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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들의 외침을 따라서

무지의 소치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방법을 모르면 답을 얻기가 힘들 땐 옆 사람의 의미 없는 듯한 중얼거림도 되새겨보면 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몇 해 전 빠듯한 주말을 쪼개어 수원에서 정읍으로 나를 만나겠다고 친구가 기별을 보내왔다. 가을이라 내장산 단풍 구경 차 북적대는 대기실에서 사람 사는 맛을 느끼는 것도 괜찮았지만 상쾌한 바람을 쐬고 싶어졌다. 광장 한 켠 우뚝 선 전봉준 동상 중앙 원 안에 크기가 다른 분명 한글들이 새겨져 있었다. 한자였으면 애초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한글이라 좌우상하 대각선으로 읽어도 의미 없는 글자들이었다. 나폴레옹이 로제타석 글자를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반갑게 친구를 안았다. 모르는 것을 물으면 순간의 창피지만 아는 척 넘어가면 평생의 창피라고 여겨온 지라 궁금증을 어떻게 그냥 보낼 수 있겠는가? 갸우뚱하던 친구의 중얼거림은 가운데로? 바깥쪽으로? 오! 분명 수업시간에 배웠으련만 배운 것의 절반을 이해하면 제대로 된 제자이고 그것의 반을 기억하면 우수한 제자라는데 나는 그걸 배웠는지조차 모르는 사발통문이라는 것이었다. 내친 김에 우리는 황토현으로 갔다. 전시장 초입에서 만난 그림 속 농부들의 모습은 무서웠다. 하늘을 알고 땅을 알아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순박한 농부들이 오죽이나 삶에 지쳤으면 투박한 손에 그들의 혼이 담긴 농기구를 무기로 들고서 저리도 눈을 부릅뜨고 있을까?세월은 흐르는 것. 또 모든 것은 잊혀 지고야 마는 것. 그러나 기억은 되살아나는 것. 올 여름, 점심을 먹으러 이평에 가게 되었다. 말목장터길? 한 여름 땡볕아래 호기심을 채울 수 없었다.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것. 여름 휴가에 또 나를 찾은 친구에게 박장대소하게 만들어준 동상과 황토현을 상기시키며 말목장터로 향했다. 5일 장터였던 사거리 이름이 말목장터였고 그 곳이 동학 농민 혁명의 최초 집결지였다고. 사람 사는 맛이 물씬 풍겼을 장터. 거둬들인 곡식을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달구지에 싣고 한 푼 더 받고자 시끌벅적 흥정하는 장터 풍경에 눈에 선했다. 내 엄마도 그렇게 우리를 키워 냈으니까.물 없이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일. 내 아버지도 모내기 전부터 벼를 거둘 때까지 매일 새벽 여기저기 흩어진 논에 물꼬를 보러 한 바퀴를 빙 돌고서 우리가 학교에 갈 때쯤 소에게 줄 풀을 한 가득 지게에 얹어 돌아오시곤 했었다. 농부들의 심장을 찢어낸 것은 하늘이 값없이 내려 주는 물이었다. 멀쩡한 보를 다시 쌓고는 물을 가두어 물세라는 명목으로 농민들의 피를 빨아댄 만석보를 찾아갔다. 사적비로 대신하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풍요로운 배들평야 둑에서 만석보 시를 읽어가는 내내 절규하는 농부들의 외침이 심장으로 몰려왔다. 그 시절 저 벼들이 변신한 쌀로 식구들이 몇 끼나 배 불리 먹었을까? 곳간에 나락을 쌓을 겨를도 없이 물세로 뜯기고 다시 또 계속되는 배곯던 삶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우리나라 한 해 음식 쓰레기 500만 톤, 처리비용은 9000억 원, 달콤한 간식에 치어서 한 끼 밥을 안 먹으면 안 되냐고 되묻는 아이들이 끼니 굶기를 밥 먹 듯 했을 날들을 상상할 수가 있을까?우리 발길을 돌리게 한 것은 태풍을 내세워 흠씬 뿌려대는 장맛비였다. 값없이!△수필가 정요순 씨는 지난 2007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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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21 23:02

나무에게 배운다

봄부터 시작했던 생명의 대장정이 희망의 씨앗을 땅에 묻고 잠시 쉴 모양이다. 사실 인간은 봄에 씨를 뿌리지만, 대부분의 초목들은 가을에 씨를 뿌린다.하루가 다르게 색깔이 변해가는 단풍을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지다가 겨우 숙제를 마치려는 듯 지리산 뱀사골 와운 마을에 있는 천년송을 찾아 나섰다. 단풍철에 왜 하필 사철 푸른 소나무를 보기로 했는지 자신의 결정을 의아해 하면서도,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용기를 불어넣어줄 무언가를 은연중에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을까?아름다운 계곡의 단풍을 따라서 올라가다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일가족 세 사람의 자살 뉴스를 들었다. 물론 무리한 욕심이 파멸을 부른 측면도 있었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인데, 열두 살 딸이 직접 그린 자신의 얼굴과 담임교사의 연락처도 유서에 남겼다고 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또 하나, 전셋집에서 쫓겨나게 된 65세 노인이 자기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을 위해서 개의치 말고 국밥이라도 사드시라.고 10만 원을 봉투에 넣어두고 목을 맸다는 소식도 함께 떴다.지난 2월 송파동 세 모녀에 이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픈 소식이다. 당장 세 모녀에 대한 시를 썼다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던 자신이 부끄러워 발표를 못 하고 그냥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사실 그때도 정작 내가 슬펐던 것은 그 상황을 사회문제로 보지 않고 일부 언론에서는 착한 사람, 양심 있는 사람들이었다.라고 본질을 호도한 보도 행태 때문이었다.자살률 1위, 하루 평균 4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마치 그들의 비명처럼 들려서 오늘만큼은 낙엽조차 밟을 수가 없었다.우리나라의 자살, 정말 이대론 안 된다. 자살로 인한 충격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남는다. 연령대별 지역별 자살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여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세상의 모든 나뭇잎들은 저마다의 형태와 빛깔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물론 사람은 더 그렇다. 때가 되어서 저절로 떨어지는 이파리조차도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와운 마을 입구에서 문득 나를 붙잡는 소나무가 있다. 그것은 세상에 우뚝 선 듯 우람한 지리산 천년송이 아니었다. 바위 위에서 힘겹게 그러나 고고하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아직 이름조차 없는 두 그루의 소나무다. 물기 하나 없는 바위 위에서 제 뿌리를 뱀처럼 똬리 틀고 있는, 손을 내밀어 서로 꼭 잡고 있는 것처럼 뿌리 하나가 둘을 잇고 있는 그 모습에 그만 울컥하고 감격해서 천년송 따윈 잊어먹고 말았다.저렇게 악조건에서는 당연히 생장속도도 늦었을 터, 키는 작지만 제법 나이가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들은 와운 마을 입구에 마치 장승처럼 서 있다. 그래서 그들을 마을 위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천년송에 견줘 지리산 부부송이라고 불러주고 싶었다.경제가 어렵다. 좀 길어서 그렇지 굴은 아니다. 그 끝에서는 반드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질 터널이다. 그래서 지금은 나무의 지혜를 빌려서라도 살아야만 한다. 팔을 들어 올려 자기 그늘에 들어와 있는 생명들에게 햇볕을 쬘 수 있도록 배려하는 층층나무만 봐도, 나무는 사람의 스승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시인 김영기 씨는 2005년 〈문학시대〉에 시로 등단. 시집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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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14 23:02

책향

햇볕이 신호등에서 머무는 사이 한 줄 바람이 인다. 은행나무가 일제히 잎을 흔든다. 한순간 진한 향기를 터뜨리며 노란 오후가 아스팔트 위로 흩날린다. 고만고만한 상가건물이 어깨를 겯고 있는 이쪽과는 달리 길 건너는 가을 색이 짙다. 등교하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도서관에 가는 길이다. 단풍에게 곁을 내준 도서관이 보인다. 신호가 바뀌었다. 멈춰선 자동차들의 흐름을 거슬러 시간을 건넌다.아이들의 상급학교 진학에 맞춰 전주로 거처를 옮긴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번째 가을을 맞았다. 주거지를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챙겨야 할 일들이 많다. 번거로운 일들이 며칠 만에 끝나자 마음에 틈이 생겼다.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고 윤을 내며 몸을 닦아세워도 틈 사이로 꽃샘추위가 파고들었다. 그 해 꽃샘추위는 유달리 맵차 사월에도 겨울 외투를 면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신학기를 시작한 아이들의 설렘과는 달리 바뀐 환경은 붙임성 없는 나를 강마르게 했다.겨울의 되새김질과 봄날의 아지랑이가 아침저녁으로 교차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한적한 마음이 먼 곳의 친구 생각을 불러왔다. 유붕 자원방래 불역낙호라.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라. 흘러 들은 풍월도 내 마음인 양 중얼거려졌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과 닫힌 문안에서의 시간. 침침한 날을 걷어내 줄 햇귀가 필요했다. 간절함은 아름다운 날을 함께 한 친구에게 손편지를 쓰게 했다. 격조했던 시간을 접어 시집에 끼워 보낼 요량으로 우체국을 찾은 날이었다.우체국까지 산책 삼아 10여분 걸으면 된다는 경비 아저씨 말대로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포장한 시집의 기분 좋은 무게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무게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 같다. 힘을 써 들어올려야 하는 무게가 있는가 하면 마음에 얹히는 무게도 있다. 생활에서 느껴지는 이런저런 무게가 있지만 다른 이를 위해 갈무리한 선물의 무게나 등 뒤에 업힌 아기의 무게는 흐뭇하다. 책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주변에 귀를 세운 건물들과는 달리 완만한 곡선의 건물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낯선 골목 걷기를 즐기는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약국 뒤편 골목을 지나 만난 그 건물은 도서관이었다. 문득, 가지마다 등 밝힌 백목련을 만난 듯, 고목에 만개한 벚꽃을 만난 듯, 그날의 기쁨과 놀라움은 지금도 미소 짓게 한다. 누구나 살면서 가슴 뛰게 하는 대상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물이 되기도 하고, 사상이나 종교, 철학이 될 수도 있겠다. 우연히 마주친 도서관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그 날부터 바람길이라도 발견한 듯 도서관을 찾았다. 궁형을 커피나 녹차를 택하는 것처럼 선택사항쯤으로 여겼을까, 큰 사내 사미천의 손을 잡고 중국 역사 한가운데를 종횡무진 달리고, 하루키의 섬세한 시선을 따라 걷기도 했다. 니체, 장자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고전들. 책향에 묻혀 쉼표처럼 읽은 시집들. 그곳은 소통의 부재로부터 나를 심호흡하게 했다.어느새 도서관이다. 입구 느티나무는 갈변한 잎들을 바람결에 띄우고 있다. 잠시 나무에 기대선다. 낙엽이 허공에 쓰는 시를 읽는다. 생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도서관 마당에서 묵은 이 아름진 나무는 수많은 책을 품고 있을 것 같다. 책장을 넘기듯 가만히 나무를 쓸어본다. 향기가 깊다. 책향 묻어나는 가을이다.△라환희 수필가는 전북수채화협회 회원, 솔바람소리문학회 동인으로 문화관광해설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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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07 23:02

