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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길

주말 오전이면 나는 항상 가는 곳이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빠지지 않고 가는 남원 덕음산 기슭의 솔바람길이다. 이 길은 관광단지내 놀이시설 부근에서 시작되어 항공우주천문대 입구 부근까지 약 1200m의 나무데크 길이다.이 길에 들어서면 솔바람길이란 이름이 의미하듯이 솔향기가 은은한 소나무 숲길이다. 더군다나 길 전체가 나무 데크로 조성되어 있어 안심하고 다녀도 좋은 산책길이다.덕음산 솔바람길이라고 쓰인 입구의 현판을 통과하여 계단 길을 이삼 분 오르면, 양쪽으로 갈림길이 있다. 왼쪽은 100미터 정도의 나무데크길이 나있고, 그길 끝부분에 이르면 극락암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무들 사이로 놀이시설들이 보이고, 리듬에 맞추어 놀이를 유도하는 경쾌한 음악이 흥겹기까지 한다.그길 끝에 있는 전망데크를 돌아 처음 갈림길로 와서, 다시 반대쪽 방향으로 가면, 1000미터 정도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평탄한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소나무 외에도 아카시아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가 주를 이루고, 주위 계곡에는 고비 등 양치류들이 많다.봄에는 연하고 푸릇푸릇한 신록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낸 기상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뽐내고 있다. 봄 산이 거느린 산벚꽃과 샛노란 개나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봄바람에 솔향기 은은히 풍겨와 상쾌함을 더해 준다.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바람이 종종 불어와 뜨거운 햇빛과 습기를 막아주니, 시원함에다 쾌적함을 더해 준다. 봄에 나왔던 상사화 잎들이 말라가는 대신, 연홍색의 꽃들이 피어난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잎과 꽃이 서로를 생각한다 하여 상사화(相思花)라고 한단다.가을에는 키 큰 소나무들을 칭칭 감아 올라간 담장이 넝쿨과, 나무데크 길 위에 쌓여가는 갈잎, 가랑잎 등의 낙엽들과 열매껍질들을 보고 걷노라면, 풍족함을 느끼게 한다.겨울에는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으로 제법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몸이 움츠려 들기도 하지만,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하고 걷다보면, 주위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의 운치를 그대로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여러 종류의 낙엽들과 열매껍질들이 뒤덮인 길 위에 수북이 쌓인 눈을 밟고 걷노라면, 더욱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솔바람길은 숲속의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천연의 피톤치드다. 일주간의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데 나는 이 솔바람길을 애용한다. 편한 마음으로 단전호흡과 명상을 하며 이 길을 걷는다. 나의 보행명상 자리로 그만이다.지금 이 순간!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온 몸을 이완하고 호흡에만 집중한다. 들숨이 횡격막을 지나 단전 아래로 들어오는 느낌을 관전한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날숨이 단전에서 서서히 나가는 느낌을 알아차린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나의 생각, 감정, 오감을 모두 내려놓고, 나의 존재만 확인한다. 순수한 나를 느껴본다. 나는 늘 존재하고 있다. 내 안에서 빛나고 있는 광명, 행복, 평화, 그리고 자유어느덧, 처음의 갈림길까지 되돌아와, 솔바람길 입구의 계단길을 내려온다. 조금 더 이 길을 걷고 싶다. 삼십분 정도 더 걷고 싶다. 덕음산 능선 가까이로 500미터 정도 연장하여 순환하는 길을 내면 더욱 좋겠다.△김두성씨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한국문학예술〉로 등단했다. 현재 금지중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이며, 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나의 작은 행복〉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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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13 23:02

둔치농장

나는 요즈음 인근 아중저수지 둔치에 조그만 밭을 개간하여 채소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푸성귀 몇 가지를 심었으나 점차 키운 작물이 증가하여 12종이 넘는다. 나는 이 밭을 둔치농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집 근처 산책로 변에 있어 산책을 하면서 수시로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으로 행복하다.작물을 가꾸다 보면 항상 즐거움과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가뭄에 시들어 가는 작물들을 보며 애를 태우기도 하고 병충해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고 속상할 때도 있다.이른 봄 하지감자를 한 두렁을 심어놓고 싹이 트이지 않아 애태우던 생각이 난다. 나는 씨감자를 어떻게 파종하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경험이 있는 친구한테 물어 심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싹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도 답답해서 친구에게 재차 물었다.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같았다. 감자를 몇 조각으로 쪼개서 눈이 있는 부위를 아래쪽으로 하고 잘린 부위가 위로 가게 심은 다음 살짝 덮어주면 된다는 것이다.분명히 가르쳐 준대로 심었는데 싹이 트지 않아 혹시 심는 방향을 잘못 알려준 것이 아닌가 하고 또다시 채근하였더니 잠자코 기다리면 싹이 나올 것이라며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다.그렇게 며칠을 지나자 마침내 친구의 말처럼 새싹이 비닐을 밀치고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 하더니 금방 파릇파릇 잎이 피어나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어린 새싹을 보면서 냉기도 가시지 않은 3월의 땅속에서 고통을 견디며 나왔구나 생각하니 안쓰러운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비닐 사이를 틔워 주고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었더니 보답이라도 하듯이 무럭무럭 자라며 새싹의 강인함 보여 주었다. 씨감자 심은 지 3개월 남짓 된 6월 중순경에 어느새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과연 며칠만 관심을 같지 않아도 금방 표시가 역력하다. 초여름 바쁜 일정으로 잠시 농장을 들리지 못하였더니 쇠비름 바랭이 등 온갖 잡초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 무렵 가뭄이 심해서 작물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특이 고추와 가지, 호박은 애처롭게 잎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대파와 들깨는 병충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우선 목이 말라 애태우는 녀석들부터 물을 흠뻑 뿌려주고, 훼방꾼 쇠비름 바랭이 등 잡초를 제거한 다음 병충해 구제에 나섰다.물을 흠뻑 먹은 고추와 가지 호박잎들이 어느새 나풀거리며 생기를 되찾는 듯싶더니 옆에 있던 고추가 한 마디 하고 나선다. 주인님, 최근에 유행하는 탄저균이 온다는데 정말 무서우니 미리 예방을 좀 해주세요. 듣고 있던 들깨도 거들고 나선다. 저는요 갑작스럽게 목이 꺾기는 역병이 돌아다닌다는데 걱정입니다.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서 듣고 있었지만, 이들을 직접 대하니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주인체면으로 큰소리쳤다. 염려 말아라. 오늘부터 내가 너희 곁에서 보살피며 지켜 주마. 이후부터 매일같이 지극정성을 다해 보살펴준 덕택인지 모두 기력을 회복하여 병충해를 이기고 무럭무럭 자라서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들을 보고 작물은 인간과는 달리 뿌린 만큼 반드시 보상해 준다는 것을 경험했다.얼마 안 있으면 들깨 수확을 끝내고 그 자리에 마늘을 심어 내년 봄을 기약할 것이다. 나의 둔치농장은 나의 삶에 원기를 불어넣어주는 활력소다.△육심표씨는 경찰공무원으로 정년퇴임했다. 전북대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 과정을 수료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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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6 23:02

이 가을에 읽는 시

처서를 기점으로 하여 태양의 고도가 살짝 기울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폭염은 자리를 뜨고 산들바람이 밀려온다. 그 위풍당당 했던 초목은 기세를 접고 겸허히 옷깃을 여미며 결실을 준비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찬란했던 생을 한 개의 꼬투리에 고이 접으면서 오로지 자손 번성의 염원만을 안고 고개 숙인다.오늘이 음력 칠월 이십이일인가 삼일인가. 하현달이 하얗게 빛나는 이 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데, 따끈한 국화차 한 모금 입을 축이고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노래 가을 사랑을 듣는다. 나는 가을 사랑은 싫어 라고 답장을 보내고 생각하니 싫어도 여름은 가고 가을은 오는 걸.나도 무얼 접어야 할 것 같아 가슴이 적막하기만 한데 귀또리 한 마리가 깡총 문덕을 넘어든다. 그 찬란한 여름, 마음껏 풍요를 만끽하고 이젠 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 안을 엿보는 귀또리의 신세가 가엽다 생각하니 이 밤 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조지훈 님의 승무가 떠오른다.내 심장을 휘어 감는 시,나는 가을 이면 이 시에 취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바람 한 점 없는 밤,하늘은 청명하고 별은 빛나는데 이지러진 하현달은 하얀 빛을 발하며 서쪽을 향하고,황촉 불을 밝힌 조촐한 법당. 앞마당은 하얗게 빛나고 뜰 뒤뜰엔 오동나무가 큰 잎을 펼치고 있고, 까맣게 짙은 그림자는 동쪽으로 드리워 있고, 앞뜰에는 이러저러한 가을꽃들이 찬 이슬에 숨죽이고, 법당 처마 끝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풍경, 댓돌엔 스님의 흰 고무신이 두어 켤레.법당 안엔 빈대에 황촉불이 밝혀 있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얇은 사 하이얀 고깔에 감추오고 긴소매 도포를 입고 하얀 버선을 신고 춤을 추는 미모의 여승, 서럽도록 고운 빛이 흐르는 가냘픈 얼굴,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까만 눈동자를 어쩌다 한 번씩 살포시 들어 먼 하늘을 응시할 때 복사꽃 고운 뺨, 그 고운 얼굴에 맺힌 눈물 두 방울. 긴소매를 휘어 감았다 다시접어 뻗으면서 날아갈 듯 돌아서며 살포시 스치는 작은 버선 발.세속의 번뇌를 긴 소매 자락에 실어 먼 하늘에 날려 보내고 온몸을 휘돌려 대자대비의 은총을 염원하는 여승의 춤사위는 미의 극치를 넘어 천상의 향연으로 펼쳐진다.이 시는 이 밤을 정적으로 몰아넣는다.산천의 잎 하나 흔들리지 못하게 한다. 그 큰 오동잎도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 없이 한 잎 수직으로 떨어뜨린다. 법당 추녀 끝의 풍경조차 울리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법당 안 황촉불도 말없이 녹게 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잠들게 하고 오로지 승무를 추는 여승의 춤사위만을 펼쳐낸다. 한기에 몰린 귀또리도 울지 못하고 온밤을 지새울 뿐 오로지 여승의 춤사위가 바뀔 때 마다 옷깃 스치는 소리만 은은할 뿐이다. 온 세상을 잠들게 해야 승무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 어떤 소리도 용납하지 않은 시인의 시적 기교에 감탄하면서 깊어가는 가을밤을 지새운다.적막한 이 가을 밤, 세상이 잠들어야만 들을 수 있는 춤사위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듣노라니 조촐한 법당 앞마당에 진하게 드리운 오동나무 검은 그림자가 달빛이 희면 그림자는 더욱 검고 짙어지는 이치를 가르쳐 준다.번뇌가 클수록 대자대비의 은총이 더욱 두터우리라는 깨달음으로 고요한 이 밤 춤추는 여승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조지훈 님의 시 승무를 읽는다.△송영수씨는 전주MBC 친절생활수기 대상과 전북여성백일장 수필부 장원을 차지했다.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4대 지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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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30 23:02

