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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쉬운 학부모 노릇

 

 

 

 

 

지난주 나는 참으로 힘든 날을 보냈다. 아이가 기말고사를 치루었기 때문이다. 애가 이번시험은 월드컵 때문에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다른 여느때 보다 힘들었다.

 

 

아침 일찍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의 등을 보며 애들시험에 자유롭고 싶은 심정을 갖았던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나는 큰 애가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 몇 가지 다짐을 했다. 부모가 해야할 일은 아이가 자신의 일을 성실히하는 법을 배워나가도록 격려하는 것.

 

 

그저 사람답게 옳고 그름,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된 일을 분간하여 행동하고,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성적이 최고가 아니라고 말이다.

 

 

 

 

이 땅에서의 학부모

 

 

 

 

내가 이런 다짐을 하게 된 것은 어제 오늘만의 생각이 아니다. 명색이 교육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60년대 후반 전주에서 부자학교라고 이름난 한 초등학교를 다녔다. 다른 학교가 이부제 천막수업을 할 때 우리는 제법 넉넉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이 학교에는 타이아표 통고무신을 신고 다닐 때 왕자표 농구화를 신는 학생도 많이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점심을 걸은 학생도 많을 시대에 토스토를 싸오고 시계를 차고 다니는 학생조차 있었다.

 

 

당연히 집이 부자고 과외를 받는 애들과 그렇지 못한 애들하고 어울리게 되었다. 우리들은 누구누구는 과외에서 시험문제를 가르쳐 주어 성적이 오르고, 누구누구는 엄마가 선생님을 만나 성적이 올랐다고 하였다.

 

 

선생님들 또한 모든 애들을 결코 공평하게 대해주지 안했다. 학생의 됨됨이가 성적에 의해 점수가 매겨졌다. 성적이 좋지 않는 애는 축구에도 지고 싸움에도 졌다.

 

 

나는 그 학교에 애를 다시 보내게 되었다. 나는 학예발표회가 열리는 날 참담한 초등학교 시절이 되살아 났다. 같은 반 애 하나가 흰 연미복을 입고 지휘를 하고 빨간 티셔츠를 입은 애들은 따라했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애들을 보았다. 극심한 학부모의 경쟁심리 그리고 애들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심한 충격을 받았다.

 

 

30년여년이 지났건만 이 학교는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나는 큰 애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 켰다. 애가 그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부모노릇 훌륭했다고 할 수 없어도 적어도 맹목적인 애정에 빠져 들지는 않았다.

 

 

애가 중학교에 가면서 나의 다짐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혼자 집에서 공부하는 애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뒤쳐지지 않을 까 불안에 싸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마다 자질은 다른 것이고 어느 자질이 어느 자질보다 낫거나 못한 것이 아니고 가치로운 것이다는 생각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너도 나도 좋은 학교를 찾아 서울로, 조기유학으로, 이민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서울강남 지역에 유명학원을 다니기 위해 일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학원 수강생 선발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학원입시용 과외가 있다고 한다.

 

 

전주에도 지난 4월 대한주부클럽 연합회 전주·전북지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고등학생 10명 중 2명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원에서 보낸다. 벌써부터 전주상산고를 들어가기 위해 전주로 이사온다는 소문도 들린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미 학교교육만으로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인식이 보편적인 사회현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직장을 얻고 대접받는 사회가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계속 남을 것이다.

 

 

 

 

공평함을 위하여

 

 

나는 학교에서 책만 보고 공부만 하는 아이만 칭찬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는 수학, 누구는 축구, 누구는 달리기, 누구는 첼로 등등 각자가 가진 아이들의 자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칭찬했으면 한다.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해주고, 똑같은 사람으로서 모두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했으면 한다. 그러면 이 땅에서 학부모 노릇하기가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 까.

 

 

/소순열(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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