가을볕으로 한나절

감나무에 매달린 호박을 건사하는 넝쿨손. 바투 쥠이 옹골차다. 고구마 순을 추어올린다. 우두둑, 줄기마다에 내린 하얀 고독들도 따라 뽑힌다. 쇠해지는 귀뚜라미 소리에 밭 자락의 까마중도 서둘러 제 온 곳으로 갈 채비를 하는 텃밭.수돗간 옆 자두나무에서 늦여름을 갉아먹은 쐐기가 미끄러진다. 내 생각의 실타래도 아득한 기억 저편으로 굴러간다. 옆구리 연한 살을 쏘인 것 같은 통증의 시간들. 나는 쐐기 한 마리와 함께 산다. 습관처럼 솟구치는 생각의 독점들 때문에 힘들었을 내 가족과 주변들을 향한 참회의 쐐기.옆구리 쓰리는 횟수가 늘어나면서부터 나는 사람 목소리보다 텃밭의 생명들 속삭임에 귀 기울였고 통증을 잊게 하는 자두의 신맛에 익숙해졌다. 고추, 토마토, 땅콩, 단호박, 해갈음을 알리는 매화. 살갑고 사근사근하지 않아도 좋다. 눈으로 하냥 매만지다가 내려놓는 아쉬움은 섹스다. 지나온 허물들이 눈물샘에 들 때는 서둘러 하늘을 본다.지이~나 가버린 이~일을 헤아려, 보오네~ 손전화 노랫말이 텃밭을 덮는다. 왕치가 더듬이를 들어 낯선 소리를 벗겨낸다. 틀림없이 교장으로 재직 중인 지인일 것이다. 토요일만 되면 등산을 가자며 조르는 그는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성미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는 지청구를 늘 듣는다. 전화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성격 탓도 있으나, 전화 올 곳도 특별히 기다려지는 전화도 없다. 그러나 8년 동안 폴더폰을 쓸 때는 폰걸님들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일이 낙이었다. 그녀들이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하게 바꾸라고 전화를 걸어 내 귀와 입의 거미줄을 걷어 주었다. 오랫동안 그녀들은 나를 찾았다. 그러나 폴더폰을 더 이상 고칠 수 없다는 판정은 결국 나를 스마트하게 했다. 스마트폰으로 바뀐 뒤부터 그녀는 멀어졌고 나도 전화에 무관심이다. 이러한 나를 보고 Y 교장은 사회생활 운운하며 성화다. 추어올리던 고구마 넌출을 놓고 토마토 지지대에 걸어놓은 전화기를 향해 간다. 받기도 전에 끊긴다. 액정에 나타난 이는 예상대로 Y 교장이다.다시 벨이 울린다. 나는, 나는 처얼~없는 나는, 자유인인가~ 가수 남화용의 나는 자유인인가 노랫말에 끌리는지 왕치가 몸을 돌린다. 가만 바라본다. 왕치도 내 표정을 향해 투박한 더듬이 길게 뽑아 다가온다. 저 더듬이 사이로 여름이 머물다 갔고 가을이 오고 있다. 이 별에서 살아가고 사라지는 수많은 것 속에서 어떤 인연인가. 누가 저 이름을 나에게 주었는가. 나는 배귀선이고 너는 왕치. 노자는 명가명 비상명이라 하였으나, 어찌 이름 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있을까. 생과 사는 비상명이라 할지라도 과정은 이유이고 이름이다. 맑음도, 흐림도 뒤에 비를 두고 있듯 인식이 보이지 않을 뿐 너와 나, 무에 다르랴. 곁, 콩꽃 작은 입술이 푸르디푸른 휘파람을 분다.배 선생님, 학생들 시화전을 하는데 선생님의 시도 몇 편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Y교장의 목소리다. 귀뚜라미 소리만큼이나 날 세울 줄 알았는데 의외다. 귓불에 걸려 유리구슬 몇 개 짤랑거릴 거라 긴장했던 귀가 순해진다. 그러나 웬 걸 한 마디 더 걸친다.아따, 근디 어쩐 일이다요, 전화를 두 번 만에 다 받고?전화를 밭에 걸어 놓고 있었습니다.늘 말하던, 그 시밭 말이오?감나무의 까치소리에 익어가는, 가을볕 한나절이다.△배귀선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 '문학의 오늘'의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현재 부안에서 다랭이 밭을 부치며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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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31 23:02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데!

시월이 서산(西山) 너머로 떠내려가고 있다. 넘겨지는 달력이 유독 시월만은 아니련만, 올해는 유난스레 아쉬움이 커져간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은 마음에 새겨지고, 천연으로 물들어가던 나뭇잎들은 남자들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어 간다. 가을에만 느껴지는 고독은 남성들만의 감정일까? 창밖에는 무심결에 날리는 낙엽들이 숱한 발길에 밟혀 아파하는데, 스산하리만큼 외로운 가을바람에 무임승차로 날아든 ‘고독’이라는 놈이 홀로 구르는 낙엽을 넋 놓고 바라보게 한다. 허공을 휘젓다가 지쳐 떨어지는 나뭇잎들은 아쉬움을 내려놓고, 모태(母胎)의 품안으로 숨어든다. 애처로운 시선으로 서로들 마주보며 내년을 눈물로 적신다. 나이테가 하염없이 싸여서일까? 노년이면 누구나 멀리하고픈 놈이 ‘나이’라는 올가미라는데 나도 어느새 이순(耳順)의 중간 고개를 넘어 가면서 뒤돌아보는 눈가에 애상(哀想)이 젖어든다. 미수(美壽)의 고개 마루에 서서 보니, 굴곡진 세상을 살아 온 사람들의 가슴 저린 지난 이야기들에 머리가 끄덕여진다.불가(佛家)에서는 팔만사천자의 법문(法門)을 한 자(字)로 줄이면 마음(心)이라고 한다. 극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어떤 욕구에 의해서도 몸이 들뜨지 않기 위해 승려들은 참선, 사경(寫經), 염불, 108배(拜) 등을 선택하여 고요한 마음으로 가는 길인 선정(禪定)에 든다고 한다. 누구라도 마음은 항상 안팎으로부터 충동질을 당하고, 어지럽기 때문에 나름대로 몸에 익혔거나 재미있는 해결책들을 찾아 간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청소, 잔소리, 수다, 쇼핑, 취미생활 등으로 불편한 마음을 조절하고, 남자들은 운동, 술과 노래, 등산, 낚시, 골프 등 육체의 움직임으로 내면의 불편한 심기(心機)를 조절하고 해소시킨다. 이런 ‘마음(心)’을 가다듬지 못한 중ㆍ장년층의 수많은 남성들이 올 가을에도 가슴앓이를 할 것 같다. ‘간 큰 남편’ 시리즈가 나오던 엊그제의 시절이 그리워진다. 사오정(45세로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적.)가 현실에서 굳어져가는 요즘은 중년남성의 정체성이 사라진 위기의 시대가 아닌가 한다. 남성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착한 아들노릇과 성공한 남편으로 또는 의젓한 아빠가 되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면서 뒤를 돌아볼 겨를도 가져보지 못했던 서글픈 삶이었다.그들은 “어느 덧 내가!”라는 단어로 살아 온 역사를 뒤집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쓸쓸해지는 텅 빈 것 같은 낡아져가는 가슴을 하얗게 수놓는 지나간 날들을 떨쳐내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란다. 산들거리는 봄바람에 뭉클한 처녀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처럼 사위여가는 가을바람은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 하다. 그런 가을바람 속에는 성숙한 모습으로 마무리를 해가는 소멸의 기운이 실려 있다고 한다. 계절의 끝자락으로 낙엽이 흩날려 가듯, 가을은 성숙한 고독과 상실을 동반하면서 저물어가는 노년의 세월 속에 추억들을 물들게 간다. 푸석푸석한 가을처럼 쓸쓸함을 온 몸으로 느끼는 까닭은 남성으로서 희미해지는 사회적 존재감과 무력해지는 가장(家長)으로서의 자괴감일 것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란다. 사색에서 얻어지는 것은 삶의 철학이다. 철학은 사상을 만들어내고, 사상은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구심체 노릇을 한다. 한 시대를 이끄는 사상은 남자로부터 나온다고 하니, 대한의 남자들이여! 너무 쓸쓸해 한다거나 외로워서 고개를 돌리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는 말자.△수필가 김형중 씨는 〈수필시대〉로 등단. 칼럼집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당신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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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24 23:02