엄마와 딸

마침 근무가 없던 막내딸과 함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외손녀의 발레 수업을 구경했다. 앳된 여섯 살의 외손녀는 엄마와 함께 모처럼 서울에 오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보더니 함박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마음껏 실력발휘를 하며 의기양양하다.외할아버지는 수업이 끝나고 나온 외손녀가 하도 깜찍하고 기특해서 덥석 안아주고 싶어 팔을 벌렸지만 냉정하게 뿌리치며 제 엄마에게 달려가 손을 꼭 잡고 놓지를 않는다. 그러더니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려던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마디 던진다.엄마, 이제 회사 나가지 마!외손녀의 갑작스럽고 단호한 말에 모두는 뜨끔하며 당황스러워 했다. 잠시 후 막내딸이 딸아이와 눈을 맞추고 나긋나긋 말했다.엄마가 회사에 가야 발레도 배우고 책도 사고, 또 담은이가 좋아하는 음식도 많이 사먹을 수 있잖아?그러나 외손녀는 그 이유도 이제는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외손녀의 폭탄 발언을 잠재울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선 듯 떠오르지 않는다.엄마, 얘가 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 가끔 이러네요.막내딸이 내게 하소연이라도 하듯 콧등을 찡긋하며 불편한 심정을 전한다. 조금 전까지 앙증맞은 발레 몸짓으로 기쁨을 주더니 점심시간 내내 우리를 근심 속으로 몰아넣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제 엄마가 회사에 나가 돈을 벌기 때문에 자기 선물도 사주고, 예쁜 옷도 산다며 어미의 출근을 당연시하고 아침마다 엄마의 출근길에서 고사리 손을 흔들어 주었다.직장에 다니는 엄마 때문에 갓난아기 때부터 보모에게 맡겨 길러져 보모의 등이 안락한 요람이요 보모의 품과 냄새가 포근한 엄마였다. 그래서 직장에서 돌아와도 보모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던 아이가 내심 서운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대개 아이들은 갓난이 때부터 낯가림을 안 하고 덥석덥석 안겨 귀여운 것인데, 외손녀는 보모 외에는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는 예민함 때문에 안아보고 싶은 우리 내외의 간절함에도 매번 서운하기만 했다. 그래서 막내딸은 그런 제 딸 때문에 늘 우리에게 미안해하며 외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지금은 벌써 엄마가 되었지만 나의 막내딸도 병설 유치원 제도가 없던 시절, 나이 어린 가정부에 맡겨져 쓸쓸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나의 맞벌이 시절이었다. 다섯 살 막내딸은 아침마다 출근을 서두르는 엄마를 보며 늘 불안한 마음에 힘들었을 것이다. 출근길을 가로막으며 울어대는 아이를 우격다짐으로 겨우 뿌리치고 도망쳐 나오면 골목 끝까지 들려오는 딸의 울음소리는 내 가슴을 후벼 파며 종일 심한 통증이 되곤 했다. 직장을 그만두어야겠다는 갈등 속에서 세월이 갔고, 아이들은 고맙게도 바르고 지혜롭게 잘 자라 주어 육아와 살림에 쫓기던 직장생활의 엄마를 후회하지 않게 했다.유난히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던 그 막내딸, 그 딸의 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불쑥 던진 한마디가 계속 마음을 저리게 한다. 네 명의 자녀를 돌보며 직장 일과 살림, 그리고 여러 선영을 모셨던 종부의 고단했던 내 삶이, 특별한 자랑일 수만은 없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나의 옛 시절이니, 동생 하나 낳길 소망하는 속마음도 덮어둘 수밖에 없는 일이다.어미는 육아를 우선으로 해야 하지만, 가계에 도움도 되고 무엇보다 자기 전문성을 살리는 일이 있다는 긍지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담은아, 요즘 왜 할머니 전화도 안 받아?할머니, 나도 요즘 힘들어.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하는 내 간절함을 거부하는 냉정한 외손녀다. 유치원 다니랴, 수영 배우랴, 발레 배우랴. 악기공부 하랴, 여섯 살 외손녀도 요즘 무척 바쁘고 힘들어서 전화 못 받는단다. 엉뚱한 이유도 귀엽기만 하니 우리 내외도 분명 손녀 바보가 틀림없다.제 핑계처럼 어린 몸이 바쁘다니 제 엄마의 어린 시절처럼 종일 어미만 찾으며 쓸쓸한 하루를 보내지는 않을 것 같아 차라리 힘든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다행이다.△김덕남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 수자원공사가 주최한 제 5회 K-water 물 사랑 공모전에서 수필부문 은상 수상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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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3 23:02

사람 냄새

시장에 가면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다. 가는 곳마다 수북수북 쌓인 상품들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비켜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면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곳을 볼 수 있다. 호기심이 생겨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면 장사꾼의 호객과 재담으로 피식 웃음이 나온다.재래시장에 가면 대형 마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시장만의 매력 중 하나인 흥정이 있다. 자기가 파는 물건이 가장 좋다느니,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거저 준다느니 하며 능수능란한 솜씨로 후딱 팔아넘긴다. 고객들도 반신반의 하며 속마음으로는 ‘장사니까 으레 그러려니?’ 하며 값을 치른다. 시장과 흥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생관계다. 터무니없는 가격만 아니라면 적정한 선에서 흥정이 이루어지고 흥정을 통해 정이 오고 가서 단골손님도 생기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가게(廛)마다 모양도 색깔도 다양한 물건들이고 풍기는 냄새도 다양하다. 꽃 가게의 꽃향기부터 방앗간의 고소한 기름 냄새, 생선가게의 비린내까지 가지가지다. 시골의 흙냄새, 바닷가의 갯내, 외국에서 온 이름 모를 냄새들까지 모여 수많은 사람이 스칠 때마다 유혹을 한다. 뿐만 아니라 시장을 찾는 사람들 모습에도 모두 다양한 삶의 방식과 세월로 만들어진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곱게 단장한 여인의 모습, 수수한 차림의 중년 남자, 미소 띤 환한 얼굴도 있고, 걱정가득한 입을 꽉 다문 초췌한 얼굴도 있다.시장을 가면 요즈음은 옛날과 달리 자기만 알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나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나, 남의 눈치를 볼 필요 없다는 막무가내 얌체족이 늘고 있다. 장사한다고 걸어 다닐 길도 없이 물건을 내어놓고, 옆집은 생각지도 않고 큰소리로 호객하는 행위나 고객을 속여 폭리를 취하는 야릇한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격이 바닥임을 나타낸다. 상도의가 없는 야박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내 물건은 팔아야 하고 남의 물건은 팔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들은 사람 냄새보다는 꾀죄죄한 돈 냄새가 더 많이 난다. 돈이 좋기는 해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이웃 사랑의 마음을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장사를 해도 이웃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인정을 베푸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외모만 반지르르한 사람보다는 속이 꽉 찬 사람들이다. 빠듯한 살림에도 남의 처지를 내 아픔으로 생각하고 어린이 재단이나 불우이웃돕기에 동참하여 적은 성의라도 모아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평생을 절약하며 꼬박꼬박 모은 돈을 어려운 이웃에 써달라고 사회에 맡기는 사람들은 마음씨가 고운 세상의 천사들이다. 이웃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진정한 사람의 향기가 풍긴다. 나는 어렸을 때 무척 내성적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혼자서 노는 일을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내 편협한 생각이겠지만, 은근한 사람이 좋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며, 이웃에 인정 베푸는 양심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살아가면서 멀리 있어도 찾고 싶은 친구가 있고 가까이 있어도 만나기 싫은 사람도 있다. 자기와 성격이 잘 맞거나, 하는 일이 서로 비슷해서 잊히지 않는 이도 있다. 옆에만 있어도 너그러움이 느껴지고 마음이 포근한 사람과 가까이하며 산다면 정말 행복한 삶이겠다. 큰 행운을 얻은 사람이다. 사람 냄새가 그리워지는 시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려진 내 자화상은 어떤 냄새일까? 내 안에 있는 허접스러운 쓰레기를 찾아 버려야 할 것 같다.△2010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행촌수필문학회 사무국장과 진안문협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영호남수필 부회장과 전북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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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9 23:02

