀가 많아 교활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수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반면 고슴도치는 오로지 막강한 가시방패 갑옷 하나로 무장하고 과묵하게 삶을 영위한다. 그렇다면 지략이 뛰어난 여우와 우직하게 살아가는 고슴도치의 대결에서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여우는 고슴도치가 방심한 틈을 타서 단번에 치명상을 입힐 지략을 세워 공략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빗나간다. 위험을 느낀 고슴도치가 여우의 기습을 감지하고 순간적으로 몸을 말아 방어망을 치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우는 고슴도치에 코가 찔려 혼비백산 물러나고 만다. 결국, 여우는 계획을 내일로 미룰 수밖에 없고 고슴도치는 눈을 반짝이며 으스댄다. 일상적 상식으로는 항상 지혜와 전략이 무쌍한 여우의 승리를 예상하지만, 승리는 언제나 고슴도치다.이사야 벌린의 이 우화를 통해서 역사적인 인물들을 분류해 봤는데 프로이드, 다윈, 마르크스 등은 고슴도치에 비유되고 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셰익스피어 등을 여우에 비유했다. 등식을 성립하는 논거의 핵심은 여간한 통독으로는 난해하여 해독하기 어려우나 읽는 중의 짐작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늘날의 국제적 인사들이 첨예하게 다투는 모습들을 비교하면 재미난 이야기가 될 법하다.촛불 혁명으로 새롭게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과 예상을 깨고 당선된 미국의 트럼프는 어떤 부류에 해당할까. 아마도 졸렬한 나의 소견으로는 우직하게 오직 나라의 안위와 적폐청산을 안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고슴도치에 비유해 본다. 반면 온갖 변화무쌍하고 현란한 난어로 세계의 언론에 가십거리를 양산하고 있는 트럼프는 여우과에 속하지 않나 짐작해 본다.트럼프가 한국과 더불어 일본 중국도 방문했다. 트럼프의 이번 동북아 순방은 여러 가지 목적을 추구하며 에어포스원에 올랐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체류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연설을 마치 대단한 선심성처럼 포장한 것은 교활한 여우의 지혜가 숨어 있었다.한미동맹, 대북정책 공조, 국방 방위산업, 경제 통상 투자 등을 망라한 7개 항의 공동언론발표문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올해부터 2021년까지 748억 달러에 이르는 대미 투자와 구매를 할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한 톤을 낮추고, 한, 미 FTA에 대한 민감한 표현을 피하면서 무기판매와 대미 투자 등 실속을 챙겼다는 분석도 나왔다.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한 가지만 알고 있다. 여우는 언제나 공격적이지만 고슴도치는 방어적이다. 여우는 지략을 정비하고 전략을 자주 바꾸어 줄기차게 공격을 하지만 고슴도치는 오직 한 가지 방어 전략만을 구상한다.우리도 이럴 즈음 아주 단순하게 고슴도치의 전략으로 막아내는 것은 어떨까.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복잡한 일에 가장 현명한 판단과 대처는 많은 꾀보다는 정당하고 정직하며 우직한 대응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불리하면 몸을 말아 버리는 고슴도치 전략이 결국 승리할 수도 있다. 동북아의 안보는 단순한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트럼프와 비슷한 여우 같은 아베도 있지만, 우리와 비슷한 고슴도치 같은 시진핑도 있기 때문이다.△양용모 씨는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사랑을 훔쳐간 아몬나신> 외 수필집 5권을 냈다. 현재 전라북도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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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24 23:02