덕유산, 그 경이로움

심심산골 무주가 아름다운 것은 넉넉하고 덕스러운 덕유산 때문이요. 덕유산이 경이로운 것은 심산유곡의 대명사인 구천동과 천혜의 33경 때문이다. 나제통문에서 70리를 장장 흘러가는 금강 상류 구천동 계곡을 따라 32경이 연이어지며 덕유산 향적봉에서 그 경이로움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나제통문 앞에 서면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를 멸망시킨 동족상잔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거북바위가 숨어 있는 형상의 은구암을 지나 청금대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거문고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백옥 빛 물길을 따라 오르면 용이 승천하려고 십년을 공들였다는 와룡담이다. 일사대를 휘감아 오르는 물이 마치 누운 용 형상의 바위를 맴돈다. 옛적에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의 노송은 어디로 갔는지 행적이 묘연하다.조선 말기의 문신 일사 송병선이 아름다운 경치에 매혹되어 서벽정을 짓고 후진을 양성했던 일사대는 천년송을 머리에 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봄이면 철쭉이 개울을 곱게 물들이는 함벽소는 한 폭의 동양화다. 가의암에서 바둑을 두던 신선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추월담은 임진왜란 때 명장 김천일 장군의 장인이었던 양 도사가 가을밤 연못에 비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달을 보고 도를 깨친 곳이다. 만조탄은 구천 승려들의 먹을 쌀 씻은 물이 흘러서 뜨물재 또는 뜸재로 불리는 10경의 명소다.구천계곡을 휘어 감는 맑은 물이 급류를 타고 돌아 쏟아지는 파회의 폭포수에서는 물보라가 일며 일곱 빛깔 무지개가 피어오른다. 백옥처럼 깨끗한 마음 같다는 수심대와 세심대에서 세속에 찌든 심신을 씻고, 물거울로 불리는 수경대에 설익은 내 삶을 비춰본다. 월하탄은 기암을 타고 쏟아지는 은빛 물결이 달빛에 비치는 장관을 연출한다. 신라 인월화상이 절을 짓고 수도하던 인월담을 지나면 칠봉의 사자가 내려와 목욕한 사자담이다. 반석이 깔려 있는 청류동과 선녀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비파를 뜯었다는 비파담, 신선이 차를 달여 먹고 담배를 피웠다는 다연대에 서면 마치 선계에 와있는 듯 싶다.백련사 계곡과 월음령 계곡의 물이 만나는 곳은 구월담이다. 여울소리가 거문고의 음률처럼 들리는 금포탄과 심산유곡의 청류와 바람소리가 절묘하게 하모니를 이룬다. 칠봉의 호랑이가 산신령의 심부름을 가다가 안개 때문에 빠져서 울부짖었다는 호탄암에서 안심대까지 이어지는 맑은 계곡은 청류계로 불린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어느 신하가 세조에게 쫒기다 여기에 와서 마음을 놓았다는 안심대는 백련사를 오가는 산꾼들의 휴식처다. 신양담에서는 무성한 숲 터널이 이어지다 비로소 하늘이 열리며 햇빛을 볼 수 있다.거울처럼 물이 맑은 명경담과 구천폭포는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던 음밀한 놀이터다. 백련사 스님들이 몸과 마음을 씻었다는 백련담을 지나면 여러 개의 직소폭포들이 연꽃처럼 다가오는 연화담이다. 사바세계를 떠나는 중생들이 속세와의 연을 끊는 곳 이속대는 백련선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백련사에서 지척이다. 백련사에서 다리쉼을 하고, 허위허위 숲길을 오르면 어느덧 33경의 절정인 덕유산 향적봉에 닿는다.아마도 향적봉에서 산하를 굽어보는 조망은 산꾼에게 주어진 특권일 게다. 장엄한 일출과 산허리를 휘감은 황홀한 구름바다, 겨울산행의 백미인 설원과 눈꽃터널, 덕유평전의 푸른 초원길과 늦여름의 원추리의 향연도 환상적이다. 바로, 덕유산의 경이로움과 구천동 33경에 내 마음을 빼앗긴 이유다.△수필가 김정길 씨는 2003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수필집 〈어머니의 가슴앓이〉 등 4권의 수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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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7 23:02

'리진시벌' 아파트

이른 아침, 시골 사는 친척 형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주에 리진시벌이라는 아파트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고 많이 듣던 욕설 같기도 하고, 형님, 그런 아파트가 어디 있어요. 왜 그러시는데요? 딸네가 그곳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리젠시빌 아파트였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아파트 이름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는 분도 오투그란데 아파트에 살고 있다. 가끔 그 아파트 이름을 말할 때는 헷갈려서 여러 번 중얼거리다가 겨우 이름을 생각하곤 한다.아무리 글로벌시대라고는 하지만 요즘 외래어외국어 아파트가 너무 많다.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는 이름들이 수두룩하다. 유명 건설사 브랜드만 보더라도 자이, 아이파크, 더샆, 힐스테이트 캐슬 등 외래어 일색이고, 아파트 단지로 눈을 돌리면 더 심각하다. 코아루, 베르디움, 아이린, 센트럴카운티, 스타시티, 에코르, 위브 등 도무지 전화로는 받아 적기도 힘든 이름들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신축건물들의 이름이 거의 외래어나 외국어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모든 아파트가 외국어로 바뀌고, 시골 시부모님이 도시 사는 아들네 집을 찾지 못하게 하려고 이름을 어렵게 지었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될지 모르겠다. 이렇듯 가게나 아파트단지 이름을 외국어로 짓는 속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외국어를 쓰면 덧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것, 즉 평범하지 않은 그들만의 것이라는 이미지를 준다는 것이다. 외국어로 불러야 고급으로 통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업자들의 행태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외래어의 만연은 비단 아파트만이 아니다. 이미 자동차나 전자제품들이 외국어로 사용된 지 오래다. 문제는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할 방송프로그램에 외래어가 너무 많다. 2013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적한 지상파방송 TV프로그램 제목에 KBS 2TV와 MBC가 37.5%, SBS는 31.3%, 새로 시작한 예능프로그램 13편 가운데 8편이 외국어 제목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아파트만 해도 햇빛찬, 어울림, 하늘채, 참누리, 아침도시, 뜨란채 등, 우리말 이름을 쓰거나 푸르지오나 e-편한 세상처럼 합성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억하기 어렵고 발음하기 힘든 외국어보다 부르기 좋고 친근감 있는 우리말 이름들이 더 다정하지 않는가. 다행스러운 것은 2013년부터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됐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소중한 우리글과 아름다운 우리말을 상품화하고 브랜드화 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문득 풀꽃집과 천년누리봄, 비빔소리와 속편한 내과 등 멋지고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 수필가 백봉기씨는 2010년 '한국산문'으로 등단.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탁류의 혼을 불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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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0 23:02