채송화가 피어 있는 시간

재작년이었던가. 옥상에서 키우던 제라늄이 시들자 그 화분에 채송화 꽃씨를 뿌려놓았다는 친정어머니 덕분에 나는 채송화를 가꾸게 되었다. 옥상 뙤약볕이 무서워 한 이틀 물을 안 주기도 했지만 어김없이 꽃을 피워내는 생명력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고, 백일 된 애기입술 같은 꽃들 앞에서 나는 왠지 더 작아지는 느낌도 들었다.반복되는 일상 틈에서 도드라지는 하찮은 돌발상황 때문에 아쉬움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울 일은 더더군다나 아닌 기분을 잠시 달래고는 했던 것이다. 바쁘다, 쉬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 나를 찾아 떠나고 싶다, 빨리빨리란 단어가 싫다, 게을러터지고 싶다, 귀찮다는, 내 나이 오십 이후를 지배하는 문구들도 이 꽃들 앞에서 쓰다듬었다.그 중엔 누군가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던, 내 속마음을 통쾌하게 터뜨려주었던 어느 심리학자의 글을 읽으며 울음을 쏟아냈던 한밤중도 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1997년 IMF가 났던 여름, 지붕만 슬레이트로 바뀐 홀어머니의 마당에 흐드러졌던 원색의 색감을. 우리 핏줄들의 탯줄이 묻혔을 울타리 아래, 퇴색한 장독대들 사이사이, 발길에 밟힐 수밖에 없도록 무작정 피어 있던 채송화를 잊을 수 없다. 갓 낳은 둘째 아이를 안고 마지막으로 친정집 마당을 밟았던 그 해, 큰 오빠는 슬레이트집과 몇 뙈기 안 남은 홀어머니의 전답을 몽땅 날려버렸고, 망했다.그런 인연 때문인지 나는 채송화가 피어 있는 시간에 끌리곤 했다. 아침을 준비하다 옥상을 바라보면 꼭 오무린 입술에 구슬구슬 이슬을 매달고 햇살에 반짝이는 꽃.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옥상문을 열어놓고 맞바람에 온몸을 맡기곤 했는데, 그 시각 노랗고 붉은 채송화는 한여름 뙤약볕을 맞서고 있었다. 때로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면 채송화는 입술을 꼭 오무리고 마른 줄기만 매달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와 눈 맞출 수 있는 시간은 즐거웠다.그런데 갈수록 채송화에게 다가가는 시간이 짧아진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오후 6시 넘어 돌아오는 게 나만은 아닐 터인데, 딱히 노동조건이 더 나빠진 것도,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왜 이 꽃들을 자주 쳐다 볼 틈이 없는지 얼른 설명이 안 된다. 어쩌다 해질녘에 물을 주며 그새 돋은 풀이나 뽑는 게 요즘의 나다. 사는 게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배배 꼬인 채송화 잎과 줄기에 자꾸 눈길이 간다. 나는 누구인가. 아내, 엄마, 며느리 이런 건조한 호칭에서 자유롭지 못한, 손에 쥔 것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이름을 남길 만한 일도 하지 못한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매달고 빼빼 말라가는 채송화의 잎과 줄기 앞에서 나는 다시 작아졌다.마당이 있는 집을 갖고 싶다. 이 말을 꺼내자마자 남편은 에구, 에구 이 앓는 소리를 할 테지만 더 늦기 전에 삶의 돌파구에 필요한 껀수를 준비해야겠다. 사람이 사는 데 돈이 들면 얼마나 들까. 애들은 나가서 살게 될 터이니 두 늙은이가 아웅다웅할 부엌 딸린 방 한 칸과 책을 읽을 만한 궁극의 공간 둬 평이면 되지 않을까.전원주택이란 호사스런 말을 하자는 게 아니다. 산자락 밑으로 기어기어간 길들과 거름냄새 묻은 논밭과 이름 모를 풀꽃을 닮은 사람들과 너나들이로 살고 싶은 것이다. 나만이라도 돈의 노예, 시간의 노예, 문명으로 가장한 기계의 노예로 살지 말아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집 마당에 발 딛을 데만 빼놓고 채송화를 심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낮게 살아갈 것이다. 한때 절망이었고 희망이었던 채송화가 저녁햇살에 빛난다.△이현옥 씨는 완주 출신으로 〈우석대신문〉과 〈문화저널〉 등에 책과 관련된 다수의 산문을 발표했다. 현재 우석대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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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2 23:02

뜯지도 않은 불청객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던가. 밤새 사무실에는 또 두 장의 팩스가 들어와 있다. 노트북을 홍보하는 전단지와 4금융권에서 날아온 대출안내서다. 점심때가 되자 또 한 장의 팩스가 들어온다. 직장인을 상대로 연 5.5%의 저리로 1억5천만 원까지 대출해주겠다는 것이다. 은행에 찾아오지 않아도 연락만 주면 직접 방문하여 상담하겠다고 한다. 이렇듯 반갑지 않은 판촉물들이 하루에도 몇 장씩 방문한다. 담당자에게 팩스 받는 것을 정중히 거절하겠다고 했지만 잠시뿐, 잊을만하면 또다시 날아든다. 이번에는 계속해서 보내려면 종이값이라도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막무가내. 전화로 큰 소리 한번 쳐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런 곳에 전화하는 것만으로도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어 성큼 전화하기도 망설여진다. 그냥 못 본체하고 버리면 될 일이지만 팩스용지가 아깝다. 팩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전화공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름도 낯선 잡지사와 리서치단체에서 설문조사에 응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이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정도로 수준급의 프로들이다. 잠깐이면 된다고 하지만 거의 10여분을 물고 늘어진다. 어제는 폴더형 내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주겠다는 전화가 오더니, 암보험을 들었던 회사에서 치매와 뇌졸중을 들먹이며 선심을 쓰듯 노인병보험을 들으라고 졸라댄다. 화가 치밀어 한번만 더 전화하면 암보험까지 해약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되레 손님만 손해라며 으름장을 피운다.귀찮은 전화는 또 있다. 건강식품을 홍보하는 전화다. 이 사람들은 거의 상습적이고 근성이 강해 한번 물고 늘어지면 놓지 않는 하이에나와 같다. 한번은 돈이 없다, 아직은 건강하다. 회의 중이다.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회피했지만 결국 끈질긴 들이대기에 손을 들었다. 일단 시음용 제품을 먹어본 다음에 맘에 들면 구입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며칠 뒤 도착한 것은 시음용 제품이 아니라 견본제품이 들어있는 건강식품 한 박스였다. 되돌려 보내려고 전화했더니 뜯어본 것은 반납할 수 없다.며 오히려 지로용지를 보내왔다. 다행히 소비자고발센터를 통해 반납했지만 상도덕을 무시한 이들의 영업 전략에 울며 겨자 먹듯 피해 보는 사람들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지금 사무실 한쪽에는 뜯지도 않은 불청객, 박스 하나가 방치돼 있다. 서울에 주소를 둔 한국장애우공동체라는 곳에서 보내온 수제비누다. 지난해 사정사정하는 전화가 걸려와 어쩔 수없이 구입해 줬더니 올해는 묻지도 않고 또 보내왔다. 참으로 얄밉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어떤 사업이든 홍보가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마구잡이로 팩스를 보내는 광고행위는 상도덕이 아니다. 남의 휴지로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나 다름없다. 또한 남의 입장은 무시한 채 끈질기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 역시 못마땅한 사람들이다. 더구나 반강제로 제품을 보내고 뜯어본 제품은 반납할 수 없다는 판매전술은 참으로 비겁하고 치졸하기까지 하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최고의 판촉행위가 아닐는지.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 팩스홍보나 전화판촉을 규제하는 규정은 없는지 알아볼 일이다.△수필가 백봉기 씨는 2010년 〈한국산문〉으로 등단.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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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25 23:02

한글전용의 허와 실

한글전용이란 모든 글자를 한글로만 쓰는 것을 말하는가? 아니면 뜻 자체도 순 우리말로 써야 한다는 말인가? 아리송하다 “지독한 감기로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괜찮다. 그런데 나는 나았지만 이번에는 동생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조용했지만 나사가 풀린 듯한 목소리에서 나는 괜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나에게 전염이 되었나 싶어 은근히 겁도 났다. 어렸을 때는 허구한 날 나를 귀찮게 해서 내가 가끔씩 혼내주던 그 동생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이렇게 한자 없이 오직 한글로만 쓰여 진 이런 글귀를 보면 언뜻 한자어가 하나도 포함되지 않고 순전히 우리말로만 된 글같이 보인다. 그래서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글귀를 좋아할 것이고 이런 글이 한글만으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글 속에는 많은 한자가 숨어 있다.그 첫 마디 지독(至毒)하다는 말은 어떤 상태가 독(毒)에 이를(至) 정도로 아주 심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감기(感氣)라는 말은 차가운 기운(氣)을 슬쩍 느끼기(感)만 해도 걸리는 병이라 해서 붙여진 말이다. 고생은 어렵고 힘든 경험이 곧 쓴(苦) 인생살이(生)이기에 고생(苦生)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즈음 이 구절을 “至毒한 感氣로 苦生했다”고 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말들은 이미 우리말로 토착돼 굳이 한자로 표시할 필요도 없고 한자어라고 하기도 어색하다. 단지 그 본디가 한자어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할 따름이다. “기분은 괜찮다.”라는 구절에서도 기분(氣分)이 한자의 뿌리를 갖고 있다. ‘기운 기(氣)’자는 이렇게 감기나 기분 같은 말의 뿌리가 되었지만 그 자체로도 기(氣)가 차다, 기(氣)가 막히다, 기(氣)가 꺾이다, 기(氣)가 죽다, 기(氣)가 살다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말 속에 일찍부터 기(氣)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기(氣)에 심취하고자 기(氣)를 쓰는지도 알 듯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괜찮다’는 말에 숨어 있는 한자를 찾아내는 일이다. ‘괜찮다’라고 세 마디소리(三音節)로 줄어 든 이 말의 어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괜치 않다, 괜치 아니하다, 괜ㅎ지 아니하다......’ 등으로 밝혀지고 마지막에는 ‘관계(關係)하지 아니하다’라는 한자어가 담긴 본디 말을 찾게 된다. 어떤 일이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데서 ‘괜찮다’라는 표현이 생긴 것이다. ‘귀(貴)하지 아니하다’가 줄어서 ‘귀찮다’가 된 것이나 ‘공연(空然)히’가 줄어서 ‘괜히’가 된 것이 그것이다. 오늘날 ‘괜찮다, 귀찮다, 괜히’ 같은 말이 우리말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많은 우리말이 한자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동생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에서 동생도 같은(同) 부모에게서 낳았다고(生) 해서 동생(同生)이다. 예사(例事)롭다, 이상(異狀 또는 異常)하다도 한자어다. ‘조용하다’는 말도 원래 ‘종용(從容)하다’가 변한 것이다. 겉으로는 안 보이지만 한자어가 우리말 속에 ‘조용히’ 들어와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굳건(健)하다, 익숙(熟)하다, 말쑥(淑)하다, 얄팍(薄)하다, 멀쩡(淨)하다, 스산(酸)하다, 썰렁(凉)하다, 두둑(篤)하다, 착(?)하다, 성(成)하다, 환(煥)하다, 용(靈)하다 등 무수히 많다.‘나사(螺絲)’라는 말이 한자어라는 것은 모르더라도 영어나 불어라고는 하지 말아야겠다.물론 ‘분명히, 도저히, 심지어, 대체, 도대체, 대관절’같은 부사도 한글로 정착된 말이지만 그 어원은 ‘勿論(물론), 分明(분명)히, 到底(도저)히, 甚至於(심지어), 大體(대체), 都大體(도대체), 大關節(대관절)’이다. 우리말이 본래 한자어라고 해서 반드시 한자로 적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많은 ‘우리말’ 속에 한자어가 담겨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자 함이다.△남원 출신인 안도 작가(67)는 1982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동화집 〈민들레의 꿈〉, 〈선생님은 미운가봐〉, 〈산에는 꽃이 피네〉와 시집 〈지하수〉 등이 있다. 현재 제30대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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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8 23:02