가을이 나를 부른다

가을이다. 황홀한 가을이다. 백두산, 설악산에서 불꽃놀이를 시작한 단풍은 남으로 남으로, 지리산과 내장산으로 내려왔다. 그 짙푸른 녹음은 어이 가고 붉고 노랗고 각양각색으로 물들인 단풍은 많은 관광객을 초빙하여 아름다운 자태로 향연을 펼치고 있다.들녘의 논과 밭에서는 황금빛 곡식과 과실들을 수확하여 저장하는 절기라, 우리 인간들의 가슴에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정감을 한 아름 안겨주는 절기이기도 하다.농촌에서는 농부들이 알알이 영근 곡식을 수확하는 기쁨으로 지칠 줄도 모르고, 농부 본연의 바쁘게 활동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옛날에는 순 수작업이었지만 지금은 기계화 영농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때쯤이면 농심을 지닌 농민들의 일손은 더욱 바쁘고 분주하다. 농촌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항상 농촌의 환경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격려심을 지니고 있다. 요즘 가을 하면 생각나는 것이 단풍이요, 단풍 하면 내장산 단풍을 떠올린다. 어제는 문우 5명이 내장한 단풍을 찾아 나섰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길섶에 핀 가냘픈 코스모스가 목을 길게 빼고 손짓하며 우리 일행을 제일 먼저 반긴다.단풍 길에 들어서니 그야말로 황홀 지경이다. 각양각색의 단풍들이 나름대로 자태를 자랑하고 관광객을 맞는다. 내장산 온 전체의 산이 붉게 타며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 광경을 보려는 관광객이 어찌나 많이 모였던지 가만히 서 있어도 떠밀려 걷게 되는 이색적 현장이다.주말이라 그런지 단풍도 절정이요, 인파도 절정이다. 날씨도 아주 쾌청하여 단풍 관광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날씨다. 우리 일행 문우들은 단풍에 도취되어 각각 감탄사를 연발하며, 내장산에 얽힌 이야기, 단풍에 얽힌 이야기로 즐거운 표정들이었다.내 어린 시절 보아온 가을의 정취는 또한 어떠했던가. 먼 시야에 펼쳐진 초가지붕, 그 위에 덩그렇게 매달린 하얀 박이며 누렇게 익은 호박들이 뒹굴 때면 이제 본격적으로 결실의 계절이구나 실감을 느끼게 했고, 앞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집마다 붉은 고추를 햇볕에 널어놓을 때면 마치 푸른 하늘을 동경이나 하듯, 정렬을 토해낸 것을 볼 때마다 곧 글줄이라도 쓸 것만 같은 센티한 감정에 푹 파묻힐 때도 있었다.그뿐인가. 고요한 밤이면 풀벌레 소리, 귀뚜라미 소리가 밤새껏 울어댈 때면 까마득하게 잊었던 추억들이 되살아나 한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눈물 어린 밤도 있었지만, 요즘에 와선 왠지 가을 하면 단풍이 마음 전폭을 메우니 나 또한 세월의 무게가 가을에 실린 것 같다.그 뜨겁고 화려한 불꽃처럼 타오르는 단풍도 자연이 엮어내 놓은 꿈의 세계가 아닌가. 그러한 자연의 꿈 정열에 불타는 단풍을 바라볼 때면 나 혼자만의 세계에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위해 명상에 잠기고 싶은 그러한 욕망을 느끼게 한다.가을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가을을 사랑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공허까지도 소유할 줄 아는 가을의 인간이기 때문이다.자연의 섭리대로 이루어진 꿈, 단풍이 엮어낸 꿈을 나는 실현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본향의 꿈을 불태우고 싶다. 이번 문우들과 함께한 가을 여행은 자연자원을 탐사하며, 문학성을 고취하고, 가을 정취를 만끽한 즐거운 하루였다.△부안 출생인 고재흠 수필가는 2000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한 뒤 행촌수필문학회장과 한국신문학인협회 전북지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전북문협, 전북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신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과 한국예총 부안 예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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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17 23:02

