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날씨가 진짜 장난이 아니에요."
아들아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옷부터 벗어 던지면서 투덜댄다. 입추가 지나고 가을이 오는 듯하더니 다시 여름이 오는 듯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나는 헉헉거리는 아이에게 대답했다.
"이야, 엄마는 기분이 참 좋다. 이 뙤약볕에 논에 있는 곡식이 영글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우리를 먹여 살릴 식량이 잘 익는다는데 이까짓 더위쯤 못 견디겠냐. 오히려 즐거워서 노래가 나온다."
한울 생협에서 농민들과 직거래활동을 하면서부터 나는 날씨와 농사를 연관짓는 버릇이 생겼다. 요즘의 따가운 햇볕을 보면서 풍년을 예감해 본다.
오늘은 수수께끼부터 풀고 나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기를 늘리며 속을 덥게 하고 위장기능을 좋게 하며, 내장을 보호하고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며, 장과 위에 이익이 되고 귀를 밝게 하고 눈을 맑게 하며, 혈맥을 통하게 하고 오장의 기운을 고르게 하며, 안색을 좋게 하는 약효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동의보감에 씌어 있는 이것은 몸의 기능이 좋아지고 원기를 북돋워주는 만병통치의 음식인 것 같다. 짐작하겠지만 이 수수께끼의 답은 바로 우리의 주식인 쌀이다.
한울 생협의 생산자들이 소비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현미를 먹으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땀흘려 농사지은 쌀의 영양가를 소비자들이 다 깎아 버리고 먹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하얀 쌀을 백미(白米)라 한다. 이 흰 백(白)과 쌀 미(米)라는 한자를 합하면 粕(찌꺼기 박)이 된다.
그러니까 흰쌀은 찌꺼기라는 뜻이다. 쌀의 영양가를 분석해보면 쌀눈에 영양분의 65%, 쌀겨에 30%, 흰쌀에 5%가 들어있다고 한다. 생산자는 말한다. 겨우 5%의 영양분을 먹자고 농부들을 1년 내내 애를 쓰게 하고 빚더미에 오르게 하는 것이 속상하다고.
현미에 관한 자료들을 뒤져보았다. '현미는 씨눈에는 노화를 방지하는 토코페롤이 많이 들어 있고, 겉껍질에는 섬유소가 많아 숙변을 제거한다. 백미는 죽어있는 쌀이고 현미는 살아있는 쌀이다. 백미는 땅에 심으면 썩지만 현미는 3년간 보관한 뒤 땅에 심어도 싹이 난다.
우리 몸을 지탱하는 각종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으며, 단백질이나 지방, 비타민, 미네랄, 철분 등의 함유량이 백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히 포함되어 있다.' 요즘 쌀소비가 줄어드는 실정이라는데, 이 자료를 보니 생명의 기운을 받고 싶다면 현미로 밥을 지어먹는 길이 가장 빠르지 않을까 싶다.
생산자는 거듭 강조한다. "현미밥을 먹을 땐 꼭꼭 씹어야 하니까 좌뇌, 우뇌가 골고루 발달하고 분별력이 정확해집니다. 병든 음식을 산처럼 먹었을 때 생기는 병이 바로 癌(암)인데 현미를 먹으면 자연치유력이 강해져서 병도 예방할 수 있고, 영양소가 풍부해서 적게 먹어도 되니, 부족한 식량난도 해결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인 셈이지요. 농사는 농민만 하는 게 아녜요. 현미만 먹어주어도 반은 농사를 하는 셈이랍니다."
오늘도 이 뙤약볕에서 생명농업에 여념이 없는 생산자들을 생각하면 뜨거운 태양열이 상쾌하게만 느껴진다.
/ 이덕자 (전주 한올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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