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남부에 있는 쿠리티바라는 도시가 화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91년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로 선정했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 꿈의 도시, 희망의 도시, 미래의 도시 등 최상급의 수식어들이 붙는 도시다. 유엔환경계획이 주는 상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상도 수상했다. 어떤 도시이기에 전세계가 이런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쿠리티바시는 그 면적이나 인구 등 외형적인 규모에서는 광주와 비슷하다. 그러나 훨씬 적은 예산을 쓰면서도 교통, 환경, 빈민 등 모든 문제에서 광주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살기 좋은 도시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도시병'에 걸린 여느 제3세계 도시들과 다를 바 없었던 이 도시를 구한 주인공은 71년 34세의 나이로 시장에 취임한 건축가 출신 자이미 레르너이다. 이 사람은 3차례 시장을 지낸 후 지금은 파라나주 주지사로 일하고 있는데, 유력한 차기 브라질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레르너가 내건 개조의 모토는 간단했다. 저비용과 검소와 단순함, 그리고 속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브라질에서 "쉽고 간단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창조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의 개혁에도 '당연히' 반발이 따랐었다. 반대파는 그를 사회주의자로 몰아붙였고, 가두시위에 나서는 상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이 하나하나 결실을 맺으면서 반대파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그를 강력히 반대했던 후임 시장조차 결국은 그의 정책을 그대로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 온 세계는 한 사람의 탁월한 리더가 세상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경탄하고 있다. 물론 현장에서 뛴 관료들과 그 리더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시민들에게도 찬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변화의 근본은 역시 리더십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작년 말 한국민 사이에 개혁의 초심이 사라졌다는 주한 미 대사의 지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내부 문제를 다시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세력이 허약한데 비해 고강도 개혁이 남발하니 힘에 부칠 수밖에 없어 몸살을 앓는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집권세력의 의지대로 정국을 운용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지세력의 저변이 넓고 튼튼해야 한다. 그러나 현정권은 소수정권이고 가용 인재범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혁정책 역시도 준비된 역량을 집중해서 제한적으로, 실용적으로 짜고 집행해야 했다.
학자들은 기존 관료체제의 틀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일부 관료를 수혈하는 정책은 결국 내부의 갈등과 알력에 의해 약체 행정부를 낳는다고 한다. 각종 정책 입안과 집행은 혼란을 겪게 되고 정치적 행정적 비밀 유지도 어렵게 됨에 따라 정보체계도 흔들리게 되며, 그 결과는 치고 받는 스캔들 정치의 연속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는 다시 새로운 리더십을 기다리고 있다. 리더십을 위한 조건은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지도자가 매력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매력적인 지도자란 권력을 생산(집권)할 뿐 아니라 권력을 소비(국가경영)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정치인이 집권 개념만 있다면 이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생생한 비전을 갈고 닦아, 권력을 잡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소비전략을 갖춘 리더가 진정 매력적인 지도자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자신을 유연하게 적응시키는 개방성과, 답이 없는 명분싸움 대신 주어진 문제해결을 위해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갖춘 그런 지도자가 그립다.
/ 이왕준 (인천사랑병원장)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