가을이 가기 전에 편지를

까악! 까악! 집 앞, 전봇대 꼭대기에 까치가 앉아 목청을 높여 울어댄다. 반가운 손님이 올 거라는 기별을 내게 하는 것일까? 예로부터 어른들은 까치가 집 앞에서 울면 손님이 온다는 말을 했었다. 사춘기를 넘어선 소녀 시절, 매일 집배원 아저씨가 올 시간이면 편지를 기다리는 낙으로 지냈던 그때가 어렴풋이 스쳐간다. 그때도 뒤란의 높은 오동나무 위에 까치가 앉아 울면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의 편지가 왔었다.나는 편지 쓰기를 좋아했었다. 그때 라디오는 유일한 내 친구였다. 내가 가는 곳에는 항상 라디오가 따라 다녔다. 그 시절 내가 즐겨듣고 좋아했던 프로는 “여성 시대와 밤을 잊은 그대에게” 이었다. 애청자들이 보내준 편지로 엮어가는 프로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사이사이에 들려주는 애청자들의 편지 사연을 들으며 감동하고 공감해 나도 편지를 자주 보냈었다. 내 편지는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며 초조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또 쓰곤 했었다. 그러다가 내가 보낸 편지가 채택되어 방송을 타고 흘러나오면 어찌나 반갑고 좋았던지….그때 편지를 썼던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었고 작가가 되는 길의 연습이었던 것 같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느린 손편지는 사람들에게서 차츰 멀어져 가고 있다. 컴퓨터의 e-메일, 핸드폰의 카톡과 문자가 초고속으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편지를 대신하며 바쁜 일상에 손편지는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다. 사회가 발달함으로써 좋은 점은 많지만, 그로 인해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사랑과 인정이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화가 단절되고 가족들과도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핵가족화로 변해가면서부터 외식문화가 발달하여 가족이나 친지들과 외식을 많이 하게 되었다. 요즘 어른과 아이들을 막론하고 휴대폰이 없는 사람이 없이 누구에게나 필수품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주문해 놓고 각자 핸드폰을 바라보며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따스한 햇볕이 정겹던 봄,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전북 우정청에서 지원하는 편지강좌가 있었다. 소란스럽던 아이들이 나누어준 편지지를 받아들고 조용해졌다. 행여 짝꿍이 볼세라 손으로 가리고 진지하게 속마음을 써 내려가는 모습은 참으로 예뻤다. 상상외로 어린아이들 마음에 깊은 생각들이 있었고 부모님을 생각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어른 못지않았다. 정답이 없는 편지에서 잘 쓴 편지를 고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수작을 선별해야 했기에 편지 쓰는 형식에 맞게 쓰고, 전하고 싶은 말을 진솔하게 잘 쓴 편지를 뽑았다. 손녀가 할머니께 쓴 편지였다. 편지를 쓴 학생에게 낭독할 기회를 주었다. 편지를 읽으며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이 감동으로 북받쳤는지 편지를 읽다 말고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이것이 가족의 사랑이고 소통일 것이다.올여름은 무척이나 무덥고 지루했다.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운 여름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뒷걸음을 쳤다, 서늘해서 가을인가 싶었는데 조석으로는 싸늘하고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여미게 한다. 가을은 풍성한 계절이면서도 왠지 보내는 느낌으로 다가와 아쉬움이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마침 전북지방 우정청에서 ‘2017 전북 ON고을 100만 편지쓰기’ 가을 프로그램인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릴레이 편지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좋은 계절,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연을 담아 그리운 사람, 고마운 사람에게 안부나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예쁘게 편지로 한 번 써보는 것은 어떨까?△정성려 수필가는 <대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수필집 <엄마는 거짓말쟁이>, <커피와 숭늉>을 출간했다. (사)한국편지가족 전북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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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10 23:02