물처럼 바람처럼

만덕산 아래 자그만 터를 마련해 농사를 지은 지도 벌써 5년이 다 돼 간다. 이젠 지나는 길손이나 만나는 마을사람마다 농사를 잘 짓는다고 말하는 걸 보면 반농부가 다 된 것 같다. 철따라 생산되는 푸성귀나 오이, 방울토마토, 가지, 수박, 참외 등을 아들, 딸에게 보내기도 하고 간혹 친구들에게도 맛을 보여주는 나눔의 기쁨이 쏠쏠하기 그지없다. 봄이 되면 고사리를 따러오는 친구들과 술도 한 잔 나누고, 시시 때때로 흐르는 구름을 보거나 바람을 쐬러 나를 찾는 사람들도 있어 산 속의 삶이 외롭진 않다. 마치 어찌하여 청산에 사느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음만 지을 뿐, 대답은 아니 해도 마음은 한가로웠다는 이백의 ‘산중문답’의 경지가 이런 게 아니었을까싶다. 때론 안개구름이 산등성이를 감돌아 여기가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야릇한 산내움을 실은 바람이 불어와 풀꽃을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살갗을 흘러내리며 세상에서 더러워진 나를 상긋이 씻어준다. 이따금 산 속을 흔드는 바람이 갑자기 일어 나뭇잎을 뒤흔드는 통에 나무의 잎이 뒤집혀 마치 하얀 꽃잎을 피워낸 듯 온 산이 아름다운 화원인 양 연출하기도 한다. 이를 본 친구는 이 무슨 하얀 꽃들이 어쩌면 저리도 아름답게 피었냐고 탄사를 늘어놓다가도 이내 그게 아니라는 걸 눈치 채고는 머쓱하게 웃기도 한다. 이런 바람이 여름날 반드시 소나기를 몰고 오는 마중물 같은 돌풍이란 걸 마을 사람들에게 들어 깨달은 것은 한참 지난 후였다. 올 봄엔 들깨 씨를 두 번이나 뿌렸다. 보이지도 않을 작은 들깨 씨들을 새들이 모두다 쪼아버려 깨 농사를 망칠 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순식간에 수십 마리로 늘어나 들깨 밭을 싹쓸이 했다. 농사를 망치는 새로 말하자면 까치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새다. 좋은 소식을 알린다는 길조가 아니라, 아예 농사를 망가뜨리는 못된 망조(亡鳥)다. 그러나 나를 한없이 즐겁게 해주는 새는 뭐니 뭐니 해도 초록과 황금색깔의 아름다운 옷을 곱게 차려입은 꾀꼬리다. 이 새야말로 봄부터 여름철에 이르기까지 나를 반기는 진객 중의 진객이다. 꾀꼬리는 홀로인가 싶으면 어느새 다른 짝이 뒤를 따라 날아간다. ‘꾀꼬리는 훨훨/ 쌍쌍이 노니는데, 나만이 외로우니/ 그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까?’라 노래한 유리왕의 사랑도 읽을 만하다. 어디 이뿐이랴? 연미복보다 더 멋지고 날렵한 옷을 입은 장끼가 날아와 나래를 접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수더분하게 차려입은 까투리가 뒤따르며 화려한 장끼를 더욱 멋쟁이로 북돋운다. 앙증맞은 새끼들 서너 마리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며 엄마 뒤를 따른다. 멀찍이 고라니가 풀을 뜯다가 고개를 들어 이들을 쳐다보고는 자리를 슬며시 내어주기도 한다. 영락없는 한 폭의 풍경화다. 소설가 박경리나 박완서가 원주의 산골과 구리의 시골에서 자연을 벗하며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간 까닭을 알만도 하다. 흐르는 물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툴 일 없고, 보이지 않아도 온갖 산의 향기 실어다 가슴에 안겨다 주는 산바람이 있어 세상이 부럽지 않다. 하니 산 좋고 물 좋은 산 속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래서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흐르는 물 같은 것이라야 한다고 했다. 〈도덕경〉에 담긴 상선약수(上善若水)! 대문호 톨스토이도 1884년 3월의 일기에서 마땅히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은 노자가 이른 물이라 했다. 물은 막히지 않으면 흐르고, 막히면 멈췄다가 차고 넘쳐 다시 흘러간다. 담기는 용기(用器) 따라 제 모양이 바뀌더라도 아무런 불평 없이 이내 순응한다. 그런 까닭에 물은 무엇보다 귀하고, 무엇보다 강한 것이라고 톨스토이는 그리 말했나보다.△수필가 전일환 씨는 장수 출신으로 전주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다. 지난 1993년 〈한국수필〉에 ‘그 말 한마디’로 등단했다. 저서로 수필집 〈그 말 한마디〉(2008), 〈예전엔 정말 왜 몰랐을까〉(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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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1 23:02

샴페인인가 쓴잔인가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했다.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급 이집트에서 억압과 고난 속에서 살아온 민족을 신이 그들을 이끌어 주었다. 그날이 유월절이다. 우리에게 독립기념일이 있다면 유대인에게는 유월절이 있다. 그날을 맞이하여 쓴잔을 마시며 맞이한다. 환희의 고향 고국 땅에서 샴페인 터트리고 그 감격을 맞이해도 부족할 탠대 그들은 쓴잔을 마신다고 하니, 그날의 비극에 역사를 잊고 새로운 미래로 가자는 야심찬 다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도 광복70주년을 맞이하였다. 과거의 역사를 생각하며 그때의 아픔과 고통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압제 속에서 살아왔던 그때를 한 번 더 기억해 보아야 하며 독립을 위해서 투쟁하고 처형되고 몸 받쳐온 애국지사들 그 희생의 정신을 기리고 살아야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큰 나무가 되듯이 역사는 뿌리다.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유와 행복이 있다고 그때를 잊은 다면 우리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면, 또 언제 우리가 그때처럼 불행한 역사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적은 항상 사회가 타락되고 갈등과 분쟁 내부적 내분이 있을 때에 침투한다. 적은 항상 우리 안에 있었다.1540년대 당시의 정세는 양반 관료들의 권력 쟁취를 위한 당쟁으로 나라 안은 온통 파당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또한 부정부패는 서민들의 생활은 물론 국운이 기울대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일본은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국력을 키워 대륙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에 일본의 정세를 파악 하기위해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이중 한 사람은 간신이고 한사람은 충신이다. 지도자는 당연이 충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간신의 말을 들었다 그 원인은 정치적 이해관계 당파싸움의 연관이다. 간신은 항상 샴페인 잔을 올려, 임금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충신은 항상 쓴잔을 바른 소리란 채찍질과도 같다. 충신은 일본이 대륙진출을 할 것이라고 보고하였고 10만의 양병 설을 주장했다. 간신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를 했다. 임금은 간신의 보고를 들어 주어 백성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엄청난 민족의 비극을 주고 말았다.항상 우리를 속이는 자는 거짓으로 유혹한다. 지도자는 항상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백성을 보라 백성과 함께 희생의 정신으로 살아야한다. 지도자는 먼 곳을 바라보라.해가 뜨는 동쪽에서 해가지는 서쪽 그 넘어 지평선을 보이지 않는 곳도 보아야한다. 그것이 능력이고 지혜다. 현장을 살피라 우리의 적은 내부에서 일어난다. 우리사회는 충신이 있고 간신이 있다. 갈등과 분쟁 거짓 선동이 있을지라도 지도자에 강력한 리드 하나로 힘을 모으는 것 이것이 남북통일로 가는 길이다. 통일이란 우리사회에 불신이 없어야 하며 갈등과 분쟁 지역갈등 타파하지 못한다면 남북통일도 바라 볼 수가 없다. 대한민국 튼튼한 반석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 국력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튼튼한 안보와 국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미래로 나갈 수가 있다. 일본은 지금 자기의 반성이 없다. 제국시대로 꿈을 가지고 있지나 않는가. 일본은 쓴잔을 마시며 안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국력을 키워 다시제국의 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대한민국은 하나로 가야 한다. 힘을 합쳐야 한다. 미래를 보고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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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4 23:02