눈물의 미학

요즘 우리사회에 웃음치료사라는 대체의학까지 등장을 했다면 웃음의 진가는 이미 자리매김을 한 셈이다. 그러나 웃음 못지않게 울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나는 얼마 전 아들과 함께 눈물로 밤을 새운 적이 있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붓고 체내의 수분이 모두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막힌 하수구가 뚫린 듯 심연에 고인 응어리가 풀려나갔다. 오랜 만에 묵은 생채기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눈물은 가슴과 가슴을 포개는 악수였다.특히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한바탕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배설 후에 오는 그 서늘한 명쾌함은 눈물을 배출해야만 맛볼 수 있다. 이는 희극보다 비극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인간의 정서에 더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카타르시스란, 고대 그리스어로 정화와 배설을 의미하며 체내에 축적된 불순물을 배출시키는 의학용어로도 사용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인간은 비애를 맛봄으로써 마음속에 억눌린 정서를 순화시킬 수 있다했다.눈물도 세 종류가 있다. 자극을 받았을 때 나오는 물리적 눈물, 기쁘거나 슬플 때 흘리는 감정적 눈물, 그리고 음악이나 그림에 감동 받았을 때 흘리는 영적인 눈물이 있다한다. 파브르는 이 세 가지 눈물을 분석한 결과 그 성분이 서로 달랐고, 세 가지 눈물을 그래프로 나타내자 가장 또렷한 흔적을 남긴 그림이 영적인 눈물이었다고 밝혔다. 탈무드에도 천국의 한쪽 구석에는 울고 싶은 사람을 위한 방이 마련되어 있다한다. 그곳에 울음 방이 있다는 것은 영혼의 때를 씻을 때에도 눈물이 필요한 모양이다. 자신의 눈에서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눈물에 밴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살다보면 슬프고 원통할 때 눈물이 나지만 가슴 벅찬 설렘 때문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이처럼 눈물은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며 감성의 샘을 자극한다. 나는 가끔 책을 읽다가 주인공의 삶이 기막히게 아름다울 때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눈물은 타인의 아픔과 절망을 보듬는 어머니의 품이다. 고단한 농부가 땀에 젖은 몸을 깨끗이 씻고 나면 마음이 개운해지듯, 한 바탕 울고 나면 경직된 근육이 풀린다. 신은 마른 땅에 비를 내리듯 인간에게 눈물을 선물로 주셨다. 가뭄 끝 단비처럼 눈물을 실컷 흘리고 나면 영혼의 숲에 무지개가 뜬다.그러나 사회변화의 속도가 가속화 되면서 인간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눈물을 무익하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간주해버렸다. 그러나 눈물 없이 채워지는 삶이 어디 있던가? 나는 타인 앞에서 박장대소를 하거나 결코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눈물을 감추고 아껴둘 만큼 감정이 무딘 사람은 아니다. 다만 바람이 잠든 새벽 가슴으로 운다. 울고 싶을 때 울지 않으면 혈관에 녹이 슨다. 억압당한 마음은 울어야 풀리고 축적된 눈물을 쏟지 않으면, 소중한 가족조차 돌아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인생의 수레는 잠시도 요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희생과 눈물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생의 무대를 확장해 나간다. 아픔에 젖은 날들을 눈물로 채색해야 한 편의 시가 되고 순백의 향이 되리라. 강물이 흐르면서 스스로를 정화하듯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인간은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한다. 눈물은 순간의 통증을 해소하는 완화제가 아니라 고통의 뿌리를 제거하는 영혼의 대수술이다. 눈물이야말로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요. 지상에서 가장 순결한 언어가 아닐까?△수필가 이명화 씨는 2003년〈문예연구〉로 등단. 수필집〈사랑에도 항체가 있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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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03 23:02

아버지의 발자취를

오랫동안 나의 염원이었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일을 70대 중반의 나이에 해냈다태어 난지 3개월 만에 사별(死別)한 이후, 한 많은 인생살이를 잠시 뒤돌아보면서 아버지의 유해(遺骸)가 묻혀있는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서 장춘(長春)행 비행기를 탔다.아버지께서는 한약방을 운영하시는 부친 덕분에 부안군에 있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 살면서, 부안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 되셨다고 한다.그 후에 전주 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일본에 가시어 대학에 다니시다가, 학비 부담 때문에 중퇴하고 귀국 하신 후, 전남 보성군에 있는 웅치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시다가 만주로 가셨다.1939년도에 길림성에 있는 대삼가자란 곳에 협화소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시다가 그 곳에서 유행했던 전염병에 걸려 10여일간 앓으시다가 이 세상을 떠나셨다.어머니께서는 한국에 계시는 조부님 댁으로 전보를 쳤고, 그날은 바로 할머니 환갑날이어서 온 가족이 모여서 만주에 있는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사망전보가 날아 왔을 때, 할머님의 충격이 얼마나 크셨을까!조부님은 아들의 사망소식을 믿지 않으려 하시면서, 위급환자용 한약을 처방하여, 숙부에게 빨리 가지고 가서 형에게 먹이라 하시고, 이 살아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던 동생은 형의 모습을 보고 약봉지를 내던지면서 통곡하셨다고 한다.숙부님은 자신의 손으로 바로 학교 옆에 있는 백양나무 아래에 묘소를 만들고 비석까지 세웠으니, 언제라도 찾기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학교도 없어지고, 주소도 바뀌어서 묘소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매우 희박했다.중국을 방문하기 위해서 1년간 중국어 공부를 했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그 지역에 있는 중국인 소학교 교장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정보를 확인해냈다. 그 곳은 1945년 8.15 해방 이후,학교는 폐쇄되고, 조선족은 모두 타지역으로 이동했으며, 중국인들이 살고 있었다.1950년도에 6.25를 겪었던 우리 세대는 중국인이 퍽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드는데,그 분들은 격의없이 대해 주었고,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서 진한 감동을 느꼈다.최근 들어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몇 번 만나면서 친구관계처럼 잘 지내게 되면서 용기를 내어 중국행을 결심했는데, 좀 더 일찍 찾아가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그럼에도 그곳 중국인 학교인 제2중심소학의 교장, 부교장, 다른 선생님들까지 앞장서서 도와준 덕분에 협화소학이 있었던 터와 묘소자리까지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다. 그 지역에서 오래 살았던 80대의 조선족 할머니와 90대의 중국인 할아버지의 생생한 증언과 선생님들의 안내로 현장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찡- 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학교 터에는 중국인 집이 있었고, 운동장은 모두 옥수수 밭이 되었으며, 밭에서 일하는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백양나무 아래 묘소 자리에는 20여년 전까지도 몇기의 묘가 있었으나, 모두 무연고 묘라 관리하지 않으니, 스스로 무너져 내려서 밭이 되었고, 아직도 밭을 파면 뼈들이 나온다고 했다.아버지 유해를 찾으려면 밭을 파해치고, 나오는 뼈들을 DNA 검사를 한다면 하나라도 찾을 수 있겠지만,그곳에서 흙을 한줌 떠오는 것으로 위로를 삼으면서 떠나 올 수밖에 없었다. 너무 늦게 찾아간 것에 대하여 아버지께 용서를 빌면서, 천국에서 꼭 만나 뵐 수 있기를 기도한다.△수필가 차동희 씨는 여성정책연구원과 원광대에서 여성학 강사를 지냈다. 현재 부안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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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6 23:02

지휘자

관객 모두 그가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무대 위 연주자들도 저마다 삑삑 삐이익거리며 음을 맞춘 후 곧바로 허리를 펴고 그를 맞이할 준비를 끝낸 듯하다. 이윽고 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 옆으로 한 줄기 조명이 비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반코트를 입은 작달막한 여성이 당차게 걸어 나온다. 그는 단발머리를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지휘봉을 든 오른손을 허공에 가볍게 돌리다가 내리고는 왼손을 흔들며 인사를 대신한다. 연주자들이 모두 일어나 그를 맞이하고 동시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나는 객석 앞줄에서 팔짱을 끼고 찬찬히 그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지휘석에 올라 연주자들을 쭉 한번 둘러본 후 지휘봉을 들고 왼손 바닥을 위로 올리자 연주자들은 저마다 활을 들고 악기를 입에 대고 현에 손을 얹은 채 지휘자를 본다. 이윽고 지휘자의 지휘봉이 내려오자 연주가 시작된다. 첫 번째 곡이라서인지 관객을 하나로 몰아가고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려는 듯 모든 악기가 열을 내어 방아타령을 연주한다. 음은 마음속에 좌정하다가 휘몰아치는 듯싶더니 다시 잔잔하게 온몸에 파고들어 관객을 들썩이게 한다. 나는 어느새 팔짱을 풀고 온몸을 짜릿하게 휘감으며 울려 퍼지는 음에 자연스레 무장해제가 된다. 그러면서도 눈은 지휘자의 왼손과 오른손의 지휘봉과 몸동작을 보고 있다. 연주자는 지휘자의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있다. 어느 연주자의 음이 높은 것 같으면 다독여 주고 낮게 잡은 것 같으면 소리를 키우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음악이 휘몰아치면 몸을 흔들며 흥을 돋우고 느린 장단에 자연스레 지휘봉을 태우고 내맡기기도 한다. 그는 원래 오케스트라 지휘자인데 국악단에서 초빙한 객원지휘자란다. 그에게는 분명 서양음악이 더 익숙하겠지만 연주회 내내 그의 지휘하는 모습을 객석 가장 가까이에서 본 나는 그는 분명 우리의 흥과 신명이 몸에 젖어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연주가 이어질수록 지휘자는 어머니의 자리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직접 악기를 연주하지는 않지만, 독주자(獨奏者)나 초빙가수처럼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무리 없이 항해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같은 어머니자리.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더니……. 연주회를 본 후 프로그램에 있는 음악보다 지휘자의 몸짓, 미소, 연주단과 관객을 하나로 몰아가는 카리스마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원이라면 지휘자가 없다고 연주회를 마칠 수 없으랴마는 저마다의 개성대로 불어대고 뜯고 두드린다면 어디 음악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그렁저렁 연주를 마칠 수 있다 할지라도 조화로운 음악에는 다가가기 어려울 것이다. 지휘자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던 나는 내 몸짓을 보고는 설핏 웃음이 난다. 누가 보든 말든 나는 지휘자의 몸동작을 따라 하며 음을 타고 놀고 있다. 지휘자의 왼손이 연주자를 가리키면 나는 내 앞 허공을 가리키고 있다. 내 안에 잠재된‘나도 이젠 새로운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깨우고 있는 듯하다. 이제껏 어머니의 그늘에서 살아오다가 그분이 연로하고 병약해진 지금 내 안의 연주단이 조화로운 소리를 내지 못할까봐 지레 걱정이 되어서인지 마음이 영 편치 않다. 내 인생의 지휘자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아니 내 아이들이 또 그들의 아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슴과 머리에 남아있겠지만 럭비공 같은 삶에서 내 머릿속의 음을 누르고 키우는 마음속의 작은 지휘자를 큰 무대의 지휘석에 올려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 수필가 전성권 씨는 2011년 〈문예연구〉로 등단. 현재 전북수필과 순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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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9 23:02