수제비 한 그릇, 정 한 그릇

애호박과 감자를 빚어 넣고 뜨끈하게 끓인 수제비는 새큼하게 익은 열무김치와 먹으면 찰떡궁합. 땀 흘리며 코를 훌쩍이며 정신없이 먹던 시절이 아련하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씹을 사이도 없이 목줄을 타고 넘어가는 그 맛이야말로 어떤 음식에 비할까.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속이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찔레꽃이 만발한 5월의 언덕엔 밀밭도 덩달아 누렇게 익어갔다. 찔레꽃 우듬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손바닥에 비비면서 ‘쓴 것 줄게 단 것 달라’는 주문을 외우면 우듬지는 거짓말같이 달달했다. 그리고 심심하면 밀밭 가장자리로 달려갔다. 깐깐한 주인 할아버지의 말총머리 같은 밀 까끄라기가 두렵지도 않았나 보다. 악동들은 겁 없이 이삭을 뽑아 껍질을 비벼 버리고 입안 가득 밀알을 털어 넣고 씹었다. 뜨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잘근잘근 씹었다. 말총머리 할아버지 눈을 피해 내달리다 보면 신기하게도 ‘껌’이 만들어졌다. 껌을 만들다가 까끄라기가 목에 걸려 맨밥 한 숟가락을 씹지도 않고 삼켰던 일도 있다.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깩깩거렸던 그 동무들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밀껌’의 추억이 새삼스럽다.익어 갈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통통히 여물어가는 밀 모가지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본다. 고집쟁이 동생이 밀 이삭을 닮았나 싶다. 어머니의 회초리 앞에서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고개를 쳐들고 말대답을 하여 매를 벌던 동생이었다. 엄동설한을 살아낸 까끄라기가 밀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일까. 아니면 하늘을 향하여 한없는 겸손을 더 내려주시라고 우러러보는 것일까? 이 순간 나도 밀 이삭처럼 하늘을 우러러본다.밀 수확이 끝나고 나면 밀이 밀가루로 변신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밀이 밀가루로 변신하는 날이 왔다. 맨날 허기진 배를 채워준 보리밥은 안중에도 없다. 수제비, 부침개, 칼국수, 막걸리를 넣어 만든 찐빵 등을 생각하며 방앗간에 가신 아버지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지게에서 내린 밀가루는 아직 뜨뜻했다. 동생과 나는 밀가루 포대에 들러붙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기도 하고, 강아지도 코를 킹킹대며 토방에 떨어진 밀가루를 핥기도 했다. 막 알을 낳은 암탉이 몇 번 쪼아보더니 이내 부리를 제 겨드랑이에 닦아버렸다. 지금 같은 세상에 밀가루 타령이라니,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수제비를 끓이는 날은 어머니가 밭에 나가 일을 할 수 없는 비 오는 날이 제격이다.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주어가며 반죽을 한다. 뽀송뽀송한 밀가루가 물을 만나면 찰기를 드러내며 엉겨 붙는다. 입 안에 털어 넣은 밀알이 씹히고 씹혀서 껌이 되듯이 손아귀에서 주물러지는 밀가루는 주무를수록 부드러워 진다. 마치 어릴 땐 손이 맞아 찌그락 짜그락 싸우던 형제들이 커가면서 형제애를 알아가듯이 밀반죽이 잘되면 손바닥에 달라붙지도 않는다.아궁이에 불을 지펴 멸칫국물을 끓인다. 그러면 눅눅한 방바닥도 모처럼 고슬고슬해진다. 솥 가득 수제비를 끓이는 날이면 이 집 저 집 굴뚝에서도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멸칫국물 냄새가 사방으로 소문을 냈다. 수제비 한 그릇이 정과 함께 토담을 넘어 친구 ‘말례’네 집으로 넘어가면 부침개 한 접시가 정과 함께 우리 집 밥상에 올랐다. 또 뒷집 ‘응구’네 집에서 찐빵이 정과 함께 뒤란 담을 넘어왔다. 수제비뿐만 아니라 농기구며 잔돈푼까지도 빌려 쓰고 빌려주면서 서로 정을 나누며 살았다. 이렇게 사는 모습이 이웃사촌이 아닌가. 점심에 수제비나 떠볼까?△최정순 수필가는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속빈 여자>를 출간했고, 제7회 행촌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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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20 23:02

어디 사십니까? - 김상권

오늘도 기린봉 산행을 다녀왔다. 으레 치명자산을 거쳐 가는 코스다. 치명자산 순교자 묘지를 지나 능선을 돌면 동고산성 견훤 대왕 궁터를 만난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이 궁터를 왜 지금까지 방치해두었는지 전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해서 세운 진나라의 역사는 기원전 221~206년이니 불과 15년이라는 짧은 역사에 불과하다. 그런데 견훤이 900년 완산주(전주)에 입성하여 도읍을 정하고 세운 후백제 왕도는 36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이는 진나라에 비하면 오랜 기간이다. 올해가 꼭 1117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전주를 천년고도라 부른다.견훤왕이 전주에 백제를 세우며, ‘나는 감히 도읍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백제의 원한을 풀러 온 것뿐이다.’라고 건국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나라 이름을 ‘백제’라고 떳떳하게 선포한 것도 백제의 맥을 잇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런 ‘백제’가 후세 역사가들이 백제와 구분하기 위해서 ‘후백제’라 이름 지어 불리고 있으나 백제의 영혼은 지울 수가 없다.조선 영조 때 쓴 《동서강목》에서는 후백제를 백제의 옛 땅을 남김없이 차지해 신라와 고려보다도 강력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켄서스 대학의 허스트 3세 교수의 〈고려왕조 창건 속 인물들〉이란 논문에서 ‘견훤은 상당한 군사적, 도덕적 힘을 가지고 있었던 백제인으로 운명의 뒤틀림이 없었다면 10세기 한국은 견훤에 의해 통일됐을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막강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고 했던가. 오늘날 왜곡된 역사로 인해 견훤왕이 폄하되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 전주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후백제는 후삼국 시대 이후 유일하게 왕궁터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나라다. 개발을 계속하고 있지만 지금도 확실치 않다. 학자마다 설이 분분하다. 동고산성이라고도 하고, 물왕멀 일대라고도 한다. 또, 중노송동 인봉리와 문화촌 일대라고도 한다. 그런데 최근 전주국립박물관에서는 이제까지의 모든 자료를 종합 검토하여 노송동 지역을 궁성 일대로 상정하고 도성의 형태나 방어체계를 새롭게 설정하여 발표했다.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돌아가는 사정을 알 리 없는 시민은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하다. 천 년이 지났는데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말이다. 궁성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어떤가? 전주시내 어느 곳일 텐데…. 궁성 터를 찾는 일에 발목이 잡혀 다른 사업을 미룬다면 그것도 옳은 방향이 아니지 싶다.경북 문경시 가은읍에서는 견훤왕의 사당과 후백제 사당 위패를 소중하게 모시고 있으며,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서는 견훤왕의 묘를 자랑하고 있다. 후백제 왕도로서 위상을 되살리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돋우기 위해서 후백제 역사 문화 복원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 시민들도 ‘백제대로’나 ‘견훤로’ 같은 도로명 주소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협조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어느 누가 나를 보고 “어디 사세요?”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백제 왕도였던 “전주에 삽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김상권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한국산문(구 에세이플러스)》 수필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수필집 〈다들 어디로 갔을까〉, 〈뻐꾸기 소리로 아침을 열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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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22 23:02

