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초 백제 중앙세력이 남진(南進)하는 과정을 설명해주는 자료로 전북지역 백제사 연구 활성화에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읍 신정동 유적 책임조사원으로 발굴조사를 이끈 원광대 최완규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고분의 형식과 출토유물이 웅진시대 중앙의 그것과 같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사비천도 이전인 6세기초 백제 웅진(공주)에서 내려온 중앙세력이 노령산맥 북측 기슭에 영산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구축했다는 것.
최교수는 “금제귀걸이등 고분 출토유물로 미루어 피장자의 신분은 꽤 실력자였을 것”이라며 “노령산맥과 영산강유역의 경계지점으로서 주변에 입암산성이 축조된 것으로 볼때 당시 이곳에 대규모 정치집단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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