기억 저편

멀리 있는 친구에게서 이곳의 소식을 묻는 전화가 오면 엉뚱하게도 내 대답은 지난날로 돌아간다. 친구는 일 년에 두 세 번은 끊어질 듯 이어지며 안부를 물어 오는데 그것은 지금의 근황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지난날이 보고 싶어서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어릴 적 산 중턱에 살던 친구는 가끔 무상으로 나오던 옥수수 빵의 유혹에 넘어가 몇 개를 몰래 집어 그의 집으로 사라지고 배급의 차례를 기다리던 마지막 친구는 몹시 허탈해 하며 선생님을 부르곤 했다. 또래보다 성숙했던 그 친구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다.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절집 순임이는 하얀 블라우스에 받쳐 입은 주름치마 아래로 빨간 구두를 내보이며 자랑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낭랑한 소리로 우리를 부르면서 도시락을 펼치면 가까운 친구가 아니 될 수 없었다. 가끔은 우리를 그의 집으로 불러 색색의 사탕을 주곤 했는데 그날은 무언가 큰일을 벌였다는 것을 드나들면서 저절로 알아졌다. 순임이를 다시 본 것은 재래시장에서 서로 엇갈리면서 지나칠 때였다. 그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다시 볼 수 없었을 터인데 어릴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지나온 시간의 흐름을 빠른 영사기처럼 되돌리며 마치 꿈속으로 빠져들 듯 묘하게 들 뜬 표정으로 과거의 문을 열어 활짝 열어 보였다. 신작로를 잇는 골목에서 해가 지도록 지치게 놀았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고향을 떠나면서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도 같이 외로워졌다. 그들은 지난 세월을 그 자리에 놓고 갔고 나는 마치 소멸의 시간을 지키고 있는 사람으로 남아 추억의 끈을 붙잡고 서로를 잇대놓고 있는 것만 같다. 이상하게 지워지지 않는 몇몇의 이름은 만날 용기도 없으면서 어느 날은 궁금해져 그 집의 녹슨 철문을 지나가 보기도 한다. 쇠락한 철문이 일없이 흔들리고 창살이 몇 개는 떨어져 나간 집, 떠나간 그들이 다시는 찾지 않을 것 같은 자리, 지금은 만나도 알아볼 수 없는 모습만큼 그들이 살았던 흔적들도 조용히 변해만 간다. 숨어있는 과거에 자리 잡고 있는 확실한 추억, 골목골목에 자리한 단편들, 그중에 사라진 어느 것이 지금의 시간을 흔들리게 한다. 그 골목을 거닐 때 낯선 복덕방에서 들은 친구 집의 매매소식에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얼굴과 추억의 단절에 대한 예감으로 나를 상념에 빠져들게 한다.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는 친구들의 수만큼 그들이 안고 있는 제각각의 사연이 먼지처럼 떠다니다가 메워진 우물에 앉기도 하고 신작로만큼 벌어진 골목 끝에서 바람으로 길을 잃기도 하여 위태로울 때도 있다. 끝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는 이름들과 먼 곳에서 오는 그들의 소식이 남겨진 나를 외롭게 하다가 어느 때는 따뜻하게 감싸주기도 한다. 얼마 전에 다녀간 친구가 어릴 적 명산동 중국 학교 위로 뜬 무수한 별들을 보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게 해 달라고 빌었던 소원을 내게 말할 때 나도 갖고 있었던 추억에 울컥하며 놓고 온 시간을 돌아보고 잊고 있었던 상처를 다시 안았다.떠나간 사람이 놓고 간 기억의 저편에는 무수히 흐르는 시간에도 지워지지 않는 그들만의 비밀이 살아있다. 계절이 바뀌거나 내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가 꿈틀거릴 때, 그냥 별일이 없을 때에도 가봐야 할 것처럼 마음이 일면 묵묵히 자리하고 있는 그 자리로 어느 날 불현듯 오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지금이 그런 때이다. 친구의 전화가 올 것만 같다.△수필가 편성희 씨는 2001년 〈오늘의 문학〉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수필집 〈꽃지는 오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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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2 23:02

고향 생각 노래

고향생각이 간절하다.나이 탓일까?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의 시냇물소리가 노래처럼 아련히 들려온다. 눈감으면 금방 조르르 달려오는 듯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던 앞동산이 보고 싶다.어찌 되었을꼬. 마을 뒷산자락 밤나무 밭은 이 맘 때가 되면 알밤 궁구르는 소리가 새벽잠을 깨웠었는데, 지금도 그런지. 내 친구 몇이나 살아있을까.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 짱구라고 불렀던 친구 살았으면 내 동갑내기이니 노객이 되었을 터인즉. 그 친구 추석날이 면 머루 다래 한 옴큼 따서 담 넘어 내 집으로 훌쩍 던져주는 인정이 있었는데. 부자 집 큰아들은 지금도 미륵일까. 생긴 것이 미륵처럼 덕이 있게 보여서 미륵이라 놀렸었는데. 그 후덕한 모습이 눈물겹도록 보고 싶다. 문득 떠오르는 동요 한 토막.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만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현재명 선생의 노래다.고향 초등학교 시절 담님 선생으로부터 배운 노래다. 낡은 풍금을 앞에 놓고 발로 구르시면서 목청을 높여 가르쳐 주셨다. 가르치시다가 곡조가 틀리면 대나무 회초리로 풍금 뚜껑을 탕탕 두들기시면서 그것도 따라 못하냐? 네놈들 살다가 고향 떠나면 부르는 노래이거늘 하시면서 호통을 하시었던 그 모습이 왜 이리도 새록새록 다시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 뒤로 느닷없이 동란이 일어나 고향을 떠나왔다. 선생님도 소식이 끊겼고 살다 보니 고향을 잊고 지내면서도 문득 고향이 그리울 때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이 노래를 혼자서 불렀다.추석이 돌아오면 잊었던 고향이 눈앞으로 달려온다. 고향의 명절은 유난했었다. 가난 했던 시절이었으므로 어머니는 소쿠리를 옆에 끼고 들녘으로 나가 덜 익은 벼를 손으로 훑어다가 솥에 익혔다. 익힌 벼를 하루 쯤 햇볕에 말렸다. 말린 벼를 절구에 넣고 찧었다. 햅쌀을 작만 하는 수순이었다. 마련된 쌀은 조상님의 제사 쌀로 남기고 한 옴큼 손에 가만히 쥐어 주시는 어머니는 아가. 먹어봐라 아버지의 땀이란다. 하시었다. 고소한 햅쌀은 사탕보다도 더 맛이 있었고 꿀물보다도 더 달콤했다.어머니는 신이 났다. 벌처럼 집 안팎을 붕붕 날 듯 돌아다니시면서 추석준비를 하셨다. 멀리 나가셨던 가족들을 맞이할 생각에 얼굴에 웃음이 그득했다. 오랜만에 모인가족에 푸짐한 음식을 내놓은 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때 묻은 앞치마에 손을 닦으시면서 아가 뒷산에 가서 칙 잎을 정갈한 것으로 골라 몇 잎 따오렴. 시루떡 밑받침을 하기 위한 심부름이었다. 나도 덩달아서 맥없이 좋았다. 아버지는 닭장에서 살이 오른 암탉을 꺼내 닦달을 하셨다. 그런가하면 할아버지는 사랑방 창문의 모기장을 걷어내고 하얀 벽지로 바꾸셨다. 가을맞이 채비를 하신 것 이였으리라. 고향추석은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준비 되었다.마침내 추석날 밤이 되었다. 앞동산에 둥실둥실 떠오르는 달은 참으로 고왔다. 동구 밖 너른 마당에 마을 사람들은 달맞이 제사를 지냈다. 풍년이 있어 감사하고 무병장수하게 보살펴 주실 달님이 고마웠다. 그러면서 달집을 태웠다. 마을 액운을 보내는 굿 소리로 추석날 밤은 뜬 눈이었다.추석이 목전이다. 풍습(風習)은 바뀌었으나 풍속(風俗)은 다행이도 그대로다. 천년을 이어온 한가위의 풍속이 변치 않은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누가 시킨 일도 없고 누가 가르친 일도 없다. 때가 되면 모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사람도 수구초심의 향수를 안고 고향을 찾아나서는 추석의 귀향 행렬에 인간의 존엄성을 느낀다.△수필가 양규태씨는 1992년 〈문예사조〉로 등단. 수필집 〈해는 질 때가 더 아름답다〉 〈아직도 왼손이 남아있습니다〉 〈나를 버리면 천하를 얻고〉 등이 있다. 현재 부안 변산마실길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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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5 23:02