가을 서곡(序曲) - 이점이

배롱 꽃잎이 지는 여름 끝자락에 하루해 일상을 채우고, 아침저녁으로 뽀송뽀송 살갗을 더듬는 음이온 향기 스민 바람이 세포를 한껏 숨 쉬게 한다. 아직도 매미들의 세레나데가 여름~ 여름~~하면서 다가오는 이별의 애달픔을 애처롭게 토해내고, 초저녁에는 귀뚜라미가 가을~ 가을~~콧노래를 부르며 순환하는 계절의 배턴을 이어받는다.계절의 변곡점에 설 때마다 이 세상 것 무엇 하나 영원한 것이 없다는 진리와 끝도 없이 순환을 거듭하는 자연, 부침을 거듭하는 인간사야말로 인생의 참된 깨우침을 얻는다. 계절의 줄다리기는 보고 듣고 피부에 닿는 것들로 느껴지지만 어쩌면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불어가는 나이테만큼 때로는 추억이 파노라마로 밀려올 때면 현실은 비록 그러하더라도 기억 속 풍요로움이 이 또한 행복일 때가 많다. 파스텔톤 삽화로 그려지는 추억 속 편린들이 순환 고리를 덧칠할 적마다 철 따라 새로움으로 묻어나곤 하기 때문이다.채송화처럼 작은 앉은뱅이 꽃도 저 높은 하늘빛을 옴쏙 안고 피어, 투명한 색채로 뜰 안에서 계절을 키운다. 햇볕의 파장은 그리움과 기다림을 해바라기 꽃과 선홍빛 칸나의 자태로 눈이 시릴 만큼 맑은 여름을 수놓는다. 가냘픈 보랏빛 나팔꽃, 귀여운 초롱 모양 분꽃은 아기 입처럼 오물오물 소곤댄다.이렇게 오롯한 꽃들의 여름 잔치가 가을을 부르는 삽상한 바람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이맘때면 어릴 적 어머니 옷깃에서 물씬 풍기던 메밀밭 풋풋한 냄새가 그립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사신 아버지의 올곧음에 맞춰 농사일하시랴 또 자식들 건사까지 무던한 세월이었다. 지금 내 나이 어릴 적 엄마 자리에까지 왔다. 지금은 쉽게 사다만 먹는 메밀묵을 손수 맷돌에 갈아 찰지게도 쒀주셔서 양념장에 퐁당 적셔 먹던, 내 고향 집 넓은 마당 평상에서 가족들과 함께했던 가을 저녁은 넘을 수 없는 모성(母城)이다. 보고 싶은 어머니도 이제는 밤하늘별이 되어 반짝인다. 우리의 해후는 가을밤 쇼팽의 ‘야상곡’ 선율 따라 내 안의 가을 서곡 그리는 순례자가 되기도 한다. 어느 별 어느 자리에서 빛의 언어가 시(詩)가 되는….찬바람이 꽃가지에 걸터앉으면 고추잠자리 맴도는 하늘 늙은 지붕 위 휘어진 나뭇가지 어디쯤인가 따살거리는 햇살이 분주한 여인의 손놀림 사이로 빠지고 가을이 여기저기서 달려오고 있다. 계절의 성산을 쌓기 위한 가을맞이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 또한 제 안의 결핍을 변형해야 하는 부단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파란 하늘 넓은 캔버스에 티 없는 소망 하나씩 흰 구름에 두둥실 띄워 봐도 좋겠다. 단단한 땅을 딛고 맘껏 뛰고 걸을 수 있는 땅에 지혜를 심을 수 있어서 좋다.그리스 신화에서도 대지의 여신, 태초의 어머니 가이아가 전해지고 있듯 땅은 어머니의 상징이며 넓고 깊은 지혜의 샘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우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0세를 사는 자신의 일상에서 반올림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면 반내림을 하는 것이 기쁨이라면 하등의 조건에 뭐가 따르랴! 내 삶의 주관자는 자신이기에 자연의 섭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보람이고 행복일 것이다.천(天), 지(地), (人)의 합이 선(善)을 행하고 조화를 이룬다면 이 세상 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가을 문턱에서 내 행복은 내가 가꿔야 내 것인 것을…. 쉽고도 어려운 진리에 방점을 찍는다.△이점이 시인은 〈시와 산문〉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두리문학회, 샘동인 회원으로 현재 전주문인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한국미술협회 문인화 작가, '화랑 묵객' 서예 초대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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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15 23:02