찜통 더위와 하회탈

금년 여름은 유난히 찜통더위에 힘들었다. 아침부터 찾아든 더위는 그야말로 푹푹 삶는다는 표현이 맞는 듯싶다. 이런 더위가 밤 2, 3시가 넘어서야 제풀에 고개를 숙였으니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선풍기와 에어컨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막내딸이 손자 성일에게 어린이집에서 방학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전주 할아버지 집에 가겠다고 했다니 싫진 안했다.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린 8월 초의 어느날 아침 짐을 챙겨 식구들과 완주군 동상면 계곡으로 달렸다. 굽이진 시골길을 드라이브 하며 코끝에 스치는 아침 공기가 매우 상쾌했다. 길가의 논에는 벼가 무럭무럭 자라며 초록으로 물들었다. 어린 시절, 이 논 저 논에서 도열병에 걸려 붉은 빛으로 물든 논이 많았는데, 그런 논은 한 곳도 보이지 않으니 농사기술이 향상된 것이리라. 나같이 늦깎이 농사꾼도 벼 한 포기 병에 걸린 게 없을 정도니 말이다.자식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나가면 다리 밑을 좋아했던 아내는 이 날도 어김없이 다리가 보일 때마다 승용차를 멈추게 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에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다리가 햇빛을 가려주니 시원하기 때문이다. 이날도 다리 밑에 가서 살펴보니 평상은 아직도 사용할 때가 아닌 듯 언덕에서 잠자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려고 만들어 놓지 않았나 싶었다. 아내는 그곳에서 놀다보면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보자고 했다.그러기를 서너 번. 동상초등학교 삼거리에서 운일암 반일암 쪽으로 꺾으니 그야말로 천막과 평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올라가다가 신원리 촌락이라는 평상을 대여하는 곳에서 맘에 드는 평상을 골라 여장을 풀었다.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평상에 누우니 저절로 눈이 감긴다. 물놀이가 목적인 성일이는 튜브를 들고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손자에게는 광대가 되어야 따르는 것이 요즘 세태이지 않은가. 성일이 튜브를 밀어주고 끌어주니 하회탈이 되어 행복만점이다. 나도 이런 때가 있었는가 싶다. 외가나 친가나 할아버지 사진도 보지 못하고 자랐으니, 성일이와 많이 놀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성일이를 튜브에 태워 주다가 생각하니 천직이 발동되었다. 성일이 혼자 튜브를 타고 놀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손을 저어보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성일이는 물장구치라는 줄 알고 수면을 두드리니 물방울만 튈 뿐이다. 다시 손가락을 모으고 뒤로 저어보기를 주문했다. 제가 탄 튜브가 움직였는지 또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웃지 않던가. 잘 했다고 박수쳐주며 이번에는 반대편 손으로 저어보게 했다. 성일이가 영재인가? 다음에는 두 손으로, 그 다음에는 발을 뒤로 퐁당대기를.성일이는 저어보고 퐁당거리며 제 몸이 이동되니까 신기한 듯 얼굴에 하회탈이 지워지지 않는다.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며 다가오라면 손짓 발짓해 가며 제법이다. 가까이 와서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눈을 아주 감은 하회탈을 그린다.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자신 있는 얼굴이다. 무작정 내가 목표한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채근하기만을 고집한 지난 세월이 죄스러워진다. 좀 더 다정하게 하나하나 터득하게 해줄 걸.푹푹 찌는 찜통더위의 여름 날 하루. 성일이가 그린 하회탈이 선하다.△이종희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저서에 수필집 〈임 보고 뽕도 따고〉가 있다. 김제난산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으며, 현재 전북문인협회 감사, 안골은빛수필문학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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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8 23:02

둥근바위솔

오후 내내 자올자올 졸다가 친구의 농원에 놀러갔지요. 그냥 한 바퀴 휘 돌아볼 요량이어서 운동복을 입은 채로 편한 신발 직직 끌며 어슬렁거렸어요. 친구 내외는 없네요. 가까운 절에 기도드리러 간 게지요. 팔순의 어머님이 가끔씩 정신을 놓으시거든요.마당 한 쪽엔 바람이 미루나무 잎을 되작되작 들추며 놀고 있었고 작은 꽃들은 눈을 뜬 채 졸고 있었어요. 풀들도 팔 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리고는 끄덕끄덕 졸음에 잡혀있네요. 간간히 끼어드는 산비둘기의 딸꾹질 소리로 고요가 잠깐씩 일그러지기도 했어요.현관 앞 평상에 앉아계신 친구 어머님께 건성으로 인사를 했어요. 어머님도 내 인사는 아랑곳 않고 대문 너머 큰길 쪽만 기웃거리시네요. 멀리서 가물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아들은 용케 알아보시거든요. 혼자서 농원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오라는 데도 없고 갈 데도 없어 마냥 늘어지기 좋은 날이었지요. 대강대강 농원의 농작물과 화초들을 스치며 지나가는데 선명하고 말간 꽃대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갓 태어난 병아리의 종아리처럼 발그레했지요. 친구 내외가 오랫동안 기른 둥근바위솔이지요. 얼마 전까지도 아무 기척 없이 잎만 덩그렇더니 제 깜냥으로는 여린 꽃대를 끙끙 밀어 올렸나 봅니다. 앙증맞다는 생각을 하며 가까이 다가서다가 흠칫 물러섰습니다.눈 밝은 햇살이 둥근바위솔의 갓 피어난 꽃숭어리 위에 둘러주신 원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법 나이를 먹은 바위솔은 몸 전체가 휘우듬하니 기울어져 있었고, 묵은 잎 위에 올린 새 잎은 마치 부처님이 앉아계신 연화대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연화대였습니다. 비스듬히 기운 연화대에 앉아 온몸 빨개지도록 용을 쓰던 어린 꽃대가 이제 막, 한 생각 터트리신 겁니다. 깨우치는 순간을 지켜보며 기다려 준 햇살이 얼른 후광을 씌워드렸고요. 늘어질 대로 늘어져 신발 직직 끌고 다니던 나도 재빨리 두 손 모으고 싶었습니다. 신발 고쳐 신고 옷섶 여몄지요.세상일을 하나씩 놓아가는 친구 어머님도, 어머님의 마른 손을 요리조리 핥아주고 있는 고양이도 부처님이었지요. 세상에나! 자꾸 미끄러지는 모래 비탈 위에 그지없이 편안하게 가부좌한 강아지 똥은 또 어떻고요. 자기 농원에 이렇게 많은 부처님을 두고 친구 내외는 어느 부처님에게 빌러 갔을까요?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풀들은 그대로 한 송이 꽃이네요. 보드랍고 여린 상추 잎 안에는 세상의 모든 길이 다 환하게 들어있어요. 화려했던 봄꽃을 지우고 꼬투리에 든 열매들은 둥글어지기 시작했고요. 알 속의 갑갑한 시간을 잘 견딘 애벌레는 나무와 외로움을 나누어 가졌어요.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제 일에 정성인 모든 것들이 다 깨달은 것들이었어요. 바다를 의식하지 않고 졸졸 흐르는 도랑물 소리가, 마당귀에 의젓하게 서 있는 미루나무 세 그루가, 미루나무에서 놀고 있는 천진한 바람이 나에게는 경전이네요.혼자서 끙끙 앓다가 웃다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꼼짝 못했네요. 햇살이 몸을 기울여 마지막 고운 빛만을 골라 하늘 가득 펼쳐놓으시고는 휘적휘적 서쪽 산을 넘어가네요. 친구 내외가 대문을 밀치는 소리가 내 적막을 흔들고 나서야 발이 저리다는 것을 알았어요. 돌아가는 길엔 휘파람 한 곡조 불며 주머니 속에서 짤그락거리는 생각들로 물수제비나 뜰까요?△김영 시인은 김제 출신으로 지난 1995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한 뒤 시집 〈눈 감아서 환한 세상〉, 〈다시 길눈 뜨다〉, 〈나비 편지〉와 수필집 〈뜬 돌로 사는 일〉, 〈쥐코밥상〉, 〈잘가용 어리광〉 등을 냈다. 독서대상 대통령상, 신지식인상, 전북문학상, 전북시인상, 전북여류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전북시인협회장를 맡으며, 김제 만경여고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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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1 23:02