문화, 잠에서 깨는가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소르망(Guy Sorman)은 21세기는 제조업이 국가경제의 기반이 아니라 문화산업이 경제의 중심에 들어올 것이다고 했다. 선진국의 기준도 옛날에는 그 나라의 국민소득과 경제수준으로 평가됐지만 지금은 문화예술의 발전과 수준으로 결정되고 있다. 때마침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융성위원회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했다. 문화시설의 문턱을 낮추고, 국민들에게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리게 하자는 취지로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날은 고궁이나 박물관, 전시관, 영화관 등 주요 문화시설을 무료로 입장하거나 할인해주고, 야간 개방과 공연,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문화에 대한 이해와 참여 확대라는 목표를 두고 있다. 최근 들어 자치단체들이 지역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문화시설을 확충하고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인적자원을 배양하여 문화라는 광맥에서 부가가치를 더 많이 창출하려는 노력도 이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곳곳에서 생활문화예술동호회가 활성화되고, 보는 문화에서 참여하고 체험하는 문화 활동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라는 뜻의 컬쳐(Culture)는 밭을 갈고 재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문화는 생산이라는 것과 연결돼 있다. 사실 문화에 대한 지원 없이는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싸이라는 한 가수가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K-Pop이 일본과 아시아를 넘어 팝의 고장이라는 유럽과 미국을 강타했다. 드라마 겨울연가와 대장금으로 시작한 한류열풍이 청소년들을 통해 K-Pop과 같은 대중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브레이크댄스의 역사를 새로 쓴 비보이 라스트포원이 전북 출신의 청소년들이었다. 국민들의 바람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고 예술의 향에 빠지고 싶어 한다. 중소도시 산업단지에서 근무하는 대기업 직원들이 높은 급여를 받는데도, 문화혜택이 좋은 대도시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시설에 대한 투자와 함께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때다. 며칠째 굶었어요. 남은 밥과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처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제2의 작가들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 달에 백만 원도 벌지 못하는 예술인이 63%나 될 정도로 예술인들의 생활형편이 너무나 열악하다. 사실 내 주변에도 붓 대신 대리운전대를 잡거나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는 예술인들이 많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이 기다려진다. 지금은 시작단계지만 갈수록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개발되고, 시민과 기관 단체들의 참여가 확산되리라 기대한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훈훈한 문화의 날이 됐으면 좋겠다.△수필가 백봉기씨는 2010년 한국산문으로 등단.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에 혼을 불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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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9 23:02

오늘도 조간신문을 기다리며

새벽 그 시간 쯤 되면, 아파트 출입문을 열어보게 된다. 조간신문을 들여오려고.사실은 문을 열 때 마다 삐리링- 하고 울리는 기계음이 싫지만, 그것도 피 할 수 없는 장치요, 생활이다.새벽(그리 이른 시간도 아니지만)마다 신문을 넣어주는 손길에 대한 고마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기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그런데 생각 해 보면 또 그렇다.그야말로 편익한 디지털시대, 스마트폰 시대, 무인기 드론(drone)시대라고들 하는데, 조간신문 배달방법은 3, 40년 전이나 다름이 없다. 아나로그 시대 그대로 사람이 들고 다니며, 그 집 문 앞에다가 일일이 신문을 놓고 가고 있으니 말이다.하기야 아파트 문화가 아닐 때는 신문이요~하면서 담 너머로 던져주고 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아파트 호수별로 문 앞에다가 던져놓고 가는 것이 보통의 풍속도다. 아무튼 나는 조간신문을 대강 훑어보고 나서야 하루의 일과를 시작 한다고나 할까. 물론 TV, 라디오 등 뉴스를 접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한 꼭지 - 흥미롭고 새로운 사실, 또는 재미있는 이야기, 신기한 지식사항 등 - 를 알게 되는 일이 있기에 더욱 조간신문을 놓치지 않고 훑어보기 하는 것이다.그러니까 며칠 전의 일이다. 조간신문의 한 꼭지가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이 읽어주는 종이책이란 제목으로 명함 크기 정도의 기사였다. 중간 부분에 〈디지털을 품은 종이책 더북을 선 보였다. 책에 스마트폰을 대기만 하면 오디오북처럼 읽어준다. 안드로이드 폰에서 더책이라는 무료 앱을 내려받기만 하면 된다. 어린이, 시각장애인, 다문화가정에 특히 유용하다.〉 그 다음은 줄인다.나는 이따금씩 종이책이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였던지 종이책이 살아남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귀에, 아니 눈에 번쩍 띄었던 것이다.그래, 이렇게 되면 종이책도 공존 하겠군.하는 생각을 해 봤던 것이다.그 뿐 아니다. 얼마 전에는 이런 기사를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본적도 있다.〈미국의 과학자요, 발명가인 레이 커즈와일(Kurzweil)은 2045년이 되면, 인간은 죽지 않는다. 라고 예언을 했다는 것이다. 또 그는 미국에서 특허를 39개나 가지고 있으며, IQ 165에 65세인 미래학자.〉라고 했다. 나는 생각 해 봤다. 하루가 다르게 나노, 바이오 등의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인체의 신비가 벗겨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영양과 운동관리 등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는 추세를 보면 앞으로 30년 쯤 후엔, 인간이 결코 죽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예언이 빈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 말이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인터넷, 웨어러블(Wearable), 운동량부터 수면 패턴분석까지 해 주는 스마트폰 이야기, 3D프린터의 일반화 등 상상치 못 할 IT기술의 발전과 변화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이 내게는 바로 조간신문 인 것이다. 내겐 작은 교과서요 선생님이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고령자高齡者인 나에게는 한 가닥, 세상과의 소통수단이요, 조그만 창구이기도 한 것이다.지식사항만을 알려고 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미국의 메이져 리그에서 괴물 투수로 이름을 떨치는 자랑스런 야구선수 류현진의 소식 등,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와 밀려오는 정보 속에서, 내겐 그나마 문맹文盲을 벗어나게 해 주는 고마운 돋보기안경인 셈이다.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니 아침마다 조간신문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인가 싶다. △아동문학가 겸 수필가인 윤이현 씨는 1976년 〈아동문예〉로 등단. 〈꽃집에 가면〉 등 동시집 10권, 동화집 〈다람쥐 동산〉 등 동화집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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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2 23:02

책과 가을

입추가 지나고 가을이 코앞에 왔음을 느낀다. 뜨거웠던 여름을 그냥 보내기 아쉽다는 듯이 아직도 한낮의 기온은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말복치레도 하였으니 견딜 만은 하다. 이런 때면 항상 떠오르는 말 중에 천고마비가 있다.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계절인데, 이 가을에 왜 말이 살찌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을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 활동하기 좋은 것은 확실하니, 이런 때에 사람도 같이 마음의 살이 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앞을 다퉈 떠오르는 다른 단어는 바로 독서의 계절이다. 그런데 이 말의 유래는 여름에 실컷 놀았으니 이제는 책 좀 읽어보자는 계몽차원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믿을까 모르겠다. 하긴 내용적으로는 서로 같은 말이기는 하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어릴 적 취미를 책 읽는 것으로 삼았던 세대가 바로 50,60세대다. 뭐든 읽고 싶어도 마땅히 읽을 책이 없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는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던 세대이기도 하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으며, 먹을 것도 부족한 판에 읽을거리란 그야말로 배부른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말로만 해왔던 독서를, 올해에는 제대로 읽어보자고 다짐하고 목표도 제법 크게 잡았다. 지난해 말부터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 독서에 대한 갈망이 새해 들어 본격적으로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부응하여 세 자릿 수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던 때가 새해벽두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금연을 선언하듯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녔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다시 무를 수도 없다는 각오로 임했다. 그러던 7월, 한 여름의 더위가 절정을 이룰 때 목표를 조기 달성했고 가슴에는 뿌듯함이 넘쳐났다. 그러나 매번 책을 읽고 나면 항상 밀려오는 것은, 내가 왜 이제야 독서를 하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항상 마음만 앞서 갔을 뿐 행동은 늘 뒤쳐졌던 후회였다. 좋은 뜻으로는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선인을 통해 자아반성을 하는 것이 바로 독서임을 느낀다. 이런 독서는 누구에게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어떤 지식을 모른다고 나무랄 어떤 사람도 없는 이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나이에 책을 읽어서 무엇 하겠느냐고 말하지만, 나는 가을에 말이 살찌듯이 내 마음도 살찌우고 싶다는 욕망에 계속하여 채찍질을 해왔었다. 어제는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었다. 제목부터 조금은 딱딱한 분위기를 주고 있지만, 특정한 책을 훗날 성인이 되어 다시 읽어가면서 처음 읽었을 당시의 느낌과 새롭게 얻어야 할 느낌을 비교해 정리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봤다. 일반적인 독후감과 다르면서, 저작할 당시의 사회 배경을 현 사회에 비교하여 독서의 기본을 거론하는 것이 바로 독서의 힘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선진국으로 가는 마당에 참으로 부끄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요즘처럼 어수선한 사회에서는 인성이 중요하며, 사람을 다루는 인문학이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이런 현상을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에 독서가 제격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다. 마음은 있지만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말은 핑계가 되지 못한다. 나는 올해 목표를 얼마나 더 상향조정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취미적 독서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삶을 바꿀 독서가 되기를 욕심내본다. △수필가 한호철씨는 2004년 계간지 〈문예연구〉 수필부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농촌문학상(2010), 익산예총공로상(2011), 문예연구 작가상(2014)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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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5 23:02