장모님 수난 시대 - 최선욱

아들 있는 집은 요양원에서 죽고, 딸 있는 집은 싱크대 밑에서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딸 잘 두면 비행기 탄다는 말도 이젠 한물갔나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많아짐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 중 가장 큰 일이 육아 문제 아닐까.아이 낳기를 권하는 사회, 많이 낳을수록 박수받는 시대가 올 줄 예전엔 상상도 못 했다. 7, 80년대만 해도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이 표어가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맞벌이 부부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름지기 애국자라면 이대로 따라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어쩌다 아이가 셋만 돼도 비애국적인 처사로 남들이 손가락질하지 않나 눈치 보던 시대였다.아들이 장가간 지 3년이 넘도록 아이 소식이 없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기다림 끝에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었다. 아기 돌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 터, 한창 일할 나이에 일을 그만둘 수 없는 며느리는 아기를 안고 친정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들인들 처가살이한다는 말 듣고 싶었겠으며, 며느리인들 친정어머니 고생시키고 싶었으랴. 그러나 눈 뜨고 코 베이는 서울살이에 아기를 믿고 맡길 만만한 대상이 친정어머니뿐이니 친정집으로 들어가는 일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아버지, 어머니! 은퇴하시니 심심하시죠? 주말에 아기 데리고 내려가도 돼요?”손자를 보고 싶지만, 사돈집에 들락거릴 수도 없어 애태웠는데 아들이 우리 맘을 읽었는지 이제 막 돌이 지난 손자를 데려왔다. 걸음마를 배워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쉴새 없이 아장대고 다닌다.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지만 붙잡아 둘 수도 없다. 딴에 제 눈에 보이는 물건마다 난생처음 보는 것들일 테니 만져보고 눌러보고 입에 대보고도 싶겠지. 외가에서 자란 손자는 우리 집에 와서도 낯가림 없이 잘 먹고 잘 놀았다.“아기한테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얼굴도 익힐 겸 자주자주 내려와야겠어요.” 아들의 말이 살갑게 들렸다. 그리고는 주말마다 내리 5주를 거르지 않고 아기를 데리고 내려왔다.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주말의 이틀이 주중 닷새보다 길었다. 손주는 예쁜데 몸은 고단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했구나.이젠 아들이 좀 뜸하게 오면 좋겠는데 노골적으로 말하면 상처가 될까봐 에둘러 표현했다.“아들아, 일요일마다 애 엄마 없이 네가 아기 데리고 교회 가니까 남들은 부부싸움 하고 별거하는 줄 알겠다.”며느리 하는 일이 주말에 더 바쁜 일이라서 우리야 이해하지만, 남들은 오해하기 딱 좋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은 제집에 오면 더 편한지 이젠 아예 아기를 내게 맡기고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 있기도 하고, 혼자 영화를 보고 오기도 한다. 매일 밤 손주 때문에 잠을 설치는 사돈 보기도 미안한데 주말이라도 푹 쉬시도록 내가 주말 돌봄이 노릇이라도 해야겠다.장모도 인생 즐길 권리가 있다고 ‘장모님 반란’이란 제목 아래 장모님 5계명이 실린 신문기사가 한동안 회자되었다. 처가살이가 대세인 요즘, 고부갈등이란 말 대신 장서갈등이란 새로운 용어가 뜨고 있다. ‘아들아, 내 대신 장모님께 효도하거라’ 장모님 수난 시대에 아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이때,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못 한다는 말이 맞다. 아이를 낳으려 해도 양육할 자신이 없어 안 낳는다는 말이 엄살이 아니고 사실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기가 녹록하지 않은 시대에 이런 젊은이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지 않은 어른은 없다. 다만 진짜로 노쇠해가는 육체의 한계 때문에 주저할 뿐이지.△최선욱 수필가는 2014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는 〈거꾸로 가는 시간 속에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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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08 23:02