함께 가는 길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멀리 가려면 사막을 지나고 짐승을 피해야 하는데, 길동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먼 인생의 길에도 어려움이 어디 사막과 짐승뿐이랴.우리 동네에 80세가 넘은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매일 동네 여기저기 쓰레기통을 뒤지며 폐휴지나 재활용 고물들을 모은다. 허리가 굽어 몸도 잘 가누지 못하시는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자 동행한 적이 있다. 아들이 모두 잘살지만 의탁하지 않으려는 성미 때문에 하루도 쉬지 않고 폐휴지를 주워 모은단다. 좁은 골목에 창고 아닌 창고에 많은 폐휴지가 쌓여있었다. “이걸 팔아서 어디에 쓰려고 해요?” 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건 알아서 뭣 헐려고 그려.” 하고 별것을 다 묻는다는 투다. 아드님이 용돈도 준다면서 왜 이런 고생을 하시느냐고 묻자, 나는 돈이 필요 없다면서, 할머니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사연을 듣는 나는 부끄럽고, 내가 살아온 길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혼자서 두 아들을 공부시켜 서울에서 훌륭한 자리에 있게 만들고 매일 모으는 폐휴지를 팔아 저축한 돈 십여만 원을 노인 요양 복지병원에 있는 환우들에게 보낸단다. 한 달에 많아야 십여만 원 정도의 돈이 별것 아니어서 부지런히 일해야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것이라며 누구에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할머니는 80년이 넘는 먼 길을 누구와 동행했을까? 멀고 험한 길을 누구를 위해서 걸어왔을까? 어린 자녀들을 위해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한국동란 때 남편을 여의고 할머니는 동행한 짝도 없이 자식을 위해 아니 자식과 동행의 길을 이곳 80이 넘는 고개까지 멀리 왔던 것이다. 과연 혼자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함께 가는 사람이 있기에 멀리 갈 수 있다. 소찬이라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가족과의 밥상이 즐겁고 맛있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젊은 날엔 가족과 지금은 노인복지병원의 환우들과 동행의 삶을 걸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멀리 걸어왔고 또 멀리 가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멀리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면 당신은 누가 떠오르는가? 떠오르는 사람이 빨리 생각나지 않는다는 건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혼자 걸어온 삶이 너무 많았다는 증거다. 너무 많은 사람이 생각난다면 그 사람들과의 마음을 나누며 느리더라도 함께 걸어온 삶이 보람과 희망으로 점철된 인생이라고 여겨도 된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먼 길을 가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슬기, 행복, 즐거움 등 모든 것을 알고 소유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이렇게 멀기 때문에 빨리 갈 수가 없다.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려면 마음씨 고운 동행인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는 누구도 그 거리를 감당할 수가 없다. 지금 나와 함께 걷고 있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늘 고마워해야 한다. 내 마음과 몸이 그들에게 깊이 의지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오늘 당신은 누구와 동행하는가? 성인의 그늘이 아니라도, 조그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즐거움으로 포장된 동행의 순례 길을 준비하길 바란다. 설령 외롭거나, 홀로 산다고 혼자 가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길은 내일의 밝고 맑은 축복의 문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수필가 나인구 씨는 김제 출신으로 전북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했다. 〈대한문학〉에 시·수필로 등단했다. 저서로 수필집 〈그런 돌이 되고싶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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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14 23:02

화중군자 연 앞에서

가끔 머리가 심란할 때 ‘덕진공원’을 가면 연못의 연꽃들이 여름 내내 영화의 잔상처럼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잔상이 아니라 실상을 드러내고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준다.연(蓮)은 3일 동안만 제대로 꽃을 피운다. 첫날은 커다란 꽃봉오리를 여느라 그리 더디다. 둘째 날은 딱 하루만 그가 지니고 있는 우주의 완전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추함을 감추려고 서두른다. 하지만 비록 꽃이 피어있는 기간은 짧으나 그의 향기(蓮香)는 꽃이 피기 전부터 안개처럼 은근하게 연못을 메운다.그러다가 성급한 마음에 미리서 찾는 이들에게는 슬며시 스며들어 청정한 여운을 전한다. 그러면 그 여운은 모두를 한동안 마비의 성 안에 가두어버린다. 진흙탕 속에서도 순결하게 처연히 일어서는 자태, 아무 것도 없는 무(無)였다가 완전한 코스모스(cosmos)의 오묘함을 발하는 그를 오죽하면 예로부터 ‘화중군자(花中君子)’라 했을까. 덕진 공원에서는 해마다 연꽃 축제가 열린다. ‘덕진채련(德津埰蓮)’은 조선시대부터 전주 8경의 하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연꽃 축제의 효시라고 할 정도로 전국에 이름이 났었다. 단오 때면 이곳에서 용왕제 성격의 물맞이 행사가 성대하여 대관령 산신제인 강릉 단오제와 견줄 정도였다. 지금은 덕진공원과 채련공원이 분리되어 있는데 채련을 체련(體鍊)으로 잘 못 알고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지금은 문화축제로서 창포나 그네 대신 다양한 행사를 하는데 그래도 연꽃축제이니 연꽃이 주인공이다. 연지(蓮池)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신비스런 여인이 혼자 살면서 한여름 며칠만 잠깐 고고하게 나타나는 데 바로 이것이 덕진채련이다.파울로 코옐로는 〈연금술사〉에서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이 세상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존재 자체를 느끼라는 말이다. 또한 단 두 방울의 기름일지라도 거기에 이르는 노력과 희생을 새기라는 뜻이리라. 화려한 꽃축제를 불 밝히기 위해 인내한 연의 통과 의례들, 숨은 진실을! 밀도 높은 진흙 속에서 숨 쉬기 어려워 그 뿌리는 그렇게 구멍이 뚫려 있고 대궁도 속이 비었을까.심오한 호흡을 통해 저절로 침투된 연향의 그윽함은 내 깊은 곳까지 닿는다. 몸을 던지면 금방이라도 받아 낼 것만 같은 넉넉하고 꼿꼿해 보이는 잎과 천상선녀가 앉은 듯 한 풍채는 가슴을 활처럼 휘게 한다. 한데 세상 모든 게 그러하듯 그 화려함의 또 다른 이름처럼 짙은 어둠과 적막의 쇠사슬이 검은 연실로 박혀 있다. 그런 걸 신비라 하던가. 마치 깊은 산사에서 들리는 북 울림으로 나를 에워싸며 원초적 고독을 느낀다. 동시에 생의 환희가 새삼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친다. 나는 향연의 기운에 흠뻑 젖는다. 오랫동안 잊고 산 생명의 의미를.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겨울가고 또 다른 봄을 그린다. 연꽃은 당연함으로 사는 인생길에, 잠깐 낯선 설렘을 주고 다시 진흙으로 스러진다. 간절한 염원으로 만난, 바람과의 한 순간 스침으로 꽃의 존재는 꺾인다. 이제 연은 본연으로 돌아가 우주와의 교감하겠지. 그 깊은 진흙 속에서 까마득한 땅 밑의 울림을 품는다. 그리고 한 줄기 촉각으로 하늘에 귀 기울인다. 그러면 언젠가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누가 감히 그런 기약을 자신할 수 있으랴. 서정주님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서 처럼 그리 섭섭지는 말고, 또 그렇게 애절하게는 말고 담담하게…그러면 언젠가 또 마주침의 연이 오지 않겠는가.△수필가 이민숙 씨는 〈좋은문학〉으로 등단. 현재 전북대 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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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31 23:02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못의 물은 파랗고 물고기가 뛰놀고 있다. 둘레 돌 틈새에는 큼지막한 분홍색 꽃이 한 송이 피어 있고 연못가의 버드나무 가지가 치렁하다. 그 시절 연못 주위엔 버드나무만 많았다는 것을 나중에 사진을 보고 알았다. 연못가 풀밭에 새들인지 병아리인지 알 수 없는 날짐승 두 마리도 아이들 속에서 놀고 있다. 연못은 넓은 집 마당에 인위로 만든 작은 물웅덩이 같은 게 아이의 그림답다고나 할까. 풍경 앞에는 짧은 파마머리를 한 젊은 엄마가 카메라를 조준하고 있다.연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집을 짓고 살았던 우리는 동네 아이들과 더불어 덕진공원에 자주 드나들었다. 늘 튼튼한 다리를 붙여서 함께 자동으로 찍을 수 있는 사진기를 들고 다녔는데, 그때의 추억들이 사진처럼, 울긋불긋한 색조의 연못 속에 담겨 있다. 내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학원에서 열린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연못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려 그렸지 싶다.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들이 되어 한여름 날을 수놓고 있다. 엄마들은 연꽃보다 더 어여쁜 꽃 중의 아이 꽃을 돌보기에 여념 없다. 할머니가 된 내가 옛날 그랬던 것처럼.무더위가 피어낸 연화장(蓮花藏)에 내려앉아 액자 속의 추억을 떠올린다. 더운 여름에는 집 안을 깨끗이 해야 덜 덥다고 하던 그 사람의 잔소리도, 다시 만나기로 한 이별 같이 한두 철 전의 일처럼 일상의 어느 귀퉁이에서 그림으로 나올 때가 있다.사랑의 열기를 품고 달려갔던 연지. 얼굴의 홍조가 연꽃들로 더더욱 붉어져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 새벽. 이른 아침 안갯속에 시퍼렇게 넘실대는 연잎 사이사이로 올라와 있는 연향이 하늘 한가득 그윽했다. 연못가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이 옷깃 사이로 연향을 날리며 한 풍경 속으로 어우러졌었지. 뜨거운 여름에 연꽃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탓할 수 없지 않은가.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으로 기억하리라.봄 내내 푸름을 키워내며 산과 들은 여름의 절정을 오르느라 한시도 한가할 틈이 없었다. 초록 카펫을 깔아놓은 듯, 한끝을 말아 쥐고 둘둘 굴리면 한없이 감아질 것 같은 들녘. 말았다 폈다 할 수만 있다면, 비어 있어 싸늘할 겨울 들녘을 위해 마련해 두고 싶다.마침내 배롱나무에 빨간 꽃잎이 달리기 시작하니 초록 들판은 긴 숨을 들여 마시고 생동감 넘치는 춤사위를 준비한다. 백일 동안 배롱꽃이 피고 지는 사이 눈물 같은 벼꽃도 피어서 영근 꿈을 키울 것이다. 후끈하게 땀이 배어 끈끈한 여름날의 사랑도 한여름의 소낙비에 젖으면 다시 생기를 얻고 밤바람 속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뜨거운 열기를 날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생명이 숨 쉬는 숲 속의 밀어들, 아침 새벽부터 부지런한 새들의 요란한 지저귐. 여름이 아니면 언제 들을 수 있을 건가. 오랫동안 갇혀 품어 왔던 생의 분출을 위한 애절한 울부짖음. 처절한 절규인 듯 온 생명이 다하도록 외쳐대는 매미들의 독주도 여름의 백미가 아닌가.흐르는 땀방울을 감당할 기력이 없어 쩔쩔매면서도 이 생명의 절정을 구가하는 여름이 빨리 가기를 원치 않는다. 하루의 피곤을 느슨히 풀어내는 태양의 한숨인 듯, 노을 지는 서녘 하늘이 어찌나 고마운지. 절대 변하지 않는 위대한 유산, 사랑만은 멈출 수 없는 것. 원하기도 전에 이미 가고 말 이 여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천년 된 연실에서도 싹을 틔워낸다는 연꽃의 꿈을 연화 세상에 와서 다시 읽는다. 진흙 바닥 같은 삶의 터전에서 연심(蓮心)을 챙겨본다.△수필가 조윤수 씨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전주여중, 전주여고, 경희대, 부산동아대학교를 졸업했다. 지난 2003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나의 차마고도〉, 〈명창정궤를 위하여〉, 〈나도 샤갈처럼 미친(及) 글을 쓰고 싶다〉, 〈바람의 커튼〉이 있다. 지난해 제6회 목포문학상 수필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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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4 23:02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길