너를 떠나보내며

너는 하얀 시트 위에서 나신으로 떨고 있다. 너의 몸 이곳저곳엔 봉숭아물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다. 아무런 말도 없이 할딱이는 몸짓만 있다. 이제 이것으로 우리의 인연은 끝나는 것일까. 너는 지금 이 이별의 순간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우리의 만남은 길었지만 헤어짐은 이렇게 한순간인 것을. 나 또한 아무런 말없이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다. 무슨 말을 하랴. 우리의 젊은 날, 20년간의 불편한 동거생활이 참혹하게 끝나가고 있는 판에. 너는 어느 해인가 봄에 나에게 찾아왔었다. 너를 처음 대하였을 때, 그냥 그저 일상의 그렇고 그런 대수롭지 않은 만남으로 여겼다. 미모가 뛰어났는지, 성격이 좋다든지 따위에 무심하였다. 나의 현실이 너를 염두에 둘만큼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의 모든 관심사는 이놈의 딱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죽어라고 아등바등하던 때였으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처음부터 살을 섞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너는 애초부터 도덕이니 윤리 따위에 초탈해 있었다. 그런 점에선 나 또한 누구를 비난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을 안다. 너와 나에서 우리가 된 이후, 너는 마치 당연한 양 많은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산으로, 바다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하질 않나. 운동해야 한다고 강권을 하질 않나. 끼니때마다 기름진 음식을 버리라고 조르질 않나. 된장을 먹어라, 채소를 먹어라. 잡곡밥을 먹어라. 고기를 먹어선 안 된다. 나는 너의 넌더리나는 간섭이 싫었지만 너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산으로 들로 자연을 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너의 강력한 요구로 시작된 일이라지만 나 또한 그런 시간이 좋기는 하였다. 간혹 이런 게 행복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기까지 했으니 좋긴 좋았던 모양이다. 때때로 육모정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고, 피톤치드 뿜어대는 산림을 찾고, 기도가 잘된다는 사찰에 기웃거리며 스님에게 차 한 잔을 청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너와 만남은 이런 삶으로 전환하라고 찾아온 인연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의 가치는 점점 바뀌어 갔다. 그러나 너는 점점 요구가 심해졌다. 급기야 한복을 입으라 하고, 시골에 한옥을 짓고 살자고 졸랐다. 나는 그 말이 가난한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아 여러 날을 불쾌해하였다. 누군들 좋은 것을 모르냐 이 말이다. 너의 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나 해 줄 수 없을 때 그 현실적 고뇌를 너는 정녕 모르고 있었다. 너는 너의 요구가 묵살되고 나의 냉소적 반응이 계속되자 급기야 나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밤이고 낮이고 네가 저지른 횡포는 이미 도를 넘고 있었다. 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의 광란에 질식하여 죽을 것만 같았다. 치를 떨었다. 정말이지 극단적인 생각을 하루에도 골백번 해야 했다. 나는 너와의 이별을 꿈꾸었다. 원만한 이별.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고 소중한 추억만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별을 꿈꾸었다. 이제 그만하자. 잘 가라, 그대여. 나는 네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너의 숨통을 조를 것이다. 너의 증오보다 나의 적개심이 더 붉다. 이것으로 훗날 또 나의 과보를 걱정할지라도. 나는 필시 너를 해하고야 말 것이다. 미안하다. 그대여, 용서해다오. 너의 목을 조르는 나의 팔이 떨리고 심장은 북처럼 요란할 것이다. 너는 이제 희멀건 시트 위에 피를 토하고 널브러져 있다. 팔딱거리던 너의 숨도 끊어진 듯 정막이 흐른다. 너는 두 자식과 함께 처참하게 쓰러져 있다. 아~ 너는 새끼를 배고 있었구나. 네가 빠져나간 자리가 휑하다. 이제야 나는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나의 20년의 비후증수술은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의사는 핏물처럼 빨갛게 물들인 솜을 네가 빠져나간 자리에 쑤셔 넣고 있다.△수필가 이순종 씨는 2010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집〈내 마음속 99개 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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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8 23:02

내 마음의 리모델링

구구 팔팔 이삼 사(死), 몇 년 전 이 말을 들었을 때 아무리 우스갯말이라지만 그렇게까지 오래 살까, 생각했었다. 하고 싶은 일도 못하면서 생명만 유지하는 그런 삶은 살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육십 중반에 가까운 나에겐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삼일 아프다가 죽는다는 우스갯말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번에 북유럽 여행을 갔을 때 일행 중 80세 어르신도 두 명이나 있었다. 이런 추세로 보면 구십구 세까지 사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 같다.요즈음 시대는 리모델링 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성싶다. 리모델링이라는 말은 아파트를 리모델링한다는 말에서부터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 뿐이겠는가? 우리 몸의 리모델링도 시작되었다.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 눈 꼬리가 처지게 되어 눈물이 나고 짓물러 눈 꼬리를 올리는 수술을 많이 한다. 여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그렇다. 다리 연골이 닳아 무릎을 수술하고, 장기가 좋지 않으면 장기 수술도 한다. 이빨을 다시 심는 작업은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거의 노인세계로 들어가는 통관절차다. 꼭 노인이 아니더라도 젊은이들도 이가 좋지 않으면 리모델링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이는 노안수술을 위해 큰돈도 아끼지 않는다. 수술을 해서 좀 더 보람 있고 편리한 삶을 산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지난해 백내장을 수술할 때 노안수술까지 하여 현대 의료혜택을 누리고 있다.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 화제는 대부분 건강이다. 무엇이 어디에 좋다더라.하면 바로 자신에게 일반화시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몸의 잘못된 곳은 다 고치고 좋다는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면 아무래도 건강하게 오래 살지 않겠는가? 스마트폰에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그만큼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우리나라 노인의 평균 수명이 길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의 몸은 건강해졌는데 우리의 정신은 어떤가? 누가 할머니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면서도 어느 모임에서건 자신이 연장자라고 생각되면 은근히 대접받고 싶어 한다. 우리 또래들이 옛날 같으면 상(上)할머니라면서 자신을 높이고, 일하기는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퇴직자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 나이에 무엇을 하느냐고 가만히 있었더니 그 사람은 발전 없이 그대로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여 더욱 황금기로 살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노인복지관마다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직도 무언가 할 만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우리 몸을 리모델링하여 젊게 살듯이 마음도 리모델링하여 봉사나 취미 활동, 건강관리도 열심히 하는 분을 보면 본받고 싶다. 100미터 달리기 선수는 100미터만 달리면 몸에 힘이 다 빠져서 더 이상 달릴 수 없다. 1,000미터 선수는 1,000미터에 맞추어 자신의 힘을 조절하기 때문에 100미터는 거뜬히 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99세까지 팔팔하게 사는데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건강관리를 하면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난 요즈음 내 마음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앞으로 10년까지는 현역으로 직접 활동하고 싶다. 나이 들었다고 뒤로 빼지 않고 적극적으로 봉사와 자기관리 그리고 민폐 끼치지 않고 살아간다면 구구 팔팔 이삼사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려니 생각한다. 물론 하나님의 허락과 보호가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수필가 윤효숙씨는 2010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한 송이 들꽃처럼〉, 성지순례 기행문 〈어두움에서 빛으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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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1 23:02

새들의 동네

5월은 삼라만상이 은총을 받는 시절이리라. 푸르른 이파리가 산야를 덮고 햇살이 다사롭기 그지없다. 활기찬 생명의 물결을 보면 눈이 황홀하다. 이런 계절에는 새들조차 조물주의 손길을 알아차리고 알을 낳고 기르기에 여념이 없다.오늘은 아내랑 공원의 숲길을 소요하다가 느티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는다. 덕진공원의 연꽃 단지에 연잎이 수면 위에 동동 떠 있다. 더러 대궁을 밀어 올려서 봉오리가 봉곳하게 피어오른 것도 있다. 연잎 사이로 논병아리 두 마리가 노닐고 있다.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단 어미 논병아리가 앙증스럽게 귀여운 어린 새끼를 데리고. 어미가 먼저 벌레를 한 마리 잡아서 새끼의 입에 넣어준다. 새끼가 부리를 벌리고 잽싸게 받아먹는다. 이번에는 먹이를 부리로 가리키며 스스로 잡아먹게 한다. 그러더니 날개로 새끼를 안은 채 조속조속 졸고 있다. 이윽고 연잎을 밟고 미끄럼을 타는가 하면 물속으로 들어가 둘이서 물바퀴를 휘저으며 유영을 한다. 먹여주고 다독이며 혼자서 살아가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려니.잠시 눈길을 돌려 건너편의 소나무 단지에 시선이 머문다. 백로들이 흰 구름으로 덮여 있다. 다른 계절이 아니면 둥지를 떠나 먹이를 찾아 모두 떠나곤 했다. 아마 알을 부화하거나 새끼를 기르려는 정성을 다 하는 것이려니. 암수가 일심동체로 저들의 혈육을 애정으로 지키는 게 아닌가. 집단으로 소나무 위에 둥지를 튼 무수한 백로들이 단 한 마리도 신성한 의식에서 이탈하지 않은 채. 저들은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거나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 햇살이 따가우면 날개를 펴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배설물이 넘치면 물어다 청소를 하며 잠자리를 돌본다. 페리칸의 수컷은 엄마 새가 새끼들을 지나치게 돌보다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 제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먹여서 살린다고 한다. 세끼들이 살아서 자랄 때까지 계속하여 먹이다가, 자기는 한 입도 먹지 않고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이다. 병아리를 데리고 마당에서 놀던 암탉은 독수리가 달려들면 새끼들을 모두 품고 제 살이 뜯겨도 놓아주지 않는다. 까치도 개구쟁이들이 제 알을 훔쳐 가면 머리를 쪼아가며 울부짖는다. 이 새들의 엄마와 아빠의 모정이나 부정은 살신성인의 경지라 할만하다.새들이 저토록 새끼들을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바치는 사랑을 본능이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이는 인간중심의 경솔한 오만이다. 새들도 인간들이 가지는 감정과 생각을 나누어 가지고 살아간다. 저들의 단순하고 탐욕을 모르는 삶을 보면 장자나 노자가 대수로울 게 없다.새들의 가족과 생활을 엿보면서 나조차 반성문을 쓰고 싶다. 우선 내가 아버지로서 다섯 남매를 기른 뒤안길을 헤아린다. 과연 새들에게 비하여 부끄러운 단면은 없는가. 오히려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 많다. 이로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새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사랑의 손길도 보내야 한다. 인지가 앞선다고 편리한 문명을 좇다가 이 지구를 병이 들게 한 죄책도 반성해아 한다. 인간들의 오만과 이기심 때문에 지구를 떠나는 가족들이 무수하다. 날마다 새와 짐승과 나무와 꽃들이 사라져 가는 현상은 가슴이 아프다. 지구의 사막화가 내다보이는 불안한 현실을 개탄하고 자연의 순량한 새들에게 외경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오늘은 새들의 사랑과 평화를 배우며 미소를 짓는다.△ 수필가 이종승씨는 1993년 〈수필과비평〉, 1995년〈한국수필〉로 등단. 수필집 〈새벽이 열리는 집〉 〈정갈한 신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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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5 23:02