애마와의 동행

2002년 초겨울에 애마(愛馬)를 처음 만났다. 애마는 처음 세상에 나온 회색 소렌토(SORENTO)였다. 그와 동고동락하며 10년 고개를 언제 넘었는지 까마득하다. 전주시에서 익산시로 서너 달 다니다 교감 승진의 기쁨을 싣고 진안군 소태정 고개를 4년 반 오르내렸다. 또 교장 승진의 영광을 안고 4년 반 동안 임실군을 다니다 정년을 맞았다. 이제는 애마랑 제2 인생을 동행하고 있다.작년 1월 중순 오후, 친구와 전주화산공원에 올라가 양쪽 끝까지 정담을 나누며 왕복했다. 전주빙상경기장 주차장에서 쉬고 있던 애마에게 큰일이 생겼다.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넣었는데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친구와 안간힘을 써보고 주위 분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막무가내였다. 고집을 부릴 땐 미웠다. 보험회사의 서비스도 안 돼 기아오토(KIAOUTO) 지점으로 견인했다. 키박스(keybox)가 고장 나 전체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부품과 수리비가 20여만 원인데 단골이라 19만 원만 달라고 했다.그 뒤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를 다녀도 끄떡없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꽂아 시동을 걸면 여러 번 작동해야 했다. 시동을 끄고 열쇠를 빼지 않은 채 두었다가 시동을 걸 때는 괜찮았다. 답답해서 동네 카센터에 갔다. 열쇠를 바꿔보라고 해서 보조 열쇠로 시동을 걸어보았다. 조금 나은 것 같았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차를 타려면 두려움이 앞선다. 늘 실랑이를 하다가 시동이 걸렸다. 며칠을 견뎌보다 또 카센터를 갔다. 자물쇠 고장이니까 키 전문가를 오라고 해서 점검을 받아보자고 했다.고민하다 키 박스를 교체한 데가 나을 것 같아 기아오토 지점으로 갔다. 자물쇠 부분 수리가 안 되면, 키 박스를 통째로 교체해야 한다는 말은 카센터와 같았다. 부품 무상 교체는 보증기간이 6개월이나 넘어 불가능하다며 열쇠 전문가를 소개해 주었다. 사무원한테 ‘행운 열쇠’ 가게에 전화를 부탁하고 곧바로 찾아갔다. 고급 오토바이가 가게 앞에서 고객의 부름에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차 밖에서 자물쇠에 열쇠를 꽂아 상하좌우로 움직여보니 시동이 걸렸다. 자물쇠가 잠겼다가 잘 풀리지 않아 그렇다며 구멍에다 기름을 스프레이처럼 뿌렸다. 소명 가수가 부른 노래 제목같이 ‘유쾌 상쾌 통쾌’해, 오후 한나절의 폭염으로 등에 맺힌 송골송골 땀방울이 금방 식어버렸다. 사장님은 갓 50대쯤 되어 보이는데, 자물쇠와 열쇠만은 어떤 문제든지 고객을 만족하게 할 자신감이 넘쳤다. 그 단계에 오르기까지는 남모르는 많은 시행착오와 수련과정을 거쳤을 거다.열쇠 사장님이 올여름 같은 폭염에 고객들의 청량제가 되듯이 그런 글을 쓸 수는 없을까? 수필을 써보겠다고 맘먹고 입문한 지가 내년이면 10년이다. 수필은 웃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온다는 말이 헛말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나는, 바라는 만큼 좋은 수필을 쓰는 게 아니라 시시콜콜한 신변잡사(身邊雜事)만 늘어놓은 글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서글퍼져 울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독자들의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일으킬 수필나무를 그려보며 새로운 십년지계(十年之計)로 순수한 열정을 품고 시작해야 할 성싶다. 애마도 즐겁게 동행해 줄 것이다.△정석곤 수필가는 종합문예지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풋밤송이의 기지개〉와 〈물끄러미 바라본 아내의 얼굴〉을 출간했다. 임실 삼계·관촌초 교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작가회·행촌수필문학회 이사, 전북문인협회 회원,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편집국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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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01 23:02