남풍이 찾아온 쪽빛칠월은 논두렁마다 가는허리 풀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풀숲을 이루고 있다.한해를 시작하며 지우고, 버리고, 줄여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정월의 산과 들녘은 텅 비어 있었으나 지금의 칠월은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 속에 감춰진 지나온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환갑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들꽃처럼 키워주시니 때로는 시린 가슴도 데워지고, 자연과 눈을 맞추고 귀 기울여 걷는 길은 여유로움과 즐거움이 있어 하루하루가 참으로 소중하고 사는 재미가 있다.삶이 건조하다 싶으면 경각산과 구이저수지가 손잡고 있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진 술테마박물관을 자주 찾아간다. 우뚝 솟은 산이 나를 안아주는 포근함은 아마도 어머니의 품 속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마음이 통하는 이들이 찾아오면 언제나 이곳을 가게 된다. 싸목싸목 걸으며 눈 안에 산과 그리고 자연을 담다보면 산처럼 무거운 걱정을 메고 비탈길을 내려오는 늙은 아버지가 보이고, 쑥국새 우는 날에는 가랑비 맞으며 사랑하는 모습도 그냥 볼 수 있어 좋다. 구이중학교→구이저수지 제방→저수지 숲 속길→호숫가 데크→술 박물관 구간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호수는 오는 이 마다 탄복을 한다.본래의 둘레 길은 산비탈에 사는 주민들이 험한 산길을 힘들여 넘지 않고 산자락을 오르락내리락 이동하는 자연스러운 길이었을 것이다. 둘레 길에는 논두렁길, 숲길, 고갯길, 마을길 등이 다양하게 섞여 있어 그 길을 걷다보면 나름대로 향기가 있어 어느 길을 만나든 부담 없이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산의 능선을 따라 오르기에 비록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둘레 길을 거닐다보면 시공을 떠나 한없는 여유로움을 느끼며 인간체험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이 주변에는 딸기와 포도 농장이 있고 기류를 이용하여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참 좋다. 이곳에 자리한 지는 일 년 남짓 되었지만 원주민처럼 해돋이에서 해넘이 시간까지 언제나 지켜 볼 수 있어 노후에는 아마도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이곳은 비가 내리면 운치가 있고 혼자 있어도 절대 외롭지 않은 이야기가 엮어지는 곳이다. 지금도 솥뚜껑에 돼지기름 올려놓고 지글지글거리는 소리가 함석집 지붕 위를 때리고 있다. 이런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불러 술 한 잔 마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옛말에 사흘에 한 번 마시면 금이요, 밤에 마시는 술은 은, 낮에 마시는 술은 납이라 했거늘, 오늘 우리는 세 가지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와인 한 잔 마시면 아주 기분이 좋아지는 여자이기에 다른 술은 맛을 몰라도 용서가 된다. 형용할 수 없는 그리고 모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감을 가진 이곳에 많은 이들이 찾아오길 희망한다.퇴직하면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그동안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서로가 되어야한다고 하였지만 농사일을 하면서 서로가 다름과 차이에 문제가 생겼다.생명을 기르는 일은 수도자의 길과도 같다. 조금씩 심고 가꾸어 새잎이 돋아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벌레를 잡아주고 흙을 밟는 아름다운 ‘소담과 安土尼吾’의 해피 데이를 꿈꾼다.운무로 인해 신비스러움이 가득한 작은 연못에 붕어와 우렁이 그리고 부레옥잠과 홍연이 살고 있다. 내년쯤 아마 연분홍 입술을 열어 그 은은한 향내로 세상을 삼킬 듯 뿜어내는 연꽃이 필 것을 생각하면 절로 흥이 난다. 가끔은 손등이 햇볕에 그을리고 가녀린 손등에 핏줄이 불거져 이전의 내 모습은 아니어도 손톱 밑에 흙이 들어간 지금의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닐는지. 또 다시 남풍이 분다. 풀은 누웠다 다시 일어서고 나도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선다. 풀도 나도 하나 되어 붉은 웃음을 웃는다. 자연이 사람을 위로하는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곳에 발자국을 남긴 칠월이 좋다.△ 수필가 겸 시인인 안 영 씨는 〈문예사조〉(수필)와 〈한국문학예술)(시)로 등단. 수필집〈 〈내 안에 숨겨진 바다〉가 있다. 현재 한국문학예술 전북지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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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17 23:02

조약돌

그는 내 마음을 매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기자기함에 일단 눈길이 머물면 좀처럼 헤어나질 못한다. 요모조모 볼수록 오목한 용모에 매료돼 사춘기의 나를 보는 것 같다. 얼마나 오랜 시간 마모를 거듭했으면 살갗이 이리 보드라울까. 조약돌에서 지난한 세월을 읽는다. 여느 몽돌과는 그 격이 다르다. 아기 볼을 쓰다듬는 느낌이 이럴까. 맨살의 촉감이 감미로운 나머지 메마른 정서가 촉촉해진다. 둥글납작한 형상이 대부분이나 어떤 녀석은 타원형이요, 묘하게 휘돈 놈은 꼭 소라를 닮았다. 영락없는 조가비도 있다. 저마다 다른 상을 지녔어도 어느 한 곳 모난 데 없이 한결같이 반드럽다. 모진 세파 속에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음으로써 오늘에 이르렀음을 생각하니 그 걸음이 장해 보인다. 대개 조약돌은 단색인데 이들은 한 몸에서도 다채롭다. 몸의 삼 할이 잿빛인 놈은 중간에 살구 톤으로 번지다 미색으로 갈무리되었다. 그런가 하면 다홍색을 온몸에 입은 녀석은 오밀조밀한 선이 하나씩 늘 때마다 농담이 달라지는 절묘함에 탄성이 나온다. 어떻게 이리 오묘한 하모니를 이루는지 기특하다. 바닷물과 바람과 햇볕의 정기가 적절히 버무려져 곰삭으면 이리 영롱할까. 돌이라기보다는 옥으로 격상시켜 주고 싶다. 녀석들은 전체적으로 은은한 색을 띠고 있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절제와 겸양까지 지녔다. 이들도 연륜이 쌓이는 걸까. 고만고만한 몸에 유려한 문양에다 이미지도 다양하다. 실금이 버선코처럼 유선형으로 돌다 어느 지점에서는 지문처럼 흐르기도 한다. 또한 구불구불한 무늬가 등고선 같은가 하면, 파도가 층층이 밀려오는 문양도 있고 서녘 하늘의 노을 형상을 띤 것도 있다. 섬세한 선과 색이 만나니 산이 되고 새가 되어 수묵화를 이루고 담채화를 그려냈다. 어느 화가의 못다 이룬 꿈이 조약돌 속에서 환생이라도 했을까. 어설픈 붓끝으로는 흉내 낼 수없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외경심마저 인다. 사람이 정성으로 빚은들 이만할까. 아무래도 신의 손길이 지나간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리 예스러우랴. 동글동글 매끄러운 것이 미려한 문양에다 영롱한 색조까지 지녔으니 이 아니 어여쁘랴. 사람으로 치자면 단아하면서 맵시까지 지닌 여인이랄까. 무심코 바라보면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첫사랑에 달뜬 마음이 이럴까. 녀석은 어느새 서른 지기가 다 되었다. 그 옆에는 어른 주먹만 한 흙빛 몽돌과 황토색 몽돌도 나란히 누워있다. 수족관에서 걸어 나온 이들은 멀리서 보면 더없이 다정한데 표면은 꺼칠하다. 요리조리 봐도 물 찬 제비 같은 조약돌에는 비견할 바가 아니다. 요놈들도 분명 몽돌 과이나 어느 해변 출신이다 자랑치 않고 더 힘세다고 거드름 피지도 않는다. 더 잘 보이고 좋은 자리에 놓이려고 자리다툼도 하지 않는다. 그저 대나무 바구니 안에서 조신하게 어깨를 기대고 더불어 산다. 어찌 보면 묵언 수행 중인 수도승 같다. 아무래도 조약돌이 우리 집에 온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모난 마음이 쉬 사그라지지 않을 때가 있다. 세상사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내 가슴만 시린 줄 알았다. 그럴 때 문득 녀석을 보면 무심한 듯 초연한 모습이 은연중 나를 일깨운다. 침묵 속에서 묘한 울림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각진 감정도 삭이다 보면 두루뭉술해지니 연륜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둥글게 품는 도량을 지니라 이른다. 깊은 강은 조용히 흐른다 했던가. 제 몸이 저리 닳는 동안 안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두질했을까 생각하니 세상을 대하는데 옹졸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수필가 이양선씨는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와 계간수필로 등단. 수필집 〈잠박(蠶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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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03 23:02