엄마의 꽃밭

어느 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골에서 봉숭아꽃을 따왔단다. 무료하던 차에 냉큼 달려갔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녀가 반갑게 맞았다. 그녀와 나는, 매실차를 마시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해질 무렵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어섰다. 그녀가 미리 싸 놓은 보따리를 내게 안겨줬다. 묵직했다. 오이, 가지, 깻잎, 풋고추 등과 함께 그녀의 넉넉한 정까지 더해진 무게다.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그녀가 봉숭아꽃을 빌미로 나를 집으로 초대한 셈이다. 연분홍, 하양, 주홍빛이 선연한 봉숭아꽃과 이파리는 투명 봉투에 담겨있었다. 봉숭아꽃 봉투를 전해 받는 순간, 울컥했다. 이 년 전, 이즈음에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들킬세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돌아섰다.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영광군 불갑면이다. 내륙 쪽에 위치한 불갑은 자연경관이 빼어난 고장으로, 불갑산은 사시사철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고, 상사화 군락지로 잘 알려진 관광지다. 뿐만 아니라 암울했던 나의 초, 중학교 시절, 유일한 피난처 같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 집은 중학교 관사를 포함해 다섯 가구가 채 안된 작은 동네 맨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담장도, 대문도 없는 허름한 집이었지만, 전망은 최고였다. 토방 끝에 서면 오미산자락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징검다리 건너 기와집 너른 마당에서 덕순이가 고무줄놀이하는 모습도 선명하게 보인다.해마다 여름이면 우리 집 주변엔 이름 모를 꽃들의 향기가 진동했다. 유달리 꽃을 좋아하신 엄마의 부지런한 손길 덕분이다. 벌, 나비를 유혹하던 꽃밭에 나는 자주 머물렀다. 엄마의 꽃밭은 소박하고, 다소곳한 여인의 얼굴을 품은 듯 했다. 밤새 지어놓은 거미집엔 잠자리가 포로처럼 붙잡혀 있곤 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불쌍해서 잠자리를 구출해서 날려주곤 했다. 아침햇살이 퍼질 즈음, 살포시 꽃봉오리를 접던 연보라 빛 물망초의 청초한 모습은 지금도 아련하다. 기찻길처럼 긴 빨랫줄 지지대를 감고 집 앞 밤나무까지 세력을 넓힌 나팔꽃은 잠꾸러기 막내를 깨우기라도 하듯 연신 기상나팔을 불어댔다. 마당가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온 가족이 멍석에 빙 둘러앉아 엄마 손맛 칼국수를 달게 먹을 때, 소문도 없이 피던 하얀 박꽃은 내가 가장 좋아한 꽃이다. 그 꽃을 보고 있노라면 금세 엄마 품처럼 포근해진다. 봉숭아꽃은 리어카 창고로 쓰던 산모롱이 외양간 주변에 도열하듯 피었다. 여러 색깔의 겹 봉숭아는 꽃 대궁이 유독 튼실했다. 꽃이 피면 엄마는 분주했다. 꽃과 꽃잎, 명반을 절구통에 넣고 콩콩 찧었다. 푸르죽죽한 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다져지면 손톱크기 정도로 모양을 만들어 우리들의 손톱에 하나씩 올리고 잘근 묶어 주셨다. 꽃물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다. 참을성이 없던 나는 엄마 몰래 풀어보다가 지청구를 듣던 기억이 또렷하다. 아침에 잔뜩 기대하고 매듭을 풀면, 손톱뿐만 아니라 주변 살까지 검붉은 물이 들고 쭈글쭈글해진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고운 빛을 뽐낸다. 첫 눈이 올 때까지 손톱 끝에 꽃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설을 믿으며 우리들은 달뜬 나날을 보냈다. 이젠 봉숭아꽃 찾기도 쉽지 않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네일숍의 그늘에 가려 꽃물을 들이는 이도 없을성싶기도 하다. 지지리도 가난하고, 옹색한 시골 살림에 일곱 명이나 되는 자식을 먹이고, 입히시는 일이 얼마나 대간하셨을까? 꽃밭을 가꾸시며 엄마는 고단한 당신의 삶을 잠깐씩 달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는 여름휴가에는 짬을 내 엄마가 잠들어 계시는 불갑면 고향 선산에 다녀와야겠다.△시인 겸 수필가인 류미숙씨는 2003년 월간 〈한국시〉(수필)와 2007년 〈한맥문학〉(시)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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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8 23:02

웃음꽃

출근길에 노란 버스를 만났다. 여자 운전자가 저만큼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차를 멈춘다. 어서 건너가라고 손짓하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한 송이 꽃 같다. 아이가 총총 걸어서 노란 버스를 탄다. 아이를 태우고 병아리처럼 뒤뚱거리며 지나가는 차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어느새 입가에 꽃향기 퍼지듯 노란 웃음꽃이 피어났다. 최근 주말이면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하는 일이 잦다. 정안 휴게소에는 통기타를 치면서 맑은 목소리로 7080세대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무명 가수가 있다. 무대 앞에는 백혈병 소아 암 어린이 돕기 모금함이 놓여 있다. 먹고 싶은 호두과자 한 봉지 값을 거기 넣고 싶은데 용기가 없다. 모금함에 다가가는 발길이 많다면 자연스레 그 무리에 휩쓸려 맘을 담을 수 있으련만. 호두과자와 아메리카노를 든 많은 손들이 무심히 그 앞을 지나친다. 오늘도 용기 없는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차에 올라서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용기 없는 자신이 한심하다. 옆으로 스치는 풍경도 시큰둥하다. 고개를 흔들어 기분을 바꾸려 애를 쓰다 한 송이 꽃을 발견한다. 달리는 버스 안인데도 그 향기가 코에 스미는 듯하다. 입술에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아침에 만난 그 웃음꽃이다. 그녀에게서 받은 해맑은 웃음. 그녀는 내게 웃음꽃을 선사했다.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 속의 나는 천편일률적으로 웃고 있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보조개에 대한 설명을 하던 담임선생님께서 나의 보조개를 찾아주셨다. 웃을 때만 살짝 보이는 볼우물. 그 후로 나는 많이 웃는 사람이 되었다. 내 웃는 모습도 보는 사람에게 웃음꽃 선물이 되면 좋으련만. 길을 가다 만난 외국인들은 눈이 마주칠 때 하나같이 웃음을 선사한다. 누구인지 몰라도 그냥 반갑게 웃어준다. 구레나룻이 멋스럽게 난 노신사건, 뱃살이 퉁퉁한 젊은 여성이건 그들은 몸에 밴 자연스런 웃음꽃을 나눈다. 그들을 대하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거울처럼 마주보며 웃으니 어색할 것도 없다. 태교할 때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고전이다. 이제는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어떨까.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웃는 것을 익힌다면 화난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스치는 이웃을 마주하지 않으리라.아기는 태어나 3개월이면 눈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엄마의 웃음이 망막에 잡히면 아기는 웃음으로 반응한다. 찡그린 얼굴을 보고는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갓난아기도 따라할 수 있는 쉽고 편한 웃음을 아끼고 사는 우리들은 아닌지. 최근엔 웃음이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기재로도 사용된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니 웃을 일이 생긴다고도 한다. 아무리 사소한 물품도 자본 없이는 생산할 수 없지만 웃음은 자본 안 들이고 만들 수 있을 뿐더러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도 예외다. 무수히 만들어도 과잉공급이라 탓하지 않고, 설령 소비하지 않아도 적채되지 않는다. 무한정 생산해도, 아낌없이 소비해도 되는 것이 웃음이다.많은 꽃들 중 웃음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 소심한 성격 탓에 선뜻 모금함에 다가가지 못한 내겐 웃음꽃이 있다. 무례하게 운전하는 사람을 만나도, 무단 횡단하는 사람 때문에 급정거를 해야 할 때도 노란 버스의 그 운전자처럼 먼저 웃어 주리라. 초록 나무들로 가득한 저 산처럼 온 세상이 웃음꽃 만발하면 좋겠다. △수필가 박갑순씨는 1987년 〈자유문학에 시, 2004년 〈수필과비평〉에 수필 등단. 현재 월간 〈소년문학〉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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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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