노인 십계명 - 고재웅

요즘 노인네 모임에서 우스갯소리로 ‘노인십계명’이 회자되고 있다. 노인십계명은 노인이 최소한 지켜야 할 10가지 도덕적 계율이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10개조의 계시를 풍자적으로 패러디한 것이다. 허물없는 노인들 사이 흔히 술좌석에서나 하는 푸념이지만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나 권위가 실추되고 있는 현실에서 귀담아 들을 만한 경구이다. ‘노인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은 ‘자식한테 효(孝)를 기대하지 마라’이다.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소위 반포지효(反哺之孝)는 이젠 머언 태고적 전설처럼 잊혀져 가고 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고이 기른 자식도 부모를 늘그막에 제대로 모시기는 커녕 귀찮게 여겨 현대판 고려장 호텔인 동네 요양원에 버리다시피 방치하는 세태다.둘째 ‘남 앞에 자식 자랑 하지 마라’다. 옛말에 마누라 자랑하는 놈은 온병신이고 자식 자랑하는 놈은 반병신이라 했다. 사람의 길흉화복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 그만큼 현재의 잣대로 자식을 남 앞에 치켜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 ‘남 앞에 아는척, 잘난척 하지 마라’. 나이 70이 넘으면 한때 잘나갔던 사람이나 그저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나 그게 그거고 오십보 백보 처지다. 괜스레 힘주어 보았댔자 남이 알아주지도 않을뿐더러 자신만 외롭다.넷째 ‘돈 있다고 자랑말고 뻐기지 마라’. 인생 80이 넘으면 돈 쓸래야 쓸 곳도 없고 맛있는 음식조차 갈수록 소태씹는 듯 하다. 돈이 억만금 있어도 얼마남지 않은 여생에 비추어 보아 몇푼 쓰지도 못하고 3평 남짓 땅만 차지한 채 귀소(歸巢)한다. 다섯째 ‘공공장소에서 목청 높이지 마라’. 허리는 꾸부정정, 걸음걸이도 휘청휘청, 눈은 침침, 귓속은 윙윙거리는데 왠 목청만 그리도 높고 요란한지 마치 자기집 안방인양 행세한다. 조용히 세상사를 음미하고 관조(觀照)하듯 여생을 즐겨라.여섯째 ‘지난날의 화려했던 한 때를 내세우며 되씹지 마라’. “왕년에 그래도 내가 한 자리 한 몸인데 어쩌고 저쩌고…”하며 허세부리는 노인네일수록 별볼일 없는 친구다. 고매하고 훌륭한 인품의 노인은 어디서나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은은하게 지적(知的) 향기를 내풍긴다.일곱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노골적으로 빈자리를 노리지 마라’. 경로석이 마치 자신만의 전용석이나 되는 듯 승차하자마자 두눈을 두리번 거리고 좌석의 양보를 바라는 듯한 행동을 보이지 마라. 이미 앉아있는 사람도 나름대로 다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을 터이다. 여덟째 ‘대중이 있는 장소에서는 일행 중 다른 사람을 부를 때 의식적으로 고위직 직함이나 교수, 박사, 장군 등의 호칭을 외치듯 부르지 마라’. 높은 직함을 부르는 것이 자기와 동일시하고자 하려는 심리적 발로일지라도 듣는 다른 사람에게는 거부감과 불쾌감을 자아낸다. 아홉번째 ‘자식에게 가진 재산을 몽땅 털어 넘기지 마라’. 재산을 자식한테 전부 넘겨주고 얹혀 살며 눈칫밥이나 얻어 먹고 쥐꼬리 만한 용돈이나 타 쓰는 처량한 신세를 상상만 해도 끔찍스럽다. 열번째 ‘맡고 있는 공식적, 비공식적 직위를 모두 내려 놓아라’. 자기 소유의 기업체가 되었건 공공단체의 명예직 감투가 되었건 70세가 훨씬 넘은 노인네 입장에서는 다 부질없는 거추장스러운 자리다. 얄팍한 자리에 연민을 두고 붙들고 있는 것은 노추고 노탐이다. 구구절절 옳은 이 말을 그리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주책없는 고질병이다. 새삼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라는 고은 시인의 짧은 시문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된다. 이제라도 인생 마지막 황혼길 아름답게 장식하자.△ 고재웅 씨(78)는 부안 출신으로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공직에 입문해 제주와 군산, 여수해운항만청장을 지냈다. 주요 일간지에 다수의 칼럼을 게재했고, 고향인 부안지역 주간신문에서는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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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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