무 예찬

무는 배추의 단짝이다.무는 항상 배추 뒷자리에 선다. 사람들은 무보다는 배추를 더 우위에 놓는다.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무김치는 쓸모가 없다. 찌개에 들어가 자신의 끼를 발휘하고 싶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다.배추는 백채라는 한자어에서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나는 무우가 아닌 무가 표준어라는 사실을 얼마전에야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배추만큼 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그러나 무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다면 배추 뒤에 놓는 일이 미안해질 것이다.요즘 면역성을 높여준다는 이유로 홍삼이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 무는 산삼에 버금가는 채소라지만 밭에서 나는 삼으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무의 활약상도 평범하지 않다.무를 자박자박 썰어 설탕에 재어 두었다가 차로 마시면 기침이나 감기에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무를 갈아 즙을 내어 마실 수도 있다. 무즙은 시험에 낙방할 뻔한 수십 명의 학생들을 구제해 준 저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즙이 엿기름을 대신하여 넣었을 때 엿을 만들어 내는 탁월함을 지녔기 때문이다.총각무는 잎줄기 모양이 머리를 갈라 땋아서 묶은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투를 틀기전의 장가들지 않은 총각의 머리 모양을 닮은 것이다. 총각무의 무청에는 사과의 10배가 넘는 비타민 씨가 들어 있다고 한다.무청 시래기를 말려 비행기에 실려 보내며 생계를 잇는 농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시래기 축제를 여는 마을도 곳곳에 생겨난다. 무 자체에도 비타민 C가 많으니 미용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무와 친해지길 권한다.무의 섬유질은 니코틴을 제거해 준다고 하니 금연이 어려우신 분들이 챙겨 드시면 좋을 듯하다.무는 자신을 깍두기로 대하든, 무 밑동 같은 처지에 놓이든 굴하지 않는다. 깍두기는 그 옛날 궁궐 상에 오르던 귀한 음식이어늘 어이 깍두기 신세를 논한단 말인가.김장철이 되어 배추가 100포기,200포기 줄을 지어 나서면 무도 질세라, 소수의 무리일망정 졸래졸래 배추 군단을 따라나선다.무채가 되어 양념 속에서 제 몫을 다한다. 도막 도막 잘려 배추김치 속으로 들어가 깊은 맛을 내는데 일조한다.무김치는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만 담아 배추김치 대열 구석에 존재감 없이 세워 둔다. 동치미는 우리 선조들의 맛을 흉내 내기가 쉽지 않고 항아리를 땅에 묻을 수 없는 생활구조 탓에 아예 모습을 감추고 있다.본디 제 모습이 드러나야 위대한 것은 진정한 위대함이 아니라 했다.자신은 드러나지 않지만 자신으로 하여금 주위를 더 유익하게 하는 무리가 있다.무도 그중 하나다. 무가 있으므로 배추는 더 빛이 나고, 무가 늘 곁에 있어 외롭지 않다.무는 각종 생선 조림에서 오랜 가열로 인해 자신의 본성을 다 잃고도 마지막까지 우리의 미각을 충족시켜주는 친절함을 잃지 않는다. 최후에 때깔 잃은 모습으로 남아 우리에게 무의 진미를 누릴 수 있는 황홀한 순간을 선사한다.무는 내 한 몸을 던져 주위를 구하지만 자신만이 가진 고유의 진가를 지킨다. 그런 고고함이야말로 무의 매력이자 저력이며, 내가 무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스스로는 김장김치로 대접받지 못한다 해도 다른 김치의 깊은 맛을 돕는 선의를 인정해주고 싶은 까닭이다.△수필가 왕미선씨는 2013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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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26 23:02

마스크, 무서워요

길을 가다가 누군가 생끗 미소 지으며 눈길을 주면 기분이 좋다. 온종일 생각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피고 일하는 손끝이 통통 튀기도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일지라도 서로 눈을 바라보면 호감을 갖게 된다. 대화를 할 때도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 내용 전달이 잘 되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끼리도 눈길을 주고받으면 얼마든지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봄 되어 슬슬 햇빛이 내리니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도저히 표정을 바라볼 수가 없다. 태양열이 피부에 닿으면 살갗이 그을고 거칠어지며 자외선은 피부암을 유발한다고 하니 마스크를 쓰는 건 어쩜 당연하다. 집안에서도 햇빛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니. 나도 벌써부터 파라솔을 꺼내 외출 가방에 챙겨 넣었다. 언젠가 길에서 애기엄마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었다. “아줌마, 죄진 거 있어요? 얼굴을 싸매도 분수가 있지. 애들이 무서워 울잖아요?”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한 중년의 아줌마는 “싸매건 말건 무슨 간섭이야. 내가 애들보고 울라 그랬어?” 만만치 않은 둘의 큰소리에 엄마 치마폭에 달라붙은 큰아이와 유모차에 앉은 작은아이는 겁을 잔뜩 먹은 채 자지러졌다. 하기야 어른인 내가 봐도 무서울 때가 많다. 검은 등산복에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눈만 빠끔히 내놓고 팔을 휘휘 젓는 사람을 마주치면 정말 무섭다. 게다가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으면 모양새만으로도 섬뜩하다. 차림새는 그렇다 치고 복면을 한 얼굴로 왜 그렇게 상대방을 빤히 바라보는지. 자기는 다 감추어 보일 것이 없지만 상대는 철갑을 두른 사람에게 알몸을 보이는 기분이다. 그 서늘함이라니. 요새는 남자들도 선크림을 뿌옇게 바르고 다닌다. 자외선이 피부의 적인데 여름엔 당연히 햇빛 차단이 필요하고 겨울에는 찬 공기를 막아 얼굴이 건조해지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보니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모자와 마스크는 필수가 되었다. 더구나 작업 현장에서 추위와 맞서는 사람이나 겨울에 오토바이를 탈 때는 그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그런데도 얼굴을 가리면 두려움을 주는 건 확실하다. 아기 앞에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흥” 하면 무서운 호랑이가 되고 “야옹” 하면 날카로운 고양이가 되어 아기에게 겁을 주게 된다. 아기를 웃게 하려면 얼굴을 드러내고 환히 웃으면서 어른도 아기가 되어야 한다. 하물며 마스크를 쓰고 아기와 마주치면 경기를 할지도 모른다. 메르스로 전국이 휘청거리고 있는 올 여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두 딸과 공항에 들어서니 눈에 띄는 사람 절반 이상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마중 나온 큰딸과 사위들도 마스크를 쓰고 다짜고짜 우리에게도 씌웠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증하는 바이러스까지 차단할 수 있는 방역용 마스크란다. 눈만 겨우 보이는 마스크를 쓰고 나니 숨쉬기도 불편하고 사람들 만나는 걸 삼가야 했다. 입가의 미소까지 감춰버린 마스크의 위력은 가지가지다. 이대로 길에 나서 아기를 만나면 겁을 낼 것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두려워 피할 것이다.△수필가 김춘자 씨는 임실 출신으로 지난 1998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했다. 전주문인협회 편집국장, 전북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임실문인협회 부회장과 전북펜클럽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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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9 23:02

눈과 귀가 어두워지는 뜻은

60대 중반에서 80대 초반으로 구성된 전직공무원 친목모임에서의 일이다. 인사말을 하던 회장은 중간에 재미있는 말 한마디 하겠다 더니 “늙어 가면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어두워지는데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눈이 침침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볼 것 못 볼 것 다 보아 왔으니 이젠 못 볼 것은 더 이상 보지 말라는 뜻이고, 귀가 어두워지는 이유는 들을 말 못들을 말 다 들어왔으니 이젠 안 들어도 될 말은 더 이상 듣지 말라는 하늘의 뜻입니다.” 라고 했다. 이에 참석자들의 폭소가 터졌다. 생각해보니 회장의 말은 우스개로 한 말이겠으나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그럴싸한 말이었다. 요즘 TV나 신문을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거의 매일 섬뜩하고도 참담한 사건사고가 터진다. 사회도 그렇고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망측하고도 볼썽사나운 광경이 연일 계속된다. 이런 뉴스를 접하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불신풍조가 생겨 선한 사람조차도 나쁜 사람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보라.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못 믿겠다는듯 어둡고 누군가를 경계하는 눈초리가 역력하다. 어느 중견코미디언이 한 말이 생각난다. 각종 범죄뉴스로 말미암아 밤에 잠을 자도 꿈자리가 사납더라며 “밤 9시 뉴스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 대신 저녁시간에는 명랑한 코미디나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프로로 대체해 온 국민이 편안하게 웃으면서 주무실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게 나의 꿈이다.”라고 한 바 있다. 그 뒤 그는 안타깝게도 급성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의 뜻만큼은 갸륵했다. 어느 스님 한 분도 그랬다. 세상 사람의 이러한 행태가 꼴 보기 싫어 아예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심심산골 오두막집에 들어가 텅 빈 방안에 홀로 앉아 책 몇 권에 촛불 하나 밝혀 놓고 있으니 그렇게 그윽하고 편안할 수가 없더라는 심경을 토로한 산문을 읽은 적이 있다. 외국도 마찬가진 것같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1889~1963)의 「내 귀는 소라 껍질」이란 시를 보면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의 파도 소리를 그리워 한다’ 라는 짧은 시가 유명한데 이는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잡소리를 거부한 채 오직 자연의 소리만 듣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로 불안해진 나의 생각을 사회나 정치권 등 남들의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진정 나는 이들과는 상관없는 초연한 사람인가? 내 안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실현 불가능함에도 재물은 남보다 더 많이, 지위는 남보다 더 높게, 명예는 남보다 더 넓게 하려고 몸부림친 적은 없었던가 하는 물음에 ‘아니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남의 성공에 시기심, 질투심은 물론 미움과 불안 초조로 밤잠까지도 설친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이렇듯 외부와 내부로부터의 무차별 공격에 대해 평정심을 되찾아야 할 때가 왔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가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홧병이나 우울증 등 정신건강을 해침은 물론 육신의 건강까지 잃기 딱 알맞다. 이럴 때면 나는 으레 산을 찾는다. 그 많은 등산객으로 인해 몸살을 앓아 짜증을 낼법도 한데 말없는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끌어 안는다.△수필가 김학철 씨는 2013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전북문인협회 이사·영호남수필문학회·한국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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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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