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울 생협에서는 지난 두 달 동안 생명학교를 운영했다. 환경호르몬의 정체, 유전자 조작식품 바로 알기, 농촌에 가서 농사체험하기 등 10주에 걸쳐 진행된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시간은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이라는 제목아래 참가자 각자가 실천사례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사례가 없어 지루하게 진행될까 걱정했는데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서 얘기를 끊어야 할 정도로 열띤 시간이었다. 심한 가뭄을 겪은 뒤라 그런지 물을 아껴쓰는 실천사례가 많았다. 한 아기의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변기의 물을 아끼기 위해 세 식구가 한곳에 소변을 본 뒤에 물을 내린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설거지할 때 물을 받아놓고 하는 사례, 화장실 청소할 때 물과 세제로 씻어내는 대신에 걸레나 수건으로 닦아내는 사례, 목욕한 물을 변기의 물로 이용하는 사례, 설거지 물을 줄이기 위해 반찬그릇을 남은 밥으로 깨끗이 닦아먹는 사례 등 특별한 방법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는 좋은 방법들이 많았다.
물절약의 방법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 바지를 기워 입히고 도시락을 꼭 싸준다는 조합원도 있었고, 재활용을 철저하게 하는 조합원, 비닐 봉지를 깨끗이 씻어서 여러 번 사용하는 조합원, 음식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쓰는 조합원 등 예쁜 행동으로 인해 얼굴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그 중에 제일 칭찬을 많이 받은 사례는 골목길의 쓰레기를 주워 남에게 좀더 기분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한 조합원의 실천이었다.
그녀는 매주 토요일마다 집에서부터 아이의 학교까지 청소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골목길의 쓰레기를 줍는다고 했다. 집게와 빈 쓰레기 봉투를 들고 한 시간 남짓 한바퀴 돌아오면 비닐봉투가 꽉 찬다고 했다. 함께 자리를 했던 한 생산자는 오히려 부끄럽다고 했다. 도시 사람들이 이렇게 실천하고 있는데, 자기들은 지하수를 마음놓고 쓴 것 같아 반성이 된다고 했다.
정말 생각해보면 보통문제가 아니다. 지표에 있던 물이 땅밑으로 흘러들어가서 지하수로 있다가, 땅위로 올라오려면 150년이 걸린다고 한다. 물은 어디서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옛부터 있던 물이 땅속으로 땅위로 하늘로 순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물질이 마찬가지다. 지구상에 그 어떤 물건도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물질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원래부터 있던 자원의 모양을 변형하는 것일 뿐이다. 즉 순환하는 것일 뿐이다. 이 순환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물건이 수명을 다해서 자연으로 되돌아갈 때는 어떤 상태인가.
물건들이 각종 오염물질로 변해 있어서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연에 치명적인 상처만 입히는 실정이 아닌가. 심지어는 사람도 농약과 방부제로 오염된 먹거리 때문에 죽은 후에도 썩지 않아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고 한다.
결국 순환의 이치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일방적인 착취와 훼손으로 악순환만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세상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사람은 자연훼손을 덜하고 쓰레기를 제일 조금 버리고 가는 사람이 아닐는지.
나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생활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아직은 희망이 넘치는 세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이덕자 (전주 한울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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