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는 ‘게이트’로 시작해서 ‘게이트’로 지는 것 같다. 아침에 눈뜨면 ‘무슨 게이트’에 연루된 새로운 사람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문’ 하나를 열면 또 다른 ‘문’이 계속해서 나타나 끝을 알 수 없다.
‘게이트’란 말은 공화당 닉슨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에서 유래한 바, 원래 ‘스캔들’이나 ‘추문’으로 불리는 게 적합할진대 권력형 스캔들에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다.
이번의 게이트들은 새로운 시대적 특징을 띄고 있다. 과거의 비리 의혹들은 대개 재벌과 관료, 정치집단 사이에 주로 발생했지만 이번의 사건들은 벤처기업을 끼고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의 강남 개발 붐을 틈타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 들인 과거 졸부들과 달리 벤처열풍에 따라 급격히 부를 축적한 신흥 벤처 졸부들과 권력기관, 금융기관, 언론기관들이 벌이는 신종수법이다.
나는 누가 얼마를 받고 댓가성으로 어떤 위법을 행사했는 지엔 별 관심이 없다. 그건 검찰이 밝혀낼 일 뿐이다. 다만 왜 이런 추문들이 시작되었고 언제까지 진행될 지가 궁금하다.
올해의 대통령기자회견을 보는 느낌은 수많은 ‘게이트’로 얼룩진 정권의 피로를 보는 듯했다. 외환위기를 비교적 순조롭게 넘기고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은 경제상황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쉬어 버린 목소리로 연신 죄송과 사과를 반복해야 하는 현주소가 몹시 씁쓸하다. 뒤늦게 정실인사를 하지 않고 불퇴전의 각오로 비리척결을 외치지만 왠지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부터 4년전, 50년만의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몹시도 기뻐했던 사람들은 권력이란 결국 똑 같은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에 할 말을 잃는다.
새로운 정권의 등장을 한 정권에서 다른 정권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영남에서 호남으로 권력의 중심이 옮겨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자들은 정권교체의 참된 의미를 모른 채 자신들도 그 자리에 앉아 볼 기회가 생기는 정도로 이해했을 지 모른다. 여전히 소수파 정권에 불과한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망각한 채 너무도 빨리 권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권력을 누리는 쪽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권력에서 조금(!) 소외되었던 이들은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적극 반기고 권력의 중심부로 재빠르게 진입했다. 단지 출신지역이 같다는 이유로 출신교가 같다는 이유로 믿을 만한 우리 편으로 둔갑하여 정권 교체의 꿀 맛을 누려왔다.
나는 이들을 각종 추문의 진원지로 의심한다. 이제 이들에 의해 권력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고 있고 이들은 벌써 새롭게 살 길을 모색하고 있을 지 모른다. 서로간에 암투를 벌이고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다음 정권에 보험이라도 들려고 안달이 날 지도 모른다. 일찌감치 괜찮은 우리 편을 만들어 놓지 못한 DJ는 때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사태가 호전될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따져보면 과거 정권의 대형 비리들에 비하면 지금의 것들은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참된 의미를 안다면 여러 게이트들이 더 가혹하게 폭로되어 오히려 이번 기회에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채우려는 오랜 관행을 멈출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권력에 취한 자들의 추한 이야기가 언제까지 계속 오르내릴까?
/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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